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교회에서 부교역자 아내는 며느리 같은 존재다. 담임 사모는 시어머니고 권사들은 시누이다. 한마디로 부교역자 아내는 교회 내 서열 꼴찌다."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한 부교역자 아내가 인터뷰 중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의 며느리가 되어 속을 끓이고 있었다. 부교역자 상황도 좋지 않지만, 그나마 남편은 자신이 사명으로 받은 일을 하면서 가끔 '설교'라는 발언권도 사용한다. 부교역자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발언권도 없다.

세대가 바뀌고 사회 인식이 달라지면서 교회 안에서도 여성의 지위를 재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부교역자 아내 중에서도 전통적인 '사모상'에서 벗어나 직장 생활을 하고 남편 사역에 함께 엮이지 않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교역자 아내가 '사모는 이래야 한다'는 관습에 얽매여 있다.

<뉴스앤조이>는 일주일간 부교역자 아내 10명을 인터뷰했다. 이제 목회자 아내가 된 지 3년이 지난 사람부터 30년 이상 '사모'로 산 사람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부담을 느끼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뷰에 응해도 불안해하며 몇 번이고 익명을 보장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말문이 한번 트이자 짧은 시간에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중 한 부교역자 아내의 말이, 이들이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

"돈도 없고, 남편은 사역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데 좋은 사역지는 못 만나고, 정착해 있는 교회도 없고, 나는 일도 못 하고, 애들은 어리고, 맡길 사람도 없고… 고립돼 있는 상태였다.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관습처럼 굳어진 '사모상'
머리 모양부터 복장까지 검열
목회자 아내는 딸려 온 사역자?
"사모는 돈에 초연해야 한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 내 전형적인 사모상 때문에 복장 하나, 행동 하나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 내 전형적인 사모상 때문에 복장 하나, 행동 하나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부교역자 아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은 관습처럼 굳어진 전형적인 사모상에 대한 부담이었다. 결혼한 사람이 목회자일 뿐인데, 아내들은 교회에서 복장 하나, 행동 하나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부목사 아내 A는 남편이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담임목사 아내에게 '사모가 하지 말아야 할 항목'을 문서로 받았다. 내용은 "청바지 금지, 백팩 금지, 민소매 금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 금지, 네일 아트 금지" 등이었다. B도 남편을 통해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전달받았다. "옷을 단정하게 입으라고 했다. 청바지나 찢어진 바지는 입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C는 "머리를 묶고 다니니 교인들이 자꾸 '사모님, 너무 어려 보여요'라고 하더라. 권사님들이 그 말뜻을 풀어 줬는데 '머리 좀 하고 다니라'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예배 참석을 강요받기도 했다. B는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들을 불러, 집에 가서 전하라고 했다더라. 부교역자 아내들은 모든 예배·부흥회 참석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D는 "사모는 1등 교인이 돼야 한다. 아파서 새벽 기도에 빠지기라도 하면, 교인들은 '사모님, 어디 아프셨어요?'라고 묻기는커녕 그냥 째려본다. 100점짜리 교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사역하러 온 교회이지만, 담임목사가 목회자 아내를 '함께 딸려 온 사역자'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잦다. E는 남편 사역지에서 영아부 사역을 떠맡았다. 그는 "영아부 사역자를 뽑지 않고 나를 사역자로 세웠다. 페이를 주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인력으로 여긴 것 같다. 당연하게 봉사를 강요했다. 내가 아이도 키워 봤고 내 아이 나이도 (영아부 아이들과) 비슷하니까 잘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2년 정도 영유아 예배 봉사했다"고 말했다. F도 "강제로 아동부 봉사 하게 됐다"고 말했다. A는 "2년간 월요일만 빼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봉사를 시켰다"고 말했다.

'목사 아내는 직장을 가지지 말고 기도로 교회와 남편 사역에 내조해야 한다'는 인식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A는 "담임목사가 부교역자 아내들에게 직업을 갖지 못하게 했다. 예를 들어, 직업이 교사라면 휴직하라고 했다. 부교역자는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아내들이 일하는 걸 안 좋아했다. 이유는 '사모는 경제적으로 빈곤해야 한다. 돈에 초연해야 한다. 남편 사역을 도와주려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려면 일을 쉬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아이가 4명인데, 남편 수입만으로 가정을 꾸려 가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목사 가정은 차상위 계층이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복지 제도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독박 육아'
갑작스러운 권고사직으로
아내는 경력 단절,
자녀들은 낯선 곳 적응해야

부교역자 아내들은 '독박 육아'를 당연하게 감당해야 했다. 전임 부교역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비교적 적다. 30개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G는 "일요일에는 한 번도 점심을 먹어 본 적이 없다. 남편은 목회자끼리 식사하고, 양가 부모님도 교회 일로 바쁘다.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 식당에 가야 하는데 한창 활발한 쌍둥이를 데리고 가기는 무리다"고 말했다.

E는 "교회에서 일반 교인들 가정은 아빠가 아이와 같이 밥을 먹거나 가정과 함께 있는 모습이 노출돼도 상관없는데, 교역자 가정은 그러면 안 된다. '목회자는 양을 돌보는 목자이기 때문에 본인 아이들이나 아내를 돌보는 게 덕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나 혼자 아이를 케어하고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거나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담임목사와 나이 많은 교인들이 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들이 목회 사명을 이유로 육아를 꺼리기도 한다고 했다. H는 "남편이 사역자로 살고 싶어 하는데, 생계가 불안하고 앞길도 막막했다. 남편이 너무 힘들어하기에, 그럼 내가 일할 테니 당신이 (잠시 사역을 쉬고) 육아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목회자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사역해야 한다면서 육아를 피했다"고 말했다.

1년마다 받아야 하는 재청빙과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권고사직'은 부교역자 본인뿐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치명적이다. H는 "아이들이 뛰어다녀서 집주인이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이 교회 돈이라 남편이 담임목사에게 얘기했다. 담임목사는 조금 지켜보자더니, 다음 달 권고사직을 통보했다"며 "다른 사역지가 구해지면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 기간 내 사역지를 구하는 건 전적으로 우리 몫이었다"고 말했다.

B는 남편과 함께 사역지를 옮기면서 가장 걱정되는 점은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을 옮길 때마다 아이들 유치원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 옮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잘 적응하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부모 때문인 것만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편 사역지를 따라 지역을 옮기면, 부교역자 아내들은 어렵게 시작한 일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H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조금이나마 소득도 있었는데 남편이 사역지를 옮기게 되면서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B도 "사역지를 지방으로 옮기고 하다 보니까 짧은 계약직 경력만 생기더라. 다시 도전해야 하는 시기인데, 나이는 많아졌고 내 이력은 그대로고 취업 문턱은 높아진 것 같아 위축된다"고 말했다.

A는 "사모가 돼서 후회하는 일은 하고 싶은 걸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첫째를 낳고 일을 그만뒀다. 아이가 크면 재취업하려 했는데, 그냥 포기하게 됐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고립된 부교역자 아내들
아내들끼리도 '사모' 가면 쓰고 생활
담임목사 아내가 챙겨(?) 주지만
갑질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
13년차 부교역자 아내 C는
13년 차 부교역자 아내 C는 "사모들이 서로 본인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웬만하면 자기 모습을 감추고 사모라는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었고, 그렇게 살 줄 몰랐다"고 말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에서도 어울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교인들 사이에서도 '사모님'이라고 불리며 일반 신자와는 다르게 인식되고, 그렇다고 목회자 그룹에 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B는 "담임목사가 교인들하고 깊이 있게 어울리지 말라고 했다. 교인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고, 혹여라도 말실수하게 되면 교인들이 실족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I는 "사모는 셀 모임에 속해 있지 않아, 신앙을 나누거나 고충을 말하고 싶은데 이야기할 곳이 없다. 남들은 나에게 와서 상담해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내가 상담을 받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너무 교회에만 신경 쓰는 남편이 서운할 때도 있다. '너랑 결혼하지 말고 그냥 교회나 다닐 걸. 그러면 오히려 네가 내 이야기 더 잘 들어 줬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부교역자가 많은 교회에서는 아내들끼리 모임이 형성되는데, 이것도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곳은 못된다고 했다. E는 "사모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 교인들도 사모와 함께 있는 걸 불편해한다. 누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사모들끼리 친밀하고 교류가 잘되면 좋을 텐데, 서로 친하지도 않고 고립되기만 한다"고 말했다. I는 "사모끼리 이야기하는 걸 더 조심해야 한다. 다른 목사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C는 "사모들이 서로 본인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웬만하면 자기 모습을 감추고 사모라는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었고, 그렇게 살 줄 몰랐다. 처음에는 사모들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느 순간 보니, 나 혼자만 이야기하고 있더라. 다른 사람들은 형식적인 이야기만 했다. 목회자 아내로 13년을 살아 보니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구나' 깨달았다. 떠나간 사모들과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역자 아내들 모임은 대부분 담임목사 아내 말을 듣는 자리가 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갑을 관계'가 그대로 아내들 사회로 이어지는 것이다. E는 "교인들이 소그룹을 할 때 사모는 사모들끼리 소그룹을 했는데, 그냥 담임 사모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본인만 말하고 담임 사모 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모임이 끝나지 않았다. 매주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진행됐다. 담임 사모도 이야기할 데가 없으니 이해하려 했는데, 정말 멘탈이 나갈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J는 "담임 사모의 신앙관이나 아이 양육 가치관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만 말하지 못한다. 아이가 예배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있었던 적이 있는데, 담임 사모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라고 했다. 굉장히 당황스럽고 불쾌했지만, 티 내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동의하지 않아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말에도 '순종'이라는 말로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담임목사 아내 성격에 문제가 있으면, 가장 큰 피해는 부교역자 아내들이 입는다. 담임목사 아내와의 갈등을 견딜 수 없어 사임한 목사 아내 F는, 지금도 가끔 그가 꿈에 나온다고 했다. F는 "담임 사모가 질투가 많고 거짓말과 이간질이 심했다. 내가 교인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욕만 안 했지, 인격 모독적인 이야기를 일삼았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주다 보니 사람을 돈으로 취급했다. 남편은 '150만 원 값도 못하네'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직장·멘토 있어서 견뎌
"남편 목회와 동일시하면 안 돼
아내들도 자아실현해야"
39년 차 목회자 아내 손명희 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목회자 아내도 교회 밖으로 나와 자아실현을 하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으로 관계없음.)
39년 차 목회자 아내 손명희 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목회자 아내도 교회 밖으로 나와 자아실현을 하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으로 관계없음.)

부교역자 아내들은 대부분 힘든 상황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사람 중에는 부교역자 아내로 살며 속앓이했지만,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은 경우도 있았다.

C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멘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모로 살다 보니, 보는 눈에 집착하게 됐다. 여러 부담감에 눌려 있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속에 있는 걸 잘 얘기할 수 없어서 속병이 났다"고 말했다. C는 "멘토 목사님과 그분의 사모님을 만나며 영적인 교제를 나눈 게 힘이 많이 됐다.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자유함이 생겼다. 교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모들도 영적인 공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는 남편이 목회하는 중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서 '언제까지 일할 생각이냐'고 질문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 목회 때문에 내가 일을 관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목사 벌이가 넉넉하지 않다. 남편 혼자 벌면, 생각이 달라도 교회에 빌빌대야 한다. 나도 남편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며 "한번은 남편이 담임목사와의 의견 차이 등으로 사임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 '사임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남편 도움도 필요했다. I는 "남편이 본인 목회 때문에 내가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아내가 앞에 나서서 하는 성격이 못된다'고 하면서 방어해 주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사모 모임이나 교회 봉사 등을 다른 사모들처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사모치고는 배려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남편이 목회하며 행사가 있을 때 가서 도와주는데, 남편은 내가 12년 직장 다닐 때 한 번도 와서 도운 적 없다"고 말했다.

39년을 목회자 아내로 살아온 손명희 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아내들이 남편 사역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손 전 대표는 "많은 목회자 아내가 남편의 목회 성공이 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잘되면 물론 기쁜 것이지만, 그건 그냥 남편의 성공일 뿐이다. 목회자 아내도 교회 밖으로 나와 자아실현을 하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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