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입사하고 1년 정도 지났을까. 2013년 어느 날 <뉴스앤조이>는 갑자기 '간첩 단체'로 몰렸다. 자신을 선교사라고 주장하는 박성업이라는 자가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는데, 우리와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 성서한국, 기독청년아카데미 등 복음주의 사회 선교 단체들이 간첩·종북 단체라는 내용이었다.

그 영상에 따르면 <뉴스앤조이>는 '좌파 양성소' 중 하나인데, 거기서 1년 넘게 일한 나는 주사파의 ㅈ 자도 들어 보지 못했다. 종북 좌파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취재와 기사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별 시답잖은 녀석이 다 있다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예상 외로 이 영상의 파급력이 컸다. 아무리 우리가 적이 많기로서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8년 12월, 우리가 장재형 재림주 의혹을 취재하니 <크리스천투데이>가 또 종북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내용은 5년 전 박성업이 올린 내용과 같았다. 새로운 내용이라면 '한빛누리(김형국 이사장)가 <뉴스앤조이> 돈줄이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법원에서 거짓으로 판명됐다. 참고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뉴스앤조이>에 있던 기자는 나와 이용필 기자밖에 없다. 우리 둘이 좌파를 양성했다? 나와 이 기자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음모론은 항상 있었다. 그리고 반복된다. 최근 떠오르는 젊은 극우 유튜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별 시답잖은 녀석이 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예상 외로 파급력이 크단다. 그에게 지목된 목사들이 강연을 취소당하고 온라인상에서 갖은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종북이나 주사파 세력이 한국교회와 사회를 전복하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영향을 미치다니. 지금은 2021년인데, 이제는 좀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몇 년 단위로 돌고 도는 종북 교계 단체 음모론. 이번엔 또 누구냐. 
몇 년 단위로 돌고 도는 종북 교계 단체 음모론. 이번엔 또 누구냐. 
철 지난 간첩·백마스킹 타령
동성애 반대하다 퇴학?
변승우의 사랑하는교회 출신

유튜버 김 아무개 씨는 스스로 '전도사'라 칭하며 교회까지 개척했다. 그의 강연을 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박성업과 이정훈, 염안섭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박성업처럼 웬만한 목사들은 전부 종북·좌파 취급이다. 이정훈처럼 현대 철학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염안섭처럼 동성애가 교회와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이 있다면, 홍정길 목사와 고 옥한흠 목사도 종북으로 매도하는 정도.

김 씨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예를 들어 보자. 김 씨가 작년 12월 1일 올린 '충격! 한국교회에 침투한 간첩 목사들의 계보!'라는 영상 내용을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익환 목사와 그 아들 문성근 씨는 간첩 짓을 했고, 이 '가문'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이해학 목사이며, 이해학 목사의 사위는 이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고, 이인영 의원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종교를 재편하겠다고 했는데, 소강석·신정호·이철·이영훈 목사 등 '순진한' 교단 수장들이 대북 지원을 이유로 이 의원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간첩 하나 만드는 건 쉽다.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장면도 있다. 올해 2월 13일 게재된 '[다음 세대 편] 미디어에 숨겨진 귀신 역사!(트와이스, 디즈니, 콩순이)|순한 맛'이라는 영상에서는 '백마스킹'(backmasking)을 다룬다. 백마스킹은 음원을 역방향으로 재생할 때 의도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집어넣는 방법으로, 한국에서는 1994년 서태지와아이들 3집에 수록된 '교실 이데아' 때문에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런 음악들이 사탄 숭배니, 예수 비하니 하는 주장들은 근거가 없다. 이런 식이면 복음성가도 사탄 숭배 음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 씨는 아이들이 보는 '콩순이'에 나오는 노래도 예수를 저주하는 백마스킹이라고 주장한다. '엉뚱 발랄 콩순이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라는 노랫말을 거꾸로 돌리면 '우리 예수 짤라 버려 아! 놔! 예수 믿나 봐? 어딜 XXX~ 빨리 예수! 짤라랄라!'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콩순이 영상 조회 수가 1000만이 넘는다며 인구 1/5, 특히 어린아이들이 이를 봤다고 통탄한다. 이런 말을 되게 진지하게 한다. 안타까운 건 김 씨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12만 명이 넘고 얼토당토 않은 내용의 영상들 조회 수가 수만에서 수십만 회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 씨 강연에 나오는 콩순이 백마스킹 장면. 김 씨 유튜브 채널 갈무리
김 씨 강연에 나오는 '콩순이' 백마스킹 장면. 김 씨 유튜브 채널 갈무리

한편, 김 씨의 영상이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그의 이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씨는 '대학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다 퇴학당한 학생'으로 유명해졌는데, 그가 다녔다는 호주 A신학대학교의 교수와 현지 목회자는 김 씨가 동성애를 반대해서 퇴학당한 게 아니라고 증언한다. 또한 그가 A대학교에서 한 학기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퇴학당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전도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며 교회까지 개척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김 씨는 주요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한 변승우 목사의 사랑하는교회(구 큰믿음교회) 출신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김 씨가 2015년 12월 대구 사랑하는교회에 중고등부 전도사로 부임해 2018년 6월까지 사역한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임 당시 소개에는 김 씨가 서울 사랑하는교회 학생회 교사 출신이고, 성령신학교(변승우 학장)에 재학 중이며, 성령신학교 설교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김 씨는 변승우의 사랑하는교회 출신이다. 사랑하는교회 다음 카페 갈무리
김 씨는 변승우의 사랑하는교회 출신이다. 사랑하는교회 다음 카페 갈무리
음모론자들은 회개하지 않아
기대할 건 음모론 대하는 교인들 태도
적극적으로 '그건 아니다'고 말해야

박성업이 <뉴스앤조이>나 복음주의 사회 선교 단체들을 간첩·종북 단체라고 비방한 지 8년이 돼 간다. 그 이전부터 소문이 있었다 치고 한 10년 잡아 보자. 이런 단체들이 정말 '좌파 양성소'라면 도대체 한국교회는 언제 종북 좌파가 되나? 음모론자들의 우려와 달리 한국교회는 오히려 점점 극우로 치닫고, 사회 선교 단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힘들게 연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음모론이 여전한 이유는, 사법기관이 '종북'이라는 표현에 너무 관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성업이 음모론을 퍼뜨렸을 때 성서한국·개혁연대 인사들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박성업은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고소인들을 '간첩', '종북'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모두 유죄가 됐다. 2심에서는 벌금 150만 원으로 감형됐다. '간첩'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죄인데, '종북' 부분은 표현의자유 영역이라며 무죄가 됐다. (결과적으로 박성업은 유죄다. 김 씨는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박성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왜곡했다.)

<뉴스앤조이>도 <크리스천투데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불기소처분됐다. <크리스천투데이>가 <뉴스앤조이>를 종북·주사파 등으로 비방했는데, 검경은 이 부분이 문제가 안 된다고 봤다. 당시 불기소 의견을 낸 수사관은 우리에게, '주사파'라는 표현만으로는 죄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누군가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을 주사파 경찰이라고 해도 죄가 안 되는가"라고 묻자, 그는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이게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실 이 글은 쓸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김 씨를 한번 다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기사를 쓴다고 해서 이런 자가 회개할 리도 없고, 오히려 '진리를 말하니 공격당한다'는 프레임을 가져다 쓸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내용으로 따져도 별로 새로울 게 없다. 법적으로도 문제 삼기 어려우니 김 씨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런 음모론을 퍼뜨릴 것이다.

음모론은 항상 있었다. 그리고 반복된다. 기대할 것은 음모론을 대하는 개신교인들의 태도다. '무시'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좋겠다. 이런 영상을 퍼 나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얘기해 주자. '중립'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할수록 음모론은 퍼져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자.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자들도 거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에 남은 것은 도태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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