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가 보내온 글입니다. 송강호 박사는 구럼비 발파 8주기를 맞은 지난해 3월 7일, 활동가 한 명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강정 해군기지 철조망을 끊고 구럼비바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해군에게 고소당했습니다. 송 박사는 작년 9월 24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올해 3월 31일 항소심을 거쳐, 6월 3일 대법원에서 형을 확정받았습니다. - 편집자 주

나라를 지키겠노라 결의했던 한 꽃다운 청춘이 성추행과 이를 비호하는 군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 청년의 죽음으로 군대 안에 숨겨진 더러운 추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성적 쾌락에 탐닉하느라 동료 군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군인들의 일탈과 비행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후배 사병들을 구타하고, 수십 개의 빵을 강제로 먹이고, 노리개로 만드는 등 견딜 수 없는 모욕감·따돌림이 벌어진다. 이에 시달리다 동료 사병을 죽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그치지 않고 있다.

군대 내 인명 경시 풍조 성향은 특이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군대 자체가 인명을 무시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고 시설을 파괴하는 기술·능력을 배양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존중하라는 훈계가 먹히겠는가? 그런 식의 설교는 위선이고 모순일 뿐이다. 나도 군 생활을 하며 인체 형상을 표적 삼아 심장부를 겨냥해 사격하는 훈련을 받았고, 매일같이 "북한 간첩을 사살해 3000만 원 포장금을 받아 헬기 타고 고향에 돌아가라"는 부대장의 연설을 들었다. 그런 세뇌 때문인지 무장 공비들의 처참한 주검을 보면서도 맹숭맹숭 해졌다. 군복을 벗을 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귀신 들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군대 마귀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적들도 우리처럼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는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군대를 해산해 군대 마귀의 주술로 세뇌당한 50만 이상의 젊은 병사들을 해방시키자! 성직자들이 타락하듯이 군인들도 타락한다. 중이 고기 맛을 보고 그에 길들여 지듯이, 목사가 돈 맛을 보고 교인들을 돈으로 계산하듯이, 군인도 돈과 권력을 탐하는 세속화에 빠질 수 있고 지금 그런 현상이 만연해 있다.

방위산업체의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군 장성이 수두룩하고, 그들이 거액의 커미션을 챙기고 사들인 싸구려 부품으로 만든 군함·비행기들은 잦은 결함을 일으켜 우리 장병들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군대 고위 간부들은 전역 후에도 유명 법무 법인에 고용돼 군대의 비리·범죄에 연루된 군인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변호 업무에까지 발을 들여 놓고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직자도 군인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적어도 성직자에게는 신앙이 있고 군인에게는 명예라는 것이 있는데, 이 마저도 맘몬 앞에서는 초라하게 배신과 굴복을 하는 것일까? 부하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명예를 더럽히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돈이고 재산이라면 이런 군대는 사라져야 한다.

지금 군대는 적이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초현대식 항공모함도 핵 잠수함도 이 바이러스를 당하지 못했다. 세계 최강의 미국도 러시아도 이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이미 미국·유럽의 군대들이 먼저 했고, 이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우리 군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훈련소와 각 군부대에서 군인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해 있다. 군 관계자들은 미래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군대는 필요하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인류가 맞이할 미증유의 기후 재앙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그 앞에서 군인이 막아 낼 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인류가 무절제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교란해 빚어진 참사다. 인간의 생활권을 무제한으로 확대하기 위해 산림을 파괴하고 동물들의 서식처를 강탈한 결과, 바이러스가 야생동물 서식지의 경계를 넘어온 인간에게까지 전염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오늘날의 팬데믹 상황은 인류가 자초한 미물과의 싸움이고,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기후 위기라는 더 거대한 전쟁의 일부에 불과하다. 천혜의 자연이 인간의 탐욕스러운 착취와 무책임한 오염에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새로운 전쟁은 총과 무기로 대적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인류가 대면하고 있는 새로운 위기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안보 정책·전략이 무엇인가를 놓고 모든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해야 할 때다. 분명한 것은 구시대의 유물인 군대와 살인 병기들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러했듯이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권력·이익·지위의 보전을 위해 기존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관성을 갖고 있다.

과감하고 단호하게 군대를 폐지하자. 새로운 안전보장 체제를 구축하자. 사이버 테러로부터 국가 통신망과 정보 체계를 보호하고, 기후 위기와 팬데믹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원전 폭발 사고 같은 재앙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정책·전략들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선제적으로 부심해야 할 때다. 우리가 군인을 양성하고 새로운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데 인력·자원을 낭비할수록 새로운 재앙은 더 무섭게 불어나고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적은 이웃 나라가 아니다. 탐욕과 무책임이 빚어낸 결과물들이 파괴력을 지닌 유령처럼 우리를 침노하고 있다. 우리가 이전에 적으로 경계하고 의심했던 이웃 나라들과 손을 맞잡고 힘과 지혜와 모든 자원을 모아 함께 대처해도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를, 이 새로운 적 앞에서 군대는 장애물일 뿐이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 재앙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병리적 현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막아 내기 위해, 군사력에 허비되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이런 용기 있는 결단이 지구촌 다른 나라들에게도 표본·귀감이 돼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군대 없는 나라는 비현실적인 이상이 아니다. 이미 중미의 코스타리카는 1948년 군대를 폐기하고 병영을 박물관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이 나라는 군비에 소용될 자원을 교육·의료·보건에 쏟아부어 중남미 최고의 안정과 복지를 누리는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천만부당한 도박이라고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는 것은 한반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할 의지를 어떻게 꺾느냐에 이 문제의 열쇠가 달려 있다. 적대적인 군사적 대결이냐 아니면 북한과의 협력·설득이냐, 어느 것이 더 위험한 도박일까?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안보를 지키자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질수록 군부는 오로지 강한 군대만이 안전을 담보하는 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군사력만이 자신들의 존재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결부된 사안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이들은 중력의 법칙조차도 논리적으로 부정하려 들 테니까 말이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한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이로부터 벗어나게 해 줘야 한다. 북한이 비민주적인 사회체제하에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비정상 국가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사회의 역학 구조을 이해해 정상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원·협력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 이 모든 과정에 개입·관여할 수 있는 기회는 차단될 수밖에 없고, 단지 북한 사회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겨루고 있고, 가장 위험한 정권인 북한이 폭약의 뇌관처럼 버티고 있는 동북아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이 비무장 평화 중립 국가를 선포한다면 가히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사회에 미칠 영향과 파장도 심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감한 모험적 결단이 암울한 종말을 향해 나가고 있는 인류 역사의 새 지평을 열고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원할 새로운 희망의 빛을 비추게 되기를 바란다.

송강호 /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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