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보수 개신교의 평등법(차별금지법) 반대 행보는 평등법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개신교인들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같은 성소수자 관련 차별 금지 사유만 부각하고 왜곡하는 바람에, 평등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다른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심도 깊은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은 이 같은 현실에 문제 의식을 느끼고, 6월 28일부터 매주 월요일 평등법 관련 포럼을 개최해 왔다. 그동안 여성·장애인·이주민 문제를 다룬 데 이어 8월 2일에는 '노동과 가난: 소외와 불평등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평등법 제정이 노동 현장과 가난한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장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는 "평등법이 주로 적용되는 네 가지 영역(고용, 재화, 행정과 서비스, 교육)을 보면 대부분 노동 현장과 관련이 있다"며 평등법 제정으로 가장 뚜렷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이 '노동'일 것이라고 말했다. 평등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당장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노동을 등한시하는 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형묵 목사는 "'불평등 해소'는 성서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성서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도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을 위해 세상에 왔고 그들을 하나님나라 주인공으로 선포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차별도 용인될 수 없다는 바울과 여러 사도의 가르침도 구약성서 전통과 예수의 행적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노동 선교에 앞장서 온 손은정 총무(영등포산업선교회)는, 그리스도인은 노동 영역에서 차별과 소외를 걷어 내고 세상에 생명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손 총무는 "'평형을 이루어'(고후 8:13~15)라는 성서 말씀은 단순한 하나의 문구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표현하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소득 격차, 비정규직 차별,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에 주목하고 이를 보완하는 평등법은 당연히 제정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법이 어떻게 제정까지 갈 수 있을지 더 많이 논의하고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누리 김희석 사무국장은 한국교회 강단에서 노동을 폄하하는 일이 자주 발생해 왔다며, 이런 문화 때문에 교회가 '노동'을 등한시해 왔다고 지적했다. 김희석 사무국장은 "노동이 '인간의 타락으로 발생한 저주'라는 식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이 꽤 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위임한 성스러운 활동이다. 교회에서도 제대로 된 노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불평등으로 인한 소외·가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여름' 6주 차 강의가 8월 2일 '노동과 가난'을 주제로 열렸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세상을 바꾸는 여름' 6주 차 강의가 8월 2일 '노동과 가난'을 주제로 열렸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끊임없이 노동하면서도 그 노동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평등법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가난의 문법>(푸른숲) 저자 소준철 연구원(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은 서울 북아현동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여성 노인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가난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라는 보편적 안전망의 부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산층도 극빈층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재활용품을 줍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제공받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소준철 연구원은 '선별 복지' 제도 속에서 이들의 현실은 더욱 악화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는 가시화하지 않은 가난한 할머니들의 생활을 톺아보고 이들을 보호할 직접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며, 사각지대를 줄일 안전망을 확충하는 사회 구축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등법이 제정되면 현재 제정된 각종 법률도 평등법 취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정용택 연구실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동안 평등법 제정 논의는 가시화한 형태의 차별 행위 개선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는데, (소 연구원의 발표는) 앞으로 이 법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드러내 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다음 포럼은 교회와 관련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8월 9일 오후 7시 30분 온라인으로 열리는 7주 차 강의 '차별금지법 이후 교회를 말하다'에서는 홍성수 교수(숙명여대)와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가 발제를 맡고, 이병주 변호사(기독법률가회), 김희룡 목사(성문밖교회), 이수연 목사(새맘교회), 조진선 수녀(성가소비녀회)가 토론자로 나서 이야기를 보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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