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2년간의 임시이사 체제를 끝낸 총신대학교 법인이사회가 이사장 선출을 놓고 벌인 첫 회의부터 갈등으로 얼룩졌다. 이사 15명은 4월 27일 오후 1시 총신대학교 종합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유일한 안건으로 '이사장 선출'을 다뤘다. 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소강석 총회장을 이사장으로 합의 추대하자고 요구하는 이사들과 이를 반대하는 이사들이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고 해산했다.

외부 여성 이사 3명을 제외한 예장합동 목사·장로 이사 12명은 이사장 선출 방식을 놓고 양분됐다. 소강석 총회장을 비롯한 일부 이사는 "총신대 이사회가 출범부터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교단과의 관계나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해 '만장일치 추대' 방식으로 법인이사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회갱신협의회(교갱협) 소속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이사는 합의 추대가 쉽지 않으니 '경선'으로라도 첫 회의에서 이사장을 선발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사장에 입후보해 소강석 총회장과 2파전을 형성한 김기철 목사(정읍성광교회)는 "총회장이 총신대 이사장을 겸직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문제의 소지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총신대학교 법인이사회가 4월 27일 오후 1시 종합관 제1회의실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총신대학교 법인이사회가 4월 27일 오후 1시 종합관 제1회의실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가운데, 이사회는 2시 30분경 정회를 선언했다. 소강석 총회장과 김기철 목사는 별도로 이사장실에 들어가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협의는 불발됐다. 3시경 모습을 드러낸 소 총회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이사회장을 떠났다.

소강석 총회장은 총신대를 떠나면서 "이렇게 난상토론하는 데 계속 있는 게 좋지 않다. 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섬기면 된다. 그러나 합의 추대가 되지 않으면 항상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총회를 이끌어 나갈 때도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 총회장은 28일 새벽 2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회를 남겼다. 그는 "어느 특정 단체(교갱협)에서 이사장이 선출되는 것도 우려스러운 면이 있고, 그렇게 되면 내년 총회 선거에도 파장이 미칠까 하는 염려도 있다"고 했다. 현직 총회장이 이사장 투표에 나섰다가 패배할 경우,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내심 합의 추대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강석 총회장은 이사장 합의 추대가 불발되자 회의 도중 퇴장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강석 총회장은 이사장 합의 추대가 불발되자 회의 도중 퇴장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소 총회장이 떠난 후, 남은 이사 14명은 법인이사장 선출을 놓고 계속해서 마라톤 회의를 이어 갔다. 연장자순에 따라 임시이사장을 맡은 강재식 목사(광현교회)는 회의를 정회하고 이사장 선출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심치열 교수(성신여대)를 비롯한 외부 여성 이사들은, 예장합동 이사들의 이러한 회의 관행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날 이사장 선출을 위해 모인 만큼, 안건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강재식 목사는 4시쯤 정회를 선포한 뒤 퇴장했다. 그는 회의 내용을 브리핑해 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남은 이사들은 대화를 이어 갔지만, 대다수 이사가 이사장 선출을 차기 이사회까지 유보하자는 뜻을 밝히면서 4시 40분쯤 해산했다.

4시간 이어진 긴 회의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 밖을 나섰다. 일부 이사는 이전 학내 사태 시절과 같이 또다시 이사회가 분열된 것에 대해 "부끄럽다"는 말을 짧게 전했다. 송태근 목사(삼일교회)는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는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겠나. 다 잘될 거다"라고 말했다.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 사진 왼쪽)와 송태근 목사(삼일교회)는 이사회가 대립 끝 해산하게 돼 부끄럽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 사진 왼쪽)와 송태근 목사(삼일교회)는 이사회가 대립 끝 해산하게 돼 부끄럽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총신대 역사상 최초로 선임된 외부 여성 이사들은 이사회의 비상식적 의사 진행 과정을 겪고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이사회 갈등 당시 임시이사로 파송돼 이사장을 지낸 심치열 교수는 "상상을 초월한 상황"이라며 "타 대학 이사회 경험이 다수 있지만 이렇게 분열된 경우는 처음이다. 합의 추대를 위해 별도로 회동하고 정회하는 등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좋은 모습이 별로 없었다. 이사회가 이렇게까지 분열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고 간다"고 답했다.

김기철 목사는 여성 이사들을 중심으로 '이 정도까지 했는데 왜 결론을 내리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원래 총회 정치에서는 비상 정회를 선포하면 '하는 수 없다'며 해산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방식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며 "목사들끼리는 의사봉을 손에 쥔 사람이 대장이라고 여겼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 이사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총신대 이사회는 오는 5월 11일 오후 1시 다시 회의를 열고, 이사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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