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같았던 총선을 치르고 김용민 피디는 턱수염을 길렀다. 보수 개신교 세력과 일전에 임하는 각오의 표현이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전쟁 같았던 4·11 총선이 끝났다. 낙선한 김용민 피디는 턱수염을 길렀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귀엽게 웃던 얼굴과 사뭇 달라 보였다. 그는 총선을 거치며 달라진 마음가짐의 표현이라 했다. 그러더니만 교회를 개척했단다. 장난 혹은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지난 6월 10일 그가 개척한 벙커원교회가 공식적으로 창립했다.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악동이 이번에는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걸까. 김용민 피디를 6월 15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벙커원에서 만났다.

선거 패배로 의기소침해 있을 거란 일부의 추측과 달리 그는 활발하게 지내고 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강연과 라디오 드라마 등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에 여념이 없다. 익살맞은 아이디어는 여전히 샘솟고 의욕은 팔팔하게 살아 있다. 김 피디는 안정적이고 여유롭게 일하고 있다.

보수 기득권 개신교 세력과 전쟁 준비

김 피디의 낙선에는 보수 개신교 세력이 공을 세웠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그의 이름을 올리며 비난하기 바빴고, 파업으로 고전하던 <국민일보>는 김 피디를 집중 공격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김 피디는 당시 화가 나기보다 황당했다고 말했다. "정말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되나"하는 의문이 드는 수준이었다. 김 피디는 왜곡 보도에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김 피디는 보수 개신교가 자신을 두려워해서 공세를 퍼부었다고 봤다. 기독교 보수 세력의 치부를 잘 아는 그가 국회에 들어가면 그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김 피디를 열정적으로 비난했다는 것. 그는 과거 극동방송과 CTS 등에 근무하면서 교계 언론이 특정 인사에 의해 사유화되는 걸 보고 저항한 이력이 있다.

▲ 김 피디는 요즘 벙커원 카페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일한다. 새로운 라디오 드라마와 강연 준비 등으로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카페에 찾아온 팬에게 김 피디가 사인을 해 주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차라리 김용민이 국회에 들어가는 게 나을 뻔했다고 느끼게 해 주겠다. 아마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무차별 폭격 속에서 살아난 김 피디는 독해졌다. 그는 부패한 수구 교회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규율 등에 막혀 하지 못했을 일들을 외부에서 신명 나고 집요하게 해 나갈 계획이다. "난 그들의 생리를 잘 안다." 김 피디는 승리를 자신했다.

김 피디가 개신교 전체를 매도한다는 오해는 그의 거친 표현에서 비롯됐다. 거친 표현은 김 피디 속의 찬 울분의 표현이다. 김 피디는 기독교 방송사에서 구태의연한 이원론적 사고에 숨 막혔고, 목회자들의 부패상에 기가 막혔다. 보수적인 신앙이 흔들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민의 기로에서 옳다고 믿은 길을 택한 결과는 언제나 '해고'였다. 쫓겨난 자의 울분은 그를 운동체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예수를 찾지만 교회에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 김 피디는 교회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벙커원교회를 시작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신앙의 자유와 교회 본질을 지키는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선거가 끝나니 교회에 갈 수 없었다. 상처투성이인 그는 편히 예배할 수 없었다. 그가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오라고 다독였지만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했다. 그의 선택은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 절묘하게도 박 목사는 설교에서 김 피디를 비난했다. 컴퓨터를 껐다. 자신처럼 '교회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실 교회 개척은 오랜 꿈이었다.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상황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실현했을 뿐이다. 그는 교회를 세우며 다짐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5만여 개의 다른 교회와 같은 또 하나의 빨간 십자가가 아닌 전혀 다른 교회를 만들겠다고. 교회 이름은 예배 장소인 카페 이름을 빌려 벙커원이라 지었다.

벙커원교회에는 직분, 교인 등록제, 헌금함이 없다. 교회 본질을 왜곡하는 족쇄가 되어 버린 형식을 털어냈다. 교회 내 계급으로 여겨지는 직분과 교회 규모 관리 수단으로 전락한 교인 등록제는 하지 않는다. 헌금은 나눔이 필요한 곳에 각자 직접 기부하면 된다. 벙커원교회는 '제주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노조 해고 노동자' 등 후원하면 좋은 곳을 소개한다.

벙커원교회는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토론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김 피디는 "하나님나라 실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권력에 대해서 교인들이 관심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고 했다. 장로라고 해서 덮어두고 뽑아주는 한국교회 수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 어떤 사람과 정당이 권력을 가져야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바로 설지 함께 이야기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집단 지성을 그는 신뢰했다.

벽이 없는 교회에서 열린 예배를

▲ 벙커원교회는 예배 장소인 카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주일 아침마다 200~300명의 사람이 예배하러 온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예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된 벙커원교회에는 매주 200~300명의 사람이 찾는다. 고정적으로 오는 사람은 120명 정도 된다. 참석 인원의 90%는 나꼼수 팬들이다. 김 피디처럼 교회를 다니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부터 토크 콘서트 관람하듯이 오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주일 아침 이곳에 모인다.

예배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예배 시간에는 가요도 부른다. 김 피디는 "비신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걸 믿는다면 복음이 담긴 노래는 어떤 장르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취재하러 벙커원교회를 찾은 6월 17일 첫 찬양은 '개똥벌레'였다.

예배 순서나 분위기는 별나지 않다. 진지하면서 동시에 유쾌하다. 벙커원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주보에 적힌 노래를 따라 부르고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다. 눈에 띄는 순서는 대표기도. 기도하길 원하는 누구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다. 기도 내용은 개인적인 바람과 고민이 대부분이다. 장로만 올라가 나라와 민족의 부흥과 발전을 구하는 상투적인 대표기도와 차이를 보인다.

"모태 신앙으로 지금까지 일반적 교회 형식에 길들여져 온 저로서는 '대화하는 기도'를 보고 '이럴 수도 있구나' 새롭게 느꼈습니다."

▲ 벙커원교회 설교는 김 피디가 한다. 하지만 김 목사라 하지 않는다. 같은 교인 '김용민 님'으로서 강단에 선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기자가 교회를 찾은 날 첫 번째 대표 기도자는 막내아들 덕에 나꼼수 팬이 됐다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는 "젊은 세대와 함께 예배하니 몸과 마음이 젊음을 찾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은혜와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됨을 감사하며 살아갑시다"고 기도했다. 기도 시간에 교인들은 눈을 뜨고 기도자를 바라보며 듣는다. 기도의 마무리는 감사와 응원의 박수다.

"신앙의 범주를 개인과 교회당 안에 한정 짓지 맙시다. 기독교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 때 위험합니다.…과거에 죄인이었다고 해도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리에 있다면 믿는 자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김 피디가 '다른 교회'를 추구한다지만 '다르지 않았다'는 게 기자의 결론이다. 공동체 구성원과의 교제, 찬양에서 얻는 기쁨과 평안, 설교에서 깨닫는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교회의 중심, 그 진정성은 이 땅에서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다른 교회와 같았다. 김 피디가 꿈꾸는 교회가 어떻게 신앙을 키워 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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