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역곡동에 위치한 동네 책방 용서점을 찾았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부천시 역곡동에 위치한 동네 책방 용서점을 찾았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지역 서점 생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2003년 전국 3589곳이었던 지역 서점은, 온라인·대형 서점에 밀려 2019년 1976곳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코로나19까지 터져 '이중고'에 처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생존 4년 차 책방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꿈꾸는인생). 책을 펴낸 부천 역곡동 '용서점' 주인장 박용희 대표는 2007년 기독교 원서 전문 서점 라비블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장신대 구내 서점 매니저, IVP 직영 서점 관리자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 파는 일'을 지속해 온 기독교인이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출간을 맞아 큐레이팅 동네 책방 생존기와 박용희 대표의 신앙 이야기를 듣기 위해 5월 12일 용서점을 찾았다. 안부를 묻자 "코로나19로 두 달 정도 책방 모임을 쉬었어요. 로컬에 기반해 일하는 입장에서 치명적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대표는 이참에 온라인 스토어를 정비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일이 '올 스톱'된 탓에 책을 집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박용희 대표는 큐레이팅 동네 책방 용서점 이야기를 묶어 최근 책으로 펴냈다. 박 대표를 만나 책방 이야기와 신앙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덕은동서 시작한 용서점, 역곡동 오기까지
오프라인 공간 중심 '큐레이팅 동네 서점'
'셀 교회' 방식 차용해 '써용'·'봐용' 등 모임 운영
위계 없는 만남 추구하니 '지속성' 생겨

치밀한 계획 끝에 작정하고 용서점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책방을 열려는 계획은 인생에 없었다. '책 파는 일'에 종사한 업계 관계자로서 서점 일이 사업성 측면에서 전망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허무를 느껴 IVP를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나려 했다. 그러다 방향을 틀어 북한 접경 지역, 티벳, 인도를 6개월간 여행했다. 귀국 후 여행 강연을 이어 가며 살려 했는데, 지인이 40평 공간을 보증금 없이 제공해 줄 테니 뭔가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빈 공간을 보게 되자 집을 가득 채운 책들을 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 책들을 종잣돈 삼아 출발하기로 했다. 고양 덕은동 용서점은 그렇게 시작됐다. 출판사 일을 할 때는 한 달에 100만 원을 책 구입하는 데 쓰기도 했던 그였지만, 40평 공간을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그간 일하면서 알게 된 목회자들,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을 떠올렸다. 책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이가 많으리라고 생각했다. "여러분의 서가에 책이 너무 많습니다." 중고 책을 매입하겠다고 메시지를 내걸었다. 서가를 비운 사람들은 다시 채우기 위해 책을 주문하기도 할 터였다.

2만 권의 책을 기증하겠다는 사람부터 시작해, 서가를 정리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기독교 서적 위주로 책이 모였다. 찾아오기 힘든 덕은동 위치 특성상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판매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했다.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한 경력 덕에 큐레이션은 어렵지 않았고, 매일 점심시간 책 리스트를 올리는 족족 '완판'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상황이 달라졌다. 서점을 연 지 9개월 된 어느 날,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병간호로 서점 문을 닫아야 했고, 매월 병원비가 수백만 원씩 나왔다. 용서점을 완전히 접으려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더니 어머니가 막아섰다. "그만두지 마." 자신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지 말라는 어머니의 완강한 목소리에 방법을 찾기로 했다. 집-서점-병원을 오가며 업무와 병간호를 병행하는 데 불편이 없는 곳. 서울과 인접한 곳이어야 했다. 넓은 공간은 구할 수 없어 책 상당수를 창고로 옮겼다. 2018년, 부천 역곡동에 자리를 잡았다.

용서점 외관. 사진 제공 박용희

역곡동으로 오면서 오프라인 공간 중심의 '동네 책방'으로 콘셉트를 바꾸었다. 큐레이팅을 강화하기 위해 신간을 섞어 팔기로 했다. 박용희 대표가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큐레이팅 메시지를 작성하고,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택배로 부칠 책을 포장하는 것이다. 낮에는 직접 책을 팔고, 저녁에는 모임을 진행한다. "용서점을 찾는 이 중 90%는 동네 사람이에요. 10%는 부천 관내에 사는 분들. 간혹 멀리서 쌩뚱맞게 오시는 경우도 있죠."

동네 사람들은 근처 재래시장에 왔다가 목이 마르거나 하면 한번씩 들르고, 지나가다가 잠깐 쉬려고 방문하기도 한다. "서점이기 전에 이웃인 거예요. 지나가다 '사장님 잘 사시나?' 궁금해서 들어올 수도 있죠. 먹을 것도 많이 나눠 주세요. 가래떡 다섯 줄 사면 두 줄 놓고 가시고, 과일 사면 하나라도 주고 가시죠." 박용희 대표는 본래 서점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질문하게 된다고 했다. 온라인 서점 때문인지 몰라도, 요즘은 서점을 '책 파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고 했다. 동네 책방은 꼭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곳은 아니다. 아무 때나 머물러도 되는 '책이 있는 공간'이다.

용서점에서 특가로 판매하는 중고 서적. 모두 1000원이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시 멈췄지만, 용서점에서 진행하는 모임은 △써용 △봐용 △필사 등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글쓰기 △책 읽기 △필사 모임이다. 여느 지역 서점의 독서 모임 모델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모임 방식을 교회 셀 모임에서 차용했다. 기약 없이 모임이 진행되고, 참가자가 늘면 분화하는 것이다. 모임은 이용자 제안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둘 늘어나고 분화했다. "교회에서 셀 모임 할 때 한 달 모이고 '그만하자'고 하지 않잖아요. 공동체니까. 읽기 모임 8주 하고 끝내는 식이 아니니, 모임이 구축되면 멤버가 나가지 않는 이상 유지되는 거죠."

"처음 세 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일곱 명이 되었고, 다른 요일에도 모임을 개설해 달라는 요청에 점차 요일을 늘려 나갔다. 다음 달, 그다음 달… 모임은 가지를 뻗듯이 영역을 넓혔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써용 4개, 봐용 2개, 필사 2개, 심화 모임(드로잉, 글쓰기) 2개로 총 70여 명이 매주 혹은 격주로 용서점과 '뜰안의작은나무' 도서관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134쪽)

박용희 대표는 셀 교회에서 용서점 모임 방식을 차용했지만, 교회와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다고 밝혔다. "교회에서 가장 구현하기 힘든 것이 목사(리더)-교인(팔로어)이라는 권위 구조를 내려놓는 일이에요. 용서점 모임은 개인사를 물어본다거나 그 사람 배경이나 직업 조건을 따지지 않아요. 실명 대신 닉네임을 쓰면서 20세든 70세든 수평적으로 위계 없이 만나려고 해요. 여기서 '지속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힘을 빼고 내버려 두면 참가자들이 능력과 재능을 창의적으로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요."

박용희 대표는 위계 없는 모임을 꾸리면 참가자들이 능력과 재능을 창의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용서점 모임의 '지속성'은 여기서 나온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박용희 대표는 위계 없는 모임을 꾸리면 참가자들이 능력과 재능을 창의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용서점 모임의 '지속성'은 여기서 나온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기독교색 없는 공간 구성 지향하는 이유
"신앙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붙잡는 동아줄"
페이스북 페이지 '용기독교백화점' 시작
'동네 책방' 정체성 놓지 않고 기독 서적 큐레이팅

덕은동에 있을 때는 주로 다루는 도서가 기독교 서적이었다. 역곡동에 와서는 기독교와 상관없는 공간 구성을 지향했다. 종교가 동네 사람들 방문을 막는 문턱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독교 서적을 사이사이 놓았어요. 그 정도만 했는데도 사람들이 경계하더라고요. 물론 동네 사람들은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죠. 세월호 십자가도 걸려 있으니까. 공간 자체는 종교적이지 않지만, 기독교에 대해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종교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공간의 지향성이 종교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용서점은 서울 녹번동에 위치한 이상한의나라헌책방 주인장 윤성근 작가를 불러 여러 차례 강의를 열었다. 윤성근 작가는 용서점 글쓰기 모임 심화 과정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진 제공 박용희
용서점은 서울 녹번동에 위치한 이상한의나라헌책방 주인장 윤성근 작가를 불러 여러 차례 강의를 열었다. 윤성근 작가는 용서점 글쓰기 모임 심화 과정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진 제공 박용희

그렇지만 박용희 대표는 신앙을 "제일의 관심사"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는지 묻자,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집 옆에 위치한 교회의 고등부 교사에게 전도당했어요.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 2층 다락에 방을 썼는데, 창문 바깥이 바로 교회였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찬양팀을 하면서 교회 생활에 재미를 붙였다가, 고2 때 친구 따라 참석한 경배와찬양 집회에서 회심을 경험했어요."

박용희 대표를 전도한 고등부 교사는 운동권이었다가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 교회에서 독서 모임을 이끌었다. 이때 박영선 목사의 <하나님의 열심>(새순출판사), 이중수 목사의 <믿음의 정상>(양무리서원), 고든 피의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 백종국 교수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책임>(IVP),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IVP) 등을 통해 복음과 사회참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주는 독서를 하면서 신앙을 키웠다.

별다른 꿈이 없었던 그는 학교 진로 상담을 따라 당시 전망 좋은 학과였던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는데, 적응하지 못했다. 공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강의에 참석하지 않고 도서관 종교 코너에 틀어박혀 기독교 서적을 쭉 읽었다. 이때 책을 통해 함석헌·유영모·김재준 등 다양한 신학 사상을 접했다. 이러한 독서가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그 후 대학교 4학년 때 관련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기독교 원서 전문 서점 라비블에 들어가게 된 것이 '책 파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주어진 삶이 참 고단해요. 어머니께서 재활하고 계신데, 상태가 나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용서점에서 수익이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요. 어쩌면 고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사는 게 뭐지?' 의미를 자꾸만 묻게 돼요. 이런 물음 가운데서도 길이 열리고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신기해요. 인생에는 세속적인 것 너머 초월의 이야기가 계속 따라다닌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속적인 것만으로 버틸 수 없는 삶의 부분이 있잖아요. 신앙이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붙잡게 되는 동아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용서점은 기독교 서적 위주로 운영되는 책방은 아니다. 그래도 간간이 기독교 책을 찾을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용서점은 기독교 서적 위주로 운영되는 책방은 아니다. 그래도 간간이 기독교 책을 찾을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용서점이 기독교 관련한 일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나누는 모임을 용서점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 2월 말부터는 페이스북 페이지 '용기독교백화점'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온라인 기독교 서적 플랫폼이다. "용서점 '부캐'라고 할 수 있죠. 개별 기독교 출판사·서점 바깥에서 플랫폼 형태로 운영되는 페이지가 없더라고요. 독자로서도 기독교 출판을 조망할 수 있도록 자료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고요."

종교와 거리를 둔 지역 서점 정체성을 이어 가면서, 덕은동 시절부터 해 왔던 기독교 서적 큐레이팅과 기독교 관련 행사 등을 진행하려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박용희 대표는 눈에 띄는 기독교 신간을 정리해 업데이트하는 '주간 브리핑'을 정기적으로 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기독교 출판사나 단체가 벌이는 도서 관련 이벤트, 언론의 책 소개 기사를 공유하기도 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용서점이 붙들려고 하는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 책방'이다. "오랜 시간 지역에서 공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책방 손님 중 가장 어린아이가 네 살, 다섯 살이거든요.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용서점과 같이 시간을 쌓아 갔으면 좋겠어요." 로컬에 기반해 동네 사람들을 중심으로 회원제를 운영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용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회원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당장 7월부터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와 협업해 지역 인문학 강좌를 열고, 인문 고전을 읽고 나누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자 한다.

용서점은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방송 이후 송파에서 대안 교육을 진행하는 청소년과 학부모 등 50여 명이 방문해 박용희 대표에게 용서점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제공 박용희
용서점은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방송 이후 송파에서 대안 교육을 진행하는 청소년과 학부모 등 50여 명이 방문해 박용희 대표에게 용서점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제공 박용희

역곡동 용서점

주소: 경기 부천시 역곡로46번길 30 (역곡역 2번 출구에서 600m 거리)
운영 시간: 화~토 12~20시 (일·월 휴무)
온라인 스토어: https://smartstore.naver.com/yongbooks/
페이스북 페이지: 용서점 / 용기독교백화점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Uxlq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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