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신학] 인간이 귀담아들어야 할 하나님나라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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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학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예수가 나타나기 전, 세례 요한이 요단강 근처에 나타났다. 세례 요한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광야의 자연 속에서 살았다(마태 3:4). 세례 요한의 설교는 파격적이었다. 한마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그리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야단쳤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닥쳐올 징벌을 피하려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모여든 군중들이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리고 요한과 예수 당시, 가난한 유대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해 로마제국에 바치는 일로 부자가 된 세리들 역시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정한 대로 받고 그 이상은 받아 내지 말라"고 말했다. 가렴주구하는 로마제국의 세금 징수 공무원 앞잡이들에게 직설적으로 명령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용병 노릇을 하는 군인들에게는 무서운 충고를 남겼다.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누가 3:10-14 공동번역)."

새로 오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아니 새로운 하나님나라에서는 지금과 같은 생각과 행동과 생활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다가오는 새 시대, 하나님나라에서는 여태껏 살아오던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회개한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생각이 바뀌고, 생활양식이 달라지고, 행동과 문화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회개는 변화를 말하며, 혁명을 말하고, 요샛말로 패러다임 전환, 혹은 '적폐 청산'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는 이 혁명적 전환을 노래했다(누가 1:50-53).

"(전략)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 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하략)"

젊은 어머니 마리아의 하나님나라, 새 시대의 비전은 혁명적이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 요새 흔히 말하는 '뉴노멀'을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새 시대의 복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 젊은 예수는 산 위에 모여든 민중을 향하여 하나님나라의 복된 말씀을 선포한다(누가 6:20-25).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중략)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린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하략)"

2.

한때 우리는 "잘 살아 보세" 하며 새마을 운동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어린 노동자들을 고생시키고 착취하고 전태일을 죽여 가면서, '고도 경제성장'을 외치며 중화학 공장을 세우고, 원자력발전소와 석탄 발전소를 가동하고, 자동차 산업과 고속도로 건설로 GDP가 어쩌고 1년 평균 소득이 이승만 시대에 150불이었던 것이 전두환 시대에는 2만 불까지 올라갔다고 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찬양했다. 매년 봄 미세 먼지로 뿌연 하늘을 쳐다보면서 중국을 탓하고만 있었다. 농촌은 피폐해지고 서울을 비롯한 도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적 수준의 고층 건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바벨탑처럼 올라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빈민굴과 노숙자들이 우글거리는 데 놀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스다, 메르스다, 바이러스가 어떻다 하다가, 느닷없이 코로나19가 '네오콘'과 '글로벌 뉴 리버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흔들어 놓고 있다.

그래도 교회 장로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새해 인사가 "부자 되세요"였다. 우리는 얼마나 부자 되기를 위해서 애써 왔는가? 지난 1960년대 초 군사 쿠데타 이후, 60년 동안 '부자 되어, 잘살아야겠다'는 인간 욕심의 극대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왔다. 인간의 귀한 생명은 물론, 자연과 환경과 생태를 파괴하면서, 오로지 돈과 돈을 만들어 내는 권력을 숭배해 왔다.

창조주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을 만드시고 하신 명령,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관리하라'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이 말씀을 '지배하라, 착취하라, 마음대로 써먹어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자연을 지배하고 억제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데서 융성한다고 주창해 온 18세기 인본주의 시대를 계몽의 시대, 문명과 과학의 시대로 찬양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연 안에서, 해와 달과 산과 바다와 동물들과 식물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라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연과 생태계 위에 서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정복하고 파괴해 왔다. 코로나19는 기후변화와 태풍과 홍수와 함께 우리 인간들에게 무서운 최후의 경고를 선포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문명과 문화 그리고 생활과 행동 전반에 걸쳐서 일상화한 습관과 관례와 법과 질서와는 전혀 다른 세계 혹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이 생겼다고, 코로나19 전염병이 물러간다고 해서 옛날과 다름없이 살 수 있겠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완전히, 전혀 다른 식으로 살지 않으면, 결국 또 다른 재앙으로,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면, 기후변화로, 홍수로 태풍으로,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지상에는 생수가 부족하게 되어, 인간 생명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봐야 하고, 정치를 해야 하고 경제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전한 복음, 그 이전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소리,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소리를 지금,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새 시대를 잉태한 마리아가 읊은 노래는 혁명적 새 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예수의 복된 소식, 복음은 바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축복이고, 부자들에 대한 저주였다. 완전히 뒤죽박죽되는 세상, 여태까지와는 상상도 하기 힘든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이고 종말의 날이라는 말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 아니면, 코로나19와 함께 공존하는 '평화'를 위해서, 우리 자손들이 행복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경제적 생태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인간이 자연과 생태계,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공생하고 평화롭게,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상의 나라와 나라가 총과 칼과 탱크와 전투기와 폭격기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로 전쟁을 획책하고 서로 위협하면서 겨우 유지하는 위험한 평화가 아니라, 지상의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고, 모든 군비와 병력을 최소한도로 축소해야 한다. 그야말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고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평화의 비전'을 이제 우리 앞에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생태계와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나라가 서로 유대하고 협력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오늘의 UN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회를 위해서 설립됐지만, 이제는 그 사명과 함께 자연과 생태계와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피폐한 세계 경제가 살아나고,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인류의 새로운 문명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인류의 생존과 하나님이 맡겨 주신 자연과 생태, 생명의 세계가 부활을 노래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제 선지자 이사야의 궁극적 평화의 상상력이 우리의 코로나19 이후의 현실로 실현될 것이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염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이사야 11:6-8)."

"'가난한 부자'

 

굉장한 부잣집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사는가를 보여 주려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둘이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의 농장에서

2~3일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니?'

'네, 아주 좋았어요.'

'그래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어?'

'네 아빠!'

 

아버지가 묻기를 '그래 무얼 배웠느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우린 개가 한 마리뿐인데,

그 사람들은 네 마리더라고요.

 

우린 수영장이 마당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끝없는 개울이

쫙 놓여 있더라고요.

 

우리 정원에는 수입 전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밤에 별이 총총히 빛을 내더라고요.

 

우리 패티오는 앞마당에만 있는데

그 사람들은 지평선처럼

끝이 없더라고요.

 

우리는 작은 정원에서 사는데

그 사람들은 넓은 들과 함께 있더라고요.

 

우린 하인이 우리를 도와주는데

그 사람들은 남들을 도와주더라고요.

 

우린 음식을 사서 먹는데

그 사람들은 직접 길러 먹더라고요.

 

우리 집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싸여 있더라고요.'

 

아버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런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빠, 고마워,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알게해 주어서…'" (작가 미상. 해외에 거주하는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보내 주신 글)

서광선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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