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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덩치가 커지더니 사회 위협이 되는구나'
[대담] 손아람 작가와 삼촌 김광 목사
  • 구권효 기자 (mastaqu@newsnjoy.or.kr)
  • 승인 2018.02.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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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반동성애'로 명확하게 포지셔닝한 보수 개신교는 각 지자체 인권조례 제정을 막고, 있던 인권조례도 폐기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무차별 항의 전화를 쏟아 지자체 업무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관광객을 위해 설치 예정이었던 무슬림 기도실도 백지화시켰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하는 건 보수 개신교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승리'로 표현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시작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위기감은 여기서 온다. 개신교인들은 자축하지만, 교회 밖에서 이런 사건을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성소수자의 인권이 자기들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조직적으로 힘을 써서 막는다? '하나님의 승리' 전리품이 소수자 차별이다?

<소수의견>(들녘, 2015)의 저자 손아람 작가는 보수 개신교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11월 반동성애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목사와 온라인에서 격돌했다.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세바시) 제작진이 반동성애 세력의 항의에 압박을 느껴 성소수자 강연 영상을 일시적으로 삭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약자와 연대해 온 손아람 작가가 반동성애 개신교와 부딪힌 것은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1월 EBS '까칠남녀' 담당 CP가 은하선 작가 하차를 통보하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었던 손 작가와 손희정 평론가, 이현재 교수는 마지막 촬영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은 "명백하게 성소수자의 입을 막아 존재를 지우겠다는 반동성애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비개신교인이자 이 시대 젊은 지성으로서, 손아람 작가가 보는 개신교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목사 삼촌과의 대담을 역제안해 왔다. 손 작가는 반동성애 목사와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이던 중, 삼촌에게 받은 편지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삼촌 김광 목사(전주 빛으로교회)는 편지에서, 개신교를 대표할 수 없는 그런 사람과 싸울 필요 없다고 손 작가에게 권면했다.

손아람 작가는 삼촌의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고, 편지는 널리 퍼졌다. 현재 개신교를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차분하고 정돈된 글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특히 편지에서는 조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손 작가는 "지금까지 이 사안과 관련해 내가 해 온 모든 말들보다 삼촌의 편지가 더 영향력이 컸다"고 이야기했다.

김광 목사는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누가 봐도 '보수'에 있는 사람이다. 칼뱅의 <기독교강요>로 정통 개혁신학에 눈을 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그의 눈에도 '동성애 반대'에 함몰되어 있는 한국교회 모습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손아람 작가와 김광 목사를 1월 30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비개신교인이 보는 개신교의 현주소와 한국교회에 소속한 사람으로서의 자기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가 매우 길다. 그만큼 뇌를 살찌운다는 믿음을 가지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읽도록 하자.

손아람 작가(사진 오른쪽), 김광 목사와 함께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손아람 작가는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밥 먹기 전 기도하는 게 습관이라고 썼다. 유년기에 "더 나은 설명을 만나기 전까지" 교회를 다녔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손아람 /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가게 됐다. 어린 나에게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정말 맞아 가면서 다녔다. 교회는 모든 것이 강압적이었다. 반드시 몇 시에 가야 하고, 정확하게 어떤 교회에 가야 하고, 밥 먹기 전에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유년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밥 먹기 전에 기도하는 그 자세, 눈 감고 손을 모으는 자세를 안 하면 밥이 잘 안 넘어가는 강박이 남았다.

"더 나은 설명"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과학의 설명에 더 설득력을 느꼈다는 말이다. 이것도 나의 믿음이다. 흔히 신앙은 믿음이고 과학은 사실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이런 영역에서는 믿음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나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신이 이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교인 시늉을 낼 수는 없지 않은가.

- 김광 목사는 조카를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은데.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김광 / 손 작가에게 교회 다니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다. 작가는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훨씬 예리하다. 이런 예술가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늘 생각은 한다. 기독교 변증적으로 실력을 갖춰서 대화하면 좋겠는데, 아직은 내가 좀 부족한 것 같다.

교회 울타리 밖에 있다고 단순히 전도 대상자로만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당장 어떻게 되면 지옥 가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개신교인들은 비신자를 일단 예배당에 앉혀 놓을 궁리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 인도하심은 인생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손 작가에게 본질을 놓쳐 버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진지하게 대화하면서 오해했던 부분도 정리하고 본인이 알고 싶은 부분들을 알려 줄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조급함이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크리스천을 보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차라리 이 사람이 아무것도 몰랐으면, 고치는 게 좀 수월할 텐데', '바른 기독교, 참신자의 길을 이야기해 줄 수가 있었을 텐데'. 이미 오랜 기간 잘못된 가르침이 축적된 영혼을 많이 봤다. 

안태근 검사 사건도 그렇다. 현실판 '밀양'처럼, 기독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손 작가에게 기독교는 이 정도로 비치겠구나' 생각이 든다. 근데 또 그게 사실이니까 부인할 수도 없다.

손아람 / 삼촌이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한 가지 이야기하자면, 나는 개신교라는 종교 자체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내 주변만 봐도 모든 기독교인이 그런 것도 아니고. 나는 여전히 기독교 윤리 체계에서 우수한 점을 본다.

다만, '일부' 개신교라고 표현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만약 일부라고 한다면, 개신교 내 또 다른 일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들을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성소수자 문제뿐 아니라, 목사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왜곡된 정치적 인식을 가지고 자기 영향력을 이용해 교인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 게 개신교 내부에서 잘 통제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만약 그들이 개신교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개신교 전체의 입장이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제대로 된 목회자가 아니라는 것까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한 종교와 시민사회가 싸우고 있는 것 같은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보수 개신교는 '동성애'를 이 시대의 적으로 상정했다. 동성애를 막지 않으면 한국교회와 사회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김광 /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다만 가끔 동성애자가 언론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도 한 인격체로서 사연이 많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성애자를 곱지 않게 보는 사회 통념상 훨씬 아픔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풀어 줄 것이 있다면 풀어 줘야겠다는 생각이다. 단지 성경 몇 구절 따서 '안 된다'고 할 건 아니다.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 내 성적 타락이다. 전도사·부목사로 사역하면서 크고 유명한 교회 목사를 옆에서 많이 봤다. 그들이 말하는 윤리 수준은 대단히 높지만, 실제로는 그들 스스로 저 밑바닥 수준에서 넘어지는 걸 봤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바깥에서의 공격이 아니다. 내부에 있다.

퀴어 축제와 반대 집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행진하는 걸 막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누워서 하늘을 향해 무아지경이 되듯이 통성기도를 하더라. 충남에서 열린 인권조례 폐지 기도회도 보면 다들 열렬하다. 나는 거기 참석한 사람에게 한 명씩 묻고 싶다. 우리 기독교 내에 있는 성적 타락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걸 해결하기 위한 집회를 먼저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손아람 / 퀴어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 의상을 보면서 "역시 동성애는 퇴폐적이다", "동성애는 금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그동안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왜 그들이 퀴어 축제 때 그런 모습으로 나올까. 평소에도 퇴폐적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선후가 바뀌었다. 자꾸 '동성애는 퇴폐적'이라고 강요하니까, 퀴어 축제에서는 그걸 비꼬는 의미로 '왜 안 되는데?' 하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다. 정형화한 성 규범 외에 다 퇴폐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너희가 이걸 퇴폐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걸 계속하겠어'라는 걸 보여 주는 일종의 콘셉트다.

퀴어 축제 기획위원장이나 축제에 참여해 퍼포먼스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안다. 평소에는 굉장히 점잖은 사람들이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같이 앉아 있으면 성소수자인지도 모를 거다. 아마 여기 있는 구권효 편집국장 정도 될 것이다.

- 나는 퇴폐적이지 않다.

손아람 / 그렇다.(웃음) 그분들도 퇴폐적이지 않다는 거다.

김광 / 이해가 좀 됐다. 저항을 보여 주기 위한 퍼포먼스지, 본질이 아니라는 것.

손아람 / 의외로 성소수자 중 기독교 신자가 굉장히 많다. 국민 대비 기독교인 비율보다, 기독교인 내에서 성소수자 비율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성소수자 중 절반 정도가 기독교인(개신교+가톨릭)이다. 퀴어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 중에도 신자가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저 사람이 믿는 종교는 교리상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데, 왜 아직도 믿고 있지?'

김조광수 감독도 가톨릭 신자다. 매주 성당에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한번은 김조광수 감독에게 물었다. 물론 그분 말이 모든 성소수자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말을 하시더라. 자기는 젊었을 때 학생운동도 했었고 지금은 문화인인데, 어디를 가든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배척됐다고. 그런데 성당은 바깥으로는 교리적으로 어떻게 얘기하든 간에, 적어도 신자로서 안에 있을 때는 굉장히 따뜻하다고.

실제로 많은 성소수자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를 가도 자기를 숨겨야 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신앙 공동체가 주는 힘, 희망, 사랑 같은 것들에 강하게 끌리는 것이다. 사실 이게 전통적인 개신교의 포교 전략 아닌가.

퀴어 축제 자체가 핍박의 역사 때문에 시작됐는데, 그걸 막기 위해 또 핍박한다? 성소수자들은 배수진을 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 그들은 자기 존재를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다. '개신교가 이렇게 반대하니 가만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그들을 설득하거나 포교하기는 불가능하다.

김광 / '예수님이 지금 한국 사회에 계신다면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외롭고 사랑에 굶주려 있다. 그 사람의 존재가 동성애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기독교는 그들을 버릴 게 아니고, 한 분 한 분 아픔을 공감해 줘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다면, 무조건 잘못됐다 하지 말고 일단 많이 들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지켜 온 가치를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나는 결혼의 가치, 부부가 헌신과 사랑으로 일구는 가정생활 등을 그들에게 전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자신감도 있어야 한다. 구걸하는 방식이나 반대로 힘을 행사하는 방식은 안 된다. 기독교인들이 삶으로 보여 주면, 그게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신자나 비신자나 이혼율이 비슷하다. 심지어 교회 목사·장로·권사들을 봐도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기독교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손아람 / 기독교가 교리적으로까지 성소수자를 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는데, 이렇게 남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실제로 찾아가서 시위하고 끌어내리는 운동이 궁극적으로 뭘 실현하고자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말을 안 들으면 다 돌로 쳐서 죽이겠다는 건지, 전부 제거해 버리겠다는 건지.

지금 보수 개신교가 하고 있는 짓은 남의 밥그릇을 뺏는 일이다. 은하선 작가의 경우도 그렇다. 일자리를 잃게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다고 '내가 동성애를 하니까 먹고살기 힘들구나, 이제 이성애를 해야겠다' 이럴 사람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죽여 버리는 이런 형태의 운동 목적은 뭘까.

지난 며칠간 이준석 씨와 대담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개신교인들은 저러는 것이며, 교인이야 그렇다 쳐도 왜 보수 정치인들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느냐고 물어봤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떤 생각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가장 큰 단위가 교회라고. 지역구를 갖는 의원들 입장에서는 가장 큰 텃밭인 것이다.

게다가 큰 교회 목사들이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고 했다.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어느 한 가지 이슈가 늘 있어야 한다. 그게 과거에는 종북이었고, 지금은 동성애다. 진짜 종북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단어를 말하면서 어떤 방향을 지시하고 교인들이 그것을 바라볼 때, 자기 정치적 영향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도 목사의 뜻대로 움직인다. 거기에서 목사의 영향력이 증명된다.

사실 기독교 교리에서 동성애를 옹호하지 않았던 역사는 정말 길다. 그런데 느닷없이 최근 들어 개신교에서 동성애를 계속 문제 삼는다. 목사들이 자기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종교인들이 세속화했다는 증거다.

- 인권조례가 무산되고 지자체 행정이 마비되는 것을 보면서, 비개신교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항상 궁금했다.

손아람 /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작가의 일과 목회자의 일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둘 다 권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대부분 권력은 어떤 물적 기반에서 나오는데, 작가와 목사는 아무런 물적 기반이 없어도 권력과 비슷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 영향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 이득과 결합되지 않은 생각들을 세상을 위해 내놓는다는 데서 나온다. 순수한 신념이라는 걸 사람들이 믿어 주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교리를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정치적 영향력을 증명하는 데로 가면 독이 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교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성애자를 사실상 사회적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까지 가는 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는 그게 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오히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비개신교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저 종교가 덩치가 지나치게 커지더니, 그 힘을 믿고 설치는구나. 덩치를 좀 줄여야겠다. 믿어서는 절대 안 되겠고, 과세도 좀 해야겠고…'. 자연스러운 사고 흐름이다.

몇 퍼센트 안 되는 성소수자를 타깃으로 힘을 과시하다가, 개신교 전체가 이 나라에서 위태로워질 수 있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개신교인이 아니라 일부 보수적인 사람만 그런 것이라면, 그걸 분리하려는 움직임을 개신교 내부에서 보여 줘야 한다. "나는 교인이지만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보수 개신교인을 반대한다"고 개인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있지만, 개신교 전체에서 저런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할 것인지 보여 준 적은 없는 것 같다.

김광 / 목회자 사회가 철저하게 서열 문화다. 어느 모임에 가도 목사들 자리가 다 정해져 있다. 군 간부들은 의자에 아무것도 안 써 놔도 정확하게 군번순으로 앉는다고 하지 않나. 목사들이 그렇다. 목회자 중에도 분명 건강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윗사람들 눈치를 본다. 자기가 그 공동체에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고, 뭔가 활동하려면 결국 그 조직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련한 문제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공적으로 얘기하는 건 부담스러워한다.

손아람 / 나는 삼촌을 통해서 목사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했다. 어렸을 때 삼촌은 뭔가 어른인데도 맑고 믿을 만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아 목사란 저런 사람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서 삼촌을 봤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개신교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개신교의 교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건 간에, 여전히 그 교리 자체가 우수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는 그런 게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포교 전략이 그랬다. 내가 오지에 몇 번 있어 본 적이 있다. 종종 선교 단체와 마주쳤다. 그런 곳에서 포교는 결국 자선사업의 모습이다. 한번은 캄보디아에 한 달 가까이 있었는데, 목사님 한 분이 매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식사를 주더라. 매일 수많은 아이가 몰려드는데, 식판에 음식을 담아서 한 명씩 무릎을 꿇고 줬다. 저렇게 하면 선교가 안 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피켓 들고 가서 '기독교 안 믿을래?'라고 하면 절대 선교 안 된다. 공격적으로 적을 상정하는 방식이다. 반동성애 운동 선봉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내 신자를 늘릴 방법이 무엇인가', '일단 주목받아야 하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적을 만들어서 극단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신자는 몇 명 늘어날지 모르겠으나, 전체 기독교가 잃는 것은 치명적이다.

세금도 그렇다. 그간 국민들은 교회의 역할을 감안해, 교회를 면세 구역으로 남겨 놓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바로 그 교회가 해 온 일 때문에 여론을 잃었다. 면세받고 신자를 많이 모으고 덩치가 커지더니, 저들이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고 인식한 것이다. 나는 교회 덩치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과세라는 국민 여론으로 드러난 것이라 본다.

- 김광 목사의 편지에서처럼, 지금 한국 사회는 개신교를 순기능적인 측면보다 역기능적 측면으로 많이 보는 것 같다.

김광 / 본질을 놓쳤다. 존귀하고 높으신 신적인 존재가 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기 비하다. 거기에 기독교의 비밀이 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낮아져서 무릎 꿇고 섬기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기독교에 대한 설명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한 영혼을 바라볼 때, 아직 그 사람이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 있다면 생각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언젠가 한 번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참기독교의 정신을 알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먼저 믿는 우리 교회, 신자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떤가.

기독교 2000년 역사를 보면, 가장 희생하고 핍박받고 손해를 많이 볼 때, 교회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뭔가를 저들은 가지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사랑이다. 그걸 보여 준 것이다.

손아람 / 상당수 보수 기독교인이 이명박을 종교적 입장에서 지지했다. 이명박과 기독교의 교리가 어떻게 결합할까. 사실 없다. 예수의 말씀을 보자면, 이명박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이 '우리 교인 정치인'을 선택했다. 목사가 그걸 조장하기도 했고.

실제 지금 정치인들이 지역구 정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 지역 가장 큰 교회 등록이다. 교회는 정치가 목적인 곳이고 세속화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교회가 힘 있는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기에는 정말 좋은 공간으로 보이는 것이다. 교회의 목적은 많은 사람을 믿음으로 이끄는 것 아닌가. 가난한 사람 10명보다 힘 있는 사람 1명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이명박이 걸어온 길과 통치 방식을 보면서, 기독교는 그 반대편에 서서 목소리를 냈어야, 우리의 교리를 위반하고 반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목소리를 냈어야 했을 것이다. 애초에 교회가 그런 곳이었다면, 보수라는 카테고리에도 가둘 수 없는 그 많은 이해 불가한 정치인들이 개신교에 적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축출할 수 있었을 거다. 교회 내에서 그게 안 되니까 정치인들이 기생하려고 자꾸 들어오는 거다.

김광 /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교회 역사에서 걸출한 인물들, 지금도 살아서 영향을 끼치는 목사들 중,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고민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교회 세습, 목회자 성폭력 등 지탄이 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들어가 보면, 신학의 부재다. 제대로 공부를 안 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이냐는 복잡한 문제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라는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부터가 엉터리다. 그들이 말하는 교리와 설교는 대부분 미국 번영신학의 아류에 불과하다. 이게 한국 기복신앙과 접목된 것이다.

한국교회 희망은 젊은 목회자들, 현실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만나는 30대 젊은 목회자들은 더 이상 스타 목사를 꿈꾸지 않는다. 자기들이 성경적으로 열심히 고민하지 않으면, 이제는 사회에서도 따돌림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미래 희망이 아닐까 싶다.

손아람 /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줬다는 것은 중요한 상징인 것 같다. 결국 모든 종교의 힘은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왜 저렇게 살지?' 그 질문 다음에는 바로 '저 사람의 종교, 저 사람의 믿음 안에 무엇이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들어가는 건데, 지금은 그 단계가 없다.

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포교 전략을 높게 평가한다. 현대에서는 그게 사라졌다. 기독교 자체가 종교로서 약자일 때 시작된 방식인데, 덩치가 너무 커지다 보니까, 강자가 되고 나니까 그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진보 정당 정치인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가 정당 지지율 올리기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도저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는 로마 시대 기독교 포교 전략을 써야 한다고 얘기해 줬다. 미디어에 나가서 정당을 홍보하는 방식으로는 큰 정당 못 이긴다. 자꾸 내려가서 사람들과 접촉 면적을 넓혀라. 무조건 약자와 연대하고 결합하고 그쪽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가장 약한 정당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했을 정도로 기독교의 포교 전략이 강력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금 그걸 안 하는 것은 교회가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그거 안 하고도 먹고살 수 있는, 기본적으로 밀려드는 신자들에 대한 확신이 있는 목회자가 많기 때문이다.

- 개신교가 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순기능은 무엇이라고 보나.

손아람 / 종교가 정치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도 작가도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종교인이 교리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반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리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987년 가톨릭이 그랬다.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 교리를 사용한 게 아니라, 독재 시대, 많은 사람이 핍박받고 사람이 죽어 나가던 그 시대에 교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선언을 했다. 그런 방식은 한 사회에서 종교가 기능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고, 종교 자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지금 반동성애 운동은 교리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교리를 목적으로 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구심점을 만들고 그걸 이끄는 일부 목사가 자기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리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아니다.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누구나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질문을 하고 나면, 이내 불신하게 된다. 가장 관대한 사람이 "저 목사 못 믿을 사람이네" 정도이고, 대개는 "개신교는 못 믿을 종교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개신교가 한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어 가는 동시에, 개신교 자체가 가치를 잃는 길이기도 하다.

교리를 목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사용하는 것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교리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자선사업뿐 아니라 제도의 변화도 그 교리의 목적을 해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책들에 대해 나서서 지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반대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 급식을 해 주는 목사님이 무상 급식을 반대하는 것처럼, 교리의 목적을 실현해 주는 제도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김광 / 나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카이퍼는 대단한 신학자였으면서도 수상이었다. 그분의 기본 생각은, 하나님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일하는 분이 아니라, 온 세계 어떤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뜻을 통치하고 실현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기독교인이 어떤 포지션을 선택할 건지 답이 나오는 것 같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어떤 시각으로 보시는지 고민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이해를 돕고 교회 바깥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영역에 공의가 이뤄지기를 바라신다.

영화 '1987'을 보고 많이 울었다. 그 눈물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봤다. '그분들이 희생할 때 나는 뭐하고 있었나' 하는 회개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1987년, 나는 제대 후 복학한 대학생이었다. 선교 단체에 가입해 열심히 전도하러 다녔다. 내가 선교 단체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도자의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가. 목회자들이 사회정의와 민주 시민으로서 책임도 교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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