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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교인이던 그가 환경 운동에 투신한 이유
[진격의교인⑬] 골프장 증설 반대 위해 싸우는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공동의장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9.01.24 13:53

"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 이메일, 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의장(63)은 '골프장'에 있어서는 전문가에 가깝다. 그는 얼마 전 지역 내 골프장 증설을 반대하며 17일간의 단식을 마쳤다. 60대 여성으로서, 목숨을 걸고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산은 고양시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자연 녹지다. 이곳에는 이미 9홀짜리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2011년, 주민도 모르는 사이에 9홀을 더 증설할 수 있도록 녹지의 용도가 변경됐다.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골프장 예정지가 고양·파주·김포 지역 150만 주민의 식수원 K-Water 고양정수장과 30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친환경 농약을 쓴다 한들 정수장 옆 골프장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조정 의장은 산황산골프장증설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에 참여해 2014년 1월부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 달라는 싸움에 동참했다.

"예수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는 조정 의장은 현재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교회는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가나안 교인'이라기보다 교회를 '졸업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지금은 골프장 증설 백지화 활동이 신앙생활의 일부가 됐다. 이 운동에 함께하는 교회들과 예배하고, 설명을 듣기 원하는 교회에 찾아가 주일을 보낸다.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의장을 1월 23일 고양시 정발산동 자택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정 의장을 1월 23일 고양시 정발산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의 집에는 골프장 증설과 관련한 서류 더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6년 가까운 범대위 활동과 그의 신앙 여정을 듣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조정 의장은 젊은 시절 사랑의교회에서 옥한흠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신앙생활했다. 새로 건축한 사랑의교회 예배당을 직접 봤을 때는 비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10여 년간 사랑의교회 소식지 편집장
커지는 교회 보며 '분립' 제안하기도
"땅 사고 건물 늘리는 것 보며
교회가 부스러진다고 느꼈다"

사랑의교회에 가기 전, 조정 의장은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조 의장은 참 순수하게, 열심히 교회 생활을 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가난했지만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 하나로 동고동락한 여자 전도사들과 함께 행복한 교회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담임목사의 아내가 교회 운영을 쥐락펴락하면서 교인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났다.

그때 친구 한 명이 <빛과 소금>(두란노) 창간호를 선물해 줬다. 손봉호 교수의 저서 몇 권도 함께 받아 읽었다. 당시 <빛과 소금>에 기고하던 옥한흠 목사, 윤덕수 목사, 하용조 목사, 홍정길 목사의 글을 읽는 족족 흡수했다. 월급날이면 전화를 걸어 헌금을 강요하고, 교인들에게 겁을 주는 그때 교회와는 너무 달랐다. 남편과 논의 끝에 더 이상 교회에 남을 수 없겠다 싶어 다른 교회를 찾으러 다녔다.

여기저기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교회다' 하는 확신이 없었다. 강북에 살던 그에게 사랑의교회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방문한 보험 설계사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라며 옥한흠 목사의 설교 테이프 세 개를 건네줬다. 테이프를 듣다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말씀에 압도된다는 느낌을 경험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1987년 8월 마지막 주, 사랑의교회에 등록했다. 이듬해 사랑의교회는 교회 신문 <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옥한흠 목사는 조정 의장에게 "편집장을 맡아서 신문을 발행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글 쓰는 일에 관심이 많던 그의 재능을 알아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정 의장은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옥한흠 목사에게 제자 훈련을 받고, 교인들과 함께 즐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교회 규모가 커지는 게 눈에 보였다. 외형이 성장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에 주목하게 됐다. 부목사들의 말과 행동이 달라졌고, 교회를 찾는 사람 중에는 강남에 있는 '사랑의교회' 타이틀을 보고 수평 이동하는 이도 많았다.

조정 의장은 1995년경, 사랑의교회가 더 커지기 전에 교회를 분립하면 좋겠다는 '분립파'에 속했다. 그는 몇몇 부목사와 함께 왜 교회를 분리해야 하는지 정리해 옥 목사에게 전달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교회가 커지니까 교회학교를 통폐합하고, 아이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예배하게 했다. 그렇게 하면 부교역자 입장에서 관리가 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교역자가 아이들 삶을 돌보지는 못한다. 교인은 계속 늘어 가는데 교회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땅을 매입해서 건물을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교회가 부스러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획실을 만들고 기업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조정 의장은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11일까지 고양시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임했다. 고양시의회 앞 현수막의 숫자는 17에서 멈춰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정 의장은 1989년 옥한흠 목사가 마지막으로 인도하는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이후에는 부목사들이 제자 훈련 과정을 진행했다. 리더십이 교체되고, 사랑의교회를 둘러싸고 온갖 잡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결과적으로 사랑의교회 제자 훈련이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조정 의장은 그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옥한흠 목사에게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들, 당시 대학·청년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 교회에만 있지 말고 세상으로 들어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도 옥한흠 목사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 것도 옥한흠 목사다."

조정 의장은 옥한흠 목사는 정치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보수' 성향이었지만, 지금처럼 교회가 집단으로 정치력을 행사하거나 반대 의견을 묵살해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며 일화를 들려주었다. 1990년대 중반,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바라며 특별법을 제정할 당시 사랑의교회 차원에서 이 사안을 논의한 적 있다고 했다.

당시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은, 교회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 저지른 잘못이 큰데 사랑의교회가 이 서명에 앞장서야 한다며 옥한흠 목사에게 편지를 썼다. 옥 목사는 그들을 면담한 뒤, 주일예배에서 교회가 왜 이 일에 나서야 하는지 설교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청년들은 마당에 부스를 차리고 교인들의 서명을 받았다. 현직 경찰청장, 장군, 장관 등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장로들이 있었지만, 옥 목사는 정치 이슈라고 외면하지 않았다.

조정 의장은 "당시 친하게 지내던 장로님이 나에게 와서 '교회 안에서는 이렇게 정치적인 거 하면 안 된다. 집사님이 호남 출신이라 그런가 본데, 5·18 때 죽은 사람 중에 학생은 몇 없고 다 구두닦이, 넝마주이라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 너무 화가 나서 '성경 어디에 학생은 죽으면 안 되고, 구두닦이는 죽어도 된다고 했느냐'고 따졌다. 그 정도로 보수 성향이 짙었음에도 옥 목사님은 본인이 옳은 일이라고 설득되면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정 의장은 골프장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해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사진 제공 조정

리더십을 교체할 때 조정 의장도 개척 교회를 세우던 부목사 한 명을 따라 사랑의교회를 떠났다. 교회가 절대적으로 기업화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교회를 떠난 뒤에는 사랑의교회 근처에 갈 일도 만들지 않았다. 사랑했던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게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의교회 출신이라는 게 이제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됐다. 다른 건 몰라도 교회 하나를 그렇게 박살 낸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하며
환경문제에 눈 떠
"기독교인들, 하나님이 창조했다면서
자연 파괴에는 별생각 없어"

조정 의장은 시인으로 한국작가회의에 속해 활동하면서 환경문제에 눈을 떴다. 2010년 한국작가회의 여성인권위원장을 맡으면서 제주 강정마을 싸움에 합류했다. 당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매주 제주에 내려가 활동하면서 조 의장은 '생명의 다양성'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됐다고 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이 다양하고 그 생명 하나하나가 경이롭다고 배운다. 그런데 막상 그 생명을 파괴하는 일에는 별다른 생각이나 감흥이 없다. 바다나 산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얼마나 많나. 기독교인들이 창조를 믿는 만큼 피조물을 보존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개발은 다양성을 해치고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들을 헤친다. 환경을 보호하는 건 곧 우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사랑의교회를 떠난 조정 의장은 2000년 서울시 개포동에서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했다. 고양시에 정착해 살면서 주변 환경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의 일원으로 산황산 골프장 증설 백지화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2014년경이었다.

범대위는 고양시가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주민의 안전을 담보로 위험한 싸움을 한다고 본다. 골프장 증설을 위해 도시 개발 제한구역 용도 변경을 신청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서류 미비, 정수장 위치 고의 누락, 주민 동의서 조작 등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시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이 사안에 손을 놓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정 의장은 서류가 미비했음에도 골프장을 증설할 수 있도록 토지 용도를 변경해 준 곳이 고양시이기 때문에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곳도 고양시라고 보고 있다. 환경 영향 평가서를 보면서 설명하는 조정 의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양시는 골프장 증설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범대위 의견은 다르다. 현재 골프장 증설을 위해 갖춰진 것은 개발 제한구역의 용도가 변경됐다는 사실밖에 없다. 골프장이 부도가 나 증설을 위한 땅을 구입하지도 못했고, 아직 환경 영향 평가를 통과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범대위는 용도 변경을 주도한 시가 나서서 다시 산황산을 개발 제한구역으로 돌리기를 바라고 있다.

"산황산에 가서 고라니 새끼 한 마리만 봐도, 이곳이 사라지면 저 생명들은 어디로 가나 가슴이 덜컹한다. 그게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인 것 같다. 예정지에 가서 보면 가정집 코앞까지 골프장이 들어선다. 이건 인권 문제도 달려 있다. 바로 옆에서 골프장이 뿌리는 농약을 마시며 살아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고양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고양시에 묻고 싶다."

조정 의장은 얼마 전 17일간의 단식 투쟁을 마쳤다. 고양시청 앞에서 텐트를 치고 단식 농성을 하면서 고양시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그가 단식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나들목일산교회(유형석 목사)는 매주 수요 예배를 그곳에서 대신했다. 이후 지역 작은 교회 7개가 연합해 매주 목요일 기도회를 계속하고 있다.

"텐트에 앉아 있다 보면 많은 이야기가 들린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돈을 노린다는 등 어떻게든 우리 활동을 폄하하려는 소리도 들린다. 불안할 수밖에 없을 때 교회가 와서 함께 예배해 주는 것만으로도 텐트 주위에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를 쳐 준 것 같아 정말 감사했다. 단식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오더라.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웃음)"

범대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2014년부터 이 싸움을 이어 오면서 지역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고양시 공무원들의 조직 보호 논리라는 두꺼운 장벽 앞에 하나둘 떠나갔다. 공교롭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다. 조정 의장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더 나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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