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년 만에 만난 아들은 말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한 아들을 만난 곳은 경기도 양주시 소망병원 장례식장. 태국 사람 자이분 문미 씨는 아들의 영정을 말없이 바라만 봤다. 평소 찍어 둔 사진이 없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자르고 확대해 급하게 만든 영정 사진. 사진 속 아들은 선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다.

이주 노동자 자이분 프레용 씨는 올해 3월 ㄷ산업에 취직했다. 건축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분류·처리하는 곳이었다. 사건은 11월 13일 오전 8시 발생했다. 작동하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있는 이물질을 발견한 프레용 씨는 이를 없애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 김용균 씨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시신은 처참하게 훼손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이송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를 경찰에 인계했다. 경찰은 소망병원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겼다. 그는 11월 13일부터 지금까지 이곳에 안치돼 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형과 사고 소식을 듣고 날아온 아버지는 하루빨리 고향 태국에 가서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기약 없는 일이다. 회사와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50여 명이 모여 故 자이분 프레용 씨와 유가족을 위한 성탄절 기도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ㄷ산업은 연간 수십억 원 수익을 올리는 중소기업이다. 자이분 프레용 씨가 받은 임금은 월 140만 원.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기 위해 밤이나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금·토·일 24시간 연속으로 근무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었다.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모두 프레용 씨처럼 미등록 체류자다.

겪어 보지 못한 추위로 몸도 힘들고, 영원히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운데, 아들의 죽음에 책임은커녕 사과도 하지 않는 ㄷ산업 관계자들은 가족들을 더 힘들게 했다. 도와주는 이 없이 점점 지쳐 갈 무렵, 이들 소식을 전해 들은 경기 북부 지역 노동운동가와 그리스도인이 연대하겠다고 나섰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경기북부비정규직지원센터·새길교회·경기북부평화시민연대 등 경기도 북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12월 23일 ㄷ산업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족과의 협상에 성실히 임하라고 ㄷ산업에 요청했다. 이들은 "회사는 진정 어린 사과 없이 합의금 3000만 원만 제시한 상태다.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ㄷ산업이 보인 태도는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이라며, 사람의 죽음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히무 씨는 구슬픈 가락의 노래를 피리로 연주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단체들은 자이분 프레용 씨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성탄절 기도회를 12월 25일 소망병원 장례식장에서 열었다. 모두가 성탄의 기쁨을 노래할 때, 어두컴컴한 장례식장 지하 한쪽에 50여 명이 모였다. 인근 교회에서 기도회 소식을 듣고 단체로 오거나, 교인이 아닌데도 자이분 프레용 씨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외양간에서 태어난 예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스스로 목수 노동자가 되어 노동의 뜻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친구가 되었다.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차별과 억압, 착취가 없는 곳이다. 돈이나 주먹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성실하게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들이 풍요로운 사회가 하나님나라"라고 말했다.

김달성 목사는 자이분 프레용 씨를 죽인 것은 돈을 향한 탐욕이라며, 이를 엎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다수가 땀 흘려 맺은 열매를 소수가 가로채 먹는 사회를 헐고 새로 짓자.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부수고 새로 만들자. 예수의 성령을 마음 중심에 모셔 나에게 있는 맘몬과 탐욕을 몰아내자"고 요청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성실하게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들이 풍요로운 사회가 하나님나라"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참석자들은 자이분 프레용 씨를 위해,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이주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기도했다. 새길교회 김태현 집사는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 이웃으로 합당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전 공동집행위원장 김경율 씨도 참석해 "많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죽어 가고 있는데 유가족들께 부끄럽고 죄송하다. 유가족들과 연대하겠다"고 발언했다.

자이분 프레용 씨 아버지 문미 씨도 큰아들과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다. 불교 신자인 그는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몸을 숙여 인사했다. "아들이 보고 싶다. 빨리 아들을 데리고 태국으로 가고 싶다. 한국은 너무 춥고 지내기 힘든데 여러 사람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도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분미 씨와 포옹하거나 악수를 하며 그를 위로했다. 그는 어설픈 한국말로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유가족들은 26일 ㄷ산업과 한 차례 더 만날 예정이다. 문미 씨는 ㄷ산업이 프레용 씨 죽음에 책임을 지며 진정 어린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하루빨리 시신과 함께 따뜻한 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자이분 프레용 씨 아버지 문미 씨(오른쪽)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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