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펼치던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가 10월 28일 가석방됐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후 1년 7개월 만이다. 송 박사는 지난해 3월 구럼비바위 발파 8주기를 맞아 해군기지 내 남아 있는 구럼비바위에 들어가려 여러 번 군의 협조를 구했으나, 군이 끝내 출입을 거부하자 기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갔다. 결국 군용 시설 손괴·침입죄로 구속·기소됐고 재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송 박사의 가석방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며칠 전 알려진 갑작스런 가석방 소식에 제주 평화 활동가들도 놀랐다. 송 박사와 함께 구럼비바위에서 기도를 올리고 나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류복희 활동가는 "겨울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나왔으면 했는데 정말 선물같이 나왔다"며 웃었다. 이날 송 박사를 만나기 위해 활동가 및 지인 등 20명이 제주교도소를 찾았다.

송 박사는 오전 10시께 교도소를 걸어 나왔다. 활동가들은 송 박사의 체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며 걱정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활동하느라 항상 검게 그을렸던 얼굴이 허옇게 된 걸 보고 "얼굴 좋아졌다"며 우스개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송 박사는 한 명 한 명 포옹하고 악수하면서 반가움과 고마움을 전했다. 송 박사와 활동가들은 교도소 앞에서 '생명 평화 강정마을', 'NO! NAVAL BASE'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쳤다.

사람의 따뜻함이 그리웠는지 송강호 박사는 교도소 앞을 찾은 한 명 한 명과 포옹하고 악수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 2010년부터 지금까지 강정마을에서는 매일 정오에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인간 띠 잇기'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해군기지로 진입하는 도로에서 인간 띠 잇기를 한 후 해군기지 정문까지 행진해서 돌아온다. 송 박사는 출소하자마자 강정마을로 가 인간 띠 잇기에 참여했다. 송 박사가 돌아오자, 활동가들 및 이날 강정마을에 탐방 온 성미산학교 학생 30여 명이 환호했다. 송 박사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건넸다.

"감옥에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해군기지를 쫓아내고 평화의 기지로 만들 수 있을까 매일 기도하고 궁리했어요. 비법과 묘책이 떠오르도록 기도했는데 전날까지도 생각이 안 나.(웃음) 근데 두 가지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어요. 하나는 여기 젊은이들이 모이면 해군기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 두 번째는, 저 구럼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거예요. 해군이 불법으로 강탈한 것일 뿐. 젊은이들이 구럼비를 돌려 달라고 계속 주장하면 도둑은 가책을 느끼다가 토해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묘책은 아니지만 뭔가 실마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 자리에 젊은 분들이 많이 와 계시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해요. 강정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평화의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해군기지를 스파링 상대로 삼아 여러분의 힘을 키워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씨앗이 되면 좋겠어요. 강정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통일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또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이라는 한·중·일 국경의 섬들, 군사기지로, 군사 대결로 희생당할 사람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연대하고 일어나는 평화운동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심에 여러분이 서 있어요. 함께 한라에서 백두까지, 동아시아를 평화로 만드는 운동에 꼭 불길을 지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송강호 박사는 앞으로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강정마을 평화운동가들이 진행하고 있는 '평화대학'과 군사기지로 고통받는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을 잇는 '섬들의 연대' 운동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앤조이>는 제주교도소에서 강정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송강호 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날 '인간 띠 잇기'는 유난히 활기찼다.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준비해 온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사진 맨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날 '인간 띠 잇기'는 유난히 활기찼다.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준비해 온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사진 맨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 교도소에서 1년 7개월간 수감 생활 하셨는데요.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원래 하루에 20분 운동 시간을 주는데 코로나 상황이라는 이유로 일주일에 20분 운동하기도 힘들었어요. 눕기도 어렵고 대부분 시간을 앉아서 보냈어요. 살도 많이 빠지고 지금도 걷는 게 좀 어려워요. 무엇보다 너무 끔찍할 정도로 단순한 생활이었어요. 매일 일기를 쓰기는 했는데, 어느 날은 정말 전날과 다른 아무런 자극이 없어서 쓰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감옥 안에 있으면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아요. '나는 매일 내일이라는 신대륙에 도착하는 것이다'라는 이상한 생각도 했어요.(웃음) 이 신대륙에서는 뭔가 새로운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 그래도 꾸준히 서신을 쓰셨잖아요. <뉴스앤조이>에서 연재를 했는데, 박사님의 이번 사건과 글 논조를 비난하는 댓글이 많이 달린 것은 알고 계신가요?

신문이 들어온 게 엄청 큰 변화였어요. 정치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니 답답해서 글을 썼고, 그걸 <뉴스앤조이>에서 내 주니까 하나의 소통 창구로 생각했죠. 문재인 대통령한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계속 썼는데, 대통령은 보지 않는구나 싶었어요.(웃음) 활동가들이 <뉴스앤조이>에 실린 걸 프린트해서 보내 주긴 했지만, 인터넷을 할 수가 없으니 댓글까지는 못 봤어요.

제가 해군기지 철조망을 훼손한 건… 그냥 어린아이같이 보고 배워서 한 거예요.(웃음) 해군기지가 건설 중일 때 언젠가 앤지 젤터(Angie Zelter, 1951~)라는 분이 강정에 오셨어요. 첫날부터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가더니 해군이 쳐 놓은 철조망을 다 자르는 거예요. 난 너무 충격이었어. 경찰이랑 군인이 다 보는데, 그걸 막 자르더라고….

처음엔 저도 '대체 저 사람은 뭔 정신으로 저러지?' 했어요. 왜 그걸 자르냐고 물어봤는데, 그분이 "이거 쓸데없는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난 그게 머릿속에 각인됐어. '쓸데없는 거다….' 우리는 막 '반대한다'고 외치기는 했는데, 실제 행동으로 하려 하면 움찔하게 되잖아요. 근데 평범한 영국 중년 여성이 마치 쓰레기를 처분하는 것처럼, 자기 집 정원 가꾸듯이 철조망을 막 끊으니까. 저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 정말 군사기지는 쓸데없는 건가?'

지금도 제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판단이 안 서요. 단지 그날은 내가 구럼비에 들어가는 날이라는 생각과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누구에게 약속했는지 모르겠는데, 하나님께 했는지 구럼비에 했는지 나에게 했는지, 뭔가 약속을 하긴 했어. 그리고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그 약속은 지켜야지'라는 생각에 행동한 거예요. 그래서 기도만 하고 나온 거죠, 예전에 늘 거기서 했던 것처럼. 그러고 나서 2년형을 받으니까, 내가 잘한 건가 못한 건가, 경솔한 건가 용기 있는 건가, 혼란스럽고 판단이 안 되더라고.

- 특히 '군대를 없애자'는 주장에 많은 사람이 반발했는데요. '군사력에 의한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글쎄… 본인 생각을 바꾸지 않더라도 그냥 타인의 생각을 인정할 순 없을까? 어떤 사람의 의견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먼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 안에 여러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제가 도달하고 싶은 곳은, 인내심을 갖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는 거예요.

가령, 나는 국민의힘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국민의힘 입후보자들이 자기 의견을 발표한다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기는 해요. 약간 호기심과 흥미를 느껴요. 나는 서로가 거기까지만, 반보만 왔으면 좋겠어요. 서로 듣고 '아 이전에는 네 생각이 뭔지 몰랐는데, 동의는 안 되지만 너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우리 사회가 거기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내가 <뉴스앤조이>에 글을 내면서도 정말 바라는 건 '나는 동의는 안 되지만 너는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나 보지?' 거기까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싶은 거예요.

다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군대를 해산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한국이 코스타리카나 핀란드에 있는 올란드(ÅLAND) 같은 비무장 평화의 나라·섬까지 가는 건 멀고 먼 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좀 더 생각해 봤으면 해요. 우리는 너무 쉽게 국가를 위해 국민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거죠. 이 생각이 너무 명확해서 조금만 벗어나는 주장은 깡그리 무시해 버려요. 사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어떤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인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가석방 기간이어서 내년 3월까지는 행동에 제약이 좀 있어요. 전자 발찌도 채워져 있고. 치료받을 것도 있고요.

멀리 내다보면…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미완의 과제예요. 근데 저는 해군기지가 여기 지어진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에는 막으려고 했지만… 모두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진행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 해군기지가 있어서 반전 평화운동의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일정 기간 그 기능을 할 거라고 봐요.

젊은이들이 전쟁·분쟁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비폭력적으로 극복하고 평화를 만들기 위한 길들을 함께 찾는 공간으로 환경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더 자라나면 국제사회에서 평화운동에 참여할 사람이 길러질 수도 있고, 그 에너지가 해군기지를 위축시켜서 평화의 기지로 변모시킬 수 있는 동력도 만들어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평화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더 많아지면 뭔가 전환점이 올 거라고 봐요. 감옥에서 계속 그런 고민을 했어요. 젊은이들이 어떻게 강정에서 함께 살면서 평화를 공부할 수 있을까….

군사기지가 있는 제주와 오키나와, 타이완을 잇는 '섬들의 연대'도 계속해야 해요. 군사기지가 지어지거나 지어질 예정인 섬에는 반대 운동하는 주민이 소수 있는데, 정말 외로워하거든요. 각 섬의 평화 활동가들이 2014년부터 1년에 한 번씩 각 섬을 돌아가면서 모였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세 섬을 항해하는 일도 배까지 구해 놨는데 진행하지 못했어요. 이것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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