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버드 주교, 국가 기도회에서 반성소수자·반이민자 정책 비판…내란 사태 침묵·동조·방관하는 한국교회와 비교

 

1월 21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행사로 열린 '국가 기도회'에서, 매리언 에드가 버드 주교가 트럼프의 차별·반평등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워싱턴 국립대성당 유튜브 갈무리 
1월 21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행사로 열린 '국가 기도회'에서, 매리언 에드가 버드 주교가 트럼프의 차별·반평등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워싱턴 국립대성당 유튜브 갈무리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미국 성공회 주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전한 설교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1월 21일 워싱턴 D.C.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국가 기도회'에서, 워싱턴교구 매리언 에드가 버드(Mariann Edgar Budde) 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소수자 아이들, 이민자, 난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했다. 미국 국가 기도회는 1993년 시작한 대통령 취임식 전통으로, 대통령 취임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서다. 

버드 주교는 맨 앞자리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J.D. 밴스 부통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미국 정부·의회 지도자들에게 '통합'을 이루어 달라고 주문했다.

버드 주교는 "우리는 국민이자 국가로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 하나 됨은 정치적이거나 다른 의견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다양성과 분열을 넘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면서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투표가 이루어지고, 자원의 우선순위와 공공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결정들이 내려질 때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는 어떤 이들에게 단순한 정치적 패배를 넘어서 평등, 존엄, 그리고 생계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분열을 넘어서는 연대의 정신을 강조했다. 연대를 이루는 기반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 정직,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겸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이민자·난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트럼프가 취임식 연설에서 2024년 암살 시도와 관련해 "신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면서, 성소수자·이민자·난민에게도 이 같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버드 주교는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가정에 속해 있는 아이 중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일부는 자신들의 생명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사무실 건물을 청소하고, 가금류 농장과 정육 공장에서 일하고, 우리가 식사한 후 식기를 씻고, 병원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시민이 아닐 수도 있고, 적절한 서류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민자의 대다수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들은 세금을 내며,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고 있다"면서 "부모님들이 체포될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전쟁 지역과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이들이 이곳에서 연민과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한때는 이 땅에서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임기를 시작하며 트랜스젠더·이민자 등에 대한 보호 조치 해제를 예고한 바 있다. 그는 20일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이번 주에 공적 및 사적 삶의 모든 측면에 인종과 성별을 사회적으로 조작하려는 정부 정책을 종식할 것이다. 오늘부터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은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연설 후에는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를 단속·추방하는 취지의 행정명령들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배당 우측 맨 앞줄에 앉아 설교를 들었다. 워싱턴 국립대성당 유튜브 갈무리 
트럼프 대통령은 예배당 우측 맨 앞줄에 앉아 설교를 들었다. 워싱턴 국립대성당 유튜브 갈무리 

버드 주교의 메시지는 하루 만에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그가 첫날부터 내놓는 성소수자·이민자 차별 및 혐오에 정책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메시지를 전한 버드 주교의 모습도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강압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누구나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했기에 호소력이 있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버드 주교의 메시지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를 위시한 극우 개신교가 폭동을 부추기고, 집회와 시위로 공공의 안녕을 해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 앞에서도 할 말을 당당하게 전하는 버드 주교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이 시대 참종교의 역할"이라는 평가를 남기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습과도 극명히 대비됐다. 한국교회 주요 목회자들은 초유의 사태를 거듭 보여 주고 있는 윤석열에 대해 침묵하거나 양비론을 펼치고 있다. 손현보 목사(세계로교회) 등 일부는 토요일마다 '세이브코리아'라는 이름의 집회를 열어 윤석열을 옹호하고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나아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하는 스피커도 불러모으는 등 '극우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찬수 목사는 1월 19일 "판단은 유보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설교해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다. 분당우리교회 유튜브 갈무리
이찬수 목사는 1월 19일 "판단은 유보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설교해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다. 분당우리교회 유튜브 갈무리

특히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1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는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다. 이 목사는 설교에서 "지금 자꾸 사분오열, 이런저런 상처들이 자꾸 양산이 되는 시대인데 네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판단은 좀 유보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말했다. 극우 개신교를 기반으로 한 가짜 뉴스 유포,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전광훈 목사의 각종 막말과 내전을 부추기는 듯한 설교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판단을 유보하라'며 양비론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김양재 목사(우리들교회) 역시 지난달 설교에서 "우리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말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며 "내 죄를 먼저 고백해야 한다. 내가 안 돼 있으면 나라를 위해 기도할 자격이 갖춰지지 않는다"며 유사한 취지의 설교를 한 바 있다.

이찬수 목사가 1월 19일 주일 설교 후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나라를 위한 기도문'. 사진 출처 분당우리교회 홈페이지 
이찬수 목사가 1월 19일 주일 설교 후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나라를 위한 기도문'. 사진 출처 분당우리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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