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교회 전도사 A는 20대 초반에 전도사 남편과 결혼했다. 혼인과 함께 많은 이름을 얻었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며느리…. 결혼 후 1년 정도 시부모님 교회에 출석할 때 교인들에게 '작은 사모님'으로 불렸다.

이 전도사는 여러 호칭 중 '사모'가 제일 불편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신학교 다닐 때는 목회자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들었다. 현실은 달랐다. 자신의 이름은 사라지고 호칭만 남았다. 웃고 싶지 않아도 애써 웃어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나대지도 말라는 이상한 요구를 받았다. 예배해야 하는 자리도 정해져 있었다. '사모는 이래야 한다'는 코르셋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 이렇게 계속 지내면 죽을 것 같아, 결혼 1년 만에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다.

8월 7일 A 전도사를 만났다. 그는 사역자 아내로 살면서 견디기 어려웠던 점을 쏟아 냈다. 그는 현재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교단에서 사역한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사역 도중 불합리한 일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전도사 사모이자, 여성 사역자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A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1년간 사역자 아내로 보냈다. '사모 코르셋'은 이내 그를 답답하게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환상과 다른 '사모' 세계
예배석 따로 정해진 교회
남편에 불이익 안 주려 쉬쉬

- 현재 전도사로 사역 중이다. 동시에 사역자 아내이기도 하다. 직접 경험한 사모의 삶은 어땠나.

목회자 아내로 산 건 결혼 후 1년 정도였다. 시부모님이 목회하는 곳에 남편과 함께 갔다. 시골 교회니까 일손이 부족해 반주, 성가대에서 봉사했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 있었고 교회는 강원도 횡성에 있었다. 왕복 3~4시간이 걸리는데, 빠지지 않고 매주 갔다. 당시 임신을 했는데도 예외는 없었다. 임신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임산부가 장거리를 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임신하면 아기집이 장기를 누르면서 소변이 자주 마렵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장시간 가는 게 불편하니 누워 가기도 했는데, 여전히 불편했다. 만삭까지 그렇게 다녔다.

물론 사모로 있던 곳이 시부모님 교회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그래도 목회자 아내로서 헌신해야 한다고 보는 시선이 있었다. 특히 시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사모는 무릎이 닳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목사가 성장할 수 있다", "사모 그릇에 따라 목사 자질이 결정된다"며 몇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예배 시간에는 앞에 가서 은혜를 받고 싶은데, 내가 앉아야 하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사모석'에 앉아 조용히 예배할 수밖에 없었다.

교인들은 나를 "작은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청년 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있었는데 나를 항상 사모로 부르더라. 나는 청년들을 "OO 자매, OO 형제"라고 불렀다. 서로 불편했다. 당시는 호칭을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보통 사모라고 하면 조용하고 차분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테두리가 나를 갑갑하게 했다.

나는 모교회에서 청년부 리더, 대예배 반주를 하는 등 줄곧 'A 청년'으로 살아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 나라는 존재는 점차 사라졌다.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내 이름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내 이름이 생긴 뒤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 '사모 코르셋' 중 유독 견디기 어려운 게 있었나.

내가 하는 행동이 남편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다. 'A 전도사'로 살 때는 내가 하는 말, 내 행동이 교회 가치와 맞지 않으면 나만 불이익만 보면 되니 훨씬 자유롭다.

내가 교회에서 들었던 말 중 권사님들이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한 권사님이 "목사 정장이 구겨지면 사모가 욕을 먹는다"고 했다. 사모가 집에서 뭐 한다고 목사 옷 하나 다림질을 못 했느냐는 말이다. 말속에 사모는 목사를 보필하고 사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교회는 '돕는 베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사역자 아내에게 헌신을 요구한다. 자신과 상황을 인내하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건 신학교 다닐 때도 들은 말이다. 채플 시간에 남자 목사들이 "유아교육과 나온 우리 사모가 어린이집 운영하면서 내 뒷바라지를 다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아내를 '우리 사모'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내가 투잡을 하면서 목사 뒷바라지하는 게 성경적인 가족이라고 말한 게 더 이상했다. 그 설교에서 여성의 경험은 삭제됐다. 여성들이 투잡을 하며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에 대해 어려운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가정이 좋은 가정이라며 헛된 로망만 심어 줬다.

남자 신학생들은 이런 발언에 힘을 얻어 1학년 때부터 유아교육과나 보육학과 여학생들에게 들이댔다. 여학생들은 '잠재적 사모'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신학 지식이 있는 여성 신학생은 제외됐다.

나 역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불편하긴 했지만, 나 스스로 '사모 코르셋'에 갇혀 있을 때가 있었다. 교회 안에서 모범으로 보이는 목회자 아내들과 나를 비교했다.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을까'라며 고민했던 때도 있다.

-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게 사모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사역자 아내의 헌신을 당연한 것처럼 말한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한 분이 나에게 사역자 아내로서 산다고 했을 때는 스스로 (남편이 하는 사역을 서포트하는 삶 자체를) 결단했던 거 아니냐고 물었다. 당시 그 사람에게, 나는 사역자 아내가 되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사역자였을 뿐이었다고 답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양한 모양으로 지었다. 나는 조신하지도 조용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사역자 아내가 됐다고 해서, 차마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세상에는 나 같은 사역자, 나 같은 사역자 아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사모 코르셋' 때문에 힘들어할 테니까.

그는 '사모' 하면 떠오르는 순종적이고 차분한 타입이 아니라고 했다. 과거에는 사모스럽지 않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여성 사역자가 겪는 차별
교회 내 '독박' 돌봄 사역
"바뀔 때까지 나대겠다"

- 교회에서 목회자 아내가 아니라, A 전도사로 일할 때는 어땠나.

첫 교회 면접 때 받은 질문이 떠오른다.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면접을 봤다. 면접자들이 사역 이야기는 거의 묻지 않았다. 주로 아이들과 남편, 시부모님에 대해 물었다. "어린아이 키우는 데 어떻게 사역하냐", "애는 누가 봐 주냐",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냐", "남편은 목사가 될 거냐" 등을 물었다. 남편도 면접 볼 때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고 했다. 대신 관점이 좀 달랐다. 면접관이 "아이는 '사모님'이 보냐", "'사모님'이 사역하면 전도사님 사역할 때 지장 없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여성 전도사로서 부당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교회는 성 역할이 분명하다. 여성에게 돌봄과 가정일을 강조한다. 교회 행사가 있거나 손님이 오면 다과 준비는 여성 사역자 몫이다. 교역자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머그잔을 탕비실에 그대로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여성 사역자들이 설거지하게 된다.

- A 전도사가 속한 교단은 여성에게 목사 안수도 주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성 역할 구분 외에 사역자로서 느끼는 불이익은 없나.

나를 포함한 여성 사역자들은 5년, 10년 사역해도 목사나 강도사가 될 수 없다.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거나 인도를 할 수 없다. 교회에서 기도회를 할 때, 교인들이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역자 한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중보 기도를 한다. 여성 사역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하는 직무가 같아도 남성 사역자와 받는 페이도 다르다. 여성이 돈을 더 적게 받는 등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교회 내 성차별은 교인에게도 발생한다. 예배 때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기도를 한다. 장로님은 강대상에 올라와 기도하는데, 권사님은 올라갈 수 없다. 의자에 앉아서 마이크 들고 기도한다. 이상한 일이다. 왜 여성은 강단 위에 올라갈 수 없을까. 굳이 차이를 둘 필요가 없는데 왜 그럴까. 심지어 여성은 오전 예배 때는 대표 기도도 할 수 없다.

- 지금은 전도사로 사역하더라도 남편이 목사 안수를 받게 되면 교회를 옮겨야 하지 않나.

아직까지는 남편이 목사가 되면 아내는 당연히 남편 교회로 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좀 다르다. 남편과 이 부분을 이미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 사역과 별개로 사역하고, 그 안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걸 보는 게 즐겁다. 큰일이 없으면 계속 사역하고 싶다.

내가 아는 목사님 중에 아내와 다른 교회를 다니는 분이 있다. 아내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따로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아내와 교회를 꼭 같이 와야 하면 사역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런 케이스는 아주 소수지만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교회 안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 내고 싶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를 불편해하시는 분도 있다. 그래도 눈치 보지 않고 말하고 싶다. 교회는 세상보다 변하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 그런 교회에 불편한 지점이 조금이라도 생겨야 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끝까지 나대고 싶다.

※기사 수정: 인터뷰이 요청에 따라 이름, 교단 등 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정보를 가렸습니다. (2017년 8월 8일 2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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