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가톨릭교인이라는 한 독자가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서 받은 유인물이라며 <뉴스앤조이>에 사진을 보내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알고도 찬성하십니까? 침묵은 더 위험합니다"라는 제목의 20쪽짜리 소책자였다.

소책자는 광주대교구 소속 김 아무개 신부가 제작한 것이었다. 김 신부는 이 유인물에서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차별금지법 반대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 윤리 붕괴와 가정 파괴로 이어질 것이고,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청소년의 자살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왜곡·과장된 주장을 했다.

주장의 근거 또한 반동성애 진영 논리와 같았다. △성별 정체성에 남성과 여성 외에 '그 외 분류할 수 없는 성'이 포함돼 있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 결혼도 허용될 것 △해외 사례처럼 자녀의 동성애 성향을 부정하면 양육권을 빼앗길 것 △동성애는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이라는 점 등이다. <뉴스앤조이>가 이미 팩트 체크한 것처럼 이는 사실이 아니거나 차별금지법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김 신부가 올린 유튜브 영상 도입부.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건전한 성 윤리를 옹호하는 방송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 신부가 올린 유튜브 영상 도입부.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건전한 성 윤리를 옹호하는 방송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 신부는 소책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차별금지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그는 "여가부, 동성애 조장하고 성관계 외설적으로 묘사하는 동화책 대거 초등학교 비치"라는 말로 영상을 시작하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보게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동성애 강사들이 주장하는 음모론도 그대로 반복했다. 김 신부는 "이미 여성·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의 차별을 막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다. 그건 곁가지고 (이 법안의) 핵심은 성의 해방이다. 프리섹스. 모든 성을 해방하고, 윤리의 기준은 나한테 있다고 하는 거다. 이게 통과되면 아이들 자살률이 급증할 것이다. (중략) 성 윤리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가톨릭교회에도 아이들이 다 사라질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꼭 막아 내자"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을 제보한 독자는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이 허위·왜곡 정보를 근거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 논리를 그대로 차용했다. 특히 개신교계 반동성애 강사의 이름이 실린 유인물을 본당에서 유포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가톨릭은 그동안 낙태 반대 운동에는 적극 앞장서 왔지만 동성애는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특정 안건을 놓고, 또 차별금지법 관련해서 이렇게 반대 유인물까지 받아 본 건 성당 다니면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부터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에 나선 보수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서는 역사적으로 늘 전면에서 반대 운동에 나섰지만, 보수 개신교처럼 극단적 주장에 경도되거나 이를 통해 교인들을 조직적으로 선동·동원하는 식의 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9월 7일 성명을 발표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공감한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안 취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부당한 차별에 따른 인권 침해를 예방하며, 실효성 있는 구제 법안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혐오·배척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명윤리위원회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우려를 표명하며,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처럼 법안 일부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했다. 이 법 제정으로 △'제3의 성'을 인정해 남과 여의 혼인과 가정 공동체가 갖는 중요성이 무시될 수 있고 △생명의 파괴, 인공 출산의 확산,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의 선별과 선택적 폐기, 성소수자들의 입양 허용 등 역차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윤리위원회는 "차별금지법안이 혼인과 가정 공동체에 대한 인간학적 기초를 무력화하고, 교육 현장에서 동성애 행위를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을 차별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 제정은 인간 사회의 기본적이고 상식적이며, 공동선을 구현하는 방향과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가톨릭교인이었던 고 육우당은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 활동에 실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성모상과 십자가. 뉴스앤조이 이은혜
가톨릭교인이었던 고 육우당은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 활동에 실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성모상과 십자가. 뉴스앤조이 이은혜

가톨릭교인이기도 한 성소수자부모모임 하늘 대표는 그동안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던 가톨릭교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우려 혹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하늘 대표는 10월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신부의 글이나 생명윤리위원회 입장문 모두 아쉽다고 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에 한 말과도 반대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황님은 지난달 이탈리아 성소수자 부모들을 만나 '여러분의 자녀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교회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김 신부는 차별금지법과 아무 상관이 없는, 혐오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들고 와 성소수자를 폄하했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인 고용·재화·서비스·교육 네 가지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게 골자인데,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확대해석과 억측에 기반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고도 했다. 하늘 대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청소년 성소수자 자살률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그건 전제가 잘못됐다. 아이들은 혐오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다가 자살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하늘 대표는 가톨릭교회 구조상 위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면 성직자가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톨릭 내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신부가 많다. 하지만 이미 생명윤리위원회에서 입장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한다.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의사를 밝혀 주시길 부탁드린다. 차별금지법은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법이라는 걸 이해하시고 더 이상 가톨릭교회에서 이와 같은 혐오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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