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계시 - 약자를 위한 요한계시록의 담론> / 이병학 지음 / 나눔사 펴냄 / 724쪽 / 4만 2000원
<제국과 계시 - 약자를 위한 요한계시록의 담론> / 이병학 지음 / 나눔사 펴냄 / 724쪽 / 4만 2000원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요한계시록을 약자를 위한 희망과 저항의 책으로 소개한 책. <제국과 계시 - 약자를 위한 요한계시록의 담론>(나눔사)은, 요한계시록 저자가 자기 시대의 폭력적인 죽음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연구하면서 희생자와 약자, 억눌린 여성의 시각으로 요한계시록을 들여다본다.  

저자 이병학 교수(한신대 은퇴)는 '제3세계 신학자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1세기 말 로마 제국주의 현실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약자들의 관점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요한계시록에는 권리와 정의를 위해 로마제국의 폭력에 항의한 남녀 순교자들의 외침이 담겨 있기에, 요한계시록은 일제강점기 당시 3·1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책은 △유대 메시아론과 요한계시록의 그리스도론 △요한계시록의 교회론과 정치적 예배 △로마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죽은 자들과의 기억 연대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공동의 희망과 미래 △요한계시록의 종말론과 저항 윤리로 구성돼 있다.

"요한은 자신이 쓴 계시의 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표현된 그리스어 문법의 속격은 목적격적 속격이 아니라, 주격적 속격(genetivus subiectivus)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증언한 계시라는 의미이다. 계시는 드러남, 벗김, 폭로 등을 의미한다. 요한이 증언한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계 1:2)와 동일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문법적으로 주격적 속격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예수 자신에 의한 증언을 의미한다. 요한이 증언한 계시는 예수 자신에 의한 증언과 동일하다. 천상의 예수가 증언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계시는 요한이 쓴 예언으로서의 계시와 같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이 쓴 계시의 책을 '예언의 말씀'(계 1:3)이라고 부른다.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보가 아니라, 위탁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계 19:10)라고 말한다." (제3장 반제국적 연대 투쟁을 위한 예수의 현재적 오심, 120쪽)

"죽음에 대한 권력자들과 부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중략) 그들은 죽음 이후에는 모든 사람이 같아진다고, 즉 무고한 자들과 억압자들이 완전히 같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에서 억압자들과 피억업자들 사이, 착취자들과 가난해진 자들 사이, 그리고 사형 집행관들과 피학살자들 사이의 차이들은 죽음 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죽음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양자의 운명에는 벌칙과 보상이라는 조정이 전혀 없다. 이것은 가난해진 자들과 피억압자들의 희망이 아니라, 권력자들, 즉 억압자들과 착취자들의 논리이고, 또한 그들의 죽음관이다. 그들의 죽음관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삶에서의 평등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평등이다. 권력자들의 이러한 논리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죽음의 공포 지배로 나타난다. 오늘의 시대에도 역시 이러한 논리는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 군사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념을 규정한다." (제8장 죽은 자들과의 기억 연대를 통한 폭력 극복, 303~304쪽)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참여한 남녀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였고, 또 요한계시록의 저항 윤리로부터 신사참배 강요에 비타협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억압과 압제의 상황에서 읽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의 바빌론을 일본 제국과 동일시하고, 신사참배를 요한계시록의 황제 숭배와 동일시하였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로마의 제국주의를 조선을 강점한 일본의 제국주의와 동일시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하고 저항했다. 요한계시록의 저항 윤리는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에서 나타난다. 이 구절에서 인내로 번역된 그리스어 휘포모네는 참고 견디는 수동적 의미의 인내가 아니라, 부당한 강요와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적극적 저항을 의미한다." (제17장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원동력으로서 요한계시록, 615~616쪽)

"최덕지는 신사참배의 범과를 회개하지 않는 장로교회의 울타리 밖에서 요한계시록의 교회론에 근거해 사랑, 믿음, 섬김, 그리고 저항의 행위가 있는 새로운 대안적 교회 운동으로서 재건교회를 세웠다. 그녀는 재건교회 설립에 외국 교회의 원조와 구호품을 일체 거절하였다. 그녀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민족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금식 기도를 계속했다. 그녀는 여성주의 성서 해석을 통해서 여권운동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평등 제자직을 위한 여성 안수를 정당화했으며, 여성 안수를 재건교회 헌법으로 제도화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자들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했다. 그녀는 스스로 노방 전도를 했으며, 선교사들이 이 땅에 전한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한 세계 선교의 사명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민족과 교회와 여성을 위해서 금식 기도하고, 저항하고, 투쟁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기개 높은 여성주의 목회자였다." (제18장 출옥 여성도 최덕지의 재건교회 설립과 여성주의 성서 해석, 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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