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도권에서 신학·인문학을 바탕으로 시대를 사유하고자 하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주제로 <뉴스앤조이>에 글을 연재합니다. 이 시대 주목할 만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를 소개하는 에라스무스 연구원들의 글을 격주 간격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포스트모던 종교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의 대가 웨스트팔

1940년생인 메롤드 웨스트팔(Merold Westphal)은 북미를 넘어 영어권 학계 전반에서 가장 탁월한 유럽 대륙 철학 및 포스트모던 종교철학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1) 종교적 주제를 직접 건드리는 여러 철학자들은 자기 사유의 방법적 중립성을 위해 종교적 신앙 자체와는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웨스트팔은 그런 중립성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교 철학자로 묘사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독특한 인물이다.2) 어린 시절 웨스트팔은 매우 보수적이고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부모 아래 착실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갔다.

그런 그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의 유명한 복음주의 대학 가운데 하나인 휘튼대학교(Wheaton College)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이 대학을 선택한 이유도 어린 시절부터 교회 생활에 열심을 보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이 종종 고민하는 것처럼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일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지만 휘튼대학교에서의 공부는 그를 신학자·선교사·목사의 삶이 아닌 철학자의 삶으로 이끌었다. 이 대학 철학과에서 웨스트팔은 자신이 아무 망설임 없이 첫 번째 멘토로 꼽는 또 다른 그리스도교 철학자, 아더 홈즈(Arthur Homes)를 만난다.3)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그리스도교 세계관의 철학적 기초를 놓는 데 열심이었던 홈즈 교수로부터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통찰을 얻은 다음,4) 웨스트팔은 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 진리를 탐구하겠다는 소명을 품게 된다.

포스트모던 종교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의 대가인 메롤드 웨스트팔(Merold Westphal, 1940~). Franciscan University of Steubenville 유튜브 갈무리
포스트모던 종교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의 대가인 메롤드 웨스트팔(Merold Westphal, 1940~). Franciscan University of Steubenville 유튜브 갈무리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웨스트팔의 소명은 정작 그의 부모에게조차 이해받을 수 없는 일종의 탈선이었다. 보수적이면서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웨스트팔의 부모는 그가 신실한 목회자의 길로 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특별히 그의 어머니는 중국 선교사로 살기 위해 일반대학의 장학생 기회를 포기하고 성서 대학으로 진학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선교사로 살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 적도 있으나 말라리아 감염으로 원래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웨스트팔의 아버지와 결혼해 그를 낳았다. 웨스트팔은 이 일을 두고 "나는 그녀에게 말라리아를 준 모기에게 내 삶을 빚졌다"고 말하기도 했다.5) 이처럼 독실한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이 신앙과 무관한 이방의 길 같은 철학자의 삶을 살겠다는 것은 일종의 배교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한 웨스트팔의 회고를 직접 들어 보자.

"삶의 마지막 시기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서 활동하며 기도하고 우리 아이를 신앙으로 가르치기를 지속한다는 사실과 나의 철학적 소명을 화해시킬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신앙을 저버린 이들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유형의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시기보다도, 잠언 22장 6절을 통해 스스로 위로를 얻으셨지요. '마땅히 걸어야 할 그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궁극적으로 철학을 포기하고 참된 신앙으로 돌아오길 계속 소망하셨습니다."6)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도 그의 소명과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는지, 웨스트팔은 대학을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고 아예 전문 철학자가 되고자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대학원 철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시기에도 그의 갈등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본래 그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전문 신학자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철학의 유혹은 이런 나름의 타협안조차 선택지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웨스트팔은 우드로 윌슨 펠로우십의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예일대학교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여기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기에 이른다.

이 시기 그는 존 에드윈 스미스(John Edwin Smith)라는 탁월한 종교철학자를 자신의 두 번째 멘토로 삼게 된다. 웨스트팔은 그로부터 철학을 하는 데 있어 여러 언어를 익히는 일과 여러 접근법으로 철학의 주요 문제나 인물에 다가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7) 이처럼 철학을 폭넓게 공부하고 사유하는 법을 익힌 덕분에, 웨스트팔은 독일이나 특히 20세기 철학의 여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 프랑스 같은 유럽 대륙 국가에서 오랫동안 수학한 경험이 없는데도,8) 유럽 대륙 철학에 매우 개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태도를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현대 독일철학이나 프랑스 철학의 큰 흐름을 미국 여러 대학에서도 주목하고 있기에, 본인의 관심만 있다면 다소 제한이 있더라도 어렵지 않게 현상학·해석학·해체론 등 유럽 대륙 철학 여러 영역을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웨스트팔이 석·박사 공부를 하던 1960년대 초·중반 예일대학교를 포함한 미국 대학의 일반적 풍토에서는 현대 철학과 관련해 분석철학 전통에 속하지 않는 유럽 대륙 철학을 꼼꼼하게 공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도 웨스트팔은 앞서 언급한 존 스미스와 더불어 분석철학의 한 획을 그은 윌프리드 셀러스(Wilfrid Sellars)에게 칸트 수업을 들으면서 인식론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유한성 문제에 눈뜨고, 폴 와이스(Paul Weiss)에게 헤겔 수업을 들으며 유한과 무한의 관계 문제로 시선을 전환하게 됐다.

이는 향후 웨스트팔의 주요 철학적 문제의식을 형성한 밑거름이 된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웨스트팔이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인 196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발전한 유럽 대륙 철학 분야 전문가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아마도 철학을 폭넓게 다룰 수 있는 스승의 영향을 기반 삼아 그리스도교와 유럽 대륙 철학이 공명할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찾아낸 웨스트팔 자신의 독자적 문제의식과 도전 의식에서 비롯한 일일 것이다.

박사 논문을 필두로 한 그의 초창기 연구 역시 우선은 20세기 유럽 대륙 철학이 아닌 헤겔을 주제로 한 것이었는데,9) 이것은 가톨릭 계열에 속해 있는 우리 시대 또 다른 주요 철학자 윌리엄 데스몬드(William Desmond)의 평가대로, 웨스트팔을 북미에서 가장 중요한 헤겔 연구자 중 한 사람으로 만든 성과를 낳는다. 하지만 웨스트팔은 그저 헤겔 전문가에 만족하지 않고 헤겔의 '체계의 완성으로서의 철학' 모형을 극복하기 위해 쇠얀 오브이 키에르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ard) 연구에 집중한다. 실제로 그는 키에르케고어가 자신이 지향하는 핵심 철학적-신학적 사유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인물로 보는데, 이는 키에르케고어를 "원형-포스트모던 사상가"로 간주하는 그의 독특한 해석에서 비롯한다.10)

웨스트팔은 키에르케고어를 원형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간주했다. 사진은 덴마크 왕립 도서관 공원에 위치한 키에르케고어의 동상. 사진 출처 플리커
웨스트팔은 키에르케고어를 원형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간주했다. 사진은 덴마크 왕립도서관 공원에 위치한 키에르케고어의 동상. 사진 출처 플리커

웨스트팔에 의하면, 키에르케고어는 니체보다 먼저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거의 동시대에) 근대성의 체계적 동일성의 사유, 이성-중심적 사유 및 이를 기반으로 하는 획일화된 사회의 성격을 준엄하게 비판한 예언자적 철학자이자 근대성을 극복한 선구자이다. 더 나아가 그에게 키에르케고어는 그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앙 체계를 실존론적 신앙주의를 통해 극복하려 한 인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국가였던 당대 덴마크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사회-개혁적 사상가이자 신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반드시 마주해야 함을 철학적으로 주장한 타자성의 철학자다.

특별히 웨스트팔이 키에르케고어에게서 자기 문제의식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본 대목은 그리스도교의 '죄' 문제였다. 그는 루터와 칼뱅을 통해 우리 관점이 근본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신학적 통찰이 키에르케고어에게서 더 극단적이고 철학적인 맥락으로 심화했음을 깨닫게 된다. 웨스트팔에게 이 코펜하겐의 소크라테스는 칸트와 헤겔을 공부하면서 얻은 유한과 무한의 애매한 관계 문제를 종교철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간주된다. 특별히, 그의 입장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인간의 유한성 문제를 인식론적 조건을 넘어 죄의 근본성으로 해석함으로써, 죄인으로서의 유한한 인간이 무한으로서의 신을 만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자아와 신앙 토대의 근본적 뒤흔들림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현자였다.11)

이처럼 키에르케고어의 근대성 및 신앙, 사회 비판을 매개로 삼아 우리 시대 포스트모던 사유로 관심사를 넓혀 나가는 웨스트팔의 철학적 여정은 헤겔이나 키에르케고어 같은 철학자에 대한 전문적 연구를 넘어 20세기 이후 유럽 대륙 철학을 심도 있게 탐구해 길어 낸 포스트모던의 통찰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전유하기에 이른다. 그의 연구 주제 확장은, 가톨릭 계열 학교로서 종교에 개방적인 분위기였으며, 당시 미국 대학 철학과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분석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 종교철학 전반을 경계 없이 연구할 수 있었던 포드햄대학교(Fordham) 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1987년부터, 더 좁게 특정하면 동 대학 석좌교수(Distinguished Professor)에 임명된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책들이 포스트모던 사상의 그리스도교적 전유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그의 대표적 연구 성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를테면 <혐의와 신앙: 현대 무신론의 종교적 활용 Suspicion and Faith: The Religious Use of Modern Atheism>(1993, 1998), <존재-신론 극복하기: 포스트모던 신앙을 향하여 Overcoming Onto-Theology: Toward a Postmodern Christian Faith>(2001), <초월과 자기-초월: 신과 영혼에 관해서 Transcendence and Self-Transcendence: On God and the Soul>(2004), 우리말로 나온 <교회를 위한 철학적 해석학: 누구의 공동체? 어떤 해석?>(2009) 등이 그 결실에 해당한다. 그의 탁월한 작품에 담긴 통찰을 짧은 지면에서 모두 언급할 수는 없기에, 여기서는 웨스트팔이 제안하는 새로운 신론을 해명하고 근대성 이후 신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한 가지 모형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존재신론 극복하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을 전유해 내기

웨스트팔을 비롯해 유럽 대륙 철학을 통해 신과 종교를 새롭게 사유하는 철학자들이 마치 성경 구절 암송하듯 자주 인용하는 철학적 문장이 있다. 하이데거가 서양 전통 형이상학에서 신에 대해 사유한 다음과 같은 진술이다.

"이러한 신에게 인간은 기도할 수 없고 제물을 바칠 수도 없다. 자기원인 앞에서 인간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수도 없고, 또 이러한 신 앞에서 찬송을 연주하거나 춤을 출 수도 없다. 따라서 철학의 신, 곧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신-없는 사유(das gott-lose Denken)가 아마도 신다운 신(der göttliche Gott)에게 더 가까울 것이다."12)

하이데거의 이 말은 단지 "신-없는 사유"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전통 형이상학적 신학, 철학적 신학에서 논의된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사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전통 형이상학에서 신은 최고 완전한 존재자(ens summe perpectum) 혹은 하이데거의 언급처럼 "자기 원인"으로 사유됐다. 이 경우 신은 존재자나 원인으로 간주되지, 아브라함·이삭· 야곱과 함께했던 생명과 약속의 신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러한 철학의 신에게 드려지는 기도와 찬송은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존재와 신이 연계되어 신-다운 신을 잃어버린 서양 형이상학의 사유를 하이데거는 존재-신론(Onto-theologie)이라고 부른다.

웨스트팔은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존재신론 극복을 철학적 과업으로 삼는다. "나의 기획은 유신론적 신학, 유대교 혹은 그리스도교 혹은 무슬림 일원론의 인격적 창조주, 율법 제정자, 자비로운 구원자에 관한 종교적으로 중요한 담론을 위해 하이데거의 존재-신론 비판을 전유하는 것이다."13) 이 맥락에서 웨스트팔은 탈근대와 전근대를 잇는 탐구를 시도한다. 그의 입장에서 (예외는 있다고 하더라도) 근대적 관념의 신은 기본적으로 이신론적 기획 아래서만 형성된다.

대표적으로, 흄과 칸트의 경우 사변적 형이상학의 신에 대한 물음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을 알 수 없으므로 종교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는 자세를 취한다.14) 이를테면 계몽의 새로운 정신에 입각해 성서 내용들, 기적·신앙·교회 같은 성서적 논제를 경험론적 기획 혹은 초월 철학의 기획을 따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주요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흄과 칸트 모두 성서가 말하는 초월적 신보다는 종교적 주제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 반응과 책임 문제를 다룬다. 그들의 종교철학은 이른바 성서적인 (초월적) 신-없는 종교에 대한 철학적 해석학이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웨스트팔은 근대성 신-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근대 이전 전통과 탈-근대적 정신의 만남을 시도하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신의 초월을 다룬다. 이 논의는 근대 이전 위-디오니시오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를, 근대 이후 키에르케고어, 니체, 레비나스 등을 소환하는 방대하고 섬세한 작업이다. 지면의 한계로 근대성의 이름 아래 은폐된 신의 초월을 다시 파헤치는 웨스트팔의 기획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만 검토하더라도 우리는 그 큰 그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주저 중 하나인 <존재-신론 극복하기>에 수록된 '신적 초과: 이후 도래하는 신 Divine Excess: The God Who Comes after'이라는 글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을 존재-신론 이후 도래하는 신으로 제시한다. 그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제시하게 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이 (중략) 아우구스티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를 넘어선다"는 이유 때문이다.15) "아우구스티누스를 넘어선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를 포함한 우리 지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위대한 신을 그가 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를 넘어선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적 신의 도움에 힘입어, 루터와 키에르케고어가 (중략) 그들 시대의 전체화하는 사유에 반항했다"는 점에 입각한 것이다.16)

웨스트팔이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 천착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웨스트팔이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 천착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제 웨스트팔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어떤 면모에 주목했는지 알아보자. 존재신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찬양할 수 있는 자로서의 신이 나타나야 한다. 이것을 그는 <고백록>의 다음 구절에서 찾는다.

"(전략) 송가와 울음소리가 당신 대전에 마치 향로처럼 형제들 마음에서 올라가게 하소서.

결정적인 의견을 말함이 아니옵지만 교회의 가창제도가 좋다는 점에 더욱 마음이 쏠리는 것입니다. 여린 마음이 음악을 통하여 경건한 정서로 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하오나 내 영광, 내 님이시여, 나는 오히려 이 때문에 당신께 송가를 올리고, 나를 거룩케 하신 님께 찬미의 제사를 바치오니 (후략)"17)

아우구스티누스는 일관되게 찬양으로 신을 드높이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형이상학적 신학이 아니라 송영으로서의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웨스트팔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하이데거적인 존재-신학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한다.18) 특별히 그가 플라톤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은 너무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학자의 신, 형이상학의 신과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신, 곧 개념적 대상이 아닌 찬미의 대상인 신과 대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중략) 플라톤주의자들의 책에는" 찬양과 기도의 신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19) 실제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책장들엔 이러한 경건의 얼굴과 참회의 얼굴, 당신의 제사, 괴로워하는 영혼, 통회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지 아니하고, 인간의 구원도 당신의 신부인 나라, 성신의 담보와 우리 몸값의 잔도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거기엔 아무도 (중략) 노래하지 않나이다."20)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플라톤주의 영향 아래 있다는 점까지는 부정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분명히 플라톤주의의 불변적·개념적인 신 개념, 노래를 들어도 들을 귀를 가지지 않은 신, 우리를 참회로 이끌지 못하는 신에 반대하면서, 찬양의 대상인 신을 칭송한다. 웨스트팔에 의하면, 더 구체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신은 "신비적, 초-개념적 직접성"의 현전으로 나타난다.21)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사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번 만지시매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22)

웨스트팔은 이 말을 두고 "모든 감각들이 직접적 현전을 의미하고 있다고 논증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이 우리 오감을 모두 자극하고, 신자는 거기에 반응함으로써 신을 신비적으로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전체 실재"가 "표상적이고, 계산적인 사유에서 인식 가능한 것이 된다"고 보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지성을 초과하는 만남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를 나타내고 있다.23) 이러한 신비주의는 지성과는 다른 어떤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념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지성을 초과하며 다가오는 신의 부름을 강조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말하는 신, 나를 부르는 신의 초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은" 자기원인이 아니라 "최고의 목소리이자 제일의 대화자다."24) 이러한 웨스트팔의 입장은 존재신론 이후의 신이 초월적이면서도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신이라는 점을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독특한 신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 역시 존재하는 자가 아닌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이 여전히 존재하는 신으로서의 최고 존재로 일컬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는 존재 저편의 존재이고, 인식 이전에 신비적으로 주어지고, 거기에 우리 오감이 압도되고 사로잡혀 우리로 하여금 찬미의 고백을 이끌어 내는 초월적·인격적 존재-형이상학의 대상이 아닌 존재로서의 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웨스트팔은 이 점이 <고백록> 1권과 <그리스도교 교양> 1권에서 이미 확증된다고 본다.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하는 확증을 기반 삼아 위와 같은 논의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내 하느님이시여, 그럼 당신은 뉘시오니까? (중략)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좋으시고, 지극히 능하시고, 지극히 전능하시고, 지극히 자비로우시고도, 지극히 의로우시고, 지극히 그윽하시며, 또 지극히 현재하시고, 지극히 아름다우시고도 지극히 강하신 분이여, 늘 계시되 헤아릴 길 없으시고, 온갖 것을 바꾸시되 바뀌지 않으시며, 새로움도 묵음도 없으신 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중략) 당신을 들어 말하는 이 있다면 어떻다 말해야 옳답니까?"25)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에 대한 "전통적인 속성의 긴 항목을 선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6) 그런데 웨스트팔은 위 구절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두 번째로 던진 물음, 우리가 신에 대해 대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 것인지 묻는 물음에 주목한다. 여기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위에서 언급된 속성이 형이상학적 대상이 아니라 찬미의 대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파악할 수 없는 신에 대해 말하는 일은 신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신이 찬양받기 위해 말함을 허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은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차원의 존재가 아니기에 신을 형언할 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신의 존재에 대한 침묵과 존재를 초월한 신 말하기가 나타난다. 곧, 신에 대해 침묵하기/말하기라는 이중성이 등장한다. 이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웨스트팔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다음 구절에 주목한다.

"우리가 과연 하느님께 맞갖은 것을 말하거나 발설했을까? 오히려 무엇인가 말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라고 느낀다. 내가 만일 무슨 말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형언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시라면 내가 이것을 어찌 알겠는가? 형언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말한 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형언할 수 없는 분이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분에 관해) 어떤 말을 하는 것이다. 모순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형언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형언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형언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의 모순은 침묵을 통해 삼가야지 말로 해결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관해 우리가 온당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하느님은 인간 언어가 당신께 호의적 표시를 하도록 허용하셨고 우리가 우리 언어로 당신을 찬미하며 기뻐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27)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명명하는 행위 자체에서, 신이 감추어진, 파악할 수 없고, 기술할 수 없는 자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28)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관을 두고, 웨스트팔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중략) 그리스 지혜를 초과하는 신비로서의 신을 사유해야만 하고, 이해로 환원할 수 없는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봄을 초과하는 목소리로서의 신을 사유해야만 하며, 또한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신을 지향해 내는 개념들까지도 초과하는 사랑의 선물로서의 신을 사유해야만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29)

전근대성과 탈근대성의 공명을
사유한 철학자
웨스트팔의 사유를 통해 전근대와 탈근대의 공명을 배울 수 있다. Franciscan University of Steubenville 유튜브 갈무리
웨스트팔의 사유를 통해 전근대와 탈근대 사상의 공명을 배울 수 있다. Franciscan University of Steubenville 유튜브 갈무리

웨스트팔의 사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전-근대(pre-modern) 사상과 탈-근대(post-modern) 사상의 공명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웨스트팔은 근대 형이상학에서 주로 사유된 존재-신론의 신을 극복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이것은 분명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탈-근대적 기획이다. 동시에 그는 탈-근대적 기획을 성취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전-근대적 사유에서 원천을 길어낸다.

이처럼 웨스트팔의 사유는 근대적 형태의 그리스도교가 지닌 문제점을 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근대성을 극복하고 탈-근대적 사유로 나아가기 위해 망각된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다시 소환해 내는 참신성을 보여 준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태동한 이래 전승된 유산이 낡아 빠진 골동품 같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근대성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그리스도교를 구출하기 위한 동아줄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자신의 "연구가 실질적으로 전근대적이면서 탈근대적"이라고 밝히는,30) 웨스트팔의 철학적 모험은 오늘날 근대성과 탈근대성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온전한 사유의 길이 무엇인지 헤매는 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적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8년으로, 공식적으로는 포드햄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남아 있는 웨스트팔의 학술 작업은 이제 어느 정도 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나는 전자메일로 그와 대화하면서 더 이상의 저술 계획이 없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물론 아직까지 책의 형태로 출간되지 않은 글이 워낙 많아 차후 다른 연구자나 편집자에 의해 추가 단행본 저작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후학들이 그의 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단계가 아닌가 싶다.

비록 본인만의 창조적 사상을 구축하지는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그를 리쾨르 이후, 다른 사상가를 매개로 여러 종교철학적 주제를 심화하고, 포스트모던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도입한 탁월한 해석학적 사상가로 간주하여 더 깊이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논문의 주제가 된다는 것, 그것도 두터운 박사 학위논문의 주제가 된다는 것은 그 인물이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징표가 되는 영예로운 일인데, 웨스트팔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철학 및 신학계에서는 그의 철학을 주제로 삼은 여러 단편 논문이 나오고 있으며, 박사 학위논문의 주제로도 세계 유수의 학교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 역시 웨스트팔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몇 년 전 벨기에 루뱅대학교(KU Leuven)에서 수학하던 시절 그에 대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이미 나온 것을 보고 나서였다.31) 이는 그가 단순히 기존 철학의 해설자 수준을 넘어 종교철학자로서의 고유하고 깊이 있는 전유로서의 시도를 몸소 보여 주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므로, 향후 그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웨스트팔에 대한 해외 학계의 관심과는 달리, 아직 국내에서는 소개와 연구가 매우 미미하다.32) 지금까지 서술한 미약한 해설을 필두로 웨스트팔의 철학이 더 폭넓게 도입되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 촉진되기를 기대해 본다.33)

김동규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운영위원

1) 한 예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다양한 학술 분과의 세부적 영역에 대한 탁월한 안내와 최신 연구 동향을 소개하는 권위 있는 학술 총서 가운데 하나인 옥스퍼드 핸드북에서도 대륙 종교철학에 대한 서술은 웨스트팔의 몫이었다. Merold Westphal, "Continental Philosophy of Religion," The Oxford Handbook of Philosophy of Religion, ed. William Wainwrigh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472-493.
2) "Interview with Merold Westphal," in The Leuven Philosophy Newsletter, 13 (2004-2005), 26.
3) "Interview with Merold Westphal," in Figure/Ground (November 2012) 참조. 해당 인터뷰 전문은 다음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figureground.org/interview-with-merold-westphal/
4) Arthur Holmes, All Truth Is God's Truth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77).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다>, 크리스천다이제스트 역간].
5) Merold Westphal, "Faith Seeking Understanding," in God and the Philosophers, ed. Thomas V. Morri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217.
6) 같은 글, 같은 면.
7) "Interview with Merold Westphal," in Figure/Ground (November 2012) 참조.
8) 1971~1972년, 예일대학교의 연구 후원을 받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잠시 연구한 적은 있다.
9) 그의 첫 번째 단행본 연구서는 <선택 Choice>이라는 잡지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우수 학술서'에 꼽히게 된다. Merold Westphal, History and Truth in Hegel’s Phenomenolog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9; 1998).
10) Merold Westphal, "The Joy of Being Indebted: A Concluding Response," in Gazing Through a Prism Darkly: Reflections on Merold Westphal’s Hermeneutical Epistemology, ed. B. Keith Putt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9), 170.
11) 이러한 죄와 유한성, 신앙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의 루터파적 신앙 배경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신앙 배경에 대한 다음 언급은 매우 흥미로우며, 향후 그의 철학적 지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내 사유가 칼뱅보다는 루터를 통해 더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내 책장이 이를 확증해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포괄적 의미에서 개혁파 전통의 일부이다. 이신칭의, 오직 성서, 말씀과 성사, 말씀과 성령은 나에게 그저 슬로건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슬로건이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세례파, 가톨릭, 정교회 전통의 양육을 받았다." Justin Sands, "Appendix: An Interview With Merold Westphal," in Reasoning From Faith: Exploring the Fundamental Reasoning from Faith: Exploring the Fundamental Theology in Merold Westphal’s Philosophy of Religion, Ph.D.Diss., 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 2105, 343.
12) Martin Heidegger, Identität und Differenz (Pfullingen: Günther Neske, 1957), 64; <동일성과 차이>, 신상희 역(서울: 민음사, 2000), 65. 
13) Merold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Toward a Postmodern Christian Faith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1), 21.
14) Merold Westphal, "The Emergence of Modern Philosophy of Religion," A Companion to the Philosophy of Religion Blackwell, eds. Philip L. Quinn and Charles Taliaferro (Oxford: Wiley-Blackwell, 1999), 113.
15)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74.
16)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74.
17) Augustinus, Confessiones, X, 4, 33, 34. 번역은 다음 문헌을 따랐다. <고백록>, 최민순 역, 서울: 바오로딸, 1965, 255, 293, 295. 
18)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76. 
19)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76.
20) Augustinus, Confessiones, VII, 21; <고백록>, 191. 
21)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79.
22) Augustinus, Confessiones, X, 27; <고백록>, 284.
23)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79.
24)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80.
25) Augustinus, Confessiones, I, 4; <고백록>, 26.
26) Merold Westphal, Transcendence and Self-Transcendence: On God and the Soul (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2004), 97.
27) Augustinus, De doctrina christiana, I, 6. 번역은 다음 문헌을 따른다. <그리스도교 교양>, 성염 역주, 서울: 분도출판사, 1989, 67.
28) Westphal, Transcendence and Self-Transcendence, 97.
29) Westphal, Overcoming Ontotheology, 284.
30) Westphal, Transcendence and Self-Transcendence, 11.
31) 루뱅대학교 신학·종교학과에서 통과된 웨스트팔 관련 학위논문은 최근 인디애나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됐다. Justin Sands, Reasoning from Faith: Fundamental Theology in Merold Westphal’s Philosophy of Religio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8)
32) 국내에는 각주 8에서 인용한 <키르케고르: 신앙의 개념>이 출간되었고, 웨스트팔의 글 두 편이 수록되어 있는 다음 작품이 나와 있다. Christianity and the Postmodern Turn: Six Views, ed. Myron B. Penner (Grand Rapids: Brazos Press, 2005); <기독교와 포스트모던 전환>, 한상화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33) 비단 종교인뿐 아니라 비종교인도 앞서 거론한 여러 연구를 통해 19세기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유럽 대륙 철학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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