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추모 기도회'가 4월 25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청소년 성소수자 고 육우당六友堂은 16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반동성애 활동이 왕성해질 무렵,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육우당을 추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2013년부터 그의 기일 즈음 기도회를 연다.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추모 기도회'가 4월 25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렸다. 올해도 기도회 풍경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가 오는 중에도 120여 명이 모였다.

성소수자와 관련해 한국교회가 주관하는 기도회는 대부분 존재의 반대 혹은 혐오 일색이다. 성소수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 주는 개신교 행사는 이 기도회가 유일하다. 1년에 1번 있는 기도회에는 성소수자 당사자는 물론 앨라이(지지자)도 참여한다.

올해는 액자가 한 개 더 늘었다. 사람들은 이 앞에 서서 액자 속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배당 뒤편에는 육우당을 비롯해 기억하고 싶은 이들의 모습을 담은 액자가 놓였다. 2016년 네 개였던 액자가 이제는 일곱 개로 늘어났다. 참석자들은 밝은 얼굴로 웃고 있는 액자 속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국화를 헌화하고 그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설교 없이 찬양과 기도, 말씀 봉독, 성찬으로 이어지는 간결한 형식으로 진행됐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참가자들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거나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거나 옆 사람 손을 꼭 잡고 기도문을 읽어 내려갔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지해 줄 안전한 환경과 사람들을 허락하시어,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이 아닌 평범한 자신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 또한 뭇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지게 하소서.

더불어 언제나 함께하시어, 그들이 혼란의 시기에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과 혐오를 마주했을 때 겪을 정신적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하시고 굳건하게 하소서. 세상이 배제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의 환대로 다시 사신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기도문을 낭독한 후 혐오와 차별, 젠더 폭력에 희생된 이, HIV/AIDS 감염인을 위한 기도문을 읽었다. 더 많은 교회가 성소수자를 환대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우리는 서로 다르나 한 빵과 잔을 나누며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 사랑에 참여한다"고 기도하며 성찬에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찬을 마친 참석자들은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의 "기도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혐오와 차별이 끝나고 온전한 하나님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루어지는 그 뜻을 기억하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자"는 말과 함께 손을 맞잡고 서로를 위해 축도했다.

손에 손을 잡고 공동 축도문을 읽는 참석자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도회에 처음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본인을 성소수자라 밝힌 남성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동성애 반대에 적극 나서지는 않지만, 내 정체성을 드러내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아직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회에 참석해 보니 내 존재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독교 대학에 다니면서 학교가 여성·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태도를 보고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도 있었다. 한 20대 여성은 기자에게 "이런 기도회는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이 주제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기도회였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출신인 또 다른 참석자 역시 "나 역시 기독교인임에도 학교가 동성애 반대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석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고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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