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中道)와 정도(正道)는 다르다

"지금은 하나님의 헤세드(자비와 사랑)가 필요한 때다. 지금 자꾸 사분오열, 이런저런 상처들이 양산되는 이 시대인데, 네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누가 옳은지) 판단은 좀 유보하고 같이 기도하자."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내란인지, 구국의 결단인지,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는 어느 목사의 설교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이 어디 그분만의 일이겠는가. 예수 복음이나 진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편향된 관점의 자기 주장을 마치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인 양 포장하는 일이 이제 일상이 되고 말았다. 한국교회 강단 위기의 본질은 설교의 기본을 잃어버린 데 있다.

설교는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전하는 담론이 아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회중에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삶의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설교자가 세상 이념에 휘둘리거나 예속되지 말아야 하는 근본 이유이다. 그렇다면 설교의 자리에서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설교와 기도에 대한 신중한 분별이 필요하다.

성경적 설교의 본질

설교의 근거는 성경이다. 성경은 시대적 환경 속에서 제기된 인간의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리를 전하셨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때로는 질문으로 답하심으로써 회중이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셨으나 결코 진리를 흐리거나 타협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진리가 답이라면 유보할 이유가 없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37)

하나님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원하신다. 어중간하고 흐릿한 태도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은 요한계시록 3장 16-17절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설교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이기에,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분명한 길을 제시해야 한다.

기도의 본질

기도는 단순히 판단을 유보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롬 12:2) '구하는' 것이다(마 7:7).

여기서 '구하다(αἰτέω)'라는 헬라어는 단순히 자신의 소원을 아뢰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단어 속에는 '여쭈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해야 할지 지혜를 구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즉,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전 과정이다.

기도는 행동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께 여쭙고 그분의 뜻을 분명히 확인했다면, 그에 따른 결단과 실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기도의 모습이다. 따라서 기도는 단순히 유보된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설교자의 사명

설교자는 성경의 진리를 현대적 상황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설교를 통해 제시해야 한다. 이는 말씀 묵상과 기도와 성찰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과정, 성경적 관점에서 현안을 해석하고 다양한 역사 인식 아래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며, 순종의 결단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전체적 과정을 포함한다.

특히 16세기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이 보여 준 것처럼, 교회와 사회의 부패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정도(正道)를 설파함으로써 신앙의 본질을 회복시킨 역사는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공동체적 실천을 위해 설교자는 교회가 함께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 계획을 도출하고, 개인과 가정에서의 실천 방안을 안내하며, 사회적 참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사안에 대해서도 세상 이념에 기대어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하여 사안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찾게 하는 것이 설교의 지향점이다.

중도(中道)가 아닌
정도(正道)를 걷는 그리스도인

설교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 복음이 담고 있는 △사랑의 실천 △정의의 추구 △진리의 수호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설교를 통해 안내해야 한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구체적 돌봄과 갈등 상황에서의 적극적 화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 내기, 구조적 불의에 대한 지적, 그리고 성경적 가치관을 견지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설교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설교자는 이 말씀의 현대적 의미를 분명히 제시하고, 성도들이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어중간하고 유보적인 중도(中道)가 아닌 복음이 제시하는 정도(正道)를 걷는 자들이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삶의 궁극적인 답이다. 그 길이 십자가를 짊어지듯 어렵고 힘든 길일지라도, 예수님의 복음과 진리를 따라가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 시대 설교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를 통해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며, 진리 안에 자리한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이번 미국 대통령 취임 예배 설교에서 갈등보다 '통합'을 주문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요청'을 취임하는 대통령과 새 정부 각료들 앞에서 당당하게 전했던 매리언 에드가 버드 주교 같은 설교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약자를 희롱하고 강자에게 빌붙어 온갖 칭송으로 복음의 진리를 희화화하며 강단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에서 한국교회 강단 정화의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한국교회가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관련 성경 구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김수원 /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태봉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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