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소수자 차별 프로그램 vs. 성소수자 옹호 및 조장 프로그램.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매주 한 차례 방영하는 TV 프로그램 '까칠남녀'에 대한 상반된 의견이다.

까칠남녀는 지난해 12월 25일과 올해 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LGBT 특집'을 방송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유명한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를 한 명씩 초청해 고정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방송 뒤, EBS는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했다"는 이유로 반동성애 운동 단체들에게 집중 항의를 받아야 했다. 급기야 1월 13일,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인 은하선 작가에게 하차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겉으로는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은하선 작가가 '공영방송 출연자'로서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반동성애 단체 시위에 굴복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여성·성소수자·교육계 여러 단체가 '은하선 작가 하차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은하선 작가 하차 통보는
마녀사냥 부응한 것"

여성·성소수자·교육계 여러 단체는 1월 22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하선 작가 하차 철회를 촉구했다. 이미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학부모 단체들이 EBS 사옥 인근 곳곳에 집회 허가를 낸 상태. 기자회견은 사옥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진행됐다.

나영 집행위원장(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은 은하선 작가가 까칠남녀 프로그램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은하선 작가는 주제를 피해 가지 않는 솔직하고 당당한 토크로 성에 대한 이야기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삶, 사회의 편견·규범들과 연관된 것임을 잘 드러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 작가에게 EBS가 하차를 통보한 것은 "마녀사냥에 부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영 집행위원장(위 사진 마이크 잡은 사람)은 EBS가 은하선 작가를 향한 마녀사냥에 부응한 것이라고 했다. 김성애 위원장(아래 사진)은 "까칠남녀 LGBT 특집 방송은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 준 방송"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발언자들은 까칠남녀의 'LGBT 특집 방송'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애써 지우려 했던 성소수자 존재를 드러냈다고 했다. 연지현 부의장(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은 "한국 방송에서는 마치 성소수자가 없는 것처럼, 그들의 삶을 재현하려는 시도도 이뤄지지 않는다. (성소수자가 TV에 나오면) 우리 존재 가시화에 설레고, 적은 분량이라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응원하는 성소수자가 많다"고 말했다.

김성애 위원장(전국교직원노동조합여성위원회)은 성소수자는 학교에도 존재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까칠남녀는 소수자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의 얼굴을 보여 주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혐오 세력의 공격에 허망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고 말했다.

"LGBT 청소년들은 까칠남녀 LGBT 특집 방송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얘기할 수 있는 데 큰 기쁨을 얻었다. 또 이 방송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교사들에게는 교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는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이런 소중한 방송인데, 혐오 세력의 공격을 핑계로 은하선 작가에게 하차를 통보한 건 유감이다."

참석자들은 은하선 작가 하차 철회를 촉구하는 민원을 EBS에 전달했다. EBS가 은하선 작가의 하차 이유를 '민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음란 방송 EBS
국민 수신료 토해내라"

한편, 은하선 작가 하차에서 더 나아가 "까칠남녀 폐지"를 주장하는 학부모·시민 단체들은 이날도 집회를 이어 갔다. 현장을 관리하는 경찰은 "매일 소규모 집회가 이어졌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은 40여 명 정도였다.

이경자 대표는 EBS가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현장에서 발언을 이어 간 시민들은 까칠남녀를 '음란 방송'이라 불렀다. 이들은 EBS가 아이들이 보는 교육 방송인데 본분을 다 하지 않고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조장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연단에 선 한 시민은 "EBS는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고 했는데,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동성애자 세상으로 바꾼다는 것"이라고 외쳤다.

참석자들 중에는 확실히 엄마가 많았다. 그동안 반동성애 운동 최전선에 섰던 이경자 대표(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신들의 운동을 동성애·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좌파'와의 싸움으로 봤다.

"저쪽에 와서 집회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나라 좌파 세력의 핵심 인물들이다. 다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여성민우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시민단체인데 한국 모든 여성계를 좌파로 물들이고 있다. (중략) 오늘 저 기자회견을 보고, EBS를 통해 어른들이 페미니즘·동성애를 확산하고 즐기면서 보겠다는 목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격 목표는 더 확실해졌고, 우리 목적은 반드시 달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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