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시민단체들이 12월 22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기독교 시민단체들이 12월 22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사업주의 안전 수칙 위반 또는 관리 소홀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기업과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업주의 관리 감독 의무를 강화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해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를 담은 법안이지만,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2019년 고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해 왔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노동자 김 군, 이천 화재 참사 등 노동 현장에서 죽음이 보고될 때마다 여론 또한 법 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국회 입법 청원도 10만 명을 달성했다.

12월 국회에서 법 제정이 무산되자,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tvN 드라마 제작 환경의 부당성을 알리다 사망한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가 국회 본청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국회가 법을 외면하자 유족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 눈치를 보는 여당은 법 제정을 머뭇거리고 있다.

성서한국·교회개혁실천연대·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등 기독 시민단체들은 12월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를 향해 조속히 법을 제정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은 방역 상황에 맞추어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기업이 처벌되도록 기도했고, 교회가 약자들을 도우며 이웃 사랑을 실천해 더는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기업이 처벌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교회가 약자들을 도우며 이웃 사랑을 실천해 더는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박득훈 목사(성서한국 사회선교사)는 "기업인들은 거리에 나올 필요도 없고 탄식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알아서 그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책임을 감해 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설사 그렇다 한들 그 말이 스크린에 끼어 죽고 벨트에 끼어 죽고, 땅에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무거운 것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늘같이 소중한 생명부터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 대통령의 말은 언어유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희룡 목사(성문밖교회)도 "김용균의 죽음은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다. 그가 2인 1조 근무 규정에 따라 일했다거나, 잘못된 근무 규정을 거부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그의 죽음은 개인적 불행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라는 가장 약한 고리에 위험과 죽음을 전가하는 사회적 불평등에서 기인한 죽음은 막을 수 있는 죽음이며, 그러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죽음이다. 매일 7명씩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기업과 정치와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불행"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몸으로 혹한을 맞으며 노숙 단식하는 김미숙 씨와 모든 단식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미칠 가장 기쁜 소식이 성탄 전에 들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회는 이 문제를 반드시 매듭지어 달라"고 말했다.

단식 16일 차 전국대리운전노조 김주환 위원장은 "국가는 일하는 노동자,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헌법이 명시하듯 노동자와 시민은 안전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OECD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처참한 현실을 맞지 않았는가. 2008년 이천에서는 냉동 창고 화재로 40명이 죽어 나갔고, 2020년 (화재로) 38명의 죽음이 반복됐다. 2019년 김용균의 죽음은 2020년 영흥화력발전소 심장선의 죽음으로 반복됐다. 국회와 정치권이 권력 다툼하는 사이에 현장에서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처참한 현실을 두고 봐야 하느냐"고 말했다.

김주환 위원장은 "이제는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를 끊어야 한다.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리고 저임금과 고용 불안,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 사회다. 우리 사회 청년들에게도 최소한 죽지는 않을 수 있다는, 자신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내에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법 제정 과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제외하고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유예 조치를 신설하려는 여당의 움직임도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하라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하라 △산재 사망이 집중되고 있는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한 유예기간 없이 전면 적용하라 등을 요구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성명서 전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독 시민단체 성명서

"국회는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산화한 아름다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떠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지만, 그 때보다 별로 나아진 바 없는 고통스럽고 위험하게 삶을 이어 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오늘도 여기저기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산업 현장에서는 해마다 산업재해로 1000명이 훨씬 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입니다. 2018년 한 해 동안에는 끼임, 추락, 화상, 감전, 질식, 과로 등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2415명에 달하고,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근했지만, 다시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의 영안실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이 하루 평균 6~7명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절대다수는 하청 용역 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기업이 법을 위반한 결과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들어도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이 비극을 멈출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목숨값이 안전 비용보다 싼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위험을 관리하는 데 소홀합니다. 산업재해로부터 사람을 지켜줄 안전장치를 구비·설치하는 비용보다, 산업재해가 발생해 처벌을 받더라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했는데, 2020년에 또다시 이천 냉동 창고에서 38명이 화재로 사망했습니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과 2018년의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씨 사망 사건 등과 같은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을 모두 열거할 수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도 산재 사망으로 7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위험의 외주화'

말 그대로, 기업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 업체 노동자들에 떠넘기는 것을 말합니다. 원청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자신들의 산업 재해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위험한 업무를 외주로 주면서 비용을 깎고 책임까지 하청에 떠넘겨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산업재해는 전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데도, 대기업들은 해마다 수백억 원씩 산재보험료 혜택까지 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원청 노동자에 발생한 산업재해만으로 실적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은 안전해지고, 하청 노동자는 더 싸게, 더 빠르게 일해 주기를 요구받으며 노동 현장의 위험 수위는 점차 높아져만 갔습니다.

안전에 관한 법을 고의로 혹은 반복적으로 위반하고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산업 현장 사고 재해자 수는 9만 4000여 명에 이릅니다. 계속되는 인명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는 기업이나 원청업체 사업주가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꼽힙니다. 지난 2008년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사고 당시 원청업체 측이 받은 처벌은 벌금 200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사용자 단체의 요구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크게 후퇴하고 말았기에, 그 법은 산업재해를 줄이는데 턱없이 부족한 법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경제는 치열한 경쟁과 승자 독식으로 그 역동성이 유지되며 정부와 기업이 상부상조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니 안전 조치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안전 조치 미흡에 따른 비용이 싸게 먹히는 현실에서 어느 기업인들 안전 조치에 실질적 관심을 기울이겠습니까? 또한 정부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강력하게 묻지 않는다면 권력 획득과 강화를 위해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책임자들이 어떻게 안전 조치 강화를 위해 기업을 압박할 수 있겠습니까?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법인, 사업주, 경영 책임자, 정부 책임자들에게 묻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1대 첫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핵심 현안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 10만 명이 동의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이 모두 법안을 발의했고 이미 12월 2일 공청회도 했고, 거대 양당 대표들도 정기국회 내 입법을 약속했지만 끝내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12월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은 고 김용균 씨 2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본회의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민주당·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의견 일치가 안 되고, 공수처법 등 쟁점 법안들을 둘러싼 극한 충돌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는 사실상 멈췄습니다.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국회 법사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심의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산재 유족들은 이 추운 날씨에 오늘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바로 노동 존중 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에서 "오늘 전태일 열사에게 드린 훈장은 '노동 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에 반드시 도달할 것이라는 의지를 갖고, 수많은 전태일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약속하신 대로 정치권은 노동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시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 걸음이 더 나아가는 길이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시기에 그들을 억압 체제 하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으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사회 정의와 신앙의 이름으로 국회에 강력히 요구합니다. 더 이상 기업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지 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하십시오! 우리 국민은 이미 충분한 시간을 국회에 주었습니다. 이제 와서 연기가 필요하다는 이런저런 주장들은 변명일 뿐입니다. 그 동안 피눈물 흘려 온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국회가 되기 바랍니다. 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국회와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이번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하라!
2.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하라!
3. 산재사망이 집중되고 있는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한 유예 기간 없이 전면 적용하라!

2020년 12월 22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독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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