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창원교육지원청에서 열린 의견 수렴 공청회에는 학부모·학생·교사·지역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차별에는 어떠한 합리적 이유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설명하는 교육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며 차별 금지 조항 일부를 삭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차별의 합리화에 힘을 실어 줄 뿐이다. 차별은 미성숙과 현실적 어려움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사회가 차별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경상남도 학생 인권조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에 찬성 측 패널로 참석한 김보은 학생이 말했다. 그는 12월 19일 창원교육지원청에서 열린 2차 공청회에서 "일부를 수정하자는 것은 특정 종류의 차별을 묵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례에서 차별 금지 사유를 지우는 일은 누군가의 삶을 지우는 일이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0일 열린 1차 공청회는 조례 제정 반대 측의 방해로 아수라장이 됐다. 반대 측은 패널 구성과 공청회 진행 방식을 문제 삼았다. 공청회가 끝난 뒤에도 '졸속 공청회', '반쪽 공청회'라며 주최 측인 교육청을 비난했고, 공청회를 다시 공정하게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11월 25일에는 경남기독교총연합회와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등 교계 단체와 지역 교회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학생 인권조례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잦아들지 않는 반대 움직임에 박종훈 교육감도 한발 물러섰다. 박 교육감은 12월 6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원안을 지지하지만, 학부모나 대중 정서에 어긋나게 원안대로 간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며 조례안을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보은 학생은 박 교육감의 태도 변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박종훈 교육감께서 조례안을 수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 인권조례 차별 금지 조항에서 어떤 차별 금지 사유도 빠져서는 안 된다. 존재를 지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대 측 패널은 불참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이날 공청회에는 반대 측 패널 3명이 참석하지 않았다. 교육청은 주제 발표 시작 전 "오늘(12월 19일) 오전 반대 측 패널들이 불참한다고 갑작스레 알려 왔다. 그래도 찬반 양측이 사전 협의해 준비한 절차에 따라 공청회는 그대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조례 제정 반대 단체들은 공청회가 열리기 전, 경남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공정한 1차 공청회에 대한 교육청의 해명·조치 없이 열리는 공청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토론자들의 불참을 선언했다.

반대 측이 불참한 상태로 공청회가 진행되자, 몇몇 방청객이 이를 지적했다. '지역민'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한 방청객은 "공청회는 찬성과 반대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 아닌가. 이렇게 통과시키면 그냥 통과되는 건가. 이렇게 하면 또 지난번처럼 문제 삼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스스로 찬성 측 방청객이라고 소개한 학부모는 "공청회 준비 과정부터 문제다. 담당자는 뭐 하느냐. 공무원들이 돈 처먹고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반대 패널 없이 진행하는 게 말이 되는가. 다음번에 다 모아서 다시 하라. 지금 교육청에 항의하러 가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논의의 자리를 무시했다며 반대 측을 비판하는 방청객도 있었다. 창녕 지역 중학교 한 교사는 "지금도 인권을 박탈당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다.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해 논의하자고 만든 공청회 아닌가. 조례의 어떤 부분이 문제고 어떤 부분이 교육적인지 논의하는 소중한 자리를 무시하고, 참석한 학생·교사·학부모·지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해할 수 없고 불쾌하다"고 말했다.

김소진 학부모는 "인권조례 제정은 아이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공청회는 순서대로 진행됐다. 학부모·학생·교사로 구성된 찬성 측 패널 3인은 학생 인권조례가 제정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소진 학부모는 작년 11월 현장 실습 중 사망한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 군을 언급하며 인권조례 제29조 '노동 인권' 조항이 이 같은 참사를 막을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제29조는 △학교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학생의 노동 권리를 보장할 것 △노동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교육할 것 △현장 실습 또는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김소진 학부모는 "어른들 부주의로 아이들의 생사를 가르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교가 노동조건과 환경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 인권조례가 모든 문제의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이유로 많은 아이를 잃었다. 바로 어제(12월 18일)도 강릉 한 펜션에서 학생들이 다치고 죽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옆자리 앉은 친구, 수업 듣는 학생, 자녀가 더는 죽지 않기를 바랄 것이라 믿는다. 학생 인권조례가 그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 첫걸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보은 학생은 차별을 미성숙과 현실적 어려움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패널들 주제 발표 후, 찬반 양측 방청객이 번갈아 패널들에게 질문했다. 본래 찬성 측 질문에 반대 패널이 답하고 반대 측 질문에 찬성 패널이 답하는 방식으로 계획됐지만, 반대 측의 불참으로 모든 질문에 찬성 패널들이 답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 측 질문에서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한 학부모는 "인권조례에 임신·출산의 권리가 있다. 딸을 키우는 처지에서 딸이 임신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데 학교에 다니며 어떻게 아이를 키우겠는가. 이렇게 조례를 제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나"라고 물었다.

그러나 인권조례안에 '임신·출산의 권리'는 없다. 임신·출산은 제16조 '차별 금지' 사유 중 하나이며, 임신이나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인권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은 이 조항이 임신·출산을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보은 학생은 "인권조례에는 임신·출산의 권리를 준다는 조항은 없다. 다만 그 여부에 관계없이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고 답했다. 김소진 학부모도 "부모 입장에서 바라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일(임신·출산)이 번번이 일어난다. 헌법이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교육권을 박탈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차별 금지 조항을 문제 삼는 방청객도 있었다. 마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한 교사는 "학생 인권조례에 해당하는 학생은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생이다.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는다고 하면, 유치원 아이들에게 교육할 때 남자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교육을 얼마든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가"라고 물었다.

김소진 학부모는 "학교 현장에 계시면 성적 문제가 많이 우려될 수 있다. 그러나 차별을 금지한다고 해서 당장 어느 부모가 엄마가 남자일 수 있고 아빠가 여자일 수 있다고 교육하겠나.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질문한 교사는 "법은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법이 보장하면 그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런 일이 혹시 일어나겠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안일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나쁜학생인권조례제정반대경남도민연합은 공청회 시작 전부터 공청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창원교육지원청 건너편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개신교 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나쁜학생인권조례제정반대경남도민연합(나학연·원대연 대표)은 공청회 시작 전부터 공청회가 끝나는 4시 30분까지 창원교육지원청 건너편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대로변에 모인 100여 명은 공청회가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나쁜 경남 학생 인권조례 반대"라는 구호를 계속 외쳤다.

나학연은 공청회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찬반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공청회 감시·감독 기관 선정 △패널·사회자·참관인·장소 선정 합의 △불법적 1차 공청회 기획한 직원 징계·문책을 요구했다. 성명서를 낭독한 대표 원대연 목사는 "이 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청회는 원천 무효이며, 공청회 이후 도출되는 조례안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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