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19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끝났다. 축제를 찾은 사람들의 면모는 다양했다. 성소수자는 물론 그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가족 단위로 참석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고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는, 그야말로 즐거운 축제의 모습이었다.

개신교 관련 부스 앞은 사람들을 제치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붐볐다. 교인이거나 한때 교회를 다녔던 성소수자들도 관심을 갖고 부스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무지개예수 부스에서 '주님께 부치는 편지'를 작성했고, 로뎀나무그늘교회 부스에서는 "________해 주시는 예쁜 예수" 게시판 빈칸을 채웠다.

<뉴스앤조이>는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 중 교회를 떠난 다섯 사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두 20대로, 교회를 떠난 지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정도 된 이들이다. 성소수자 당사자도 있고, 앨라이도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들었을까. 그들과 나눈 대화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해 봤다.

무지개예수 부스에서는 '주님께 부치는 편지'를 포스트잇에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A / 습관처럼 교회를 다니다가 제대로 믿기 시작한 건 18살부터다. 10대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아무 생각 없이 교회 수련회에 따라갔다가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예수님의 존재를 마음으로부터 이해해 더 열심히 믿기 시작했다. 지금 20대 중반인데, 교회 안 나간 지 다섯 달 정도 됐다. 그전까지는 청년부 활동도 했다.

사실 지금 만나는 애인도 엄청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같이 주일예배에도 가고 싶은데, 언제 혐오 설교가 나올지 모르고, 무슨 얘기를 들을지 몰라 겁이 나 못 가고 있다. 대신 평일에 하는 찬양 예배 같은 곳에 같이 다니면서 말씀 듣고 은혜를 받는다.

교회에 갈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교회 공동체에 뿌리내리고 사람들과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신상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하지 않아도 "남자친구 왜 안 사귀느냐" 등의 질문을 받는다. 그런 것에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싶은데, 기성 교회 공동체에 속하는 게 사실 좀 무섭다.

올해 퀴어 문화 축제를 처음 방문해서, 기독교에서 하는 반대 집회도 처음 봤다. 과거에는 빨갱이가 교회를 망하게 한다고 적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그 대상이 동성애자가 된 것 같다.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교회가 성소수자를 긍정하면서 그들에게 힘이 돼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자기를 부정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는 성소수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태초부터 당신을 사랑하셨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될까. 그런데 지금 교회의 행동은, 성소수자는 함께 갈 수 없고 너희쯤은 그냥 버리고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교회 안에도 분명 '퀴어'가 있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신실한 교인이었던 내가 그렇게 교회에서 튕겨 나왔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

A는 "언제 혐오 발언을 들을지 몰라 교회 가는 게 무섭다"고 했다. A는 평소 좋아하던 CCM 가사를 적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퀴어 문화 축제에 와서 보니까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교회가 많았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CCM 중에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주 보네, 사랑은 절대 지지 않네"라는 가사가 있다. 문득 그 가사가 떠올랐다. 여기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다. 빨리 그런 교회에 가고 싶다.

B /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대학생이 된 후 교회를 떠났다. 정확하게는 신앙을 떠났다고 보는 편이 맞다.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18년 정도 다녔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동성애자라고 확신하게 됐다. 나의 성적 정체성이 명확해지니 기독교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발언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꼭 교회 설교가 아니어도 언론 매체, 유튜브에 "동성애는 죄다", "동성애자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많지 않나.

교회를 다니면서 성소수자 이슈 외에도 불편한 지점이 늘 있었다.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을 얽매고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세월호, 탄핵 등의 이슈에서도 사회와 고립되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교회가 답답했다. 내가 다닌 교회가 보수적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교회에서는 '더불어 잘 살자'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곳에 계속 있기가 쉽지 않았다.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교회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당장 교회에 다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믿던 신앙을 등지는 일은 불안감보다는 해방감을 가져다줬다.

C는 예수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고 서울 퀴어 문화 축제를 찾았다. 더 이상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은 C는 "예수는 사랑 그 자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C / 부모님을 따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를 떠난 지 3개월 정도 됐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으로 인정받으면서, 교회에 나갈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동안 설교를 들으면서 이게 정말 종교가 맞는지 의문이 있었다. 종교가 희망의 말보다 혐오를 전파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했는데, 그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니던 교회는 아주 보수적이어서, 여성에게 목사 안수도 줄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의 아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설교 시간에도 스스럼없이 하는 곳이었다. 동성애자인 내가 듣기에 혐오적인 발언도 많았다. 교회에서 주최하는 어느 집회를 가도 항상 "동성애는 죄"라는 말을 들었다.

교회에서 상담 명목으로 목사님·전도사님과 동성애 관련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성경에 그렇게 써 있기 때문에 안 된다"였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동성애만 그렇게 얘기하는 건 자기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또 성경에는 양성애자·레즈비언·트랜스젠더가 나오지 않는다. 교회에서 동성애 이야기를 하면서 남성 동성애자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들은 나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이렇게 부정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누군가를 내치면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그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면서 자기들의 결속력을 다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해서"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D / 건강이 안 좋은 시절이 있었고, 그때 마음의 안식처를 찾고 싶었다. 주변 환경 때문에 기성 교회에 다니게 됐다. 장로교회를 다녔는데, 교인들과 애착 관계가 많이 형성됐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보수적인 곳이었지만, 나는 다른 관점의 성경 해석이 가능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구속한다고 생각했다.

교회는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듣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이 말에서 전혀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여러 혐오 발언이 있었지만 퀴어 혐오 설교가 너무 심했다. 나는 전공이 수학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성적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그 사랑을 규정하는 명찰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신앙 기준으로는 교회 역시 그런 구분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의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성소수자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무조건 배제하고 배척하는 발언에 상처받은 일이 많았다. 함께 신앙생활하던 사람들과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미 누군가를 정죄하는 발언에 익숙한 이들이라 토론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교회에 다시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E / 20대 중반 모태신앙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교회를 오래 다녔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신 후, 교회가 보여 주는 행태에 많이 실망했다. 교회 안에서 동료를 찾아보려 했는데 오히려 교인들은 나를 이상하게 봤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 교회 밖 교인들과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다.

나는 성소수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 자리가 복음에 합당한 자리라 생각해서 오게 됐다. 반대 진영이 지키려고 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한국교회에는 동성애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들은 외부의 약자를 타깃 삼아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이 자리가 예수님이 있는 자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교회 청년층 감소가 심각한 문제라고 알고 있다. "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날까"라고 질문하기 전에, 저런 교회의 행동을 보면서 "청년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라고 되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보수 교회 공동체를 견디지 못해 떠났을 뿐이지 신앙을 버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제도권 교회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아무리 평이 좋은 교회라 해도, 교인으로 등록하고 그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대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를 찾고 싶다.

서울 퀴어 퍼레이드에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