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청소년의 혐오 표현 노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를 2020년 12월 발표했다.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일부 청소년 및 전문가 면접 조사를 기반으로 현재 청소년이 혐오 표현을 접하는 경로, 문제점, 해결 방안 등을 정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이 혐오 표현을 주로 접하는 곳은 인터넷·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공간이다. 하지만 소수자가 혐오 표현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곳은 학교·학원·가정 등 일상생활 공간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 청소년의 경우 아웃팅(본인 동의 없이 타인에 의해 성적 지향 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 - 기자 주) 피해를 입기도 했다.

혐오 표현을 듣는 청소년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다. 특히 성소수자 혐오 표현은 여성·장애인·다문화 학생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과 다르게 비난·모욕·차별 등 직접적 가해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 학생은 자퇴를 고민하거나, 스트레스로 잔병치레에 시달렸다.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 결과는 청소년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할 학교에서도 혐오 표현이 증가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면접 조사에 응한 전문가들은 혐오 표현을 완화하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해외 사례 등을 바탕으로 성소수자 청소년과 범죄 청소년에 대한 학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해 5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함께 <인권 존중 학교를 위한 평등 실천 안내 - 우리 학교는 혐오 표현으로부터 안전한가요> 소책자를 펴내고 이를 전국 초·중학교에 보급했다. 여기에는 △혐오 표현의 정의 △혐오 표현의 위험성 △혐오 표현에 대한 학교의 대응 방법 등이 정리돼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발표한 '2기 학생 인권 종합 계획' 역시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차별·혐오 없는 학교'를 목표로 다양한 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인권 교육, 차별·혐오 표현 예방 안내서 제작 및 보급 등의 계획이 포함돼 있다. 1기 계획과 달라진 점은, 그동안 '소수자'로 뭉뚱그려 표현한 '성소수자'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이다. 청소년기에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학생들에 대한 보호 의도를 담았다.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된 여러 단체들은 '2기 학생 인권 종합 계획'이 확정되자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으로 근조 화환을 보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된 여러 단체들은 '2기 학생 인권 종합 계획'이 확정되자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으로 근조 화환을 보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에 열심인 일부 개신교인들은 '학생 인권 종합 계획'을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릴레이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지난 4월 9일부터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성소수자 만드는 인권 교육 반대", "서울시 공교육의 도덕과 윤리 사망"이라고 적은 근조 화환을 교육청에 보내기도 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 차별금지법 등을 반대할 때 사용한 논리와 똑같다. 일부 단어나 조항을 확대해석하고, 한 가지 사안을 침소봉대해 마치 이 계획 하나로 서울 교육 전체가 폭삭 망할 것처럼 주장한다. '성 인지 관점의 성교육', '성평등 교육'을 동성애 옹호·조장 교육으로 둔갑시켜 동성애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하는가 하면, '인권 교육'은 '사회주의 교육'이라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교사와 학부모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에 소아 성애 포함"
"성소수자 보호 = 동성애 조장"
아무 근거 없는 억지 주장 반복

반동성애 진영의 논리는 한결같다. '학생 인권 종합 계획'에 '성소수자 보호'를 명시한 게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들은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소수자는 소아 성애, 동물 성애, 시체 성애 등 각종 이상 성애자까지 포함하는 단어라고 극단적으로 주장한다.

<뉴스앤조이>가 여러 차례 팩트체크했듯이, 소아 성애와 동물 성애는 모두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하다. 동등한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 아닌, '폭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동성애 진영은 이런 맥락은 전부 무시하고 '폭력'과 '합의'의 개념을 뒤섞는다.

'성소수자' 용어 사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하루이틀 반복된 것이 아니다. 반동성애 진영은 한국 사회에 동성애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동성애가 타고난 게 아니며 △HIV 바이러스 감염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논리는 반동성애 진영이 대중을 선동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계획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침해"
'차별 금지' 명시한 학생 인권조례
이미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 등 반동성애 단체들은 학생 인권 종합 계획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 표현이 금지되는데, 이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자유·종교의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 몇몇 교회와 교계 단체들도 같은 논리로 반동성애 진영에 힘을 보태고 나섰다. 이재훈(온누리교회)·원성웅(옥토교회)·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가 상임대표로 있는 서울나쁜차별금지법반대기독교연합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자유에 따른 미션스쿨 설립 이념을 침해할 여지가 있고, 개인의 양심과 종교의자유를 침해한다며 학생 인권 종합 계획 개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헌재는 2019년 12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서울시 학생 인권조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차별·혐오 표현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감안할 때, 다른 의견과 동등한 '표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헌재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 표현을 제한하는 데 동의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차별·혐오 표현은 교육의 기회를 통해 신장시킬 수 있는 학생의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수 있고,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의 인격이나 가치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학내에서 이러한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크다."

헌재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차별·혐오 표현은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헌재 결정에도 반동성애 진영은 여전히 표현의자유·종교의자유를 주장하며 학생 인권 종합 계획을 반대한다.

반동성애 진영은 2018년 7월 국가인권정책종합계획(NAP) 반대 집회, 기자회견, 삭발, 텐트 농성 등을 하며 법무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NAP와 관련해 아무 말이 없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반동성애 진영은 2018년 7월 국가인권정책종합계획(NAP) 반대 집회, 기자회견, 삭발, 텐트 농성 등을 하며 법무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NAP와 관련해 아무 말이 없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뿐만 아니라 반동성애 진영은 서울시 학생 인권 종합 계획이 만 3세 아이에게도 동성애를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또, 학교에서 '사회주의' 교육을 의무화하고, 개신교인 교사가 탈동성애·탈트랜스젠더 격려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학생 인권 종합 계획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모두 학생 인권 종합 계획에는 없는 내용인데, 단어 하나를 꼬투리 잡아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한동안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이 결사반대했던 NAP도 지금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후퇴한 NAP를 내놨다. 당시 인권 단체들은 박근혜 정부 때 나온 2기 NAP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과정 등이 언급돼 있지만, 3기 NAP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동성애 진영은 NAP에 '성소수자', '성평등' 같은 용어가 들어가 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장기간 텐트 농성, 릴레이 규탄 집회 및 피켓 시위, 삭발식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괴롭힘 대상은 법무부였고 지금은 서울시교육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는 이들이 모두 허위·왜곡·확대해석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한 상임이사는 "비슷한 논리를 들이대며 해당 법안 혹은 계획이 통과되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선동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인권조례, 문화다양성조례 등이 제정돼도 그들이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면 슬그머니 다른 타깃을 찾아 이동한다"고 말했다.

한채윤 상임이사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띄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 교육감을 상대로 더 집요하게 매달린다고 했다. 한 상임이사는 "각 사안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우려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고 본다. 단지 자신들의 활동을 위해 앞으로 없어지지 않을 적으로 '동성애'를 상정해 놓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반대 운동의)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또 다른 데로 관심이 옮겨 가 반대를 반복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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