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가 보내온 글입니다. 송 박사의 글을 통해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를 도왔던 현지인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뿌듯함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국방부는 이 구출 작전명을 '기적(miracle)'이라고 명명했고, 실제로도 '기적적인 구출 작전'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우리나라가 벌인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은 국가로서 당연한 책무고, 이전과 달리 현 정권이 그 임무를 방기하지 않고 실행한 것은 칭송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냉철하게 따져 봐야 한다.

한국의 아프간 재건 활동은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하기 위해 아프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우리 정부는 순수한 민간 지원 활동이었다고 선전하지만, 2001년부터 해군 수송 지원단(해성 부대), 건설 공병 지원단(다산 부대), 아프간 재건 지원단(오쉬노 부대), 국군 의료 지원단(동의부대)이 파견됐으며, 바그람 미군 기지에 한국군도 함께 주둔해 있었다. 2007년 고 윤장호 하사가 희생당한 곳도 그곳이다.

한국군의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들은 미군의 우산 아래에서 실행되고 있었기에 미군과 한통속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베트남, 이라크, 그리고 아프간에서 반복하고 있다. 베트남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파병했고, 아프간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 파병했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미국의 요구에 이끌려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전쟁에 참전한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과 한패로 몰려 적대시됐으며 결과적으로 패전국의 오명을 쓰게 됐다.

우리가 아무리 아프간을 인도적으로 돕기 위해 민간 활동에 주력했다고 항변해도, 현지인들의 눈에는 미군이 일으킨 전쟁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벌인 민사 작전의 일부로 비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 2003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살해당한 고 김선일 씨도 민간사업자라고 했지만 미군의 군수품을 보급하는 업체 직원이었기 때문에 테러의 표적이 된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얻는 경제적인 이득이 있지 않느냐는 논리를 들어 참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냉혈한 자본주의자들도 있다. 베트남 민중의 피로 깔아 놓은 경부고속도로를 통행하는 한, 베트남전쟁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이들의 위세에 눌려, 우리는 우리나라가 저지른 비열한 참전을 반성할 기회조차 잃었다. 아프간에 병원을 세워 치료해 주고 직업훈련원을 세워 기술 교육을 해 주고도 이렇게 비참하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 정부의 모든 활동이 미국 주도의 아프간 미국화(Americanisation)의 부속품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아 철도를 부설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고 우리가 일본에 고마워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결국 탈레반에 밀려 탈출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아프간에 더 이상 주둔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는 말인가? 우리가 미국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을 수 있었던 것인가? 아프간에서 우리나라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반성하자. 더 이상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의 들러리가 되지 말자.

만일 우리나라가 아프간처럼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가난한 나라를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으로 도와줬다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때 사업을 철수할 이유도, 직원들이 탈출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대사관도 그대로 남아서 우리나라 국민들과 아프간 협력자들을 돌보고 계속 지원 활동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아비규환의 탈출 러시는 한국의 외교·군사 정책 실패이자 과오로 인해 빚어진 사태 아닐까. 

1975년 베트남 사이공에서 그리고 2021년 아프간 카불에서 우리는 미군과 함께 부끄러운 패전국이 돼 숨막히는 탈출 행렬에 낄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할 것인가? 불원간에 우리는 이런 비참한 탈출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도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제발 미국이 일으키는 패권 전쟁의 사냥개가 되지 말자. 진정으로 우리 국익을 생각하자. 국익은 전쟁 국가의 피 묻은 돈을 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비군사적이고 순수 인도주의적인 원조·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은 개인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옳다.

한국 정부는 오직 정부 기관이 진행한 사업에 협조했던 아프간 협력자만을 구출했지만 비정부기구(NGO)에 협력했던 아프간 친구들은 훨씬 더 많다. 그뿐 아니라 인터콥선교회나 프론티어즈('개척자들'과는 동명의 다른 선교 단체)처럼 아프간에서 적극적으로 개종 활동을 했던 선교 단체에 협력하거나 개종한 자들의 신변에도 큰 위협이 가해질 것이 염려된다. 모두 한국이 뿌린 씨앗들이다. 이 모든 위험에 처한 아프간 친구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송강호/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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