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3년 전,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은하선 씨는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공격에 시달렸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양성애자'로 밝힌 은 씨는 '젠더 토크쇼'를 표방한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었다. 까칠남녀는 2017년 12월 25일과 2018년 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성소수자 특집 방영을 예고했다.

이때부터 반동성애 진영의 공격이 시작됐다. 일부 개신교인은 동성애를 옹호·조장·미화하는 방송을 중단하라며 온·오프라인상에서 공격을 이어 갔다. 이들은 EBS 홈페이지 게시판에 반대 글을 올리고 항의 전화를 거는가 하면, 이에 그치지 않고 담당 PD 휴대폰으로 "LGBT는 개인을 멸망시키고 국가를 해체한다"는 등의 문자 폭탄을 날렸다.

보다 못한 은하선 씨는 같은 해 12월 25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하나 올렸다. 담당 PD의 연락처가 바뀌었으니, 그곳으로 항의 문자를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는 PD의 연락처가 아닌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를 후원할 수 있는 번호였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 주요셉 목사는 은 씨의 글을 자신이 속해 있는 각종 채팅방에 퍼 날랐다. 이 글을 본 90명은 항의 문자(실제로는 후원 문자)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 보냈다. 실제로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다", "동성애의 폐해도 방송하라", "항문 성교자들을 옹호하는 것이 교육 방송이냐" 등 혐오 문자가 쏟아졌다.

해당 문자는 한 건당 3000원으로 후원 처리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주 목사는 문자를 보낸 사람들과 함께 은 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은 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반동성애 진영은 2018년 1월,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연속 기자회견을 열고 은하석 작가 하차 및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했다. 최혜경 씨는 당시 제작본부장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반동성애 진영은 2018년 1월,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연속 기자회견을 열고 은하석 작가 하차 및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했다. 최혜경 씨는 당시 제작본부장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은하선 씨는 반동성애 진영이 그런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확인 절차도 없이 곧바로 집단 행동에 나서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동성애 진영의 조직적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이었지,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만약 진짜로 속이려 했다면 가짜 계정을 만들어 글을 쓰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도 후원 처리된 비용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은하선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은 씨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허위 댓글을 다는 방법으로 기망 행위를 했고, 결과적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봤다.

손해배상 청구 근거는 정신적 손해
"반동성애자임에도 친동성애적 행위,
양심의 충격으로 존재 가치마저 흔들려"
"반동성애 진영, 성소수자 한 명 표적 삼아 괴롭혀 
'네 이웃 사랑하라'는 예수님 가르침 따라야" 

주요셉 목사 측은 형사재판 판결을 근거로 은하선 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자신들은 '반동성애 활동'을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도와준 꼴이 되었고 그에 따른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며 1인당 30만 원, 총 252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소장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피해자들(주요셉 외 83명)이 입은 정신적 고통은 자신들이 반동성애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은하선)의 사기에 의해 자신들의 신념과 양심에 반하여 결과적으로 퀴어 문화제에 대한 금전적 후원을 통해 동성애를 동조·옹호·조장하는 친동성애적 행위를 저지르고 만 것으로 이는 원고 및 선정자들(주요셉 외 83명)의 자괴감을 넘어 양심의 충격으로 존재 가치마저 흔들리고 마는 상황인 바, 이러한 정신적 충격은 동성애에 대한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되는 한 계속·증진될 것입니다."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은 '후원 문자 사건' 이후에도 EBS와 은하선 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반동성애 진영의 조직적인 공격에 결국 은하선 씨는 고정 패널에서 하차해야 했다.

소송 대표자인 주요셉 목사는 "돈 때문도 아니고 은하선 씨를 미워해서도 아니다. 은 씨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송 대표자인 주요셉 목사는 "돈 때문도 아니고 은하선 씨를 미워해서도 아니다. 은 씨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하선 씨는 2월 17일 <뉴스앤조이>와의 대화에서 "그 사건 이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에 준하는 폭언까지 듣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하다. 멈춰 주길 바란다. 특히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혐오가 지속되고 있는데, 그 심각성이 (이번 사건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쉽지 않은 싸움이겠지만 힘을 내려고 한다.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의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주요셉 목사는 은하선 씨에게 개인적 감정이 있어서 소송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주 목사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공적인 대표자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지 돈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일시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더 큰 차원에서 은하선 씨가 이 일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월 18일 성명을 발표하고,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에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괴롭힘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조직위원회는 은하선 씨 재판 과정에서 후원 문자 오인 발송 건에 대한 후원금 반환 의사를 밝혔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반환 문의·요청도 없었다며 "이제 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성소수자 한 명을 표적 삼은 집요한 '괴롭힘'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개신교 내 반동성애 진영을 향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사람이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아래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성명 전문.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괴롭힘을 중단하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주○○ 목사를 비롯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넘어, 특정인을 타깃으로 해서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 위해 이 성명서를 발표한다.

지난 2017년, EBS의 교양 프로그램인 '까칠남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인권 의식을 높이기 위한 특집 방송을 기획했다. 이 방송은 12월 25일에 방영될 예정이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성소수자 혐오 세력은 방송을 중단시키기 위해 담당 PD에게 문자 폭탄을 보냈다. 당시 '까칠남녀'에 출연 중이었던 은하선 씨는 이런 현실을 풍자하고,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차원에서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인 주○○ 목사의 페이스북 글에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후원하는 전화번호(#2540-6550)를 까칠남녀 PD의 전화번호라고 알리는 댓글을 달았다. 주○○ 목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그 댓글에 속아서 문자를 보내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며 2018년 1월에 은하선 씨를 형사 고발하였다.

방송 취소를 요구하는 주○○ 목사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이미 커밍아웃한 양성애자이며 컬럼니스트로서 '은하선'이란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고, 그럼에도 은하선 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그 글 아래에 댓글을 달았다는 점을 비추어 보면 은하선 씨가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실제 문자를 보낸 이들 중 대다수는 페이스북의 댓글을 직접 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 목사가 사실 확인도 없이 여러 개의 단톡방에 댓글 내용을 옮기면서 확산되었고, 그 글을 보고 문자 발송을 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안타깝게도 법원은 혐오 세력의 손을 들어 주었다. 2019년 12월 6일에 은하선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이 확정되었고 이를 납부하고 모든 책임을 감수했다.

그럼에도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2020년 12월 23일에 주○○ 목사 외 83인이 은하선 씨를 상대로 다시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들이 밝힌 손해배상의 근거는 "퀴어 문화제에 대한 금전적 후원을 통해 동성애를 동조·옹호·조장하는 친동성애적 행위를" 저지르게 되어 "자괴감을 넘어 양심의 충격으로서 존재 가치마저 흔들리고 마는 상황인 바, 이러한 정신적 충격은 동성애에 대한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되는 한 계속 증진될" 것이라며 1인당 30만 원씩의 위자료를 청구하였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퍼붓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신앙의자유라는 이유로 사회적 제재를 거의 받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이 '정신적 충격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실소와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문자 후원은, #이 포함된 후원 문자 번호로 문자를 발송하면 1건당 3000원의 정보 이용료가 발생하고, 결제가 완료된 금액은 통상 3~5개월 후에 통신사와 문자 후원 운영 업체를 통하여 지정된 단체로 후원금을 정산 입금되는 시스템이다. 2017년 사건 발생 후 다수의 성소수자 혐오 문구들이 후원 문자로 수신되었고,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은하선 씨의 재판 과정을 통하여 후원 문자의 오인 발송 건에 대한 후원금 반환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의 정보 이용료 반환 관련 문의나 요청은 단 한 건도 조직위원회 측에 접수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이제 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2500여 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성소수자 한 명을 표적으로 삼은 집요한 '괴롭힘'이 아닐 수 없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보낸 문자로 인해 발생한 44만 4000원이라는 금액에 대하여 단 한순간도 본 단체의 후원금으로 여긴 바가 없으며, 본 단체의 목적 사업에 사용할 의사가 없다. 문자 후원금은 일정한 비율의 수수료가 차감된 후 입금이 되므로 실제 조직위원회에 정산된 금액은 44만 4000원에 해당하지 않기에 해당 금액의 전액 환불의 사유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오인 접수된 후원금의 경우 실입금액을 기준으로 환불을 진행하는 원칙과는 별개로, 2017년 당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후원 문자 번호로 성소수자 혐오 문구가 수신된 건에 대하여, 발신 본인의 환불 접수가 있을 경우 해당 금액의 환불이 지체 없이 진행될 것임을 명확히 밝힌다.

마지막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주○○ 목사와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그리고 모든 성소수자 혐오를 일삼은 개신교인들에게 촉구하는 바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집요한 괴롭힘을 당장 중단하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으로서 거듭나길 바란다.

2021년 2월 18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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