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는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가짜 뉴스, 남북문제, 이슬람, 진화론, 페미니즘, 성소수자 등 한국 사회에 첨예한 이슈를 향해 거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의 태엽을 거꾸로 감아 과거로 돌아가 보면, 이 문제는 21세기에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비아토르), 9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은 오래됐다. 최근 출간된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는 위기의 원인을 교회가 성경 텍스트에 갇혀 사회라는 콘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데서 찾는다.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최종원 교수가 쓴 책이다. 배제와 혐오의 대명사가 된 교회가 혐오 단체라는 오명을 벗고 위기를 타개하려면, 성경·신학이 아니라 사회로 눈을 돌리고 교회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는 '한 인문주의자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복음과상황>에 연재한 내용을 비롯해, 최종원 교수가 지난해 써 온 글들을 묶은 것이다. 최 교수는 유럽 중세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경희대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중세 말 잉글랜드의 대학과 종교 담론'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글은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 가나안 교인, 동성애 혐오 등 오늘날 한국교회 문제를 살피면서, 역사 속 사례와 인문학적 개념을 소환한다.

책 출간 후 방한한 최종원 교수를 6월 28일 서울 성북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문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한국교회가 '인본주의'(humanism)를 해방시키고 교인들이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책이 다루는 주제를 놓고 1시간 반 동안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최종원 교수를 6월 28일 성북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성경은 사회 속에서 재해석돼
교회사는 사회와 상호작용한 기록,
건전한 시민의식 함양해야"

-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를 출간했다.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는?

'텍스트'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기독교에서 경전으로 삼는 '성경 텍스트'가 1차 텍스트다. '성경으로 돌아간다', '성경 말씀 그대로 따른다'고 말하는데, 이 언설은 실제 콘텍스트를 떠나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2차 텍스트는 하이델베르크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있다. 아니면 신학적 저술일 수도 있다. 성경 텍스트를 더 정밀하고 정치精緻하게 설명해 놓은 2차 텍스트 역시, 특정 교파에서는 성경 텍스트 못지않은 권위를 갖고 있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다. 제도 교회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역사 속에 제도 교회가 어떻게 구현돼 왔는가'가 주 관심사다. '텍스트를 넘는다'는 말은 텍스트에 대한 평가절하나 무시가 아니다. 온전하게 구현되려면 대중이 살아가는 콘텍스트, 즉 사회 속에서 재해석돼야 한다. 교회사를 단순히 오해하면, 교회 내부의 교리·정합성·신학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서구 유럽의 교회가 발전한 역사는 교회와 교회가 속한 사회가 상호작용한 기록이다.

유럽에서 교회가 언제 쇠퇴했는가. 사회와 건전하게 상호작용하지 못했을 때다. 나는 교회를 시민사회 속 제도라고 인식한다. 교회가 신앙적·신학적·종교적으로 특별하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회는 시민사회에 하나의 제도로 안착할 수밖에 없다.

중세 교회는 구조가 이렇지 않았다. 오늘날 교회는 오롯하게 근대 제도에 부합한 산물로 만들어졌다. 근대가 추구하는 가치는 '포디즘(Fordism)'으로 대표되는 '효율'이다. 미셸 푸코는 근대를 나타내는 상징적 공간이 병원·군대·학교라고 했다. 규율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병원·학교·군대 기능을 다 갖고 있다. 교회만큼 풍부한 인적자원을 무상으로, 효율적으로 조직화해 쓸 수 있는 곳은 없다. 근대에 가장 최적화한 조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 교회가 만들어졌다.

교회가 근대에 올바르게 착근하려면 구성원이 건전한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 아픔이나 고민에 동일하게 공감하고 결을 같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에큐메니컬이나 복음주의 진영이 기여한 부분이 있지만, 이후 급속도로 쇠퇴했다. 보수 일변도 목소리만 남았다. 과거보다 더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회는 가장 크게 민주화에 무임 편승한 집단이 됐다. 시대를 고민하지 않고, 내부 성장에 골몰하면서 빠르게 변질됐다. 한 세대가 지났고, 교회가 성장하기는 했지만, 교인은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탈바꿈되지 못했다. 사회와의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상실해 버렸다. 교회를 자꾸만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천상 조직처럼 만들어 갔다.

- 한국교회가 건강해지려면,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건전한 시민의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위험 사회>(새물결) 저자 올리히 벡은 '성찰적 근대화'라는 표현을 썼다.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의 근대성을 성찰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 자본주의가 엄청난 성장을 줬지만, 지금은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으로 많이 고민하지 않나. 오늘날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주주·관계자의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다.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이미지가 깎여 불매운동 등 타격을 받는다. 이것이 성찰적 근대화의 한 단면이다. 성찰하지 않으면 기업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인식한다.

대형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은 가부장제의 온정주의적 시혜와 다르다. 오늘날 대형 교회는 힘이 있으니 수십억 원을 지원하는 식으로, 시혜를 베푼다는 개념으로 사회적 책임을 지려 한다. 시민의식을 형성해야 한다는 말은 형제애·자매애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교회를 향한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 교회 구성원이 바뀌지 않으면 탈교회 현상을 막기 어렵다. 지금 극단적으로 보수 목소리를 외치는 분들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 이슈에 건전한 시민의식을 형성하지 못한 이들이다.

페이스북에서 활발한 글쓰기 활동을 펼치는 그는, 현재 <복음과상황>에서 '공의회의 사회사'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정통과 이단, 교리·신학의 형성 관점이 아니라, 교회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통을 형성해 왔다고 하는 사회사적 관점으로 교회사를 읽는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근대에 안착한 종교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은 종교다. 종교 발전은 시민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개신교가 최초로 들어왔을 때, 교리로 어필하지 않았다. 양반과 상민이 같이 예배하는 등 사회변혁 기제로 들어왔다. 1960~1970년대 기독교 발전기에도 교리·신학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가 사회 발전 선순환에 유의미하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기까지도 가톨릭교회·에큐메니컬 진영 등에서 건전한 상호작용이 존재했다. 민주화 이후 조금씩 길을 잃고 안주했다.

교회 구성원은 시민사회가 아니라, '교회'라는 조금 다른 층위의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상위 개념으로 갖고 있다. 사회 아픔에 공감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것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사건이 '세월호'다. 교회의 민낯, 사사화한 가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로마서에 나온 대로 울어 주고 공감하는 게 안 된다면, 침묵으로 지켜봐야 했다.

배제와 차별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한국교회가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충격파에서 취한 행동이었다. 24시간 주님만 바라봐야 한다는 태도나 세월호 유족을 우상시하지 말라는 어느 목사의 발언은, 교회가 다시금 천상의 신비로 돌아가야 한다는 뉘앙스를 반영하고 있다.

- 역사 속 사례를 들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성찰적 근대화'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사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다. 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이슈에 반응한 결과물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로부터 100년 전 열린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가톨릭교회'라는 같은 이름을 지닌 전혀 다른 종교다.

유럽 사회에서 가장 큰 대분열은 종교개혁이 아니었다. 우리는 대부분 프랑스혁명에서 바스티유감옥 습격을 상징적 사건으로 본다.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는 내 입장은 다르다. 프랑스혁명 때 수백 개 교회가 무너졌다. 유럽 클루니수도회 건물이 파괴되고, 잔해가 도시 재건 사업에 쓰인다. 계몽된 시민은 더 이상 교회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반응으로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다. 1860년대 일이다. 바로 이전의 루터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300년 만의 공의회였다.

이때 가톨릭교회는 신비 뒤로 숨었다. 교회는 이 땅의 조직이 아닌 천상의 조직이라고 선포했다. 마리아가 죄 없이 예수님을 낳았다는 마리아 무흠 잉태설도 이 시기에 나왔고, 교황무오설이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정됐다. 그 후 마리아 승천설까지 간다. 중세 교회 극성기에 형성된 교리가 아니다. 1860년대에 세속의 도전에 대응한 방식이었다.

그 결과가 어땠나. 세계대전의 나치즘과 파시즘, 전체주의에 부역한 가톨릭교회를 낳았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편입하는 쪽으로 변절됐다. 그것이 홀로코스트로 드러났다. 이때 상징적으로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교회는 정말 희망을 상실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가톨릭교회가 극적으로 소생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였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가톨릭교회 개혁이 일어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모토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나온 결론은 진화론·계몽주의·이성·과학기술에 대한 배격이었다. 이 모든 것을 교리로 정죄했던 공의회가 제1차 바티칸공의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 모든 것을 급진적으로 수용한다. 유일하게 교리의 결정, 이단에 대한 정죄가 없었던 공의회였다. 그것이 남미 해방신학, 한국 민중신학에도 영향을 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실험적 구현 장소는 대한민국이었다. 당시 <가톨릭시보> 사장으로 있던 김수환 추기경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한국에 소개하고 보도했다. 그 후 가톨릭교회는 지방 40대 젊은 주교였던 그를, 노회하고 연로한 성직자들이 있는 서울대교구 교구장으로 보냈다. 정책적으로 대한민국을 하나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험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한국 사회 민주화 투쟁기의 지학순 주교, 김수환 추기경, 민주화 운동의 성소 명동성당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공의회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교회가 사회 속에서 어떤 유의미한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서 참고할 지점이다.

최종원 교수의 저서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비아토르)와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 최 교수는 공동체에서 한 편씩 읽고 나누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를 독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가톨릭 소생 비결,
사회 요구 듣고 반응하는 것
교회, 신학적 경계 넓히고
'인본주의' 해방시켜야"

- 글에서 가톨릭 사례를 많이 불러온다. 가톨릭에 배타적인 한국 개신교 특성상, 왜 가톨릭교회 사례에서 배워야 하는지 반발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중세교회사 강의 첫 시간에는 말 그대로 싸움이 난다. 보수 교단 목사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접근 자체에 부담감을 느낀다. "가톨릭에 구원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대부분의 교인도 갖는 질문이다. 나는 "개신교에도 구원이 있느냐"고 받아치거나, "내가 구원받을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남의 구원까지 이야기해야 하느냐"고 말하고 만다.

한국에 가톨릭은 1800년대 들어오고, 개신교는 1900년대에 별개 종교로 전래됐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이만열 교수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는 가톨릭에 빚을 지고 있다. 가톨릭이 100년 일찍 들어와 박해당했고, 한국어로 신학·신앙 용어를 정리했기에, 개신교가 더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 가톨릭에 은혜를 입은 지점이 분명 있다.

대나무가 자라면 마디마디가 형성되는데, 한국교회는 지금이 그 마디가 생길 것인가 하는 중요한 변곡점에 놓였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문제에도 오랜 기간 이를 거쳐 왔다. 비결을 들여다보면, 변곡점에서 소생했던 방식은 사회 요구가 무엇인지 듣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동성애'라는 단어도 의도적으로 글에 많이 썼다. 내가 전향적 시각을 갖고 있거나,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너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맞느냐 틀리냐를 떠나, 이미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터부시하거나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가 위기라면, 겸손하게 역사의 경험에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개혁을 추동할 힘이 있는가. 개신교에 로잔 언약 같은 사례가 있다며, 굳이 가톨릭을 다루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로잔은 유의미했지만 변곡점을 만들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다. 신앙적·신학적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 차원에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 '한 인문주의자의 사회와 교회 읽기'라는 부제처럼, '인문주의'(humanism)가 책의 주요 키워드다. humanism이 한국에서 휴머니즘, 인문주의, 인본주의로 번역되고 소비된다는 점을 지적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인문주의란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humanism'을 의도적으로 오용하고 있다. 휴머니즘을 인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라고 한다. 중세적 표현이다. 중세 인간관은 염세적이었다. 사회 자체가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중세에 교회는 이 땅의 복락이나 성취보다 힘든 생을 견뎌 낸 뒤 오는 내세의 지복·복락을 강조했다. 인간이 인간다워질수록 하나님을 떠난다고 봤다. 탈종교화한다는 인식이 있어 '인간답다'는 표현은 부정적 뉘앙스를 줬다.

종교개혁은 인간성에 대한 재발견이다. 루터는 교회가 구원을 주지 않고, 단독자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인간과 개인의 발견이다. 휴머니즘의 정점인 셈이다. 독일 역사학자 뮐러는 "인문주의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과 인간 가치의 재발견이 없었다면 가톨릭이 제도적·교리적으로 설정해 놓은 틀을 넘어선 회복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흔히 인본주의 반대말로 쓰는 '신본주의'는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이다. 화석화한 신학·교리주의다. 사실 humanism 반대말은 스콜라주의다. 한국의 '정통 신학'은 어떤 면에서 변형된 스콜라주의다.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창조·진화·동성애에 대한 태도를 개혁주의 틀에서만 사고한다. 자기 텍스트로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이렇게 경계를 치면 변화하는 사회를 쫓아갈 수 없다.

모든 종교개혁자가 스콜라주의자는 아니었다. 칼뱅도 최초로 쓴 책이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이었다. 인문주의자로 출발했다. 휴머니즘, 후마니타스를 가르치는 아카데미의 세례를 받았다. 한국교회가 겪는 위기는, 정통 신학의 스콜라주의적 정합성에 맞춰서 사회 이슈를 판단하는 시도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경계를 넘어선 시도를 적극 수용하고, 지금의 실천을 재고해야 한다. '제2의 종교개혁을 꿈꾼다'는 말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인문주의·인본주의를 해방시켜야 한다.

최 교수는 세속 역사를 전공했고, 교회사는 따로 독학했다. 그래서 기존 교회 역사가와 다른 관점으로 교회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교수님에게 성경 '텍스트'란?

성경·교회·사회를 향한 내 관점을 형성한 준거는 성경 텍스트다. 성경의 정경성에 대한 가치를 축소하지 않는다. 성경이 더 성경답게, 성경 메시지가 이 사회에서 적확하게 들리게 하는 방편으로 콘텍스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경 텍스트가 여전히 오늘날 콘텍스트에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성경이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영감을 받았다는 차원이 아니라, 오늘날의 콘텍스트, 변화하는 시대에도 무궁무진하게 유의미한 담론을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텍스트를 다시 읽어 나가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 작업이 그렇다. 나는 그 작업의 맥락을 콘텍스트에서 텍스트의 정합성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콘텍스트를 텍스트에 끌어와 맞추는 것이 아니라 콘텍스트에 들어가서 하는 작업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텍스트의 정합성을 찾아 나가는 자신감과 실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학자들이 그런 작업을 해 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가 김근주 교수의 <복음의 공공성>(비아토르)과 맥이 닿아 있다고 감히 말해 본다.

-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보나.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느냐 물으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러면 냉소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글 쓰면서 늘 냉소하지 말자고 한다. 변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 당위로 말할 수밖에 없다.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끌어낼 의무가 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회복된 사례가 있다. 가시적 결과는 안 보여도,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상황에서 내 역할은 두 발짝 앞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이야기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세운 신학적 경계를 조금이나마 넓혔으면 한다. 학자의 글과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연결자'라는 자의식, 유시민 작가 표현처럼 '지식 소매상'이라는 자의식이 내 글쓰기의 추동력이다.

학문적 세계의 담론을 한국교회 콘텍스트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을 이해하는 코드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의 속어(vernacular)인 영어·독일어 문학이 생겼던 당시, 스콜라학의 엘리트 담론이 대중 담론과 단절됐던 데 있다. 이를 연결한 것이 인문주의였고, 이 일을 종교개혁자들이 해냈다.

변화는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바깥에서 위기의식을 갖도록 추동하는 그룹이 존재해야 한다. 그 흐름을 조직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희망을 둘 수 있는 지점은 신학교 밖 아카데미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장합동 총회에서 여섯 개 복음주의 단체를 조사할 것을 결의했는데, 교단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위기가 아니라 기회, 희망일 수 있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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