코로나19 사태가 사이비似而非 종교宗敎 혹은 유사종교類似宗敎 집단 '신천지'의 몰상식한 대처로 지역 감염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역 감염의 시발점이 되었던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진자의 80%가 신천지와 관련된 환자들이다. 대구 지역 감염자 숫자가 신천지 관련 환자들을 빠르게 추월하고 있지만, 지역 감염 원인이 신천지 집단의 폐쇄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측면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신천지 사태라 할 수 있다.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에도 알 수 있듯이 사이비 종교 집단의 극단적인 행동 양식은 언제라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문제는 결국 종교 중독(religious addiction)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천지 사태를 종교 중독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다룰 때, 종교심리학적 방법론과 종교사회학적 방법론은 매우 유용하다.

첫째, 종교심리학적 측면에서 신천지 사태는 종교 중독에 기초한 주물숭배呪物崇拜 혹은 물신숭배物神崇拜의 폐해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천지 추종자들은 구약성서에 예언된 구원자가 신약성서의 예수인 것처럼 신약성서에도 예언된 구원자가 교주인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종말론적 사건들이 발생한 후 결국 이만희와 함께 요한계시록 7장 4절의 "십사만 사천"이 영원한 지상 통치자들이 된다고 믿고 있다.

신천지 추종자들에게 이만희는 일종의 주물呪物이다. 주물이란 그 자체로 초월적이고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비합리적인 헌신을 바치는 대상이나 관습을 의미한다.1) 주물숭배를 영어로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어 페티시(fétiche)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시종교에서 신적 능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거나 부적符籍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물건을 지시한다.

주물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나 관습을 통해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투사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물건이지만 중세 가톨릭의 7가지 성사聖事와 같은 관습이나 개신교의 헌금, 교회 봉사, 주일예배 등과 같이 반복되는 특정한 종교 행위도 될 수 있으며 신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인간 교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물숭배는 결국 우상숭배이며, 우상숭배는 인간이 원래 추구하였던 초월자와의 건강한 교제나 관계를 파괴한다.2) 그러므로 십계명의 제2계명(출 20:4)처럼 성서는 물건이나 피조물을 신적 존재로 떠받드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주물에 대한 맹신은 종교 중독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종교 집단은 교주를 '영생불사'의 존재로 묘사하여 종교 중독을 부추긴다. 건강한 신앙 상태에서는 주물에 대한 맹신이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종교사회학적 측면에서 신천지 사태는 종교 중독에 기초한 '종교적 위력 행사'와 '영적 학대'(spiritual abuse)의 문제이다. 양자는 동일한 종교 중독 현상인데, 사이비 종교 집단(혹은 교주)에 의한 종교적 위력 행사는 종교 중독자에 대한 영적 학대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먼저 신옥주 사건과 같이 종교적 위력 행사는 사이비 종교 집단과 관련된 범죄에서 자주 등장하는 범죄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303조에 따르면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자신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판례에 따르면, 위력威力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유·무형적 세력을 뜻하며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나 권세('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관련된 대법원 2007년 8월 23일 선고 2007도4818 판결)도 포함된다.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업무와 관련될 경우 업무상 위력 행사의 범죄가 되고, 종교와 관련될 경우 종교적 위력 행사의 범죄가 된다.

사이비 종교 집단 내에서 종교적 위력 행사로 인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이비 종교 집단 자체가 교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천지 집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천지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고민하거나 내적 상처가 많은 이들을 포섭 대상으로 선정한다. 신천지는 포섭 대상자에게 내적 상처나 불안감을 매개로 접근해서 스스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환자 만들기'를 통해 신천지에 대한 의존성을 높인다. 이후 포섭 대상자에게 신천지의 다른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소개시켜 주는 '얼굴 띄우기'를 통해 기존의 개인적 관계를 단절시킨다.

포섭 대상자가 신천지 구성원들의 관계에 완전히 둘러싸이면 비로소 신천지의 핵심 주장인 "십사만 사천"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면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외부 관계와 완전히 단절된 포섭 대상자는 신천지의 종교 집회를 통한 종교적인 절정감(religious ecstasy)과 집단적 승인에 더욱 집착하게 되고 결국 종교 중독에 빠진다.

교주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된 신천지의 경우 일상의 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없기에 신천지를 위해 가족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개인적 재산과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종교 중독자를 양산한다. 신천지 '추수꾼'들의 비윤리적 행위도 종교 중독의 동일한 기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신천지 집단에 피해를 본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교주의 사적 이익에 대한 욕구가 커질수록 종교 중독자에 대한 종교적 위력 행사의 범죄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20만 명이 넘는 신천지 추종자들은 종교 중독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님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개인적인 불행이나 사람들 사이의 갈등으로 아픈 기억 혹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이때 억압적인 환경, 반복되는 좌절에 따른 실망감, 낮은 자존감, 학대의 경험 등 개인적 요인들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박(obsession)으로 변질될 때, 초월자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회유는 너무나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종교나 종교적 행위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obsessive preoccupation)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려는 욕구는 종교 중독의 주요한 요인이다.3) 그러므로 건강한 종교 공동체라면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 공동체 구성원으로 들어왔을 때, 내적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거나 불안감의 원인을 찾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의 몸이 성령이 임재하는 성전(고전 3:19-17)이라는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종교 집단은 영적 학대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영적 학대란 종교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와 그 직책을 이용하여 신뢰와 존경으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조정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교주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종교적 위력 행사는 초월자에 대한 신뢰를 앞세워 이루어지기에 종교 중독자에게 외상(trauma)과 같은 정신적 학대를 가할 뿐 아니라 영혼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이처럼 영적 학대는 가정 내 폭력처럼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향해 일방적으로 학대를 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에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다.4) 그러므로 영적 학대는 결국 종교 중독자의 자기 파괴적 행위를 수반한다.

신천지와 같은 기독교 사이비 집단은 집단 밖의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격하하고 신천지 집단을 절대화하여 통제력을 강화한다.5) 신천지 집단에 대한 맹신이 깊어질수록 구성원은 집단의 기대에 순응할 때 얻어지는 승인에 매우 의존하게 된다. 뚜렷한 규칙과 요청, 명령 등에 순응한 대가로 얻어지는 무언의 혹은 암시적인 승인은 종교 중독자의 감정의 고양과 만족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 중독자는 집단 압력에 의한 학대에 거의 저항을 하지 못한다.6)

종교 중독자는 교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반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요구받을 때, 초기에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이나 윤리적 공황 상태를 경험하지만 결국 순응한다. 사이비 종교 집단은 종교적 정당화 기제를 통해 이러한 내적 갈등을 무력화한다. 종교 중독 기간이 길어지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피해자의 자기 파괴적 행위도 심해진다. 사이비 종교 집단 내 종교 중독자가 양심이나 윤리 의식 붕괴를 경험하면서 삶이 점차 파괴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영적 학대의 기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최근 들어 한국교회 내에는 반동성애 운동 추종자들이나 전광훈 추종자들과 같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교회의 공공성公共性을 외면한 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진리 수호'를 명목으로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며, 이를 강화하기 위해 사회·정치적 헤게모니(hegemony)에 집착한다.

하지만 한국교회 위기는 종교 중독에서 파생된 것으로,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종교 집단이 종교 중독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사실 신천지의 급속한 성장에는 한국교회 책임이 크다. 21세기 들어 많은 그리스도인이 한국교회의 윤리적 타락과 가부장적 구조, 불투명한 운영 등에 싫증을 느껴 교회를 떠났다. '가나안 성도'의 상당수는 기존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내적 상처 등으로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종교 집단에 흥미를 느꼈고 쉽게 종교 중독에 빠졌다. 신천지가 기존 교인들을 포섭하여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의학적 지원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 사태는 한국 사회의 탈종교화와 급진적인 세속화를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다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를 정부가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공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치료를 위해 교회 공간을 제공하거나 헌금을 사회적 소외 계층의 의료 지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종교 중독과 종교의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사실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등장과 함께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7) 하지만 근대사회 등장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실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8)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줄어들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전염병과 같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종교의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담론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독교는 신비감이라는 거룩함에 대한 욕구를 무시하지 않는다.9) 하지만 예수는 그 거룩함이 언제나 세속적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마 10:16). 오늘날 종교 중독은 종교적 위력 행사와 영적 학대를 통해 인간을 억압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우상숭배를 부추겨 기독교를 무속화(shamanization) 위기 속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편협한 주장에 따라 가상의 적과의 싸움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종교 중독을 부추기는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는 실재하는 적의 위협을 직면하고 이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박성철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1) 아치볼드 하트, 『숨겨진 중독』 (서울: 참미디어, 1997), 156.
2) 그랜드 마틴/임금선 옮김, 『좋은 것도 중독이 될 수 있다』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4), 226.
3) 스티븐 아터번·잭 펠톤/문희경 옮김, 『해로운 신앙』 (서울: 그리심, 2013), 34-39.
4) 데일 라이언/정동섭 옮김, 『중독 그리고 회복』 (서울: 예찬사, 2005), 177.
5) 아터번·펠톤, 『해로운 신앙』, 46.
6) 메리 조 메도우·리차드 D. 카호/최준식 옮김, 『종교심리학 하』 (서울: 민족사, 1994), 341.
7) Marx-Engels-Werke(=MEW), Bd. 1, 378. 현대사회의 세속화, 다원화, 사사화에 대한 담론에 대해서는 Peter L. Berger, The Social Reality of Religion (London: Penguin Book, 1973)을 참조하라.
8) Max Weber, Gesammelte Aufsätze zur Religionssoziologie, Bd. 1, (UTB, 1988), 240-245.
9) 에밀 뒤르켐/민혜숙·노치준 옮김,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서울: 한길사, 2020),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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