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박성철 교수(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 초빙)가 '기독교 파시즘과 종교 중독'이라는 주제로 <뉴스앤조이>에 글을 연재한다. 박 교수는 연재를 통해 소수자 차별, 극우 정치 운동, 교회 사유화 등으로 나타나는 한국교회 내 파시즘적 현상과 종교 중독을 연관 지어 살필 예정이다. 격주 간격으로 6차례 글을 게재한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소속 목사다. 총신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 경희대 NGO대학원(시민사회 전공)을 졸업했다. 한국밀알선교단 간사로 장애인 사역을 하다가, 독일로 건너가 본(Bonn)대학교에서 신학 석사(조직신학)와 철학 박사(정치신학)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현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이자 경희대 공공대학원 객원교수로서 연구·강의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디아코니아(섬김) 운동을 연구·실천하는 밀알디아코니아연구소 소장이며, 한국교회 근본주의 신앙과 왜곡된 정치의식을 극복하고자 힘 쏟는 교회와사회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다.

박성철 교수를 5월 6일 신논현역 근처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박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의 발전과 달리, 보수 교단이 극우화하면서 사회 의식구조를 따라가지 못한 채 힘을 얻고자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가 건강하지 않을 때는 배타성이 강해진다며, 보수 교단 목회자들이 소수자 차별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신학적 왜곡이라고 했다. 연재 주제와 관련해 박 교수와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기독교 파시즘과 종교 중독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박성철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기독교 파시즘과 종교 중독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박성철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한국에서 장애인 사역을 해 오다가 유학을 떠났다고 들었다. 독일로 가서 정치신학을 전공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한국밀알선교단 간사 생활을 7~8년 했다. 장애인 사역을 계속할 줄 알았다. 김대중 정권 때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장애인의 생활 보장 등 국가 차원으로 복지가 전환되면서 선교 현장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후 2000년대 초 장애인 선교 단체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교회 후원을 받아 장애인에게 경제 지원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기존의 방식을 유지했는데,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기존 단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쯤 독일 등에서 디아코니아 개념과 복지국가 담론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 신학을 좋아하기도 해서 기독교 사회윤리를 배우려고 갔는데, 공부하다 보니 관심이 바뀌었다.

유학 떠날 때는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그때는 교회가 민주적 틀 속에서 사회윤리와 정치적 책임을 이야기할 시점이 됐다고 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소속 교단도 그렇고 기독 정당 활동도 그렇고,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한창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정치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그간 써 온 글을 보면, 교회의 '정치화'와 '정치 참여'를 구분하더라. 둘의 차이가 뭔가.

교회의 정치화는 교회가 '기득권을 지키고자'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뭔가 많이 쥐고 있기에 발생한다. 누리는 게 많으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 세력을 찾거나 스스로 세력화한다. 교회의 이익집단화인데, 이것 자체가 이미 기독교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는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위한' 참여를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때부터 교회와 국가의 관계, 정당한 전쟁 이론 등 정치적 요소에 대한 신학 담론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방어를 위한 전쟁 필요성뿐 아니라 '자신보다 연약한 자가 핍박받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 게 정의로운가' 같은 실질적 주제가 다뤄졌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이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저항'에는 별 관심이 없다. 현재의 기득권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이익을 지키고자 정당화 논리를 발전시킬 때 교회는 언제나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라는 말 자체를 낯설게 본다. 과거에는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기독교인이 정치 참여를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몰렸다. 지금은 교회의 이익집단화를 부추기는 정치 세력화를 정치 참여라고 주장하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문제에 주목하는 올바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이렇게 교회의 정치화와 정치 참여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정치 윤리 담론이 발전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박 교수는 교회의 정치화와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를 구분했다. 정치 세력화가 아니라 약자에게 주목하는 올바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박 교수는 교회의 정치화와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를 구분했다. 정치 세력화가 아니라 약자에게 주목하는 올바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연재에서 '기독교 파시즘'을 다루게 될 텐데,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독일에서 쓴 박사 학위논문이 바르트와 몰트만의 정치신학 비교였다. 논문을 거의 다 썼다고 생각한 시점에, 지도교수가 에른스트 블로흐의 <세계의 실험 Experimentum Mundi>과 독일에서 처음으로 '기독교 파시즘'(Christofaschismus) 용어를 쓴 도로테 죌레의 <취약성의 창문 Das Fenster der Verwundbarkeit>을 주면서 가능하면 내용을 추가하자고 제안하더라. 연구해 보니 흥미롭기는 한데, 추가하기에는 내용이 방대했고 당시 건강도 좋지 않아 그대로 논문을 끝내야 했다.

귀국 후 박근혜 정권 말기를 경험하고 많이 놀랐다. 특히 소속 교단에서 복음주의 단체들 신학을 검증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당을 적극 지지한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에 참여한 목사들이, 나치당에 반대한 고백교회 목사들에게 행한 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신학적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블로흐 책과 죌레 책을 다시 연구했다. 그사이 한국교회 내에 반동성애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단순히 보수적 정치 운동이라기보다 파시즘 성향을 강하게 느꼈다.

독일에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이 주제를 부분적으로 다뤘는데, 당시 기독교 파시즘은 서구만의 독특한 문제로 생각했다. 파시즘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왜곡된 결과물이고, 주류 종교인 기독교와 결합했을 때 기독교 파시즘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극우 정당으로 정치 세력화하기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2~3년간 기독교 파시즘 흐름이 활발하다. 독일은 권력을 잡았고, 한국은 권력을 잡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지향·주장·기제가 비슷하다 보니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특히 소속 교단 내 이런 흐름이 강하다 보니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이대로라면 교단에 미래가 없고, 한국교회에도 희망이 없을 것 같아서.

- '종교 중독' 문제는 언제부터 기독교 파시즘과 연결해서 연구하게 됐나.

경희대에서 인권 윤리 과목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수강자는 대부분 인권 운동가인데, 종교와 인권 문제도 다룬다. 2년 전쯤 한 학생이 <종교가 사악해질 때>(에코리브르)를 인상 깊게 읽었다며 소개해 주더라. 책에서 종교의 심리적 몰락과 왜곡이 정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일부 다뤘다. 읽어 보니 저자 생각이 나와 비슷하더라. 그때부터 관련 서적을 살폈다. 개인적 종교 중독을 다룬 책부터 독일·영국 쪽에서 나온 집단심리학 관련 서적까지. 자연스럽게 기독교 파시즘과 종교 중독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게 됐다.

종교가 항상 건강할 수는 없다. 종교가 왜곡이나 몰락의 길에 들어설 때 나타나는 외적 현상이 '차별'이다. 특정 대상을 향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기독교가 아무리 다양해도, 사랑에 기반한 구원이 핵심 아닌가. 이 문제가 정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신학 담론이 발전할 때 핵심 역할을 감당한다.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작동하면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종교가 건강한 형태로 나타날 때는 포용력이 넓어지고, 문제가 나타날 때는 배타성이 강해진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교회 문제는 기득권을 향한 집착, 이익집단화와 연결돼 있다. 내적 왜곡이 폭력성 등 극단적 형태로 외부에 표출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한국에 나타나는 기독교 파시즘과 종교 중독의 구체적 사례는 무엇인가.

차별 문제다. 교회의 차별은 종교 중독, 기독교 파시즘과 연결돼 있다. 내가 속한 예장합동 교단은 차별·배제를 당연시하고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지향을 떠나, 목사들이 차별·배제를 쉽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신학적으로 왜곡돼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한다.

과거에는 이런 왜곡이 덮여 있었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직접 극우적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비슷한 생각을 대변하면서 지켜 주는 정치 세력이 주류였다. 1987년 이후 민주화로 이 세력이 점진적으로 약해졌다. 특히 최근 3~4년 사이 정치적 지지 기반이 급속하게 와해하자 보수 교단 내에 스스로 목소리 내지 않으면 기득권을 지킬 수 없다는 위기감이 만연해졌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정치 언어'를 쓰는데, 교계 인사들은 정치 공간에서 '종교 언어'로 이야기한다. '정치적 종교'의 전형적 특징이다.

그간 한국 시민사회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보수 교단 내 정치의식은 오히려 보수화했다. 시민사회 영역은 발전하는데, 주류 교회는 극우화하면서 사회 의식구조를 못 따라간다. 목회자 성범죄로 드러나는 남성 중심 가부장적 문화와 교회 세습으로 드러나는 교회 사유화는 의식의 퇴보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교회 세습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가 안정적으로 성장한 곳에는 한국처럼 교회 세습을 관망하지 않는다. 유럽은 국가교회니까 교회 자체를 사유화한다는 개념이 없고, 미국은 세습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가 그런 케이스다. 건강한 시민사회에서는 세습으로 교회 공동체가 안정화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만 아버지에서 아들로 넘어가는 1세대 세습이 비교적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교회가 병들었고, 시민사회가 종교적 왜곡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다.

한국교회 세습 문제를 더 걱정스럽게 보는 것은 대표적 종교 중독 현상이기 때문이다. 세습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부딪칠 때, 찬성 쪽에서 극단적 폭력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견이 달라 싸울 수 있지만, 교회 공동체가 자기 지도자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폭력성을 표출한다는 것은 교회가 이익집단으로 변질됐다는 의미다.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독특성과도 연관돼 있다고 생각한다. 1970~1980년대를 보낸 한국 사람들은 공권력을 비롯한 집단의 물리적 폭력에 익숙하다. 군사적 폭력의 내재화라고 볼 수 있다. 의식구조를 들여다보면,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제를 종교가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극우 기독 정당이 무엇보다 기독교 파시즘과 연관돼 있는데, 종교 중독 같은 왜곡 없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연재를 통해 한국교회에 기독교 파시즘과 종교 중독 문제가 왜 등장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어떤 사회적 문제를 낳는지를 앞서 언급한 여러 현상에 초점을 맞춰 써 나갈 예정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 시민사회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꿔 왔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한쪽 목소리만 크다. 특히 보수 교단의 사회윤리나 신학 인식이 왜곡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왜곡이 교회 사유화, 사회적 소수자 차별, 교회 이익집단화 등과 연결돼 있어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공론장에서 알려야 한다. 문제를 인정하면 그다음부터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한국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리고 싶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의견을 모아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교회 내 차별 문제를 다룬 <혐오를 부르는 이름, 차별>(책임편집 박성철)을 5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사람들과 함께 쓴 책이다. 하반기는 이 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려고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