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8:1-10a, 시 15, 골 1:15-28, 눅 10:38-42
|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게 느껴지고 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바람 같은 주님을 느끼고 응답하는 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본기도 |
말씀하시는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삶의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 앞에서 귀 기울이게 하시고, 용기와 힘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양 |
우리의 기도(이길승)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찬 540장)
시편 15편 1-15절
1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2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3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4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5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 말씀 |
창세기 18장 1-10절
1 주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보니, 웬 사람 셋이 자기의 맞은쪽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3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4 물을 좀 가져 오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5 손님들께서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 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에게로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6 아브라함이 장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지고 와서, 반죽을 하여 빵을 좀 구우시오." 7 아브라함이 집짐승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서, 기름진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하인이 재빨리 그것을 잡아서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만든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장막 안에 있습니다." 10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장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들었다.
골로새서 1장 15-28절
15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21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 23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 굳건히 서 있어야 하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었으며,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25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파하게 하시려고 내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 27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 가운데 나타난 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고 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요,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권하며,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빼앗기지 않을 몫 |
성서에서 '누구의 발 아래에 앉는다'는 표현은 그 사람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며 "나는 가말리엘의 발 아래에서 율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이 가말리엘의 제자였다는 뜻이지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발 곁', 즉 말씀을 듣는 제자의 자리는 오직 남성에게만 허락된 자리였습니다. 여성에게 주어진 자리는 배움의 자리가 아니라 배우는 이들을 섬기는 곳, 바로 부엌이었지요. 성별에 따라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사회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일이자, 심지어 하나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까지 치부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곁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를 넘어 배움의 자리를 선택했지요. 언니 마르다는 남성 제자들처럼 예수님 발 아래에 앉은 동생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동생이 여성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보고만 계시렵니까?" 하고 말이지요.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동생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보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에 주님은 마르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마리아의 선택이 좋은 것이며, 그 선택을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역사를 돌아보면 여성은 수천 년간 '있어야 할 자리'를 남성 중심의 질서에 의해 강요받아 왔습니다. 가사 노동, 양육, 식사 준비, 환대의 책임…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강단은 남성의 몫, 주방은 여성의 몫.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리는 남성이 차지하고, 뒤에서 묵묵히 수고하고 섬기는 일은 여성이 감당하는 일이 오늘날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목회자가 된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년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한국교회 안에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응답했고, "교인들이 여성 목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48%에 달했습니다. 특히 제 눈길을 끈 대목은, 남성 목회자의 22%, 여성 목회자의 7%가 "공예배 설교에는 남성이 적합하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본문을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오늘 본문을 '구제 사역 대 말씀 사역' 또는 '분주함 대 묵상의 삶'의 대조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읽는다면, 본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전복성과 구조적 도전을 놓치게 됩니다. 또한 여성을 서로 대립시키면서 본문 뒤에 자리 잡은 가부장제의 실체를 은폐할 위험이 있지요.
본문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마르다가 부엌에서 일한 것도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말씀의 자리를 선택한 것도 더없이 귀한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르다가 원했다면 그 역시 예수의 발 앞에 앉을 수 있어야 하며, 마리아도 원했다면 부엌으로 갈 수 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섬김을 비난하거나 그가 나쁜 선택을 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리아의 선택을 지지하시면서, 그 선택을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은 누구든 말씀을 배우고 제자가 되는 것이 정당하며, 그 권리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르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여성의 자리를 규정지으려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말씀을 배우고 선포하는 자리를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은 해방의 선언이었습니다.
세속성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 마리아가 선택한 그 '좋은 몫'을 잘 지켜 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마리아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듯, 우리 역시 마리아의 편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마리아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들에 맞서, 그 자리를 굳게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장운영 / 당인리교회
| 적용 질문 |
- 읽은 말씀에서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한 구절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느껴졌나요?
-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때 내 방식과 기준에만 고정되어 잘못된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는 않았나요? 나는 지금 어떤 주파수에 맞춰져 있는지 돌아봅시다.
| 세속성자의 기도 |
폭우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하나님, 그렇게 무덥더니 이제는 비가 많이 와서 강이 범람하고 집이 잠겼습니다. 도로와 기반 시설들이 침수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험한 비를 피해 곳곳에 웅크린 동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주님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폭우는 멈추어 주시고, 피해를 입은 곳들이 속히 복구되도록 이끌어 주소서. 피해를 복구할 뿐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 더 단단히 대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심각한 기후변화로 인해 해가 갈수록 자연재해가 더 두려워집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더 가혹한 재해가 원망스럽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가난한 이웃들과 살을 맞대고 연결된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자연을 보존하고 재해를 극복하며 날로 흉포해진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도록,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공공재생에너지법이 잘 제정되도록 기도합시다
해와 비와 바람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주님이 주신 에너지를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이제까지 인류는 석탄과 석유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삼아 왔지만, 고갈되어 가는 자원과 감당하기 어려운 탄소 배출, 환경오염을 생각할 때 청정 에너지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절실한 시대의 과제입니다. 우리가 삶의 방식을 회개하고 지혜를 모아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루게 하시며, 지구의 균형이 회복되게 하소서. 재생 에너지가 일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게 하시고, 공공의 유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공재생에너지법이 국회에서 성실히 논의되고, 정의롭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제정될 수 있도록 선하게 이끄소서. 법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한걸음부터 시작해 기후 위기의 불평등이 더이상 심화되지 않고, 창조 세계가 선하게 보전되며, 공동체의 연대와 공공선의 증진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참고: 공공재생에너지연대(https://www.publicrenewable.org/)
삶의 균형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를 돕기 원하시는 하나님, 행함과 존재함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게 하소서. 세상은 늘 질주하듯 흐르고, 우리의 몸은 빠른 속도와 끊임없는 연결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런 하루의 끝에 피로와 공허함만이 남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리들이 있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존재들이 보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지키는 일에 힘쓰되, 자신을 소홀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 바쁨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잠시 물러설 용기를 주시고, 주님 안에서 우리 몸의 감각과 묻어둔 감정들을 헤아리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오늘도 쉬지 못한 채 직장과 가정에서 일해야만 하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나의 쉼과 그들의 노동이 이어져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일과 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누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변화시켜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