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후 위기의 시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들이 <뉴스앤조이>에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 - 생명을 향한 초록의 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던 히브리인들처럼 △회색에서 녹색으로 △탐욕에서 은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생태적 전환'에 한국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제안합니다. 활동가들의 글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새번역, 아모스 5장 24절)

성서는 곳곳에서 이 땅에 정의를 일궈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운다. 이 시대의 정의는 결코 '기후 위기'를 간과한 채로 선포될 수 없다. 기후 위기는 이제 단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니며, 당장 오늘 뉴스 헤드라인으로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심상치 않다. 세계 곳곳에서 폭우, 폭염, 초대형 산불 등 기후 재난이 잇달아 일어나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 유엔인권최고대표 메리 로빈슨은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성서는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시는(마 5:45) 분이라 증언한다.

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후란 악인과 선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위해 주신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지구에 사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기후인 것이다. 이 기후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 위 모든 생명체들이 기대어 살아가도록 부여하신 토대를 빼앗는 일이며, 지금까지 없었던 무자비하고도 잔혹한 폭력이다.

한국교회여,
기후 정의를 외쳐라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에게 기후 위기는 '오늘의 고통'이다.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서는 전 세계 난민이 780만 명에 육박하며, 이 중 기후 난민이 분쟁 난민보다 약 3배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이 2018년 발표한 보고서는 기후 관련 사건으로 2050년 안에 최소 12억 명이 난민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문제는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이 기후변화 발생 책임(온실가스 배출)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기상학자 조천호 박사는 세계 인구의 20% 이하가 사는 선진국들이 전체 온실가스의 약 70%를 배출하고 있는데, 기후변화의 피해는 약 3%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개발도상국 10억 명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독일의 민간연구소 저먼워치(German Watch)에서 2019년 발간한 '기후 위험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8년까지 기후변화로 큰 피해를 입은 10개 국가는 푸에르토리코·미얀마·아이티·필리핀·파키스탄·베트남·방글라데시·태국·네팔·도미니카공화국으로 모두 아시아와 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이었다. 기후활동가들과 학자들은 이와 같은 불의한 상황을 '기후 불평등', '기후 부정의'라 부르며, 선진국들이 기후 문제에 더 많은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 부채(climate debt)'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선진 산업국들이 대기 중에 배출·축적해 온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개발도상국들에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채를 값으로 환산하면, 미국은 9조 7000억 달러, 독일은 2조 3000억 달러, 영국은 2조 1000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한국도 '기후 채무국'에 속한다. 물론 선진국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 부채를 보상하는 것조차 현실에서는 요원하다.

경제평화연구소(IEP)에서 발표한 '생태 위협 보고서 2020'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자연재해 발생 건수는 1960년 39건에서 2019년 396건으로 10배 이상으로 급속도로 증가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기후 재난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후 난민이 수도 없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입을 모아 내놓지만, 정작 기후 난민과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년 9월 25일 각지에서 집중 기후 행동에 동참한 그리스도인·교회들이 보내온 사진. 사진 제공 임지희
2021년 9월 25일 각지에서 집중 기후 행동에 동참한 그리스도인·교회들이 보내온 사진. 사진 제공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

지난 9월 25일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는 '지금 당장 기후 정의'를 메인 구호로 삼고 집중 기후 행동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기후 행동에 동참했으며, 그리스도인·교회들도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을 통해 기후 정의를 외치는 일에 동참했다. 기후 정의란 국제적·사회적 불평등이 기후 위기를 야기했고, 이로 인한 고통과 피해 또한 불평등하게 돌아가며,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 불평등이 가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후 위기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 시민들은 기후 정의를 외치고 있다.

이 사회와 지구 생명체들의 생존 기반인 기후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정작 이 지경을 야기한 이들이 아닌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중되는 기후 부정의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정의'는 '기후 정의'여야 한다. 

'기후 악당' 국가에 절실한
삭개오의 고백과 결단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새번역, 누가복음 19장 8절)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던 삭개오 일화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는 회심의 고백을 했다. 삭개오는 세금 거두는 일을 하는 세리장이었다. 당시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을 넘어선 금액을 탈취하기도 해 많은 이들의 원성을 샀다. 그러한 이유로 삭개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뒤, 자기 행위로 고통받았을 이웃의 아픔에 책임을 통감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소유를 나누고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이제 '기후 악당' 국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우리가 지고 있는 기후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다. 기후 재난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한 기후 정의의 길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삭개오와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보다 앞서, 기후 위기 시대의 절박한 상황을 직시하며 기후 난민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생태적 회심'을 결단하는 일이 너무도 절실하다. 기후 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돌보고, 이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 교회들이 추구해야 할 정의요, 선교적 사명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를 통해 '삭개오 기금'을 조성해, 기후 위기로 재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가 삭개오입니다"라는 고백과 결단이 기후 난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붙인 이름이다. 생태적 회심의 결단 위에서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나누는 '기후 헌금'들을 모아, 기후 난민을 지원하는 일을 진행할 것이다.

기후 정의를 촉구하고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기후 부정의로 발생한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비겁한 외면보다는 용기 있는 동행으로, 기후 부정의가 아닌 기후 정의를 선택함으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자. 우리가 바로 삭개오이니 말이다.

임지희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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