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3년 108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오정호 총회장) 총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총회가 되었다. 여성 강도권을 허용하였다가 3일 만에 뒤집는 기적과 성폭력을 막기 위한 것인지, 성 윤리를 막기 위한 것인지 개념조차 혼미한 성폭력 대응 매뉴얼의 발간으로 스스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은 합동 교단이 여성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그리고 성범죄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다. 이 사건들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거나 몇몇 상식이 부족한 목사가 벌인 해프닝이 아니라, 합동 교단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과 여성 혐오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합동 교단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예장합동이 108회 총회 둘째 날, 여성 사역자들에게 강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고 있는 모습. 이 결의는 이틀 후인 넷째 날 오후 취소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예장합동이 108회 총회 둘째 날, 여성 사역자들에게 강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고 있는 모습. 이 결의는 이틀 후인 넷째 날 오후 취소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108회 예장합동 총회는 오정호 총회장의 사회로 여성사역자지위향상및사역개발위원회(여사위)의 보고를 통해 여성 강도권 허용과 여사위 상설화를 참석한 총대들의 반대 없는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총회 전부터 여사위 위원들은 총신신대원여동문회에 강도권 인허를 제안하고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여동문회는 40일간의 금식 릴레이 기도를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총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 강도권이 허용되었다는 소식에 드디어 오랜 기도와 외침과 시위가 합동 교단을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되었다며 감사하고 기뻐하였다. 몇몇 여전도사들은 신대원 동기 남성 목사들에게 축하의 연락도 받고 강도사 고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9월 21일 목요일 늦은 오후, 회무가 거의 끝나 총대들도 집으로 많이 돌아간 시간에 총회 임원들과 몇몇 상비부 위원이 여성 강도권 허용과 여사위 상설화를 백지화한다고 발표하였다.

총회에서 정식으로 총대들에 의해 결정된 안건이 몇몇 상비부 위원에 의해 뒤집히는 불법적인 일이 일어났다. 한 회무 안에서 결정된 안건이 재론되어 뒤집히는 일은 예장합동 총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것은 여성 강도권 허용과 여사위 상설 결정을 무효화한 것이, 원래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상식적이고 불법적인 일이라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이 사안을 안건으로 올린 여사위 위원들의 동의 없이 다른 상비부 위원들끼리 번복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렇게 합동 총회는 여성 강도권 허용을 7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뒤집으며, 스스로 교단과 총회의 명예와 권위를 내동댕이치고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소식은 합동뿐만 아니라 모든 교계를 경악시켰고 이번 총회 시즌 최고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정상적인 회무 안에서 일어난 총대들의 합법적인 결정을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막은 몇몇 상비부 위원은, 자신들이 여성 안수의 길이 열리는 것을 막아 예장합동 교단의 개혁주의 신학과 합동 교단의 정체성을 지켰다며 성경 진리의 수호자로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 강도권을 번복한 합동 총회와 상비부 위원들은 여성 사역자들의 목소리에 귀 닫고 세상의 시선과 비판에 눈감은 자들이며, 합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 사건으로 합동 교단은 많은 것을 잃었고 앞으로도 잃을 것이다.

총신신대원여동문회가 9월 25일 예장합동 총회 회관 앞에서 '강도권 부여 결의'를 번복한 총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총신신대원여동문회가 9월 25일 예장합동 총회 회관 앞에서 '강도권 부여 결의'를 번복한 총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첫째는 여성 사역자를 잃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합동 내에서 사명감 하나로 버티며 사역하는 여성 사역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소망을 짓밟은 잔인한 행동이었다. 이로 인해 예장합동 교단에서 사역하는 여성 사역자들은 지독한 차별에 분노하며 이 교단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떠날 마음을 더 강하게 갖게 되었다.

지금도 교회마다 총신 신대원을 졸업한 여전도사 구하기가 힘든 실정인데, 앞으로는 더욱 예장합동 교단 내에서 여전도사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총신 신대원에 입학할 여학생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성 안수를 주는 교단도 많은데, 굳이 여성 안수를 안 주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는 예장합동 교단의 신대원에 여학생이 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학생들이 진로 상담을 해 오는 경우 나는 여성 안수 주는 곳으로 가라고 권하였는데, 앞으로는 절대 총신에 오지 말라고 하려고 한다. 여성에 대한 무시와 차별은 우리 선배들이 당한 것으로도 차고 넘치기에, 후배들은 차별이 적은 곳에서 공부와 사역에 매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둘째는 여성 교인의 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다. 이 사건은 교계와 사회에 예장합동 교단이 얼마나 여성을 차별하는 곳인지 명명백백하게 보여 준 사건이다. 지금도 교회의 가부장적이고 여성 차별 문화로 인해 여자 청년들이 탈출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총회 안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기에 총회 임원과 총대들은 여성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행동하지만, 총회 밖에서 여성들은 이 모든 행동을 보고 있고 판단한다. 그들 눈에 안 보여도 여성은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여성은 허수아비도, 남성의 종속물도 아닌, 남성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젠 목사의 말에 절대 복종하던 가부장 시대의 여성은 사라지고 있다. 총회 목사들은 이런 변화를 모르기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여성을 무시하는 행동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자신은 여성 목사, 여성 장로를 반대한다고 교회에 가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셋째는 예장합동 교단은 명예와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총회에서 자신들이 결정한 것도 며칠 뒤에 가볍게 뒤집는 총회를 누가 신뢰하며 누가 인정하겠는가? 그들이 만든 법과 규칙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법을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 안수를 막겠다며 스스로 벌인 일이니 교계 안에서 합동 교단 목사들은 경박한 이들이란 불명예를 오랫동안 안아야 할 것이다.

많은 목사가 총회를 비판하고 망신스럽다고 하며 총회와 거리 두기를 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불법이며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지만,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예장합동 목사들과 교수들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모두 침묵으로 이 번복을 인정하고 있기에 예장합동에 속한 목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직 총신신대원여동문회만 백방으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애쓸 뿐이다. 정말 총회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면 여동문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 불법을 바로잡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장합동이 108회 총회에 발표한 '성 윤리 예방 및 대응 지침서'. 뉴스앤조이 최승현
예장합동이 108회 총회에 발표한 '성 윤리 예방 및 대응 지침서'.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번 총회의 또 다른 문제는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다. 대사회문제대응위원회에서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만든 것은 다른 교단에 비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총회에서 발표된 문건을 보며, 상당히 실망스러울 뿐만 아니라 예장합동 교단이 성폭력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일단 제목부터 '교회 성 윤리 예방 및 대응 지침서'라는, 의미가 불명확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성 윤리를 예방하기 위한 지침서라는 건데, 일단 '성 윤리를 예방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되지 않는다.

성 윤리는 성에 관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인데, 지켜야 할 도리를 예방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즉 성 윤리는 권장하고 교육해야 할 것이지, 예방하고 대응할 차원이 아니다. 의미가 불명확한 '성 윤리 예방 및 대응 지침서'라는 용어는 '성폭력 예방 및 대응 지침서'라고 고쳐 읽을 때 의미가 분명해진다.

또한 이 문건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강간 등으로 불리는 것을 묶어 '성 윤리'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그것이 윤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라고 하며 성 윤리를 규정한다. 여기에서 언급한 성희롱·성추행·강간은 지키면 좋고 지키지 않으면 비난받는 윤리·도덕의 문제가 아닌 범죄로 규정된 성폭력이다. 성경적으로 십계명에서 간음으로 표현되는 성범죄는 분명히 사형에 해당하는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더 엄격하게 눈으로 본 것, 손으로 만진 것도 죄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문건은 기본적으로 성경과 대한민국 법에서 범죄로 규정한 성폭력을 윤리로 포장하여 비범죄화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렇게 성폭력을 성 윤리라는 모호한 단어로 바꾸면서 이 문건은 심각한 오류를 가진 문장들로 가득하다. 일례로 성 윤리를 정의한 단락에서 "성 윤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심, 그로 인한 행동 제약도 간접적인 성 윤리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데,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그다음 문장으로 "성 윤리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입니다"이다. 여기서는 성 윤리를 심각한 범죄라고 말한다. 앞에서 성 윤리는 윤리임을 강조하더니 여기서는 심각한 범죄라고 하고 있다. 앞뒤도 안 맞고 왜 윤리가 범죄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도 없다.

예를 든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성 윤리'라는 단어 대신 '성폭력'을 넣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중략) 행동 제약도 간접적인 성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중략)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즉, 다른 교단이나 여성 단체의 문건을 그대로 인용할 때 '성폭력'을 '성 윤리'로 기계적으로 바꾸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고유명사인 '한국성폭력위기센터'를 '한국성윤리위기센터'로, '성폭력처벌법'을 '성윤리처벌법'으로 쓴 것으로 무성의의 극치를 보여 준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의식을 반영한다. '성폭력'을 '성 윤리'로 바꾼 것은 두 가지 문제를 보여 준다. 첫째는 예장합동 교단이 아직 교단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심각한 범죄로 인정할 의사가 없으며, 이를 단호하게 처리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뉴얼은 교단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목회자 성범죄 사건으로 교계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만든 것을 공개한 것이다. 이런 악의적이고 성의 없는 태도 또한 주로 여성이 피해자인 성범죄 문제를 가볍게 보는 여성 차별적 시각을 잘 드러낸다.

둘째는 합동 교단이 얼마나 사회와 동떨어진 집단인지를 보여 준다. 이미 사회적으로 성범죄를 심각한 범죄로 보고 성폭력처벌법이 제정되고 이에 대해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 즉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범죄는 '성폭력'이란 용어로 사용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전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에 거슬러 '성폭력'을 '성 윤리'로 쓰겠다는 것은 교회를 더욱 이상한 집단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문건의 문제를 떠나, 교단이 목회자 성범죄를 처리할 의지가 있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루밍 성범죄로 실형을 살고 있는 김 아무개 목사의 아버지 김영남 목사는 아들의 성범죄를 덮으려다 사건이 커지자 교단을 탈퇴했다. 아들 김 목사는 면직이 아닌 사직 처리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총회 재판국은 인천새소망교회 성범죄 피해자를 도우며 법원에서 임시당회장으로 인정한 박성철 목사를 면직시켰다. 소명 절차도 없이 갑자기 이루어진 판결이다. 성범죄 목사는 사직 처리된 반면, 성범죄 피해자를 도운 목사는 면직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108회 총회 마지막에 벌어졌다.

이것은 예장합동 총회가 성폭력을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렇게 피해자 곁에 선 목사를 면직시켜 본보기를 삼음으로, 목사의 성범죄를 비판하고 피해자를 돕는 목사들에게 경고한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를 도우면 이런 불이익을 당하니 살고 싶으면 돕지 말고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성폭력'을 '성 윤리'로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예장합동 교단의 생각을 잘 보여 준다.

여성 사역자들이 예장합동 교단에 남아서 여성 안수를 요구하는 것은 그나마 아직 작은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예장합동 총회로 인해 그 작은 애정과 인내마저 사라지고 눈물과 분노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박유미 /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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