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해마다 4월이면 세상을 먼저 떠난 동성애자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故 육우당. 그는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공개적으로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국민일보>와 침묵으로 동조하는 수많은 기독교인을 향해 유서를 쓰고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번 기도회는 4월 24일 오후 8시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처음 육우당 추모 기도회에 참석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2013년부터 진행했다는데, 제가 참석한 시점은 2016년이었습니다. 옅은 어둠이 깔린 명동 향린교회 입구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예배당에 모인 이들 중에는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던 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분위기는 평소와 사뭇 달랐습니다. 물먹은 솜마냥 차고 무거웠던 공기로 가득한 예배당에서, 누구는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큰 소리로 인사했고, 누구는 말없이 눈인사만 건네고 지나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순간입니다만, 저는 예배당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기도회 취지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개신교계 사람들이 주관하는 추모 기도회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회 이후 장면 하나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예배 중간, 견디다 못한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 바닥에 드러누워 울기 시작했고, 그 울음소리는 처음 기도회에 참석한 제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듬해 저는 또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분위기는 전해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1년 사이 새롭게 추모해야 할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육우당 외에 추모해야 할 이의 모습이 담긴 액자가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참석한 이들은 기도회 말미에 손바닥을 마주 대고 공동으로 축도합니다. 그들의 맞잡은 손이 '우리 꼭 살아서 내년에 또 만나자'며 다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손바닥을 마주 대고 공동 축도를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도회 참석자들은 손바닥을 마주 대고 공동 축도를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찾아왔고 육우당 추모 기도회는 온라인으로 열립니다. 거리에서 한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도회. 주최 측은 "아직 오지 않은 평등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회에 여러분을 초청한다"고 밝혔습니다.

17년 전과 비교해 보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개신교인으로서 육우당에게 미안한 게 많습니다.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성소수자 혐오는 더 거세졌습니다. 교계에는 동성애를 두고 진지한 토론 대신 가짜 뉴스를 동원한 혐오 선동만 가득합니다. 교계의 조직적 반대 운동은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평등 사회로 가는 길목에 놓인 차별금지법 제정 역시 수년째 제자리걸음하게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교회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천주교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4월 22일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와 종교의 사회적 역할' 토론회에서 "인간과 세상을 향한 성숙하고 올바른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것을 위해 사회와 실재 속에 존재하는 불의함과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갈등과 분쟁을 넘어 마음을 한데 모으고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앞으로 어떤 교회를 꿈꿔야 할까요. 반동성애 진영은 차별금지법 제정 등으로 동성애를 '인정'만 하게 돼도 교회와 사회질서가 곧 무너질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육우당이 꿈꾸는 세상은 동성애자만 특별 대우하는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어우러져 한데 어울리는 평화로운 사회였습니다. 시조시인을 꿈꿨던 육우당이 남긴 '낙원가'를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평화로운 세상이여
어두컴컴 암흑 세계 잡아먹고 어서 오라
은하수가 흐르듯이 꽃잎 타고 흘러오라
평등 평화 아름다운 세상이여 어서 오라
동성애자 보호받고 장애인도 존중받고
흑인 또한 사람대접 받는 세상 낙원이여
그런 날이 온다면은
모든 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것이다"
- '낙원가', 육우당

※기도회 순서지 다운로드(주최 측은 오후 7시, 페이스북 페이지에 참여 가능한 링크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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