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믿고 서로 돕는 것이 우릴 구할 줄로 믿습니다
혐오가 아닌 사랑 차별이 아닌 자비 배제가 아닌 희망이 가득한 세상을 꿈꿉니다
이제 우리 서로 서로의 기도가 되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 세상을 향해서
혐오가 아닌 사랑 차별이 아닌 자비 배제가 아닌 희망이 가득한 세상을 꿈꿉니다
이제 우리 서로 서로의 기도가 되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 세상을 향해서 행진합니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당신에겐 내가 있고 내겐 당신이 있고 우리에겐 사랑이 있으니"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싱어송라이터 '방구석'(활동명)이 7월 4일 발표한 CCM '우리, 서로의 기도가 되다' 가사다. 2014년부터 CCM 가수로 활동해 온 그는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열린 '정체성 강제 전환 시도 근절을 위한 기도회'에서 누군가 읽어 내려간 기도를 듣고 곡을 쓰기로 결심했다.

곡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구석은 7월 4일 각종 음원 사이트에 노래를 공개했다. 네이버뮤직·멜론뮤직 등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외에 CCM만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 두 곳에도 올렸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두 사이트 중 한 곳에서 자신의 노래가 삭제된 걸 알게 됐다. 이 업체는 음원 제작자에게 사전 통보 없이 노래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또 다른 CCM 전문 홈페이지에서도 '우리, 서로의 기도가 되다'는 자취를 감췄다.

CCM 싱어송라이터 방구석은 7월 4일 '우리, 서로의 기도가 되다'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음원이 삭제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업체들에게 사유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노래 대표 사진으로 쓴 무지개가 문제였다. 가사에는 '동성애' 단어가 들어가지 않지만, 무지개 하나만으로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사이트 사용자들 항의가 빗발쳐 어쩔 수 없이 음원을 삭제해야 했다는 게 CCM 음원 사이트들의 해명이었다.

방구석을 7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40대 회사원인 그는 평일 저녁에는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에는 가족들과 교회에 나간다. 그를 만나 왜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됐는지, 평소 성소수자 이슈에 어떻게 목소리를 내 왔는지 물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어떻게 이 노래를 만들게 됐는가.

5월 17일 기도회가 열렸을 때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그 비를 뚫고 100명 넘는 사람이 모여서 예배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당사자들이 나와서 간증 같은 걸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저분들은 신앙을 버리면 참 편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지도 못 하고 '고생 고생'해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심경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참석자 한 분의 기도문 중에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지막 공동 축도 시간에도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구절이 있었다. 기도문을 들으면서 이건 곡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바로 작업했다.

- '우리, 서로의 기도가 되다'는 CCM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노래 가사 대부분은 기도회에서 함께 읽은 기도문을 발췌한 것이다. 나에게는 노래가 당연히 기도문이었고 기도였다. 기도인데 왜 CCM이 아닌가. 지금 한국교회 CCM은 비슷비슷한 내용만 담고 있다. 그걸 깨고 싶어 이 기도문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 노래를 만들고 대표 사진을 무지개로 지정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할 줄 예상했나.

무지개도 무지개지만 가사 영상은 약간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 간주 끝나고 손잡고 걸어가는 두 남자를 배치했고, 여성과 여성이 손을 맞잡은 사진도 넣었다. 하지만 노래 가사는 직접적이지 않다. 기도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논란을 예상해) 충분히 두루뭉술하게 메시지를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도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 CCM 전문 음원 사이트들은 삭제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던가.

양쪽 다 무지개 때문에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업체에서도 처음에는 모르고 그냥 음원을 올렸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니까 서둘러 내린 것 같았다. 업체 쪽에서 사전 통보 없이 삭제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 무지개가 문제였으면 사진을 바꿔서 다시 올리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업체에서도 입장을 발표하고 그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하지만 막상 음원이 내려가니까 한국교회가 이 정도로 동성애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도 못 받아들이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입장을 밝힐 필요성을 못 느끼겠더라.

함께 올린 가사 영상에 등장하는 두 남성. 유튜브 영상 갈무리

-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뜻인가.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찬성과 반대로 논한다. 동성애는 존재에 대한 건데 어떻게 찬성과 반대가 가능한가. 존재를 반대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만약 내 자녀가 나중에 성장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한다면, 나는 '내 자녀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게 가능할까. 존재를 반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 '방구석'이라는 활동명을 쓰는 이유가 있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기독교 관련 일이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 CCM 활동도 하고 싶은데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기존 CCM과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 이번 일만 봐도 방구석이 누구인지 알려지면 분명 공격해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개인 신상을 털고, '밥줄'을 공격하지 않나.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넘쳐날 때, 그들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가 더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이런 앨라이들의 생계를 위협하면서 공격하니까 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앨라이들의 목소리마저 빼앗아 가는 현 상황은 심각하다.

- 언제부터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2014년경, 교계에서 성소수자 인권 증진 운동을 하시는 '친동성애' 진영의 목사님이 쓴 글을 봤다.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 남긴 편지 같은 거였다. 그 글을 읽는데 처음으로 "아 내가 죽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총신대 성소수자 동아리 '깡총깡총' 색출 작업 등 이슈가 막 터져 나올 때였다. 저렇게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어떤 존재를 반대하다 그 존재가 죽었다는데, 꼭 기독교인인 내가 죽인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우연찮은 기회에 성소수자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옆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존재를 반대한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깨달았다.

2년 전에는 다니던 교회에서 동성애 관련 주제로 토론도 했다. 내가 워낙 이쪽으로 관심이 많으니까 담임목사님이 찬반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줬다. 찬반을 나눠서 논쟁했는데, 결국 '동성애는 죄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해야 한다'는 '온건한 반대'로 결론이 났다. 그 과정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고 해서 결국 교회를 나오게 됐다.

내가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은 교회에도 성소수자가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토론회를 앞두고 교회에서 익명으로 질문을 받았다. 그때 스스로를 성소수자라고 밝힌 사람들이 있었다. 성소수자 교인이 있는 걸 알면서도 '성경에 써 있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을 들으니 화가 나더라. 결국 그들 중 교회를 떠난 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온건한 반대도 당사자에게는 거절이라고 생각한다. 존재를 반대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 성향을 죄라고 하는 것 아닌가. 바꿀 수 없는 성향을 죄라고 하고, 그걸 바탕으로 논의를 하는 게 당사자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도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노래를 제작할 계획인지.

'우리, 서로의 기도가 되다'는 기도회에서 느낀 바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온 노래다. 앞으로 이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곧 '일상'에 관한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존 CCM이 보여 준 메시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CCM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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