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파일도 부처님 은덕으로 잘 쉬셨는지요. 저도 제법 잘 쉰 것 같습니다. 부처님오신날에 대한 감정이나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매년 이날이 되면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무슨 노회한 목회자같습니다만….

각설하고 제가 다니던 신학대학원 바로 옆엔 제법 큰 사찰이 있었는데 매해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신학대학원에서 축하 현수막을 걸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찰에서 축하 현수막을 걸어 줬던 기억이 납니다. 부처님오신날 축하 현수막이 종종 특정 종교인들에게 훼손되는 일이 있었지만 - 그 특정 종교인들이 믿는 종교가 어느 종교라고 말은 안 하겠습니다 - 두 종교가 서로 축하 현수막을 걸어 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 전통은 1996년에 시작됐다고 보아야 할 텐데, 결코 평화로운 계기로 시작된 전통은 아니었습니다. 1996년 북한산자락 반경 1km 내 사찰 세 군데에서 한 달 새 5건의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특히 화계사엔 3건의 화재가 있었는데 이 세 사건 모두 방화 사건으로, 기독교인들 소행으로 밝혀졌지요. 사찰 분위기는 분노와 침통함으로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이 감정의 해빙은 작은 계기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기독교와 대승불교와의 대화'라는 세미나를 진행 중이던 김경재 교수님(한신대)과 학생들이 화계사를 찾아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화재 피해를 입은 법당을 청소하고 돌아갔습니다. 같은 해 12월 화계사에서는 성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었고, 이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신학대학원생들이 축하 현수막을 거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화계사에 진 빚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 기숙사 식당이 일반 식당보다 저렴하긴 해도 그 밥값조차 부담스러운 날이 있었고, 그럴 때면 북한산자락을 살짝 올랐다가 내려오며 화계사의 점심 공양을 보시받곤 했으니까요. 이렇듯 저와 불교는 서로 적대적이거나 경원한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불교에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들이 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런고로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 부처님의 은덕을 느끼며 평온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어떤 글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쩌다 보니 제 유튜브 피드에 계속 올라오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습니다. 영적 전투에 불철주야 골몰무가하는 분들이 운영하는 채널 같은데, 그 채널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대충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만이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싫어하신다. 그런데 불상은 우상 중 하나다. 그러니 석가탄신일을 맞아 비진리 가운데 갇힌 영혼들을 진리의 복음으로 구출하자! (?) 조계사 앞으로 모여라!"

ftner 유튜브 채널 갈무리
FTNER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 글과 같이 첨부한 사진을 다시 보니, 십자가가 역십자가처럼 보여서 반기독교 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튼 제가 이 글을 읽었을 땐 이미 몇몇 기독교인들이 조계사 앞에 모여 팻말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는 등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뉴스를 접하는 게 아주 처음은 아닌지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 그거 옛날에 그랬잖아. 그 얘기 아니야?'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10여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죠. 찬양인도자학교라는 단체의 기독교인들이 봉은사 사찰 내부에 들어가 탑을 돌기도 하고 심지어는 법당 안에서 사찰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등 소동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이 있었고, 찬양인도자학교의 주관단체였던 '에즈37' 대표 최지호 목사가 봉은사를 찾아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생소한 말이었던 '땅 밟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됐죠. 그때부터였을까요? 그간 수면 아래 있던 기독교의 배타적 모습들이 재조명되고1), 2010년 봉은사 땅 밟기에 질 수 없다는 듯한 기독교인들의 배타적·폭력적 행태들2)이 보인 것이 말입니다. 

이러한 복음 선포(?)는 과연 효과가 있어서 지나가던 이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갰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 올해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앞에서의 소동 사건을 보도한 뉴스의 댓글들을 확인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3) 그러면 대체 이런 행위들은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요?

저는 기독교인들이 이런 배타적·폭력적 사건을 접할 때마다 '구령의 열정으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의 마음을 의심하거나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같은 인식으로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방식으로 전도하는 건 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저런 분들 같은 열정이 내게 있었나?' 같은 생각이 타 종교를 향한 배타적·폭력적 행태의 양분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교회 안에서 노방전도를 포함한 이런 형식의 전도 사역은 일종의 기피 사역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차원에서 '왜 교회 안에서 이런 형식의 전도 사역이 기피되는 것인지' 생각하고 (기도도 하고) 솔루션을 내놓아야 할 텐데, 교회는 늘 쉬운 방식을 택해 왔습니다. '우리처럼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저런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을 향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으로 말입니다. 돈도 안 들고, 노력도 안 들고, 범사에 감사한 마음까지 갖게 되니 왠지 참 그리스도인이 된 것 같잖아요? 이제 여기에 '근본주의 코인' 노리고 이런 소동을 기획하는 사람까지 합세하면 완벽한 듯하네요. 우리가 일궈 낸 토양에서 맺은 결실인데 자꾸 '일부', '일부' 하면서 모른 체하기도 이젠 좀 민망하지 않은가요?

문득 마태복음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음, 그래요. 한 가지 가정을 해 봅시다. 크리스마스에 임의의 종교 단체 회원들이 한국의 대형 교회들 앞에 가서 "너희의 종교가 틀렸으니 우리 종교를 믿어라"고 외치는 집회·시위를 한다면, 과연 그분들은 그날 다치지 않고 귀가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가정까지 하니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앞에 가신 분들은 대체 어떤 자신감으로 그곳에 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지켜 주리라 생각했나…. 아무튼 그분들이 이 글을 보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전해 주고 싶네요.

"아 쫌 제발 예수 믿고 정신들 체리 세요."

오세요 / 오늘보단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새는 어제보다는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백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1) 2006년 Again 1907 in Busan 집회 (일명 사찰이 무너지게)
2) '조계사 땅 밟기' 관련 유튜브 영상, <뉴스앤조이> 관련 기사, <조선일보> 관련 기사, <세계일보> 관련 기사, SBS 관련 대담, SBS 관련 보도, <뉴시스> 관련 기사<중앙일보> 관련 기사, <한겨레> 관련 기사 등.
3) <중앙일보> 관련 기사 , MBC 관련 보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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