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모자를 깊이 눌러 썼다. 모자 뒤로 삐져나온 머리칼이 등을 타고 길게 늘어졌다. 왜 머리를 기르는지 물었다. 기르는 게 아니라 내버려 두는 거라고 했다. 언제부터 썼는지 모를 캡 모자가 지금은 신체 일부라도 된 듯 벗는 게 더 어색하다고 했다. 

이지음 씨(길찾는교회)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여름이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폭격한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취지로, 기독교인 10여 명이 서울 청계광장 옆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평화 기도회를 열었다. 집회가 끝나고 몇몇이 점심을 먹으러 종로구청 앞 중국집에 갔는데, 앞자리에 이 씨가 앉았다. 그때도 긴 머리에 캡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이후에도 종종 거리에서 이 씨와 마주쳤다. 그는 각종 집회와 기도회 현장에서 기타를 메고 사람들 앞에 섰다. '사랑이 이기네', '예수 나셨네', '나를 위한 기도' 등 하나님나라 가치를 담아 직접 쓴 노래들을 철거민, 해고 노동자, 성소수자 등 배제와 차별을 당한 이들을 위해 불렀다.

CCM이 예배곡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이지음 씨는 유명 그룹에서 세션과 뮤직디렉터로 활동했다. '어노인팅' 2~9집, '예배 인도자 컨퍼런스' 2002~2009, '예배자의 노래' 1~2집 등에서 그가 작사·작곡한 예배곡과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예배당에서 부르는 노래와 거리에서 드리는 찬양이 본질상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가 활동하는 공간은 분명 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마침 비슷한 시기 그는 보수 성향 교단을 떠나 대한성공회 길찾는교회(민김종훈 신부) 개척 멤버로 합류했다. 신앙에 터닝 포인트가 있지 않았을까. 이지음 씨를 3월 8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 예상은 틀렸다. 명망 있는 예배 사역팀 뮤지션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안정적인 지위를 버리고 거리의 음악가가 되었다는 뻔한 스토리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가 세상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는 동일했다. 


예수는 품 같은 사람
여인을 죽이려던 율법의 손
멈추게 한 평화

예수는 품
그분은 품 같은 사람
배제당하고 차별받는 약자들을
그 품에 안은 넉넉한 울 예수님
- 품 (2012, 이지음 사·곡)

어노인팅 뮤직디렉터로 활동
'주의 인자하신', '어떤 말로도' 등 작곡
"예배곡은 모든 성별・연령 부르기 편해야"
이지음 씨는 작업실에서 미공개 곡 '미리암의 노래'를 불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지음 씨는 작업실에서 미공개 곡 '미리암의 노래'를 불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작업실이 아담합니다. 악기들도 종류별로 있네요. 

"일이 없을 때는 보통 작업실에 있어요. 곡을 만들고 노래도 부르고. 장비는 별거 없어요. 전부 저렴한 악기들이에요. 저는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서.(웃음)"

- 코로나19로 요즘 외부 집회나 행사가 거의 없죠?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부터 하던 웹 사이트 제작과 음향 장비 설치 같은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어요."

-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쓴 곡이 많은데, 따로 음반을 내지는 않으셨어요. 

"발표할 생각은 있어요. 제가 음반을 낸다고 수익과 연결되지는 않을 테지만,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불편하신 것 같더라고요. 할 일이 많아서 지연되고 있지만 계속 준비하고 있어요. 우선은 길찾는교회 노래들로 음원을 만들고 있어요. 길찾는교회를 통해 만난 현장과 그 속의 이야기들로 만든 예배곡인데 혼자서 만드는 게 힘에 부치네요. 사실 음원 제작이 돈이 꽤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의 작업실은 두 사람이 앉기 불편할 정도로 비좁았다. 컴퓨터와 음향 장비, 악기들이 사면으로 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이 좁은 방에서 종종 먹고 잔다고 했다.

이 씨가 쓴 노래는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서 들을 수 있다. 악보는 길찾는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상업적(음원・영상・음반 등의 매체화 또는 비준한 이용을 통한 수익) 이용 외 조건으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 어노인팅 소속일 때는 꽤 많은 앨범에 참여하셨죠.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소속은 아니었고 협력하는 관계였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비전을 갖고 힘을 모아 일을 해 나갔던 모습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네요.

몇 차례 (가입) 권유가 있긴 했지만, 서로 독립적인 관계가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2집 때 처음 기타 연주자로 참여했다가 나중에 뮤직디렉터로 활동했어요. 앨범에 사용할 예배곡도 여러 곡 만들었고요. 정규 앨범과 '예배 인도자 컨퍼런스', '예배자의 노래' 시리즈를 포함하면 어노인팅과 함께한 앨범이 16~18개 되는 거 같네요."

- 9집 메이킹 영상에서 지음 씨와 강명식・박기범 씨가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어요. 무척 가까워 보였는데 원래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요?

"예전에 C3TV(현재 GOODTV)라는 기독교 인터넷 방송사에서 웹PD로 재직하면서 웹 서비스 기획과 콘텐트 제작을 담당했어요. 그때 맡은 웹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강혁(좋은씨앗)의 클릭! CCM'이 '강명식의 클릭! CCM'으로 개편되면서, 강명식 씨를 처음 알게 됐죠. 어노인팅 박기범 대표님은 이전에 안면이 있었는데, 우리 프로그램 게스트로 참석하면서부터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 웹 라디오는 실시간으로 방송하지 않았어요. 2~4주 분량을 미리 녹음하고 일정 주기로 공개하는 식이었죠. 몇 시간 동안 함께 녹음하고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박 대표님이 저를 좋게 보셨는지 어노인팅 2집을 준비할 때 연주와 편곡을 요청하셨죠. 그때부터 계속 같이하게 됐어요."

-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CCM과 예배곡, 신앙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박 대표님은 예배곡에 관심이 무척 크셨거든요. 특히 한국적인 예배곡이요. 어떤 분위기로 만들고, 어떻게 편곡해야 할지 고민이 많으셨죠."

- 한국적인 예배곡이요?

"민요나 판소리처럼 전통악기가 등장하는 전통음악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저는 음악이 시간과 공간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매개라고 생각해요. 노래와 연주로 '지금', '여기'에 있는 회중과 함께 여러 경험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거든요. 함께 환호하거나 울게 되는 정서의 흐름을 예배곡 구성과 배치로 만들어 나가는 거죠. 예배곡이 이렇게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21세기 한국 정서와 어울리는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예배곡이 무엇인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사실 어노인팅 자체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사역 단체였던 거 같아요. 세련되고 완벽한 연주를 일부러 지양한 건 아니고, 교회 예배팀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의 연주를 지향했어요. 외국의 예배곡을 번역할 때도 발음이나 음절을 신경 쓰며 표현하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우리 상황에 맞는 예배곡을 한국교회에 보급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노래도 많이 만들고, 작곡 세미나를 열어 신진 작곡가를 양성하는 프로젝트도 기획했어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이 '예배자의 노래'예요."

- 저도 학생 때 교회에서 기타를 쳤는데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세션들이 돌아가며 독주하는 노래가 많았는데, 연주를 따라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예배곡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인 수준이 아닌 교회 찬양팀이 연주할 수 있고,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교인들이 함께 부를 수 있어야 하죠.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제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의식은 대다수 찬양 인도자가 남성이라는 거예요. 음이 한없이 높아져요. C key 찬양을 D~E key까지 높이는 분도 봤어요. 남성 인도자 본인은 그렇게 질러 대면 후련하고 좋겠지만, 여성이나 피치가 낮은 남성은 부르기 힘들겠죠. 사람마다 음역대가 다르니까요."

이런 생각 때문인지 이 씨가 만든 예배곡은 고음을 사용하지 않아 대중이 부르기 편하다.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주의 인자하신'(박기범 사, 이지음 곡)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고백이 담긴 노래로, 단순한 멜로디를 활용해 차분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8집에 실린 '이제 우리 함께 모여서(이지음 사·곡)'는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불리는 축복송이다. 한국교회에 익숙한 '사랑의 주님이(작자 미상)'를 리드미컬하고 밝은 느낌으로 재탄생시켰다.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내 생명보다 나으며
위로하시는 주 손길은
내 눈물보다 귀하다

결국 내 주님과 함께 사는 것
나의 영원한 소원
주의 아름다움 안에 사는 것
나의 영원한 기쁨
- 어노인팅 9집 '주의 인자하신' (2010, 박기범 사, 이지음 곡)

"앞으로도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싶어요." 뉴스앤조이 박요셉
"앞으로도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싶어요." 뉴스앤조이 박요셉

- 어노인팅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앨범이 '예배자의 노래' 2집이었어요. 이후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노인팅 정규 앨범 10집 제작이 2011년부터 시작했는데 그때 몸이 아팠어요. 몇 달간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었죠. 근황을 주변에 자세히 알리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킨 거 같더라고요. 어노인팅도 비슷한 시기 내부 변화를 겪고 있었어요. 정기 예배를 시작하고 사역팀 구조도 개편해 새 멤버들을 영입했죠. 제가 협력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음반 제작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이러한 상황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전처럼 소통하지는 않게 됐죠."

학창 시절 교회 음악에 관심
"그리스도는 약자 중심 평화 추구, 
예배곡에 사랑과 평등 강조"

이지음 씨는 학창 시절부터 교회 음악에 흥미를 보였다. 김민기·백창우의 기독교 민중가요, 80년대 복음성가를 즐겨 불렀다. 독학으로 배운 기타로 코드 진행과 가사, 멜로디를 어설프게 붙여 가며 곡을 만들었고, 몇몇 곡은 친구들과 함께 부르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60여 곡을 만들었다.

교회에서 받은 영향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이 씨는 초등학교 때 교회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 진지한 신앙을 가진 건 중학생이 되고 나서다. 처음 출석한 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이었다. '야훼여 힘을 내소서'나 '민중의 하느님' 같은 기독교 민중가요를 처음 접한 곳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회가 교단을 나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으로 옮겼다. 그 과정에서 한신대 출신의 좋아하는 목회자들이 모두 쫓겨났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분쟁의 소용돌이가 교회를 덮쳤다. 어떤 이유인지 교회가 순식간에 싸움터로 변했고, 어른들은 주일마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싸웠다. 그 모습을 견디지 못해 교회를 떠났다. 

- 어린 나이에 별일을 다 겪으셨네요. 

"교회를 한동안 안 갔어요. 그런데 새벽 기도만이라도 나가고 싶더라고요. 고등학교 진학하고 나서 집 근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교회였는데 꽤 오래 다녔죠. 군대 갔다 오고 나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에서 음향 간사로 지내고 나중에는 지방 개척 교회도 섬겼어요. 그러다가 잘 아시는 것처럼 지금 출석하는 대한성공회 길찾는교회 개척 멤버가 됐죠.

의도하지 않았는데 한국교회 주요 교단을 두루 경험한 셈이죠. 교단마다 분위기와 신학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교단은 다채로운 기독교 전통을 수용하는가 하면, 또 다른 곳은 타 교단을 거의 이단으로 여기더라고요. 이상했죠. 우리가 믿는 대상은 같은데 믿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차츰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복음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복음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어릴 때 교회 분쟁들을 보고 당황했어요. '이게 뭐지?', '이게 교회가 그렇게 강조한 신앙생활의 결과인가?', '이들에게 복음이란?' 혼란스러웠죠. 사실 저도 아직 답을 찾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과정 중에 있어요. 민김종훈 신부님과 교인들이 '길찾는교회'라고 이름을 지은 것도 이러한 고민 때문이에요." 

이 씨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게 오만하고 위험하다고 봐요. 많은 사람이 전광훈 목사 같은 극우 성향 개신교를 비판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복음은 이런 거야. 기독교는 이래야 해'라고 단정하고 다른 이를 배제하는 순간, 자칫 우리가 싫어하는 이들 모습을 닮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분들이 옳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무언가 확신에 가득 차 있을 때 가장 헛발질하기 쉽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무엇이 복음이다', '무엇이 신앙이다'라고 말하는 건 제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설교자는 그리스도가 '칼을 주러 왔다'는 말을 인용하며 기독교가 벌을 주는 종교라고 말해요. 그런데 제가 본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거든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일관된 모습을 보여요. 억울한 사람, 권력의 중심에 있지 않은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이들이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였어요. 그리스도가 추구한 건 결국 '약자 중심의 평화'라고 생각해요."

지음 씨가 2017년 12월 25일 KTX 해고 승무원을 위한 성탄 연합 감사 예배에서 '예수 나셨네'를 부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음 씨가 2017년 12월 25일 KTX 해고 승무원을 위한 성탄 연합 감사 예배에서 '예수 나셨네'를 부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그래서인지 지음 씨가 지은 예배곡에는 차별・혐오을 반대하고 사랑・평화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은 것 같아요. 

"어노인팅과 활동할 때부터 이런 메시지를 노래에 담으려 했어요.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사랑을요. 그때는 제 주된 역할이 연주자이고 뮤직디렉터였기 때문에 본분에 충실했고요. 나중에 제 메시지를 좀 더 담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8~9집에서 그런 시도를 했었죠.

축복송 '이제 우리 함께 모여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를 현대적으로 만든 노래예요. 그 곡의 가사를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주님의 사랑이 나'만'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나도 너를 사랑하며 섬기'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이 가사에서 언급한 '너'라는 존재는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랑과 섬김을 실천할 때, 모든 존재를 향한 차별 없는 평등이 시작되는 거고요. 예배자의 노래 2집에 실린 '성찬의 식탁'도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에요."

성찬의 식탁으로
주님이 초대하네
어떤 차별도 없이
누구나 오라 하시네
- 성찬의 식탁 (2011, 이지음 사·곡) 

"당시 제가 가진 생각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차이가 있다면 어노인팅에서 활동했을 때는 절충된 언어를 사용하려고 했다는 정도.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가사를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더 낮은 곳으로 흘러'(예배자의 노래 2집)는 포이동 판자촌 주민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에요. 이때 포이동에 화재가 났거든요. 마침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서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찔렸어요. 우연히 소셜미디어에서 물품 기부 요청을 보고 집에 있는 옷과 생활용품을 전해 드리고, 혹시 기부에 동참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변에 공유했는데 별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냉소는 아니었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며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씁쓸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들었던 마음과 생각, 신앙에 대한 고민을 다듬고 정리해서 만든 노래가 이 노래예요. 약자의 자리로 나를 초대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곡이죠." 

주인 되신 예수님 그 손으로
내 더러운 발을 씻기실 때
섬겨 주신 예수님 나도 역시
낮은 데로 가서 섬기라네
- 더 낮은 곳으로 흘러 (2011, 이지음 사·곡) 

- 지금까지 많은 집회에 참석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2013년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문화제요. 동성애자인권연대(현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지인을 통해 노래 요청을 받았어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눈물이 만든 무지개 너머'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를 계기로 좀 더 현장성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고 육우당 이야기는 2011년쯤 처음 들었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죽음에 책임을 피하기 어렵더라고요. 신앙을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고, 그 혐오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었잖아요.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할 때, 우리의 죄가 그를 때리고 찌르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백할 때가 있죠. 그 고백이 진심이라면 더 이상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를 혐오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육우당을 비롯한 여러 성소수자가 희생당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겨우 노래를 만드는 것뿐이었어요. 

'눈물이 만든 무지개 너머'는 육우당과 여러 성소수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예요. 그리고 남겨진 우리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한 것 같아 '사랑이 이기네'를 썼어요."

이 곡은 이후 성소수자를 위한 노래가 됐다. 고 육우당 추모 기도회, 퀴어 문화 축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 기도회 등에서 사람들은 공식 노래처럼 '사랑이 이기네'를 불렀다. 2014년 11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촛불 문화제'에서 이 씨는 특송으로 '사랑이 이기네'를 노래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부르는 노래이고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별'에 대해서 감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만든 노래입니다. 그분들에게 혐오로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한 노래입니다. '차이로 가르는 차별로는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런 차별은 복음을 죽이는 일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들아!"(환호)

자비를 베푸는 것이 심판을 이기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
차이로 가르는 차별은 사람을 죽이는 것
미워함으론 사랑을 말할 수 없네

사랑하세 사랑이 이기네

모든 차별과 미워함은 우리 것이 아니네

사랑하세 사랑이 이기네

우리를 사랑한 사랑으로
- 사랑이 이기네 (2011, 이지음 사·곡) 

2017년 육우당 추모 기도회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이지음 씨.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7년 육우당 추모 기도회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이지음 씨. 뉴스앤조이 이은혜

 - 앞으로 만들고 싶은 노래가 있나요? 

"제가 그렇게 멀리 볼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닌데요. 지금도 여러 한계에 부딪히며 지내고 있거든요. 고정 월급이나 보장된 미래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제 삶이 여유롭고 풍족하지 않은 덕분에, 그리스도가 편들었던 사람과 제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들의 약자성이 제게도 있으니까요. 제가 만든 노래가 사실은 저를 위한 노래였던 거죠. 

앞으로 계속 음악을 만들 여유가 허락된다면, 연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여성주의 노래들을 만들거나 관련 음악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요. 신앙의 보편성을 추구하며 세대와 성별, 교단이나 신학을 극복하는 노래를 만드는 게 제 바람입니다. 

낙관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저는 한국교회가 변할 거라고 믿어요. 기독교 역사를 조금이라도 살펴보면 교회와 신앙이 계속 변하고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거든요. 과거 권위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토론 주제 중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에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있어요.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백인의 천국과 유색인의 천국이 같은가'를 두고 격론을 펼쳤다고 하니 우습죠. 그런 부끄러움도 기독교 신앙 역사 중 일부였어요.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혐오의 역사를 갱신 중이에요. 언젠가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지금의 혐오와 차별을 충분히 부끄러워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비록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아슬아슬하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변화의 지점을 만들 거예요.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내보내다 보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 동의하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그렇게 동의하는 지점들이 계속 쌓이고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 그 지점들이 한국교회를 바꾸는 변곡점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나는 듣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내게 말하든지
당신의 약속 그것은 나를 위한 든든한 평화
우리 걸어갈 때 어리석은 길로 돌아서지 않으면
당신의 이끄심, 우릴 위해 준비된 분명한 평화

그 사랑이 진실과 서로 만나게 되고
정의와 참 평화가 함께 입을 맞추며
땅에서는 참된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지켜보리라

그 언젠가 좋은 날이 찾아올 때엔
끝내 땅은 그 씨앗을 열매 맺으리
당신 앞을 정의가 이끌어 주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

- 평화의 약속 시편 85 (2020, 이지음 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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