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올해로 18주기를 맞는 동성애자 故 육우당 추모 기도회에는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육우당뿐만 아니라 그가 떠난 이후 세상을 등진 성소수자들도 함께 추모하는 시간이다.

성소수자 혐오과 차별에 맞서 싸우다 스러진 이들을 기억하는 기도회가 4월 22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김희헌 목사)에서 열렸다. 올해 2~3월 사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으로 살아가던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 곁을 연이어 떠났다. 강단은 앞서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의미를 담아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 색인 하늘색·분홍색·하얀색으로 꾸몄다. 기도회 현장에는 순서를 맡은 이들만 참석했고, 60여 명이 무지개 예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 참여했다.

올해 18주기를 맞은 故 육우당 추모 기도회가 4월 22일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올해 18주기를 맞은 故 육우당 추모 기도회가 4월 22일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도회는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기도 △젠더 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 △HIV/AIDS 감염인을 위한 기도 △사회구조와 제도의 변혁을 위한 기도 순서로 진행됐다.

"얼마 전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자신의 삶을 걸고 싸웠던 이들을 당신의 품에 맡겼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군인으로, 정치인으로, 그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상한 사람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맞섰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은 여기 남은 이들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들을 죽인 세상을 향한 분노와 두려움 또한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먼저 떠난 이들을 품으신 그 품으로 우리 또한 품어 주소서."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 중)

 

"많은 변화를 겪으며 적응하는 데 애쓰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특히 성소수자임을 인식하거나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같든지 다르든지 간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애정을 느끼는 대상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누구이든지 간에 사랑은 당신이 우리에게 선물하신 놀랍고 신비로운 감정임을 경험하게 해 주세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기도 중)

 

"젠더 폭력에 희생되거나 생존한 이들, 그리고 여전한 폭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으로써 삶을 향한 열망을, 미움에 지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고자 합니다. 인간으로서, 온전한 사람으로서, 폭력과 혐오에 지지 않고, 누구나 안전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햇살을 누리고 밤거리를 누비고 직장과 가정과 교회와 그 모든 일상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죽음이 아니라 축복된 삶을 떠올리듯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젠더 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 중)

 

"하나님께서 이 사회의 차별받는 소수자인 HIV/AIDS 감염인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HIV/AIDS 감염인들도 이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으로 인해 숨어 지내기를 직간접적으로 강요받습니다. HIV/AIDS 감염으로 인해 나타나는 병증 못지않게, HIV/AIDS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막연하고도 강력한 편견들이 HIV/AIDS 감염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HIV/AIDS 감염인들이 차별과 소외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HIV/AIDS 감염인들과 함께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HIV/AIDS 감염인을 위한 기도 중)

 

"약한 자로 오신 갈릴리의 하나님! 모든 생명이 차별과 혐오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사회가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존재가 차별적 법률 조항으로 배제되지 않기를, 국가권력의 폭력 속에서 목숨을 잃는 존재가 다시 없기를 바랍니다. 제도와 구조가 무지갯빛을 담아 인종, 출신 국가, 피부색, 성적 지향, 장애, 학력 등의 이유로 차별받는 이가 없게 하시고, 그 일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사회구조와 제도의 변혁을 위한 기도 중)

캐나다연합교회 KRU는 '우리는 무지개'라는 특송 영상을 제작해 보내왔다. Korean Rainbow United 유튜브 채널 갈무리
캐나다연합교회 KRU는 '우리는 무지개'라는 특송 영상을 제작해 보내왔다. Korean Rainbow United 유튜브 채널 갈무리

올해는 특별히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가 기도회에 참여했다. 캐나다연합교회 총무 마이클 블레어 목사는 영상으로 인사했다. 블레어 목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서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추모와 성찰 그리고 연대의 시간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연합교회 KRU(Korea Rainbow United)는 '우리는 무지개'(We are a Rainbow)라는 특송 영상을 제작해 보내왔다. KRU는 캐나다연합교회 내 한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그룹으로 한국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연대하기 위해 '무지개예수'에도 참여하고 있다. KRU 박하나 목사는 "지금의 저항이 결국은 정의를 이룰 것이고,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대는 할 수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찾을 수 있게 손잡으며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게 저희를 이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성찬식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각자 먹거리와 음료를 준비했고, 집례자의 진행에 맞춰 성찬식에 참여했다. 기도회는 공동 축도문을 함께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주최 측은 기도회 영상 일부를 수정해 23일 오후 8시 무지개예수 유튜브 채널에 다시 게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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