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활동가 송강호·류복희와 함께하는 기독 단체'라는 이름으로 모인 기독교인들이 6월 30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평화 활동가 송강호·류복희와 함께하는 기독 단체'라는 이름으로 모인 기독교인들이 6월 30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영국의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Angie Zelter, 1951~)는 1996년, 군수산업체 공장에 들어가 망치로 전투기 조종석을 훼손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기소됐는데, 법원은 이례적으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그 전투기는 인도네시아에 수출해 동티모르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다. 앤지 젤터의 행동 자체는 범죄지만,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앤지 젤터는 2012년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평화운동을 벌였다. 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그는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격렬하게 저항했다. 구럼비바위에 들어가기 위해 해군이 쳐 놓은 철조망과 펜스를 절단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한국에서 추방됐다.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이처럼 처음부터 현행법을 넘어서는 투쟁이었다. '국책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민의와 절차를 무시하고 건설된 해군기지지만, 법의 심판을 받는 쪽은 언제나 활동가들이었다.

지난해 3월 구럼비바위 발파 8주기를 맞아 해군기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가 기도를 올리고 나온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와 류복희 활동가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6월 30일 상고를 기각하면서, 송 박사는 징역 2년, 류 활동가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이들과 함께 기소된 활동가 2명은 무죄가 확정됐다. 작년 3월 구속된 송 박사는 앞으로 9개월을 더 교도소에서 보내야 한다.

"그들이 드린 기도는 제주도가 군대도 무기도 없는 평화의 섬이 되게 해 달라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존해 달라는 평화와 생명과 사랑과 인류를 위한 기도였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기도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참혹한 형벌, 징역이었다. 무슨 대역죄를 저질렀기에 징역 2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무거운 판결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선고 후 대법원 앞에서 기독교인 20여 명이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장 홍인식 목사는 평화의 기도를 올린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며, 송강호 박사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강경민 목사는 "문재인 대통령도 강정마을을 군사기지로 만든 과정의 불법성과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검찰과 사법부는 알량한 법을 빙자해 의인을 정죄하고 가뒀다. 당신들이 진리로 신봉하는 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홍인식 목사(왼쪽), 강경민 목사(중앙),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김현아 사무국장.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회견에 참여한 홍인식 목사(왼쪽), 강경민 목사(중앙),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김현아 사무국장.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날 선고 공판을 참관한 류복희 활동가는 제주가 해군기지와 제2공항 건설 등으로 점점 군사기지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 모든 게 북한과 휴전 중이기 때문에 진행되는 것인가. 이건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 인도-태평양 전선에 오키나와보다 더 앞서 있는 제주를 희생양으로 내놓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 활동가는 "협작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군과 강정마을회의 상생 협약이 오늘 최종 통과된다고 한다"며 허울뿐인 상생 협약이 아니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강호 박사의 아내 조정래 활동가도 공판 참관 후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그는 "이 일이 2년 동안 한 사람의 자유를 묶어 놓을 만한 일이었는가"라며 "억울한 사람이 기댈 곳이 이 나라에 있기는 한지, 있다면 어디 있을지 먹먹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또 "남편이 오늘 겪고 있는 억울함과 부당함이, 너무도 강고하여 당연해 보여서 의문조차 품을 수 없는 상황에 작은 균열을 가져오는 한 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 무도한 시간을 보내는 그 사람을 격려하고 나 스스로도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했다.

송강호 박사의 아내 조정래 활동가(왼쪽)와 류복희 활동가. 뉴스앤조이 구권효
송강호 박사의 아내 조정래 활동가(왼쪽)와 류복희 활동가.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날 기자회견은 '평화 활동가 송강호·류복희와 함께하는 기독 단체 및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기독교인들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마무리됐다. 성명서에는 하루 만에 기독 단체와 교회 38개가 연명했다. 이들은 "평생을 일관되게 국제 평화 활동가로 살아온 이들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내리는 초라한 평화 감수성의 사법기관으로서 국제적 수치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기관의 판결과 상관없이 송강호와 류복희는 무죄다"라며 "송강호의 몸뚱아리는 가두고 잡아 둘지언정, 부당한 것에 저항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그의 양심의 자유와 평화의 열정만큼은 결코 가둘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평화 활동가 송강호·류복희는 무죄다 송강호 박사를 즉각 석방하라

2020년 3월 7일은 해군이 구럼비를 발파한 지 8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송강호와 류복희는 이날 기지 방문을 요청했으나 매번 해군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송강호는 기지 철조망을 잘랐다. 두 사람은 기지 안 초라한 수변 공원으로 변해 버린 구럼비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더 이상 제주도가 군사 무기들에 잠식당하지 않고 군대도 무기도 없는 평화의 섬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평화를 위한 기도의 대가는 가혹했다. 2020년 9월 24일 제주지방법원은 송강호와 류복희에게 각각 징역 2년,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바로 항소했으나 2021년 3월 31일 제주지방법원 항소심은 피고 측과 검사 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송강호는 오늘로 1년 3개월째 제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2018년 국제 관함식 참석을 위해 강정마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강정마을에 대한 사과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라며 기지 건설 과정에서 국가가 저지른 불법성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또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와 제주도 및 여러 국가기관이 해군기지 반대 측 사람들에게 보여 준 부당한 행위에 대한 사과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유사 사건 재발 방지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정책의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인정한 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불법성에 대한 진상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법원은 그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평화 활동가들에게 가혹한 판결만을 내리고 있다. 송강호는 항소심 최후진술문에서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법은 왜 존재합니까?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입니까? 재판부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군대라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울타리를 손괴하고 군대 안에 들어간 행위에 대해서 2년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군대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서 강정마을의 땅과 공유수면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제주 법원도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인해 강정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어 심한 갈등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불법적인 공사로 인해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사법 처벌을 받았고 697명이 체포·연행되었습니다. 그들은 농부와 어부, 목사, 학생들, 가톨릭 신부와 수사와 같은 무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파렴치범이나 잡범으로 처벌받은 기록이 없는 선량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송강호와 류복희는 평화를 만드는 그리스도인들이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갈등과 분쟁의 조정자, 증오와 분노의 상처를 평화로 치유하는 화목자로 부르셨다는 평화의 확신범들이다. 그들은 평생을 동티모르, 아체,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분쟁 지역에 들어가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들을 치유하고, 지뢰와 같은 전쟁의 오물들을 걷어 낸 자리에 학교를 세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평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평화의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그런 이들의 활동이 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오늘 송강호·류복희에 대한 마지막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사법기관의 어떤 판결도 송강호·류복희의 거룩한 평화 활동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믿는 평화의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대한 대가가 그것이라면 오히려 기쁨으로 받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은 각오해야 한다. 평생을 일관되게 국제 평화 활동가로 살아온 이들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내리는 초라한 평화 감수성의 사법기관으로서 국제적 수치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기관의 판결과 상관없이 송강호와 류복희는 무죄다. 그들과 우리가 믿는 신앙의 경전, 성경은 "평화를 만드는 이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의 자녀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찌 그들이 범죄자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도 가두고 싶은가? 그러면 가둬라! 하지만 송강호의 몸뚱아리는 가두고 잡아 둘지언정 부당한 것에 저항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그의 양심의 자유와 평화의 열정만큼은 결코 가둘 수 없을 것이다. 

송강호·류복희는 무죄다
제주 해군기지가 유죄다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 즉각 시행하라
송강호 박사를 즉각 석방하라

2021년 6월 30일

평화활동가 송강호·류복희와 함께 하는 기독 단체 및 교회 
참여 단체 및 교회: 강정개신교대책위원회, 사)개척자들,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교회개혁실천연대, 그루터기공동체,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희회,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독여민회, 기독청년아카데미, 사)느헤미야, 느헤미야교회협의회, 새벽이슬, 새시대목회자모임, 생명선교연대, 생명평화기독연대, 생명평화연대, 성서광주, 성서대구, 성서대전, 성서한국, 영등포산업선교회, 예수살기, 일하는예수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좋은교사운동, 청어람ARMC, 평화교회연구소, 평화누리,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희년함께, 사랑누리교회, 새맘교회, 섬돌향린교회, 하.나.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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