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인권센터(인권센터·박승렬 소장) 사람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속담이 잘 어울린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기 농성장,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유가족의 진상 규명 요청 연속 기도회, 비전향 장기 양심수 석방 촉구 집회, 홍콩·미얀마 민주화 염원 기도회 등 각종 현장에 늘 참여하기 때문이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군사독재 시절, 이렇다 할 인권운동이 없던 시기에 결성돼 한국 인권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의 역사를 잇고 있다. 교회협 인권위원회는 1974년 시작돼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해산과 재결성을 반복해 오다, 2013년 정진우 전 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한국교회 내 인권 운동의 다각화를 꾀하며 활발한 활동하고 있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함께할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차별, 혐오하는 성소수자를 향해 인권센터는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이 때문에 보수 개신교인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일례로 교회협 인권센터가 2016년 4월 성소수자 김조광수 감독을 초대해 이야기 마당을 개최하려 했을 때, 극우 신자들이 행사장에 난입해 훼방을 놓기도 했다. 

교회협 인권센터 소장 박승렬 목사와 사무국장 김민지 목사를 6월의 마지막 날, 한국기독교회관에 있는 교회협 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취재 현장에서 자주 만나긴 했지만, 정작 교회협 인권센터가 어떤 길을 걸어 왔고, 어떤 방향성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자세히 들어본 적 없었다. 이참에 더 많은 이들에게 한국교회 유일의 인권 전문 기관을 소개하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권센터가 사무실로 쓰는 한국기독교회관 508호실에는 여러 단체가 상주해 있다. 교회협 인권센터에게 할당된 곳은 책상 두 개.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사무국 직원이 적어도 4명 이상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많은 일정을 이사장 홍인식 목사와 함께 세 사람이 소화하고 있다. 김민지 목사는 "지금 가장 큰 바람은 사무국 확충"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교회협 인권센터 사무국장 김민지 목사(왼쪽)와 소장 박승렬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협 인권센터 사무국장 김민지 목사(왼쪽)와 소장 박승렬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독립성' 위해 교회협 지원 안 받는 별도 조직

교회협 인권센터는 정확하게 따지면 교회협과는 별도 조직으로 봐야 한다. 교회협 인권위원회의 명맥을 잇는 차원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름으로 걷고 있지만, 교회협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건 아니다. 자체적으로 구성한 이사회와 개인 후원을 통해 사무국을 꾸려 간다.

이 같은 조직 형태는 1974년 처음 교회협 인권위원회가 세워졌을 때부터 갖춘 것이다. 교회협 인권위원회 역시 별도의 사무국을 두고 교회협과 별도로 재정을 운용했다. 군사독재 정권이 교계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인권위원회 활동을 무산시킬 수도 있고, 친정권 성향의 교계 지도자들이 인권위원회 활동에 부당한 압력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 같은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교회협 인권위원회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회협 인권위원회가 '목요 기도회' 등을 조직해 군부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김민지 목사는 "그때는 인권 단체가 아예 없었다. '인권 운동'이라는 용어도 없을 때였는데, 인권위원회가 '교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민사회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인권위원회는 다른 운동 단체들처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약화됐다. 국가 폭력이 이전처럼 많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교회협 내부적으로도 인권위가 별도 조직으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논했다. 논의 끝에 인권위는 교회협 정의평화위원회와 합쳐졌다가 1994년 '한국교회인권센터'로 다시 발족했다.

인권위 20주년 기념 사업으로 '인권 전문 기관'을 표방하며 시작했지만 의제 선점에 실패했다. 시민사회는 이미 노동, 사회복지, 장애, 여성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인권 운동이 나뉘어 진행될 때였다. 이름은 있지만 유명무실한 단체로 근근이 명맥이 이어졌다.

박승렬 / 그동안 국가 폭력으로부터 인권 보호를 외쳐 왔는데, 이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확하게 인권이 무엇인지, 정치적 자유만 확보되면 인권이 보장되는 것인지에 대한 '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국가 폭력이 줄어들었으니 인권 운동도 다한 것 아닌가 하는 생이 들었지만, 그 후로도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많았다. 운동에 대한 개념 정립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교회협 인권센터'로 재출발했다. 이후로는 '교회' 이름을 내걸고 시민사회와 연대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교회협 인권센터가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한 자리에 일부 개신교들이 난입해 방언 기도로 행사를 무산시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6년, 교회협 인권센터가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한 자리에 일부 개신교들이 난입해 방언 기도로 행사를 무산시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소수자 이슈 놓고 '다른' 목소리 내자
교회협 회원 교단이 압박하기도

새롭게 조직을 꾸린 교회협 인권센터는 성소수자 이슈에도 목소리를 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등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수 개신교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 보니 항의도 공격도 많이 받았다.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예고하면 전화에 불이 나는 건 이제 그러려니 한다.

지난해에는 교회협 회원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 인권센터의 활동을 문제 삼은 일도 있었다. 예장통합은 교회협 인권센터가 회원 교단이 추구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활동을 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교회협 인권위원회 창립 초기 우려했던 일들이 30년이 지나서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박승렬 목사는 착잡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인권은 내가 동의하면 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게 아니다. 일부 목사들은 장애·여성·노동자 인권 운동은 되는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안 된다고 말한다. 인권 운동이 마치 자신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처럼 착각한다"고 말했다.

김민지 목사도 그동안 에큐메니컬 운동에 투신해 왔던 선배조차도 교회협 인권센터의 성소수자 연대와 관련해 부정적 의견이 오가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김 목사는 "본인들이 참여해 온 운동이 성소수자 이슈 때문에 지탄받는 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많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 교육이 미진한데 교회는 더 안 돼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 이슈를 놓을 수는 없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최근 여러 그리스도교 내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해 온 사람들과 함께 '차별과혐오없는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모임'(준)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각기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한 곳에 모으고 이들이 더 힘을 얻어 활동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게 '한국교회'를 내건 교회협 인권센터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김민지 / 교회협 인권센터는 교회협과 별도 조직이지만 교회협이라는 큰 기구 안에 편제돼 있기는 하다. 우리가 다양한 개신교 NGO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외부로 전달하는 매개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협 인권센터가 큰 우산이 되어 작은 단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 그들이 자유롭게 말을 하게 하고, 그런 목소리가 '교회'의 이름으로 들리게 하는 게 우리 역할인 것 같다.

교회협은 한국교회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건 교회학교에서부터 인권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교재를 전수조사한 바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협은 한국교회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건 교회학교에서부터 인권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교재를 전수조사한 바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인권 교육 부재가 불러온 현실
"신학교에서도 인권 교육해야"

교회협 인권센터는 2018년 10월, 교회협 회원 교단과 어린이 선교 단체가 펴낸 교회학교 교재들의 인권 감수성을 조사해 발표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한국교회가 사회보다 현저하게 인권 의식이 떨어지는 이유를 교회학교 내 인권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봤다. 사회는 시대 흐름과 함께 쓰는 말도 개념도 변화하는데 교회 안에서는 누군가를 대상화하거나 혐오의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를 '성경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쓴다.

박승렬 / 한국교회는 인권 교육이 부재하다. 신앙적으로도 충분히 교육받고 있지 않다. 한국교회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전도나 기복적 신앙을 설파한다. 주일학교 때부터 인권에 대한 중요함을 가르쳐 줘야 한다. 학교 교육은 그나마 변하고 있는데, 주일학교 교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권을 세상적인 것이라고 나무란다.

김민지 / 한국교회사를 놓고 보면 수구적 개신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진보적 개신교도 있었다. 그런데 진보적 개신교는 왜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될까. 과거 개신교는 인권 운동의 선봉장이었음에도 그 운동이 교회 현장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교회와 인권 운동이 분리됐고 지금도 그 괴리는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현장에서 일상의 민주화와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 고민의 끝에는 결국 인권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한국교회 시스템이 있다. 신학과 학부, 신학대학원, 인턴십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인권 운동사, 인권 목회, 인권 활동을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역사를 알 수 없는 환경이다. 김민지 목사는 한국교회에 지금처럼 반인권적 기류가 흐르게 된 데는 신학교의 인권 교육 부재도 큰 이유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가 인권 운동에 더 나섰으면 하는 게 두 사람의 바람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여러 외부적 요인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은, 교회를 다르게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점점 극우화되고 있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같은 '교회'의 이름을 내걸고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개신교인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벌써 세 달 가까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를 공동 개최해 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협 인권센터는 벌써 세 달 가까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를 공동 개최해 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우릴 도운 해외 교단들처럼
아시아 억압받는 민중 도울 것"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70~80년대 교회협 인권위원회가 재정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활동할 수 있었던 건 해외 교회의 원조 덕분이다. 박승렬·김민지 목사는 이 역사의 흐름이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들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 민중이 억압받을 때 해외 교인들의 도움으로 민주화를 이뤘던 것처럼, 아시아 지역에 억압받는 민중의 인권을 위해서도 한국교회가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협 인권센터는 필리핀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해 왔고, 지금은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목요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에서 열리는 기도회는 벌써 15회차를 맞았다. 교회협 인권센터와 여러 단체가 돌아가며 매주 기도회를 이끈다. 김민지 목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얀마 상황을 보며 계속 기도회를 지속한다는 건 지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의식적으로라도 미얀마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힘만으로 미얀마 문제를 끌어 갈 수는 없기 때문에 7월 중순,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일본마이너리티센터·대만장로교회 등이 참여하는 아시아 플랫폼도 발족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국을 오래 지원한 동지들과 함께 한국교회 주도로 미얀마 민중을 도울 예정이다. 일단 올해 연말까지 각종 지원을 펼칠 계획이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앞으로도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투쟁 현장에 연대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협 인권센터는 앞으로도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투쟁 현장에 연대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협 인권센터는 앞으로도 해 왔던 것처럼 도움을 요청하는 곳,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지체없이 달려갈 예정이다. 그게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김민지 목사는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정말 안 좋다. 그 배타성 안에서 우리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인권'을 이야기한다. 인권의 가치를 탄생시킨 기독교가 어떻게 하면 교회 현장에서 인권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승렬 목사는 인권 운동은 '품이 넓은 교회'가 되는 길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한 가지 색깔만 강요한다. 하지만 획일화되지 않은 여러 목소리를 받아들이듣 것으로 교회는 품이 넓어질 수 있다. 젊은이들은 한국교회가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 것이라 생각하지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시대와 안 맞는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면 교회가 더 넓어지고 그만큼 선교의 폭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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