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활동가 송강호 박사와 활동가들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3월 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옅은 카키색 수인복을 입은 송강호 박사(64)의 눈빛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1년이나 교도소에서 지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3월 31일 오전 10시 제주지방법원.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나온 송 박사는 형형한 눈빛으로 재판정을 채운 사람들을 둘러봤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30분 내내 장내에는 엄숙한 긴장감이 돌았다. 송 박사는 덤덤히 판결 내용을 듣고 서 있었다.

평화 활동가 송강호 박사는 작년 3월 7일,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진 해군기지에 철조망을 끊고 들어갔다. 구럼비바위 발파 8주기를 맞아 해군기지 내 남아 있는 구럼비바위에서 기도를 올리고 나왔다. 그해 3월 30일 구속됐고, '군용 시설 손괴', '군용 시설 침입'이라는 죄가 적용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와 함께 해군기지에 들어간 평화 활동가 A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방조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 B와 C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과 활동가들 쌍방에서 항소했고, 그 결과가 3월 31일 나왔다. 결과는 양측 항소 기각. 원심 판결이 유지됐다. 선고 전 국내에서 1만 5000개, 해외에서 300개의 탄원서가 들어갔는데도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군부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갔으니 유죄판결은 피할 수 없겠지만, 기도만 하고 나왔기 때문에 혹시나 집행유예 등으로 감형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활동가들은 여기저기서 한숨을 쉬었다.

송 박사의 아내 조정래 씨는 육지로 돌아가는 표를 예매하지 않았다. "나올 거라는 마음을 접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기적이 일어날까 기대했지…. 어제 면회했는데, 내가 '돌아가는 표를 안 끊었다'고 말하니 막 웃더라고." 그는 송 박사가 밖에 있을 때는 남루하게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교도소에서 머리도 자르고 멀끔해졌다며 부러 우스개를 던졌다. 하지만 눈에 띄게 왜소해진 몸을 걱정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송 박사를 보기 위해 공판 전 재판정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날 송강호 박사를 비롯한 활동가들의 항소심 선고를 참관하러 제주와 육지에서 30여 명이 왔다. 이들은 재판이 끝나고 수감자 호송 버스에 타는 송 박사를 보기 위해 법원 바깥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법원이 호송 버스 앞쪽으로 가림막을 설치해 수감자들 얼굴은 보기 힘들었다. 활동가들은 "우리가 매번 와서 외치니 법원에서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며 혀를 찼다.

"해군기지 결사 반대!" 재판을 마친 수감자들이 호송 버스에 오르기 시작할 때 송 박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버스로 들어가는 찰나의 시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결사 반대!", "송강호는 무죄다!", "물귀신(송 박사 별명) 힘내!"라고 답했다. 이들은 호송 버스가 출발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현수막을 들고 소리 내 외쳤다. "해군기지가 유죄다! 송강호를 석방하라!"

송강호 박사가 호송 버스에 오르는 모습. 앞에 가림막이 설치돼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송강호 박사가 호송 버스에 오르는 모습. 앞에 가림막이 설치돼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법원을 찾은 활동가들은 큰 소리로 송 박사를 응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법원을 찾은 활동가들은 큰 소리로 송 박사를 응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해군기지 완공됐다고 끝난 것 아냐
'전쟁 원하지 않는다'는 목소리 키워야
예수님도 '하나님나라' 이상 꿈꾸게 해"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완공된 지 5년이 지났다. 2011년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해군기지 건설의 절차적 불법성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 군사기지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평화 활동가들은 주민들과 연대해 극렬히 저항했다. 송강호 박사는 말 그대로 몸을 사리지 않고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국가를 상대로 한 저항의 대가는 가혹했다. 송 박사와 활동가들은 군과 경찰에게 폭력을 당하고 여러 번 연행·구속됐다.

국가가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로 시민들의 저항을 힘으로 제압한 경우는 많다. 강정마을도 그중 하나가 됐다. 해군기지는 2016년 완공됐고 국내 최초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이라고 선전했다. 강렬했던 저항운동도 한풀 꺾였다. 가끔씩 들려오는 활동가들의 저항 소식에 사람들은 둔감해졌고 오히려 냉소했다. '이미 지어진 걸 어쩌겠느냐', '그래도 국방력이 올라가니 좋은 일 아니냐'면서. 송 박사가 해군기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다.

선고가 끝난 후 송강호 박사와 함께 재판받은 활동가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해군기지 건설의 본질이 무엇이고, 왜 저항운동이 계속돼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활동가들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했다.

- '평화운동도 좋은데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시각이 있다.

A / 해군기지 반대 투쟁은 지금까지 700명이 연행됐고 600명이 기소됐으며 62명이 구속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실정법을 넘어서는 투쟁을 했던 상황이었고 이번 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3월 7일은 구럼비바위가 발파된 날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갈 수 없어서 사전에 군에 구럼비바위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용히 기도만 올리고 나오겠다고 했다. 두 차례 요청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고, 세 번째로 찾아가자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것도 책임 있는 사람의 답변이 아니었다.

B /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에 다녀온 사람도 있고, 외국에는 해병대에 몰래 들어가서 잠수함을 부수고 나온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과격하다'는 이야기, 안보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면서 자기 행동만 한다는 비판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동한 그 사람은 대중의 평가를 의식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행동한 것이라고 본다. 대중이 납득할 만한 선에서 운동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양심과 신념에 따라 그 상식을 넘어서서 행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A / 2020년 국방비 예산이 50조였다. 국가 예산의 1/10이다. 군대는 결국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연습하는 곳이다. 전쟁터는 누군가를 죽이는 게 허락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전쟁이라는 게 어떻게 사람들 머릿속에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가. 이 인식을 바꾸는 게 평화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숙제인 것 같다. 전쟁을 준비하는 데는 그렇게 돈을 많이 쓰는데, 거기에 비하면 평화 활동은 너무 적다. 더 치열하게,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해군기지가 완공된 지 5년이 지났다. 지금도 저항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C /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는 처음부터 여러 결이 있었다. 절차의 불법성, 환경문제, 주민과의 연대, 특히 개척자들이 주목한 것은 군사기지화에 따른 전쟁 가능성이었다. 해군기지 건설 전이나 후나 반대 이유들은 똑같다. 어느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B / 브라더 송(송 박사 별명)은 늘 이렇게 말했다. 해군기지는 분명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았고 모든 국가기관과 기업의 이윤에 의해 만들어진 불법의 온상인데, 다 지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불법이 없었던 일인 양 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C / 해군기지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해군은 지금도 계속해서 군사 보호구역을 넓히려 하고 있다. 2년 전에도 해군이 신규 항로를 낸다고 도청에 신청했다. 그러려면 땅을 또 파내야 한다. 그때 평화 활동가들과 환경 단체들이 바다 밑을 조사해 연산호 군락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막았다. 이들이 반대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연산호 군락지는 다 파괴됐을 것이다. 최근에는 강정천에도 진입로를 내려 하고 있다. 계속 확장하려고 시도한다.

B / 도청이 추진하고 있는 제2공항은 말이 공항이지 군사기지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얼마 전에는 해군이 경함공모함을 건조하겠다고 나섰다. 그 발표 시기만 봐도 제주도가 점점 군사화하는 게 보인다.

A / 최근에는 구좌읍 덕천리 일대에 축구장 152배 크기의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 땅과 제주도 땅이 있는데, 국정원 땅에는 이미 시설들을 짓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활동가들이 반대 피케팅을 해서 일단 보류됐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제주도를 거대한 항공모함으로 만들려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비무장 평화의 섬'을 향한 평화 활동가들의 저항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비무장 평화의 섬'을 향한 평화 활동가들의 저항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한국은 분단국가이고 휴전 중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군사력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데.

A / 제주도를 이렇게 만드는 건 북한 때문이 아니지 않나. 미국이 인도-태평양 최전선에, 오키나와보다 더 가까운 제주도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강대국들의 패권에 제주도가 완전히 휘말리고 있다. 4·3을 경험한 제주도인데, 다시 제주도를 제국 패권의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다시 국가 폭력, 패권 싸움에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한국 국방력이 세계 6위라고 한다. 경제력은 10위다. 북한과 비교하면 너무 높다. 그렇다면 우리가 국방비를 늘리는 이유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견주려는 건가? 그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국방비를 계속 높이는 건 잘못된 정책이다. 오히려 제주도를 비무장 중립 지역으로 만들고, 중국이나 미국의 패권에 휘말리지 않을 정책을 써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것 아닌가.

한국과 북한은 2018년 9월 19일 '남북 군사 합의'를 통해 군축을 합의했다. 그때 서로 최전방에서 군을 약간 물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때 얼마나 평화로웠나. 지도자들이 잘 결정하면 그런 모습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점점 군사력을 높여 가는 건 결국 서로를 위협하는 꼴이 된다.

C / '국방력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쟁 억지력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잘못된 믿음이라고 본다. 정말 국방력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언젠가 전쟁을 해야 한다는, 내 손으로 총을 쏴서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전쟁하지 않는 평화'를 원한다면 – 대부분 이 평화를 원할 것이다 – 시민으로서 이런 평화를 표출하고 요구해야 한다.

지도자와 군대에만 맡긴 채 그들의 기조만 따라간다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 평화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자체도 반대하지만, 일본·중국·대만·미국 시민들과 연대하며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군사비를 올린다 할지라도, 시민들이 나서서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연대를 원한다'고 분명히 목소리를 낸다면 절대 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분단 상태이니 군대를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 '군대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기 전에,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이런 풀뿌리 운동들이 군비경쟁을 막을 수 있는 평화적인 명분을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 평화 활동가들의 생각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C / 이상적인 게 맞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데 있어서 이상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그게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버리라는 건, 결국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올 수 없게끔 하는 것이라 본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라는 이상을 꿈꾸게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조차도 평화에 대한 이상을 이야기했을 때 거부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당연히 이상을 꿈꾸고 그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물론 군사적 분쟁 한가운데서 군대를 없앤다는 발상이 말이 안 되게 느껴질 것이다. 이해한다. 100km/h로 달리는 차를 한 번에 멈추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나는 지금 한반도가 불이 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불이 났는데 누구도 불을 끄려 하지 않는 상황.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은 점점 군비를 늘리며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군사력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지금의 두려움을 잠깐 해소하는, 오히려 더 불을 지르는 행위다. 정말 평화를 원하고 전쟁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군비를 늘리는 대신 다른 방법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나도 개척자들에 오기 전까지는 실제로 전쟁이 나겠나 싶었다. 그런데 매주 세계 기도 모임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서 무기를 통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하루에 수십 명 희생되는 건 뉴스도 아니다. 100명 단위로 학살당하는 일도 많다. 국제 정세를 보면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안보,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군대만 믿고 국방력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오히려 나이브하다.

조정래 / 사람들은 해군기지가 불법이었든 뭐였든 이미 지어졌는데 어쩌냐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해군기지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한다. 평화를 배우고 가르치는 시설로 바꾸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어쨌든 사람들의 행동은 생각부터 출발한다. 인식의 변화가 모든 변화의 출발이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꿈일지라도,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 때문에 세계가 변해 왔다. 그렇게 치자면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터무니없는 말씀을 많이 한 사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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