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인터뷰한 부교역자 아내들 중 30대 여성 두 명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두 사람은 평범한 교회 청년이었지만 결혼한 사람이 목회자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사모'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독박 육아와 고용 불안정, 교회의 각종 검열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어디에서도 속 시원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이 여성들 목소리를 경청해 보면 좋겠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이지혜 씨(가명)는 목회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교회 봉사도 하고 찬양팀에도 참여하면서 열심히 섬겼다. 활발한 성격으로 어디를 가나 적응을 잘했던 이 씨는 청년으로 성장하며 '선교'에 비전을 품게 됐다. 해외에서 대학을 다닌 이 씨가 그곳의 선교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것이 계기였다. 현지 선교사가 신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신학대학원을 준비하는 스터디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같은 비전을 품은 남편과 교제하고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이 씨는 자연스럽게 신대원 입학을 접게 됐다. 이 씨가 속한 교단은, 남자가 목회를 하면 여자는 자연스럽게 '사모'를 하는 분위기였다. 이 씨 부부는 남편의 신대원 졸업과 동시에 해외로 선교 훈련을 떠났다. 선교 중 임신을 하게 됐고, 임신한 상태에서 타국 선교를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2년 만에 귀국했다.

담임목사의 위선
담임목사 아내의 폭언
남편은 사역 그만두고 택배 일
아내는 고립된 생활에 우울증

이지혜 씨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서 곧바로 전임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 사정이 열악해 사례비는 100만 원대 초반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한 명이라 적자가 크지 않았다. 교회에서 지원해 준 2000만 원으로 알아서 집을 구해 살아야 했다. 10평 남짓한 낡은 집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 그 기간 남편은 목사 안수를 받았다.

물질적인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다. 정말 힘든 것은 담임목사 아내였다. 그의 부적절한 언어가 부교역자들은 물론 많은 교인을 힘들게 했다. 사소한 일로 심하게 꾸짖었고 이 씨 부부가 교인과 친하게 지내는 걸 싫어했다. 이 씨는 "담임 사모는 우리가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했다"고 말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일하던 남편은 심신이 지쳐 갔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남편은, 사역지를 옮겨 파트타임 목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 교회도 결코 편하지 않았다. 담임목사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잘했지만, 사회적 약자는 등한시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남편은 그런 담임목사의 위선적 행동에 회의를 느꼈다. 결국 그곳에서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시기 이 씨 부부 사이에 둘째가 태어났다. 남편은 사역을 쉬면서 택배 일을 시작했다. 몸이 힘든 일이다 보니 남편은 점점 예민해졌다. 남편에게 육아 도움을 받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려워, 이 씨는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해야 했다. 아이가 둘이라 지출도 커져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어졌다. 이 씨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남편은 사역을 다시 해 보려고 했지만 좋은 사역지를 찾지 못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일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정착한 교회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고립된 상태였다. 우울증이 심해졌다."

이지혜 씨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일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정착한 교회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이지혜 씨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일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정착한 교회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어렵게 다시 구한 사역지
1년도 안 돼 '권고사직'
아이도 둘인데 "3개월 안에 나가라"

택배 일을 하던 남편은 어렵게 다시 사역지를 구할 수 있었다. 8개월쯤 지난 어느 날, 집주인이 "아이들이 너무 뛰어다닌다. 집을 좀 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을 교회에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담임목사에게 알렸다. 담임목사는 조금만 기다려 보자더니, 몇 주 후 남편에게 갑자기 교회를 나가 달라고 했다.

"담임목사는 '사역지가 구해지면 나가라'가 아닌 '11월까지 교회를 나가라'고 했다. 3개월 안에 다른 사역지를 구해야 했다. 사역지를 구하지 못하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 둘을 데리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도 프리랜서로 간간이 일하며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었다. 남편 사역지 때문에 지역을 옮기게 되면 그만둬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런 걸 따지며 옮길 형편이 아니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항상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듯했다. 이지혜 씨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원망도 생겼다. 부교역자 가정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을까. 신학교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사역자로 지내면서 힘든 점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결혼 생활은 책임져 주지 않으면서 결혼만 권장하는 건 아닌가. 목회자 가정의 고충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만 말하는 교회가 원망스러웠다.

이 씨는 어느 환경에서나 적응이 빠른 사람인데도, 목회자 아내의 삶이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외로움'이었다. 말할 곳이 없었다. 남편은 항상 지친 모습이었고 육아에도 신경 쓰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연애하며 나눴던 선교에 대한 비전도 흐려졌다. 남편은 부교역자로, 이 씨는 아내이자 엄마로 지내면서 현실에 지쳐 갔다.

이지혜 씨는 목회자 가정의 고충을 가르쳐 주기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만 말하는 교회를 원망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지혜 씨는 목회자 가정의 고충을 가르쳐 주기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만 말하는 교회가 원망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사모' 아닌 '동역자'로 봐 준 한 사람
목회자 아내들도 이야기할 곳 필요해"

이지혜 씨가 그나마 부교역자 아내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목사 아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덕분이었다. 이 씨는 카페에서 비슷한 고충을 겪는 부교역자 아내들을 만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약자들끼리의 공감이랄까. 비록 익명이었지만 '사모'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들어 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다. 이지혜 씨는 힘든 시절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을 '사모'가 아닌 한 명의 '동역자'로 봐준 집사였다. 영유아부 교사였던 그 집사는 이 씨에게 편하게 다가와 줬다.

"사모들을 편하게 대하는 교인이 없는데, 그 집사님은 친한 언니처럼 먼저 말을 걸어 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분은 그저 맡겨진 일에 헌신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 헌신의 수혜자에 내가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이지혜 씨는 교회를 옮기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새로 옮긴 교회는 다행히도 부교역자 가정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다. '사모' 역할을 강요하지도 않고 '이지혜' 그 자체의 생활을 인정해 주려 했다. 덕분에 남편도 잘 적응해 사역하고 있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이 씨도 본인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이지혜 씨는 부교역자 아내로 생활하며 부부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목회자 부부 관계가 건강해야 교인과 교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목회자의 건강하지 않은 부부 생활은 곧 교회를 힘들게 하더라. 부교역자 아내로 살면서, 왜 이런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모들은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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