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후 위기의 시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들이 <뉴스앤조이>에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 - 생명을 향한 초록의 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던 히브리인들처럼 △회색에서 녹색으로 △탐욕에서 은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생태적 전환'에 한국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제안합니다. 활동가들의 글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문명과 기후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인류가 소위 '문명'을 형성한 것은 기원전 1만 년 이후의 일이다.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메소포타미아·황하·이집트·인더스문명은 기원전 65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무렵에 큰 강을 이용한 관개농업이 가능해지면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왜 인류는 기원전 1만 년 이전에는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까?

지질학은 그 이유를 기원전 1만 년이 되어서야 258만 년가량 이어진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즉 '빙하기(Ice age)'가 끝나고, 비로소 '홀로세(Holocene)'가 시작돼 기후가 온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원전 1만 년 이전의 유라시아 대륙은 얼음이 두껍게 쌓여 있어 인류가 문명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었고, 기원전 6000년 무렵 고온 다습한 '홀로세 기후 최적기'를 거치고 나서야 현재와 같은 생태 환경이 만들어졌다. 인류의 문명은 '온화한 날씨'라는 기후 조건이 충족된 후에야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명 탄생 이후로도 기후는 인류 문명의 흥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13세기~17세기에 걸친 '소빙기(little ice age)'에는 식량 생산 감소로 인구가 줄고 집단 이주가 발생했다. 특히 몽골 초원에 불어닥친 추위는 칭기즈 칸의 몽골제국 건설에 큰 동력이 돼 유럽 문명의 민족대이동을 낳았고, 이로 인한 연쇄적 흥망을 연출했다. 이 시기 유럽 전역에 페스트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 역시 식량 확보를 위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기후변화, 그리고 기후 위기

지난 8월 9일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6차 보고서의 일부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고, 현재대로라면 불과 10여 년 후 세계 평균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 극지방 빙하가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며,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IPCC 6차 보고서에 들어간 도표.
IPCC가 그동안 발간한 보고서를 연도별로 정리한 도표.

문제는 이로 인해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게 될 것이고, 인류는 극한의 폭염·가뭄·홍수·화재·한파를 더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기후적 요인으로 인한 난민, 즉 '기후 난민'이 해마다 2500만 명 넘게 발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난민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하지만 이제 불과 수년 내에 기후 난민은 억 단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재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가장 심각하고도 급박한 위기를 가져오고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인류 문명 내부에 존재한다.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빠른 속도로 기후 재난이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세계 각국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보다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좇는 데 급급할 뿐이다.

기후 난민: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000년 무렵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우르(Ur) 지역에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 감소가 발생했고, 수백 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지역으로 집단 이주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시기는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이주했던 때(창 11장)이기도 하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가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역시 흉년 탓에 그랄로 이주해야 했고(창 26장), 손자 야곱 때에 이르러서는 가뭄·기근으로 온 가족이 이집트 이주를 해야만 했다(창 46장).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기후 재난으로 이주를 해야 했던 전형적인 기후 난민이었다.

출애굽: 지배와 폭력의 문명에서
야훼 하나님 신앙으로

기후 난민으로 이집트 땅에 머물렀던 야곱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학대받으며 도시를 짓는 노예가 되고 말았다(출 1장). 이집트 문명은 기후 난민들의 돈과 가축을 뺏은 것(창 47장)도 모자라, 끝내 그들을 노예로 삼았던 야만적인 지배와 폭력의 문명이었다. 이들은 나일강이 베풀어 준 풍요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집트의 자연환경을 지속적으로 약탈해서 거대한 도시와 건축물을 세워 나갔다.

결국 이집트 문명은 거대한 생태적 재앙을 경험하게 된다. 풍요를 베풀어 줬던 강물이 오염되고, 균형을 상실한 나일강 생태계에 개구리·이·파리·메뚜기가 창궐하는 '생태계 교란' 현상이 일어난다. 더불어 가축과 사람 사이에 전염병이 퍼져 나간다(출 7~10장). 성서가 기록하고 있는 10가지 재앙은 생태계의 한계를 넘어 성장하려 한 인류 문명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생태적 재난이었다.

히브리인은 지배와 폭력의 이집트 문명을 거부하고 출애굽을 시도한다. 하지만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지배·폭력을 더욱 강화하며(출 5장) 출애굽을 가로막는다. 그들의 위협에도 결국 히브리인은 야훼 하나님을 이집트 땅에서는 예배할 수 없어 가나안 땅으로 나가 예배(출 12장)를 드린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여정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출 13장), 샘을 열어 물을 마시게 하시며(출 15장),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신다(출 16장). 성서의 야훼 하나님은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 기후 난민과 축복의 언약을 맺은 하나님, 지배와 폭력의 문명 속에서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찾아 부르짖던 이들의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현대 문명과 기후 위기

인류의 모든 문명은 돌봄·협력, 지배·폭력이라는 양면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서구 산업 문명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식민 지배와 지구 생태계 약탈은 일종의 보편성을 얻게 됐다. 인간의 우월적 지위와 경제성장을 신봉하는 것만이 최고의 신앙이 된 현대 문명의 거대한 신전 앞에서, 생태계의 상호 의존성과 인간 사회의 호혜 전통은 축출돼야 할 열등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기후 위기는 현대 문명의 지속 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의 지구 생태계 약탈과 힘의 지배는 기후 재난으로 인한 여섯 번째의 대멸종을 앞당길 뿐이다. 이제는 문명의 작동 원리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만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정점에서, 지구 생태계 한계를 고려한 경제활동과 인류의 상호 협력을 증진시키는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12월 15일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 출범식. 사진 제공 기독교환경운동연대
2020년 12월 15일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 출범식. 사진 제공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그린 엑소더스, 생태적 전환의 여정

성서는 히브리인들의 야훼 하나님 신앙이 이집트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가나안 생명 공동체를 이루는 출애굽 사건의 핵심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신앙은 당장 목표한 바가 당장 눈앞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끝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히 11). 문제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지금, 한국교회가 지배와 약탈의 현대 문명으로부터 생태 문명으로 전환을 이끌어 낼 힘과 지혜를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렇다. 이미 한국교회 안에는 자발적인 청빈 전통과 생태적 영성의 지혜가 존재해 왔다.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추구하는 녹색 교회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성장과 번영에 눈과 귀가 가려,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가 생태적 전환을 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 1982년 한국교회 환경 선교를 위해 세워진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2020년, 한국교회의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여러 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올해는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 캠페인'을 통해 많은 교회들이 생태적 전환의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이 거룩한 여정에 더 많은 교회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게 될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 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 '생태적 전환'에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캠페인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 포스터. 사진 제공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이진형 /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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