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의 냄새를 맡지 않았어요. 난 개가 아니랍니다(I didn't smell him. I'm not a dog)."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ExtraTV 리포터가 여우조연상 시상자이자 영화 '미나리'의 제작자였던 브래드 피트를 가까이에서 접한 윤여정에게 "브래드 피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는가?(What Brad Pitt smelled like?)"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나는 개가 아니다"라며 위트 있고도 정중하게 답변했다. 유명 스타를 만난 사람들에게 묻는 표현이라고는 하지만, 국적만 다를 뿐 평생을 연기하며 살아온 대배우에게 무례한 질문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질문이 논란을 일으키자 해당 매체는 사이트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다. 이후 쏟아진 질문들 역시 그의 연기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보다 브래드 피트에 관한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만일 윤여정이 아시아 배우가 아닌, 미국 또는 백인 배우였다면 이런 식으로 질문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짧은 인터뷰 속에서도 우리는 공기처럼 스며든 인종차별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분. 사진 출처 ABC News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분. 사진 출처 ABC News

차별과 배제는 어느 사회에서든 소수인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합리·불공정이다. 다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이 소수자에게는 위협과 상처가 될 수 있다. 성경은 다수 안에 깃든 무지·편견을 깨뜨리며, 만민이 예배자로 서는 하늘의 꿈이 땅 위에서 실현되어 가는 지난한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으로 다른 언어들의 향연이 펼쳐진 축제의 자리에서도 이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란을 떨며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다. 일부는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면서 다수가 일관되게 경험해 오던 일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잠깐 일어나는 소동이자 예외적 현상으로 치부하려 했다. 그때 베드로가 요엘서 말씀을 인용하며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 예언이 실현됐다고 선포하며 전통의 한계를 깨뜨렸다(행 2장).

그러나 베드로 역시 성령의 역사를 '유대인'이라는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이고 있다가 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욥바에서 기도하던 중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와 그 안에 담긴, 유대교 입장에서는 속되다 여기는 짐승들을 먹으라는 환상을 세 번이나 경험한 것이다. 베드로에게 새로운 변화의 지평이 열린 것은 그를 찾아온 친유대교적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비로소 베드로는 화평의 복음이 만민에게 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 이방인에게도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임하는 것을 목격하며 인종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행 10장).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삶으로 체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던 도중 유대인의 방문 소식을 듣자 베드로는 자리를 피했고, 바울에게 엄중한 질책을 받으면서 자기 안에 깊이 각인돼 있던 집단주의의 한계를 직면해야 했다(갈 2장).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먼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의 틀이 얼마나 견고한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성령은 그러한 제약과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때로는 급진적으로, 때로는 점진적으로 복음이 제시하는 하나 됨을 실현해 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오랜 전통 속에서 빚어 낸,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단번에 교정하기 어렵다. 만약 누군가가 한 번의 이상주의적인 발언과 논리로 모두를 회개시키고, 틀을 깨고 나오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꾼다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또 다른 분노와 혐오일 수 있다. 물론 주류의 시각을 지닌 채 폭력적 언사와 집단행동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변화가 필요하지만, 이들을 손쉽게 구제 불능의 괴물로 몰아가는 일은 '하나 됨'의 비전을 이뤄 가는 과정에서 지양해야 할 태도다. 그래서 더더욱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소망·사랑이 필요한 것이리라.

법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타인에 대한 연민>(RHK)에서 이러한 비전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는 훨씬 섬세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에 타인의 관점을 인정하며, 상대방을 이성적 사고가 가능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심지어 상대방의 사고와 감정이 나쁜 방향으로 발현되는 경우에도 말이다. 타인을 대할 때 친밀한 형태의 교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를 온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을 행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말자는 이야기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차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힌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온갖 차별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상상력의 세례'를 경험해야 한다.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은데, 먼저는 '함께 성경 읽기'다. 미국 사회 주류를 형성하는 백인 중산층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시애틀 부자 동네에서 자란 장로교(PCUSA) 목사 밥 에크블라드(Bob Ekblad)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 성경 읽기>(성서유니온)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그는 인종, 이데올로기, 사회적 신분, 불법체류, 교육 등으로 지배 계층에서 밀려난 소외 계층과 성경을 함께 읽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저주받은 인생 혹은 꼬인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에크블라드는 이들과 함께 '도덕적·종교적 규범으로서의 성경 읽기'가 아닌, 생명과 자유의 길로 부르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는 '열린 마음의 성경 읽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주류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섬김·나눔은 실천하지만, 기도·신앙과 관련된 일대일 대화를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하는 데는 대개 한 발 물러나 있다고 지적한다. 주류 그리스도인은 이들을 골칫거리로 취급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자신만 알고 소외 계층을 외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단과 같은 집단에 기회를 주게 되는 꼴이라는 것이다. 주류가 아닌 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을 때,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당연시하던 시각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예술 접하기'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은 말초적인 감각과 기존 경험을 고착시키는 방식의 오락적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낯선 세계로 안내하는 문학·영화·미술·공연 등이다. 예술 작품 안에 흐르는 이야기에 깊이 동화되고 각각의 삶에 담긴 고유한 서사에 감화될 때, 우리는 이성 속에서 규격화해 박제돼 버린 세상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위로와 안식을 주는 예술 못지않게 불편한 예술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불편한 예술을 접하는 동안은 기존 사고와 다른, 익숙하지 않은 요소들 때문에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진통을 겪어 낼 때 비로소 우리를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던 구습이 허물어지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8)라는 말씀에 담긴 깊고 넓은 서사를 보는 마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갈라진 세상 속에서 틈을 메우는 작은 다리가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세상은 적대로부터 비롯되는 냉기가 아닌, 환대로부터 피어오르는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성현 / 기독교 예술·영화관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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