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주·난민 여성들의 문화 공동체 '에코팜므'(Ecofemme)는, 프랑스어로 생태를 뜻하는 단어 에콜로지(écologie)와 경제를 뜻하는 단어 에코노미(économie)의 앞부분과, 여성을 뜻하는 팜므(femme)를 합성한 단어다. 생태적인 방식으로 이주·난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체는 예술 활동을 통해 여성 난민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난민에 내재해 있는 고유의 문화 자원을 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해 성장을 돕는다. 치유와 성장 과정을 거친 난민이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도록 예술 작품을 상업화해 판매까지 담당하는, NGO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기업이다.

박진숙 대표는 2009년 에코팜므를 설립해 이주·난민 여성들과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를 1월 8일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났다. 2009년 에코팜므를 설립하고 이끌어 온 박 대표는 올해 5월 말, 그동안 함께한 콩고 출신 난민 여성 미야 씨에게 대표직을 넘길 예정이다. 처음 단체를 시작한 10여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난민'. 그중에서도 여성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과 경직된 시각으로 난민 이슈를 바라보는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화 통한 경제 공동체 꿈꾸며
그림 그리면서 치유받고
치유 기반으로 성장하고 자립까지

박진숙 대표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다시 대학원에 입학해 가족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학위를 두 개나 받고도 경력 단절로 취업이 힘들 때, 난민 지원 단체 '피난처'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의 지배를 받던 나라로, 프랑스어가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배운 프랑스어를 바탕으로 난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말이 선생님이었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콩고 난민들에게서 박 대표도 프랑스어를 배웠다. 이렇게 만남을 통해 난민이 누구인지 알아 갈 무렵, 캐나다에서 열린 난민 지원 단체 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캐나다 난민 지원 단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난민을 돕고 있었는데, 그중 그들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단체도 있었다. 마침 아프리카 출신 한 난민 여성의 인터뷰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 줄도 모르는데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그려 보니까 재밌었다." 한국에 있는 난민 친구들도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싶었다.

난민 여성들은 그림, 캘리그래피 등을 배우면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예술적 감각을 깨운다. 사진 제공 에코팜므

박 대표가 예술이라는 도구를 택한 데는 이것이 치유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만난 콩고 난민 여성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마치고 전문직에 종사하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자기 의지와 다르게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인 이유, 또는 종교가 다르거나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로 준비도 없이 고국을 떠나야 했다.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낯선 한국 땅에 도착해 각종 차별에 노출됐다.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 교육까지 마쳤는데 한국에 와서는 집에만 있거나 해야 하니까 자존감이 확 낮아질 사람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이 가진 재능을 깨울 수 있을까 하다가 미술 치료가 생각나더라고요. 미술 치료를 전공한 친구를 데려다가 난민 친구들에게 그림을 가르쳤어요. 그렇게 몇 달 배우다 보니까 자기 고유의 문화 색깔이 그림으로 드러나더군요."

예술 활동은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럼에도 예술 활동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우려고 한 것은 에코팜므가 내건 '치유, 성장, 자립'이라는 슬로건 때문이다. 박 대표는 "치유 없이는 성장할 수 없고 성장 없이는 자립할 수 없어요. 처음부터 돈을 주는 방식을 택하면 이들이 자립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유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성장하며 서로 신뢰를 쌓아 가고, 신뢰가 기반이 돼야 자립이 가능하다고 봤어요"라고 말했다.

에코팜므는 이런 이유로 이주·난민 여성에게 그림·캘리그래피 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들이 만든 예술 작품을 텀블러·컵·티셔츠 등으로 상품화해 판매한다. 단체 설립부터 함께했던 콩고 난민 여성 미야 씨가 지금은 선생님이 되어 다른 여성들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그도 학생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활동가와 함께 상품의 기획부터 생산, 판매까지 주도하게 됐다.

에코팜므 회원들이 그린 그림을 엽서, 스마트폰 케이스, 컵, 티셔츠 등으로 상품화했다. 사진 제공 에코팜므

보통 사람의 특별한 상황
무슬림 남성 뒤에 지워진 여성 난민
인종·성차별에 무차별 노출

지난해 예멘 난민 이슈는 한국 사회가 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 주는 리트머스지였다. 대중은 난민이 어떤 배경을 지닌 '사람'인가에 주목하지 않고, 그들을 집단화했다. 난민 개개인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야기되지 않은 채, 게다가 '이슬람 남성'으로 한정된 논의에서 여성의 존재는 지워졌다.

한국교회 역시 이들을 '집단'으로 받아들였다. 일부 극우 개신교는, 한국을 찾은 무슬림 난민이 이슬람을 포교하기 위해 파송된 선교사들이며, 한국 여성을 성폭행해서라도 한국에 자리를 잡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등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퍼트려 공포를 조장했다.

교회에서만 유통되던 이슬람에 대한 허위 정보들은, 난민 이슈와 함께 급격하게 퍼져 나갔다. 수년 전 가짜 뉴스로 판명된 루머들이 다시 돌기도 했다.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혐오는 난민 혐오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휩쓴 난민 논의 과정에서도,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대부분 난민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박진숙 대표는 한국 사회가 난민을 집단화해 받아들이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난민 문제를 "보통 사람의 특별한 상황"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난민이 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요리사·선생님·기자 등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이, 갑자기 마주한 특별한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 난민은 준비 없이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로 이주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해요. 하지만 난민은 급박하게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로 아무런 연고 없이 한국 땅을 밟은 이들이에요. 그러니까 더 적응이 힘들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더해 각종 차별까지 마주하는 상황이죠."

에코팜므는 생태적인 방법으로 난민 여성의 자립을 돕는 NGO다. 사무실 간판에도 아프리카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난민 중에서도 여성 난민과 함께하게 된 것은 박 대표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경력 단절 여성'이었던 것이 한몫했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니, 난민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단순노동이었는데 그마저도 한국인이 연결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박진숙 대표는 경력 단절 여성으로서 취업에 어려움이 있고, 난민 여성들 역시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차피 둘 다 일을 찾기 힘드니까 단체를 만들어 보자며 시작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을 난민 여성들과 지내면서 그들의 아픔에 더 공감하게 됐다.

"난민 혐오는 사실 인종과 성에 기반한 차별이 더 많아요. 한국에서 이 사람들의 법적 지위가 난민인지는 몰라도 피부색을 보면 한눈에 외국인인 걸 알잖아요. 함께 길에 서 있으면 무작정 다가와서 '결혼했나', '몇 살이냐', '아이는 있냐', '피부색 정말 좋다' 등 불필요한 말,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요. 듣는 당사자는 너무 많이 들어서 무덤덤한데, 저는 아직도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난민은 나그네 중의 나그네,
모른 채 부정적 판단 내리지 말고
알려는 노력 선행돼야"

에코팜므는 기독교 단체는 아니다. 당연히 모든 회원이 다 기독교인도 아니다. 하지만 박진숙 대표는 이렇게 난민과 함께하는 일이 신앙인으로서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에 이방인, 나그네를 잘 대하라는 말이 있는데 난민은 나그네 중의 나그네인 것 같아요. 우리 역시 이 세상에 왔다 가는 나그네 아닌가요.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이것 또한 내 인생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는 작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힘들 때, 일이 안 풀릴 때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이주·난민 여성들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얼마 전에는 무슬림 여성도 그림을 배우러 에코팜므를 찾았다. 박진숙 대표는 에코팜므 활동을 통해 그들의 개종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알고 보니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감동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종교를 바꾸는 것은 우리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이웃으로, 친구로 대하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이런 건 다 성경에서 배웠죠"라고 말했다.

박진숙 대표가 번역하거나 쓴 책. 박 대표는 최근 난민 관련 서적이 많이 출간됐다며 교회에서 이런 책들을 읽고 공부한 뒤에 난민에 대해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교회는 난민을 볼 때, 그들이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라는 것보다 무슬림인지 여부에 더 관심을 둔다. 그래서 "가짜 난민을 분별해야 한다", "사랑보다 분별이 먼저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박진숙 대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가지 당부했다.

"난민을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고 보는, 회색 지대에 있는 기독교인이 꽤 있어요. 일단 판단하기 전에 알려고 노력하면 좋겠어요. 모르는 상태에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선 판단을 유보하고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면 어떨까요. 최근 난민 관련 책이 정말 많이 출간됐거든요. 또 난민 지원 단체에 요청해 강의를 들으며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배우는 거죠. 판단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우선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고 노력부터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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