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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칼럼을 게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학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달 주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K-'를 생각한다"입니다. - 편집자 주

복음적 또는 보수적 신학자로 평가받는 칼 바르트(Karl Barth)는 복음과 종교를 구분해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바르트에게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지만, '종교'는 인간적인 것(이성·문화 등)에 근거한다. 복음은 계시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 인간에게로 오는 것이지만, 종교는 인간(세계)으로부터 출발해 하나님에게 이르려는 시도이므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노예의 반란과 같다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기독교를 '복음'이 아닌 '종교'로 규정하고, 따라서 그의 종교 비판의 정점에는 기독교 또는 교회가 있다. 그는 교회가 신의 문제를 일깨워 주기보다는 오히려 잠들게 했다고 비판한다. 바르트가 설정했던 복음과 종교의 관계는 예수의 가르침과 기독교(교회)의 관계로 바꿔 생각할 수 있다.

바르트의 눈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본다면, 그 안에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기독교에 상응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주의적인 모습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상응한다. 현재 한국 기독교 내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아름다운 교회가 많지만, 본 글에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묘사한 기독교의 모습으로 논의를 제한하려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 게임에 참가하는 456명에게는 각각 참가 번호가 부여되고, 244번 남자는 기독교인으로 등장한다. 세 번째 게임인 줄다리기를 위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참가 번호 1번 오일남이 "줄다리기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전을 잘 짜고 단합만 잘하면 힘이 모자라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하자, 244번 남자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라고 말한다. 다섯 번째 게임 징검다리 건너기의 순번을 선택하는 순간에 244번 남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신 날은 여섯째 날이야. 하나님께서 죄 없는 순수한 인간을 창조하신 그날로 돌아가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6번을 선택한다.

한마디로, 244번 남자에게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삶과 성공을 위한 이기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에게 예수는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자신과 자신의 편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구원자로 둔갑하고, 하나님의 창조에서 '여섯'이라는 숫자는 자신만을 위한 행운의 숫자로 변해 버린다. 한국의 많은 교회는 주술적 신앙을 통해 자본주의 구조 내에서 성공과 물질적 축복을 갈구하는 기복적 신앙의 모습을 강조해 왔다. '오징어 게임'은 244번 남자를 통해 K-기독교가 지닌 이기적·기복적 신앙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에 기독교인으로 등장하는 244번 참가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갈무리
'오징어 게임'에 기독교인으로 등장하는 244번 참가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갈무리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자극적인 모습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장면은 목사의 딸로 등장하는 240번 지영의 고백에서 등장한다. 그녀는 네 번째 게임인 구슬치기 시간에 67번 탈북인 새벽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니 엄마가 방바닥에 누워서 죽어 있었어. 그 옆에 아버지란 인간이 칼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다음으로 본 건 우리 아버지 시체. 그 옆에 칼을 들고 서 있던 건 나였고. 그 인간 직업이 목사였어. 엄마를 때리고 나한테 그 짓을 하고 나면 항상 기도했어. 우리 죄를 사해 달라고. 근데 엄마를 죽인 날은 기도를 안 하더라? 죄를 용서받지 못할 걸 알았나?"

종교개혁 전통에 속한 한국의 많은 개신교회는 '오직 믿음'에만 방점을 찍고 회개와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해, 본회퍼의 말대로 복종과 제자도를 상실한 '값싼 은혜'의 종교가 됐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4)는 말씀을 더 선호하는, 비윤리적·도덕무용론적 K-기독교의 수치스러운 민낯이 240번 지영의 고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는 말씀을 제작팀이 의식했는지 모르겠으나, 주인공 성기훈은 게임 참가자 456명 중 꼴찌 456번이었음에도 최종 우승자가 되어 상금 456억을 받고 도심 길가에 버려진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며 전도하던 한 기독교인은 쓰러져 있는 성기훈에게 다가와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한다. 교회 성장론에 매몰된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지향하는 선교보다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일방적 노방전도에 주력했다. 드라마 속 노방전도를 하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하나님나라보다는 교회 성장에 더 치중했던 K-기독교의 삐뚤어진 민낯이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한국 기독교 내에는 복음과 예수의 가르침에 헌신하며 하나님나라를 일궈 가는 교회가 많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독교인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기독교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지적은 일면 정당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가 묘사하듯 오늘날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삶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넘어지는 456번 성기훈을 잡아 주는 199번 알리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갈무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넘어지는 456번 성기훈을 잡아 주는 199번 알리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갈무리

'오징어 게임'에는 죽음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들도 속속 등장한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주 노동자 199번 알리는 자신도 움직이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넘어지는 주인공 성기훈을 붙잡아 살려 준다. 240번 지영은 구슬치기 게임에서 구슬을 벽에 가까이 던지지 않고 자신 앞에 툭 떨어뜨리면서 67번 새벽에게 승리(목숨)를 양보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넌 여기서 나갈 이유가 있지만 난 없어. 이유가 있는 사람이 나가는 것이 맞잖아." 드라마 속 마지막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은 218번 조상우를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는다. 성기훈은 게임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쓰러져 있는 상우에게 손을 뻗으며 "집에 가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우는 "형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칼로 자신의 목을 찌르고 죽는다. 기훈은 상우를 위해 희생하고, 상우는 기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타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몫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했고, 그 절정은 골고다의 십자가였다. 극중 성기훈 역을 맡았던 배우 이정재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오징어 게임'은 삶의 벼랑 끝에 선 사회의 낙오자들 456명이 목숨을 걸고 상금 456억 원을 타기 위한 생존 게임을 벌인다는 내용이지만, 게임 참가자들은 생존 게임을 벌이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분투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한국 사람은 이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친구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중략) '오징어 게임'은 이타주의라는 주제를 (드라마 속) 생존 게임과 연계시켰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예수가 선포한 메시지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등장인물들의 이타주의적 모습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궤를 같이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너무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한국의 순수한 전통 놀이를 왜곡한다', '기독교를 왜곡한다' 등 다양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제작자의 의도는 자본주의사회 내에서의 희생과 협력에 대한 강조였던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 황준혁은 이 드라마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우화'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사회가 경쟁에 부여하는 중요성과 패자에 대한 자본주의의 잔혹성을 언급했다. 극 중 보여 주듯 패배자 성기훈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끝까지 갈 수 있었다."

1번 오일남은 구슬치기 게임에서 성기훈에게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라고 말한다. 한국 기독교는 잔혹한 자본주의에 편승해 이기주의적 성장과 경쟁의 늪에 빠졌던 모습들을 인정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패배자들과 '깐부 맺는' K-기독교로 거듭나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타난 반기독교적 요소에 거부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장면에 더 굵은 밑줄을 긋고 K-기독교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이기적·기복적 믿음을 넘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개인적 성화를 넘어서 사회적·우주적 성화를, 교회 성장을 넘어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강조하는 K-기독교로 성숙해야 한다. 복음과 한국의 선조들이 추구했던 상생의 전통을 토대로 자본주의를 완성하는 '글로컬' 기독교가 K-기독교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이찬석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위원, 협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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