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후 위기의 시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들이 <뉴스앤조이>에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 - 생명을 향한 초록의 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던 히브리인들처럼 △회색에서 녹색으로 △탐욕에서 은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생태적 전환'에 한국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제안합니다. 활동가들의 글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인간의 책임과 역할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 위기다. '전 지구'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위기를 맞은 생물종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이 푸른 별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생물종이 동일한 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 급격한 환경 변화의 책임이 모든 생물종에게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도적 책임은 단연 인간에게 있다. 인간은 이 별의 기나긴 역사에 비하면 그리 긴 시간을 존속해 온 것은 아니지만, '합리성'이라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인식하고 판단하며 자연을 지배하듯 행동해 왔다. 무분별하게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여러 생물종을 멸종시키고, 작물들의 유전자를 조작했으며, 수많은 탄소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날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판단하고 인식하는 일 또한 인간이 지닌 고도의 합리성 덕분이다. 이제 우리는 변화하는 기후라는 비정상적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어떻게 이 푸른 별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 별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 것인지에 대한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은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지금까지 스스로의 합리성을 올곧게 사용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다. 언제나 이기와 욕망의 문제가 이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사사기를 보면 암흑기와 같은 당대를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삿 17:6)는 말로 표현한다. 인간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만, 각자의 이익만을 따져서는 참으로 옳은 방향을 결코 찾을 수 없다. 기후 위기 시대, 시험대에 오른 인간이 심판받을 것은 단지 합리성의 오용뿐만은 아닐 것이다. 합리적인 해결책을 인류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수행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과오를 뉘우치고 재발을 방지할 것인가 하는 심정적·도덕적 차원도 함께 심판받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 대응 노력

기후변화는 '환경및개발에관한유엔회의(UNCED)'에서 '리우 선언', '의제 21', '생물 다양성 보전 협약', '기후변화 협약' 등을 채택한 1992년부터 국제적인 논제로 부상해 왔다. 1997년에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규정하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됐고, 이후 2015년에는 선진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가 감축 의무에 참여하도록 규정한 '파리 협정'이 채택됐다. 국제사회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와 같은 범국가적 약속은 과학적 근거를 통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이에 참고할 연구 결과를 제공하는 곳이 유엔 산하 국제 기구인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다. IPCC는 전 세계 저명한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한 결과를 보고서로 내놓고 있다.

지난 8월 9일에는 IPCC가 내놓은 6차 보고서의 제1 실무 그룹 보고가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이 대기·해양·토지·생물권 등에 찾아온 급격한 변화의 원인이며, 지구 각지에서 전례 없던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이전의 예측보다 더 가속화됐다. 이대로 가면 인류는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재앙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더 큰 재앙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해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방어해야 한다.

'2050 탄소 중립위원회' 위촉장 수여식에 참여한 기독교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 안홍택 목사(사진 맨 오른쪽)
'2050 탄소 중립위원회' 위촉장 수여식에 참여한 기독교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 안홍택 목사(사진 맨 오른쪽)

우리나라도 작년 10월 28일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탄소 중립이 이미 새로운 경제적·국제적 질서이며, 이러한 요구에 따르는 것이 국가 미래 계획에서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올해 8월 5일에는 2030년 탄소 배출 감축 중간 목표를 설정하고 각 부문별로 탄소 절감 전환 방향을 제시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각기 다른 전제와 가정을 고려해 3가지 안을 내놓았는데, 현실성에 대한 비판점들이 분명히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가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대대적인 변화를 시행하는 것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교회의 응답

정부가 이러한 예측안을 내놓고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순리대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 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판단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의 여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진정한 행동을 꽃피우기 위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들의 목소리에 반응해 한국교회에도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지난 3월 9일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이 출범했다. 창조 세계와 생명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기후 위기에 대한 방관과 침묵을 멈추고 행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출범 당시 단체 25개, 교회 38개, 개인 82명이 참여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연대 단체를 늘려 가고 있다.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은 정부와 기업에 즉각적인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하고, 각 교단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과 기독 단체들의 통합적인 대응을 위해 피케팅과 성명서 발표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현재도 교단들을 대상으로 기후 위기 대응 정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응답하듯, 지난 5월 2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9개 교단장과 연합 기관 대표들이 '2050년 한국교회 탄소 중립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정부·국회에 온실 기체 감축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요구하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응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에너지 전환을 이뤄 낼 것을 촉구했다. 또한 한국교회 스스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 행동을 다음과 같이 실천하기로 약속했다.

△기후 위기 인식 개선과 참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기후위기비상행동 플랫폼 사업 시행
△생태 목회 매뉴얼 개발 및 교회, 일상, 사회에서 탄소 저감 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 제시
△세계 교회와 함께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이라는 에큐메니컬 신앙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연구자, 신학자, 기독 시민운동 그룹을 적극 지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기구 설립 추진
△'기후위기기독교신학포럼'·'생태정의아카데미'와 연대해 기후 위기 시대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 양성

계속적인 확장과 진정성 있는 성찰 필요

기후 위기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목소리가 교단의 선언으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한국교회 안에서 기후 위기를 말하고, 그에 따른 전환적 삶을 실천하는 것이 더 이상 유별나거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 기독교인으로서 응당 창조 세계의 파괴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선언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단순히 교단 차원의 선언을 넘어, 개교회와 성도 개개인이 삶의 각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동참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약속하는 일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종교계가 탄소 감축량의 일부를 담당해, 기후 문제를 넘어 모든 생명이 존중되는 온전한 창조 세계를 이뤄 갈 수 있도록 옳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창조 세계의 회복을 꿈꾸고, 과오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일에 힘쓴다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세워진 계획들이 이기심과 욕망이 아닌 공감과 연대 속에서 실현되어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2050 탄소 중립 선언'이 그 긴 여정의 의미 있는 한 걸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새번역, 마태복음 5장 23~24절)

기독교 신앙은 책임적이다. 그렇기에 신앙인은 이 지구의 급격한 기후변화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진정한 사과문의 6가지 요소'라는 글을 보면, 진정한 사과는 사태를 설명하고, 보상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과는 진정으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이 푸른 별과 이곳에 사는 다른 이웃 종들에게 큰 폐를 끼친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성장과 욕망만을 목표로 삼고 달려왔던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쳐야 한다. 또한 다른 종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단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만을 채우는 변화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이 합응하는 변화를 이뤄 내야 한다. 어떤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때, 또 다른 무언가는 목표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가치관과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신앙과, 신앙의 장소인 교회는 이 세계의 온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50년 한국교회 탄소 중립 선언'이 의미 있는 시작을 넘어, 이 땅의 모든 개교회와 신앙인이 모든 피조물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온전한 창조 세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양환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