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사태 이후 모든 수고가 극우 시대로 끝나지 않으려면
계엄령 사태가 2달 넘게 이어지고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주모자들이 자신의 범죄와 악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여론도 제법 혼란스럽다. 다른 건 몰라도 계엄령 자체는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몸을 낮추던 국민의힘도, 어느 순간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대통령 동정론을 떠보더니 이제는 아예 "대통령은 탄압당하고 있고, 가장 큰 잘못은 야당에게 있다"며 적반하장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윤 대통령의 체포 이후 그의 지지율은 고공 상승하고 바닥을 기던 국민의힘 지지율도 동반 상승해 민주당과 접전을 벌이자, 진실이 정말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이도 늘어나는 것 같다. 기독교계에도 윤 대통령의 악행을 처음부터 두둔하는 사람은 물론, 양비론도 제법 확산되어 간다. 복잡할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 계엄령 사태에 양비론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가 예산을 삭감해 국정이 마비되어 계엄령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사이의 예산 줄다리기는 계엄령 발동 사유는커녕 그러한 국가기관들의 존립 이유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때, 당시 야당이던 보수 정당도 빠짐없이 예산 삭감을 들이댔다. 그러나 해마다 겪는 예산 줄다리기로 정부 기능이 멈춰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말을 우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운을 떼더니,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 기능과 행정이 다 마비되고, 공권력은 무너지고, 거리에는 일상적 폭동과 내전, 그리고 북한의 침공이 임박해 있는 듯한 거친 표현들을 폭탄처럼 쏟아낸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과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작년 12월 3일 전까지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이러한 극단적 위기를 느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려고 패악질을 일삼는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 정말 누구인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에 아주 어울리는 현상을 대통령의 체포 과정과 그 이후 법원 폭동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일방적 주장은 너무나 익숙하게도 분단 80년 동안 언제든 그 효과를 장담해 왔던 체제 위협으로 이어져 계엄의 정당성으로 몰아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중략)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는 이유를 댔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사이에 논란과 공방이 일어날 만한 요소를 다 빼고라도, 다시 묻자. 국회의 탄핵안 발동, 예산 삭감 등이 과연 국회 기능을 정지하고 군대까지 동원해야만 할 비상사태인가? 국정 운영에 야당의 잘못도 크다 치자. 그렇다고 전쟁, 폭동, 민란이 일어난 것도 아닌 상황에 계엄이 허용된다면 앞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자의적 해석에 따른 비상사태를 경험해야 하는가?
역시 이러한 계엄의 정당성 주장이 납득은커녕 오히려 대다수 국민의 반발을 얻게 되자, 윤 대통령은 슬그머니 "진짜 계엄할 의사는 없었다. 두 시간짜리 계엄이 세상에 어디 있냐"며 또 다른 물타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주동자들의 계엄령과 그 실행 의지는 '진심'이었음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다만 그들은 40여 년의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부실하고, 무리한 실행 계획으로 스스로 자멸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와 무능이 사태의 가벼움을 말해 주는 건 결코 아니다.
응원 봉을 들고, 은박지 담요로 밤을 지새운 수많은 시민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추종해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계엄령의 범죄를 야당의 잘못과 적당히 섞으려는 주장은 "그래서 계엄령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윤석열의 범죄 사유를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무장 강도의 범죄 의지가 정당화되고, 희생을 무릅쓰고 이를 막으려던 시민의식이 양비론으로 희석되는 것은 성공하는 범죄의 의지를 또 다시 불러일으킬 뿐이다.
40여 년 전 12·12 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쿠데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수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충돌이었을 뿐이라며 '혁명'으로 정당화했던 사실을 우리는 영화 '서울의 봄'(2023년)에서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오해가 계속 힘을 얻는 한 내란 사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역사의 오욕으로 길이 남을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담화문을 필히 정독하고, 지금 사태의 본질을 바로 인식하자. 계엄령 사태에 양비론이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다.
한국 정치에도 이제 극우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정당한 법 집행(윤석열 체포) 거부 및 방해, 인종주의(중국인 혐오), 헌법기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부정 및 기밀 자료 불법 탈취, 법원 습격 및 파괴, 판사 색출 등 한국 사회에서 낯설던 극우적 행보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이를 기획, 주도하고, 집권 여당이 이를 두둔하고 있는 사실이다. 정당의 중심이라 할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이 이에 깊이 관여하는 사실은 국민의힘이 이미 보수정당이 아니라 극우 정당이 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욱 곤혹스럽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극우화 퇴보에 적지 않은 목사와 기독교인이 당당히 참여하고 있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들을 매료시키는 기독교화된 극우의 문법은 무엇일까?
첫째는, 다시 반공주의이다.
분단 80년과 참혹한 3년의 전쟁까지 겪은 한국이 여전히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갖는 건 낯설지 않다. 그러나 주류 한국교회는 이념적 대척점을 넘어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무신론=반기독교=사탄=북한(종북)'의 단선적 사고 속에서 더욱 극단적 반공주의의 선봉이 되어 왔다. 그들에게 원수이며 사탄의 세계관인 공산주의는 타협과 평화가 아닌 대립과 말살의 대상이다.
더구나 1990년대 동구권 몰락으로 국제 냉전 체제가 끝났음에도 한·미·일 동맹을 통해 여전히 공산 세력일 뿐인 북·중·러에 대항한 반공산주의 신성동맹을 지켜야 한다는 신기루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런 사고로는 푸틴과 친하고, 김정은과도 잘 지내고 싶다는 트럼프에게조차 버림받을 신세가 된다. 윤석열은 꺼져 가던 반공 신기루를 다시 불러일으켜 자기 통치의 불쏘시개로 잘 써먹었지만, 대한민국은 그만큼 시대 발전에 후퇴해 버렸다.
둘째, 반동성애(반페미니즘·반젠더)다.
한국교회, 주류 사회는 동성애를 부정하고, 거부한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반'동성애'라는 말 속에는 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주류 사회는 사회적 비판 의식으로 장착되어 더는 고분고분해지지 않은 '똑똑한 여자'를 싫어한다(반페미니즘). 그리고 낯설고 거부감 가득한 동성애를 소름 돋게 느낀다(반동성애). 결국 지금껏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우월한 배경이라 여겼던 성(性)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전체를 싫어한다(반젠더).
그러나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성적 자기 선택권, 젠더 의식이 급격히 성장해 갔다. 아무리 보수 정부(이명박, 박근혜)라도 이를 노골적으로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반면 아무리 민주당 정부(노무현, 문재인)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두 보수 정부 사이에 서로 모른 척 묵인된 전략적 제휴가 가능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처음부터 달랐다. 그는 중요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우리 사회에 더는 조직적 성차별이 없으니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더구나 평소 노골적 반동성애 발언을 멈추지 않던 기독교계 안창호를 인권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기독교계에 무언의 확신을 주었다.
투철한 반공 정신과 반동성애, 반페미 의식을 두말없이 실천해 나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류 보수 기독교는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2024년 '10·27 집회'는 윤석열 정부와 주류 기독교의 급격한 밀착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10·27 집회는 피상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반동성애 집회가 아니었다. 이들이 내세운 한국교회 100대 기도 제목을 보면, 곳곳에 윤석열 정부를 홍보하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31.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 갈등의 원인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자기중심성이라는 죄 때문임을 고백하고,
41.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과 (중략) 혐오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이하 생략)
이는 앞서 살펴본 대로 윤석열 정부 출범 초부터 내세운 여성가족부 폐지 명분과 맞닿아 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를 그대로 옮긴 기도 제목까지 등장한다.
77. 북한의 핵은 반인륜, 반문명적인 체제와 정권이 무너져야 해결된다는 사실을 세계가 알고, 단호한 대북 입장을 견지하게 하소서.
82. 6년 만에 재개한 대한민국 정부의 DMZ 지역 북한군 대상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중략) 자유를 소망하게 하시고 통일의 날이 앞당겨지게 하옵소서.
86. (중략) 북한인권법의 이행을 위해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2기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 위원 추천을 완료하게 하소서.
90. 지난 8월 15일, (중략) 확실한 자유민주적 통일의 방향성을 설정한 8.15 통일 독트린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내외적 환경을 조성하시고 (이하 생략)
10·27 집회 한 달여 만에 12·3 계엄령 사태가 일어났고, 국민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미 윤석열 대통령에게 마음을 준 목사들은 더욱 공개적으로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와 주류 기독교계의 노골적 야합의 매개는 역시 전광훈이었다. 이들은 겉으로는 전광훈과 무관함을 주장하지만, 반공적·반동성애적 자기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전광훈식 공세 전략이 매우 유효함을 깨닫고 작년 이후 실질적 연대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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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시대를 막을 과제가 크다 |
결국 윤석열과 그 일당은 처벌받겠지만, 상황은 조금도 낙관적이지 않다. 사회·정치적으로나, 교회적으로도 증오와 적대는 더 커지고, 더 크게 분열될 것이다.
우선, 한국 정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거듭된 대통령 탄핵의 성공은 새로운 정치적 문법을 만들어 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기각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이 인용됐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도 인용될 확률이 높다. 대통령 탄핵은 더는 이변이 아니라 일상적 정치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윤석열 탄핵이 확정되면 연이어 탄핵으로 정권을 잃은 보수 정치권에 대통령 탄핵은 더욱 큰 유혹이 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 자신이 명확한 증거도 대지 못하면서 극우 일각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불신하고 부정선거를 집요하게 주장하였다. 이제 선거 부정과 불복 시비는 훨씬 빈번하고, 노골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여야간 합의는 더욱 불가능하고, 누구든 적극적인 정치 행위는 기대하기 어렵고, 사사건건 논란과 불복만 남발하는 식물 정치가 예측된다.
그러나 비극적 역설도 존재한다. 지금 같은 승자 독식 정치 시스템과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는 의도한 정치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상대방도 별다른 정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할 수는 있다. 굳건한 제왕적 대통령을 중심으로 편제된 소모적 진영 정치, 승자 독식 선거제도는 정치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끝없는 대치와 분열, 공멸로 몰아갈 것이다.
그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번 윤석열 정부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해도(재임 기간 내내 20% 안팎에 머문 지지율), 국민이 모든 리스크를 안고, 대통령을 머리에 모시고 살아야 하는 구조적 악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 이제 더는 어느 정당, 어느 인물에게 대한민국의 전권을 다 맡길 수 없다는 다수 국민의 일관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패도 정치가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도 막장 정치판을 손대야 한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의힘이 지금껏 정치 개혁을 반대했으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이를 물타기의 정략적 꼼수로 삼고자 한다. 그러므로 바른 정치 개혁을 하기 위해서라도 계엄령 사태만은 선을 긋고 엄중히 처리할 일이다. 참으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마 10:16)해야 할 때다.
둘째, 한국교회다.
우리는 작년 10·27 집회를 통해 주류 보수 기독교가 더는 순진한 '개인 구원-내세 천국' 신봉자가 아님을 확인했다. 40년 전 국제로잔운동과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통해 극소수의 한국 복음주의자를 감화시켰던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 확장과 모든 영역의 변혁'을 이제는 이들도 굳게 믿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 기독교는 정직, 경건, 검소, 절제 등 개인 윤리 차원의 관심에 머물렀다. 그러나 미국 도덕적 다수주의(Moral Majority) 운동이 반낙태(생명 윤리), 반진화론(창조과학), 반공(미국식 자유주의) 등을 모토로 레이건과 부시 정부, 공화당과 강하게 결합했다. 이 운동의 영향력이 1990년대 이후 한국에 상륙하면서 우리 양상도 달라졌다. 한기총과 기독당 운동을 중심으로 보수 기독교가 정치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중반 보수 정부 탈환을 위한 뉴라이트 운동이 그 절정이었다.
이제는 콘스탄틴적 기독교 왕국이나 중세 유럽 가톨릭 국가처럼 기독교-권력을 통해 나라를 개조, 운영하겠다는 국가 종교, 종교 국가의 꿈으로 발전하였다. 트럼프 2기 재집권을 통해 꿈은 확신이 되었고, 윤석열 정권과 연합을 통해 현실화하려고 했다. 종교적 한·미 동맹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믿는 나라는 문화적 동질성과 율법주의에 기반한 이스라엘 민족(왕국)의 현대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흔들며, 찬송가 부르는 것으로 확인한다(하나님나라: 이스라엘-미국-대한민국). 윤석열의 진퇴와 상관없이,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전광훈의 자유통일당이 국회에 진출한다면 그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전통적인 보수 교회, 순진한 보수 신앙이 아니다.
답답하고, 암담하다. 그러나 급하고 중대할수록 드러난 현상 이상의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평범한 이들이 극우에 속는 속내는 불안과 외로움이다.
상당수 젊은이가 어려서부터 구조화된 살벌한 생존 경쟁의 중압감과, 열심히 해도 더 나빠질 것 같은 앞날의 불안에 깊이 빠져 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차라리 오를 수도 없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분노는 오히려 더 가까이서 '정당한 내 몫을 가로챈다고 선동되는 중국인과 통일이라도 된다면 한순간에 내 몫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북한'에게 집중된다.
더구나 계엄령 사태의 과정에서 성별 간극은 더 커졌다. 2030 남성은 평소 왕성한 여성운동에 비해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계엄령 사태 이후 응원봉과 키세스로 활약한 2030 여성에 더 대조되었다. 전광훈과 윤석열은 이러한 불안과 증오심을 표출할 만만한 대상(종북, 짱깨, 페미)과 목표(애국, 남자다움)를 만들어 주었다. 윤석열 체포와 법원 습격 등에서 극우에 포섭된 일부 젊은 남성들의 행동은 그러한 피해의식이 작용한 탓이 크다.
반면, 노인들에게 1970~1980년대는 군사독재 시대보다 젊고 건강하고 뭐든지 할 수 있었던 돌아가고 싶은 전성기로 느껴진다. 사회적·문화적 큰 변화가 모든 면에서 낯선 그들에게 반공, 가부장, 권위주의는 오히려 익숙하고 친근한 정서다. 전광훈과 윤석열은 그러한 소외감을 벗고 자신들이 여전히 나라와 사회를 지키는 주역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이는 사람들이 이단·사이비에 빠지는 심리와 매우 닮았다. 트럼프와 윤석열, 전광훈과 김진홍 등 극우의 지도자들은 정치, 경제, 종교적 기득권자다. 반면, 극우 기득권 엘리트에 포섭된 이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나 이들을 끌어안을 과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와 교회에 남아 있다.
구교형 / 성서한국 이사장, 한국복음주의공동연합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