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신학자 4명이 모여 교회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많은 교회 청년들이 신앙은 교회 안에서 배우고, 페미니즘은 교회 밖에서 배운다. 이렇게 따로 배우다 보면 둘 사이에 어떤 접합점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저희 네 학자는 이 두 가지를 따로 배우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것과 기독교의 핵심 지향점은 하나로 만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 백소영 교수(강남대)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크리스챤아카데미(이상철 원장)가 서울YWCA(이유림 회장)와 12월 12일 주최한 '교회 언니들의 페미 토크, 교회와 페미니즘 공존 가능한가'에서 백소영 교수가 말했다. 이날 행사는 구약학, 기독교교육학, 기독교상담학 관점에서 페미니즘과 교회가 어떻게 교집합을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평일 저녁 7시,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 20~30대 청년 40여 명이 모여 강의를 듣고 고민을 나눴다.

백 교수의 이 발언은 지금 한국교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연령이 낮아질수록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지는데, 교회 안에서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교회는 사회보다 더 페미니즘을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교회가 페미니즘을 허락하더라도, 일정한 기준 이외의 페미니즘은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려는 주적主敵으로 취급한다.

백소영 교수는 그동안 교회가 페미니즘을 경계한 것은 남녀로 구성된 건전한 핵가족 담론이 근현대사를 오래 지배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개신교는 부드러운 가부장제를 용인해 왔다. 남녀 존재는 평등하지만 기능적으로 위계가 있다고 가르쳤다.

미국의 경우 1970~1980년대를 지나면서 이 같은 가치관이 위협받았고, 이에 반동해 제리 폴웰(Jerry Falwell)의 '도덕적 다수' 운동이 시작됐다. 남성은 가정의 머리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여성은 집에서 남편이 걱정 없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기에 척을 질 수밖에 없었다고 백 교수는 말했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특히 교회에서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지만 기능적으로 역할이 다르고 해야 할 일도 다르다는 담론이 지배하고 있다. 백 교수는 "사랑받는 여자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신앙적으로 훈련받은 교회 청년들은 이걸 배워도 되나 불안해한다. 신앙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담론이 대중화하다 보니까 따로 배우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백소영 교수는 페미니즘과 교회가 서로 부족한 언어를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백소영 교수는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페미니즘은 '살고 살리는 것'이다. 나만 하는 게 아니라 약자도 함께 살리는 페미니즘이다. 둘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부족한 언어를 보완해 주고 방향성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짝,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 시각으로 성경 읽고,
교회 교육 재정립하고,
위로 필요한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신학의 가능성

페미니즘을 접하고 교회를 떠난 여성들은 성경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는 여성을 차별하고 때로는 여성 혐오 시각이 그대로 담긴 내용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 시대에 여성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듣는 설교는 대부분 남성 중심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한 것이라고 했다. 이은애 박사(이화여대)는 성경을 새롭게, 다른 시각으로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읽는 사람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같은 본문을 읽더라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 여성이 처한 특수한 상황, 분단국가 여성 혹은 가부장적 구조가 여전히 유효한 사회에 사는 여성의 관점에서 보는 성경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자"고 말했다.

나만 다르게 읽는다고 해서 교회 안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주아 박사(이화여대)는 동시에 교회 구조적 문제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차별을 강화하는 문화적 구조에 관심을 갖고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가르치지 않는지에 주목하면 좋겠다고 했다.

여성 목회자는 많은데 그들의 설교는 남성 목회자만큼 자주 접할 수 없다. 교회학교에서 성경 속 남성 인물만 설교 주제로 사용한다. 다윗의 영웅적인 모습은 소개하지만 성폭력을 가한 다윗의 행동은 얼버무리는 등 이렇게 가려진 이야기들이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어떻게 교회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왼쪽부터 이은애 박사, 이주아 박사, 김희선 박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 현실과 이상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 괴리를 좁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김희선 박사(이화여대)는 '교회 친화적 페미니즘 신학'을 통해 말 걸기를 가능하게 하자고 했다. '교회 친화적 페미니즘 신학'은 김 박사가 만든 용어로, 교회 안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여성신학을 소개하기 위한 하나의 포장지다.

김 박사는 "교회에는 여전히 힘든 현실 속에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들이 듣는 설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교회 여성들이 교회에서 여성신학을 들을 수 없고, 위로를 얻지 못하고 마음이 짓눌리고 있다면 우리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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