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개혁된 가톨릭, 개혁되지 못한 개신교
적대적 교파주의와 무지를 향한 용기
  • 김동규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09.14 20:24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 보수 개신교 교단들의 혐오와 배제를 기반으로 한 여러 결의로 절망스러운 소식이 넘쳐나고 있다.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목사에 대한 이단 지정을 필두로, 신학교에서의 성소수자 배제, 여성 안수 불허 재확인, 특정 목사를 향한 근거 없는 이단 시비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악몽 같은 결의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이 모든 사안에 일일이 논박할 필요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매년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가톨릭교회 이단 규정 논란만 짚어 보려 한다.

목회자 세습은 상식 수준에서 직관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파악하기 쉽지만, 가톨릭교회에 대해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교단이 시도하고 있는 이단 규정 논란까지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한국 개신교 신자들에게 오해와 배척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오해와 배척은 단지 보수 교단에 속한 신자들만이 아니라 나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노선에 서기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별히, 매년 10월 말 종교개혁 주간에 이르면 어느 교회 할 것 없이 대체로 가톨릭교회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과도하게 각인하고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을 칭송하는 것으로 정체성 강화에 열을 올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예장합동 교단의 무지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개신교 신자들이 보여 주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개혁된 가톨릭교회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자 한다.

예장합동의 근거 없는 적대감과 무지에 대한 몇 가지 대답

일단 예장합동 교단의 무지를 지적하는 데서 논의를 전개해 보자. 이번 예장합동 총회에서 가톨릭교회가 "태양신을 섬기고, 마리아 여신을 섬기고,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믿지 않아도 구원이 있다고 하고, 코란과 성경을 동일시하고, 인간이 없이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한다"는 이유로 이교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피력되었다. 태양신을 섬긴다거나 인간이 없이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식의 정체불명의 평가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할 가치가 없어 보인다. 다만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입장은 개신교 신자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대목 중 하나이므로 짚고 넘어가 보자.

실제로 가톨릭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별히, 가톨릭교회는 마리아 승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등 개신교 신자들이 볼 때 다소간 납득이 되지 않는 교리를 견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통해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지위 문제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되었다.1) "거룩한 교회는 당신 아드님의 구원 활동과 풀릴 수 없는 유대로 결합되어 있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마리아를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한다"(<거룩한 공의회 Sacrosanctum Concilium>, 103항). 여기서 보듯,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동참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많은 개신교 신자가 철저하게 견지하고 있는 성부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독보적 지위를 가톨릭교회 역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인류의 빛은" 단연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시고 성부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며, 당신의 순명으로 구원을 성취하셨다"(<인류의 빛 Lumen Gentium>, 1, 3항). 이러한 선언을 두고 20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의 대부이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입회인(observer)으로 초청받기도 했던 칼 바르트는 가톨릭교회가 더욱 그리스도-중심적으로 변모했음에 좋은 인상을 받고 로마가톨릭교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안타깝게도 바르트는 건강상의 문제로 당시 공의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의회가 끝난 다음 해인 1966년 교종 바오로 6세를 잠시 만나기도 했고, 바티칸의 여러 대표자와 회합을 가졌다).2)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 성베드로대성당에 운집한 사람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변화는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루어진 루터교회와 가톨릭교회 사이의 협약 <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이란 결실을 낳게 된다. 이 협의의 주체는 세계루터교연맹과 바티칸 교회일치평의회였지만, 감리교회도 2006년 이 협의문에 서명하여 그 영향은 더 커진다. 이 문서는 칭의 교리에 대한 합의를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이 의에 참여하게 된다. 공동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우리의 공로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며 선행을 가능하게 하고 선행을 하게끔 촉구하는 성령을 받는다"(<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 15항).3)

여전히 교파별로 세부적인 입장의 차이는 있겠으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이 선언문만 잘 들여다봐도 구원에 있어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개입한다거나 선행 구원론을 내세운다거나 믿음 없이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식의 평가는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충분히 드러난다.

"코란과 성경을 동일시한다"는 억측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기에 딱히 저 말 자체에 답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가톨릭교회가 이슬람 등의 타 종교를 향해 보이는 개방적 태도에 대한 반감이 표현된 것 같다. 역시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새겨진 가톨릭교회의 이슬람에 대한 표준적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또한 무슬림도 존중하고 있다. 그들은 살아 계시고 영원하시며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유일신을 흠숭하며,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순종하였듯이 그들 신의 감추어진 뜻에 충심으로 순종하며, 아브라함에게서 이슬람 신앙을 이어받았다고 즐겨 주장한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예언자로 받들며, 또 그분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여 때로는 그분의 도움을 정성되이 간청하기도 한다.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에 적지 않은 불목과 적대가 있었지만, 거룩한 공의회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서로 이해하도록 진심으로 노력하며 온 인류를 위하여 사회 정의와 도덕 가치, 평화와 자유를 공동으로 수호하고 증진하기를 모든 사람에게 권고한다"(<우리 시대 Nostra Aetate>, 3항).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이슬람과의 차이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선 증진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할 여지가 큼을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가 보여 주는 이슬람을 향한 반감과 혐오와는 다르게 가톨릭교회는 '우리 시대' 가운데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계기를 교도권 아래 분명하게 새겨 놓았다. 이는 현재 유럽이나 한국에서 개신교보다 가톨릭이 이슬람 난민에 대해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신학적 근거가 되고 있다.

개혁된 가톨릭교회로부터 배울 것

위에서 언급한 억측과 오해, 혐오를 뛰어넘어 가톨릭교회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일반적인 한국 개신교회보다 훨씬 개혁된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을 이끌어 낸 계기는 단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다. 사실 대체로 개신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톨릭을 향한 편견은 중세 가톨릭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오늘날 가톨릭교회에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에 생성된 경우가 많다. 개신교 신자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만 제대로 이해하더라도 가톨릭에 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아름다운 신학적 진술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1958년 '뚱보'라고 놀림을 받으며 과도기의 교종 정도로 평가받았던 요한 주세페 론칼리, 곧 요한 23세는 시대에 뒤처진 낡은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위해 1962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했다. 불행하게도 요한 23세가 1963년 서거하여 불안감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바오로 6세의 관장 아래 공의회는 1965년 무사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여기서 승인된 공의회의 합의들은 지금까지 가톨릭교회의 개혁적 행보의 추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이 공의회에는 각 나라 주교들만이 아니라 칼 라너, 이브 콩가르, 앙리 드 뤼박, 에드바르드 스힐레베이크스, 요제프 라칭거와 같은 당대의 탁월한 신학자들이 지혜를 모아 한층 발전된 신학적 규정을 내놓게 된다. 이를테면 라틴어로 집전되던 전례를 각국의 언어로 집전할 수 있도록 규칙을 바꾸고,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의 신학을 정립했으며, 개신교·동방정교회 등을 갈라진 형제이자 함께 일치를 이뤄 가야 할 동료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했으며, 타 종교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명시하는 등의 성과를 이룩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가톨릭교회는 낡은 구교회가 아니라 개혁된 신교회가 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의된 각 헌장의 내용을 치밀하게 살펴보면 더 좋겠지만, 지면 관계상 그럴 여유는 없으니 개신교가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넘어 배워야 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특성만 언급하기로 하자. 먼저 공의회를 통해 실천되는 보편적(catholic) 교회를 향한 신학적·정치적 질서 확립과 열망을 배울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개신교, 특별히 한국 개신교는 보수건, 진보-개혁 진영이건 교파주의와 개교회주의의 현실을 극복할 동력을 잃었다. 여전히 각 교단 총회는 자기-정체성을 강화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고, 이러한 정체성 강화의 노력들은 타자를 배제하는 가운데 교파주의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개별 교회들 역시 어떤 교단에 속해 있든지, 자기 교회의 성장과 유지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갈등이 생기면 교회 정관이나 교회법을 억지로 재해석하거나 간단하게 수정해 버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여 자꾸만 분열을 재생산하는 습속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신학적·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후카이 토모아키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법의식은 개신교계가 압도적으로 약하다고 본다. 개신교와 비교할 때 가톨릭은 법에 대한 의식이 확실히 다르다. 가톨릭의 교회법은 세계적으로 보편화해 있다. 개신교 교회법은 교파에 따라 제각각이다. 자기 집단 안에서만 올바르면 올바른 것이다. 이상하게 상대화해 버렸다. 제멋대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법의식에서 개신교가 범하는 잘못이다."

1958년 11월 4일 대관식 직후 모습을 드러낸 요한 23세.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개신교 교파들은 철저히 서로 분리된 채로, 딱히 교파들 간에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그저 그런 교회 유지를 위한 경쟁만 하게 될 뿐이다. 신앙고백을 통해 공교회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미 없는 구술에 그친 지 오래다. 이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비록 로마교회를 위시한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는 있지만, 전 세계로 흩어져 있는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일치와 쇄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신학적-정치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역과 수도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교구의 문제, 다른 나라 다른 지역 성당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되고, 우리의 문제라는 의식이 개신교회에 비해서는 훨씬 발전해 있다.

한 예로 개신교회의 목회자 성 추문에 대한 대응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다. 가톨릭교회 역시 성 추문에 자유롭지 않으나 이를 개별 교회나 교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 등지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성 추문에 대하여, 가톨릭교회는 성 학대 재발 방지 등을 주제로 내년 2월 각국 사제 대표회의(시노드)를 소집하기로 했고, 올해 2월 드러난 수원교구 소속 가톨릭 신부의 성범죄와 관련해서도 주교회의와 수원대교구의 공식 사죄가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물론 이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더 따져 봐야 할 것들이 있다. 다만 여기서는 공동체적 대응을 한국 개신교 교회와 비교해서 평가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가톨릭과 개신교의 윤리 의식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한 몸으로서의 보편교회로서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이나 법의식, 책임의식, 제도의 뒷받침 등이 개신교회보다 가톨릭교회가 더 앞서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이다.

다음으로, 쇄신으로서의 현대화와 적응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결의를 기반으로 삼아 세상과의 대화, 타 종교와의 대화, 문화적 자율성의 인정, 오늘날 현실 속에서 공동선의 성취를 적극 추구하는 신학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이를테면 개신교회를 '분리된 형제'로 인정하여 포용하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정신이 되었고,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인 <일치의 재건 Unitatis Redintegratio>을 통해 타 종교와의 대화의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타-종교와의 대화 자체를 선교의 일환으로 보는 새로운 선교관을 마련하게 되었다.4)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은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종으로까지 계속 계승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은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시절의 결실이고, 베네딕토 16세는 재임 시절 루터가 수도사 시절을 보낸 성아우구스티노수도원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나 대화의 물꼬를 더 크게 열었으며, 프란치스코 교종은 동방정교회와 루터교회 등과의 화해의 행보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 아울러 작년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신교의 종교개혁을 긍정적으로 반성하고, 개신교 신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시도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기도 했다.5)

물론, 가톨릭교회 역시 여전히 낙태를 일방적으로 죄악시하거나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교리적으로 불허하는 문제, 가부장적 위계질서의 문제와 관련해서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하지만 이미 그 옛날 대표적인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모든 낙태를 죄로 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를 법적으로 막으려는 동료 사제들의 행보를 비판한 바 있고, 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문화권 가운데 하나인 벨기에의 추기경 요제프 더 케젤은 동성 결혼에 대해 축복할 수 있으며, 여성 안수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최근에 피력한 바 있다.6)

이처럼,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도 쇄신의 목소리와 다양한 견해는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공의회나 시노드의 결의를 통해서 공식적인 입장의 변화가 이루어지면, 그것이 세계 가톨릭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에, 개신교보다 훨씬 더 강한 개혁성과 급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가 그저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거나 정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신학적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가톨릭교회가 가진 큰 장점일 것이다. 한국 개신교 교단들의 신학은 이미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된 지 오래지 않은가.

바티칸 남동쪽에 있는 성베드로대성당.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해석학적 환대를 위하여

이처럼, 개혁되는 교회는 더 이상 개신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16~17세기의 개혁 정신에 머물러 있는 동안, 가톨릭교회는 20세기에 크나큰 개혁을 이루어 냈고, 프란치스코 교종을 위시해서 21세기 내 이루어질 개혁을 더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러한 개혁을 배우기 위해 미로슬라브 볼프가 제안한 "해석학적 환대"를 개신교 신자들이 실천해 보길 제안한다.7)

이는 다른 종교 내지 종파의 경전이나 주요 신학적 텍스트를 읽을 때, 그것을 최대한 호의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로 읽고 해석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종교 간, 교파 간 대화와 이해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타자의 텍스트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실천 방식이다.

이러한 태도를 기반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읽어 낼 수 있다면,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에 대한 더 나은 이해는 물론이고, 그 선물을 통해 자기 자신의 개혁을 위한 이해의 변화까지 일궈 낼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프란치스코 교종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개혁을 선도하고, 쇄신하고 있는 바로 이 시기가 개혁되지 않은 개신교가 개혁된 가톨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라면, "해석학적 환대"는 개신교 신자들이 오늘날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삶의 방식일 것이다.

김동규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연구원,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운영위원

1)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다음 사이트에서 번역 전문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식 번역문으로 본문의 인용도 이 사이트에 게시된 것을 따랐다(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doctrine/doctrine_list.asp?menu=concil). 
2)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대한 바르트의 평가에 관해서는 Karl Barth, Ad Limina Apostolorum: An Appraisal of Vatican II, translated by Keith R. Crim (Eugene: Wipf and Stock, 2016) 참조.
3) 해당 인용은 <기독교타임즈> 자료실에 있는 조남홍 교수의 번역을 따랐다.
4) "타 종교와의 대화는 교회의 복음화 사명의 일부이다. 이 대화가 상호 인식과 상호 기여의 길이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외방 선교에 배치되지 않을뿐더러 선교와 특수한 관련이 있고 선교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Redemtoris Missio>, 55.
5) 예를 들어 2017년 벨기에 루뱅대학교(KU Leuven)에서 열린 조직신학 컨퍼런스[11th Leuven Encounters in Systematic Theology(LEST)] 주제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반목을 넘어선 갱신과 개혁'(ECCLESIA SEMPER REFORMANDA: RENEWAL AND REFORM BEYOND POLEMICS)이었다. 국내에서도 2016년에는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에서 개신교 신학자들을 대거 초청한 가운데 '종교개혁 500년, 그 빛과 어둠'이란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 컨퍼런스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이제는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가 무엇이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선 신앙의 공통 유산이 무엇인지 공유하면서 복음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함께 기도하며 실천하는 일부터 구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권고했다.
6) "Cardinal Jozef De Kesel backs prayer ceremony for gay couples," La Croix (August 2, 2018) 참조.
7) Miroslav Volf, A Public Faith: How Followers of Christ Should Serve the Common Good (Grand Rapids: Brazo Press, 2011), 136. [한국 IVP 역간]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동규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line [합동24] 오정호 목사 "복음주의 단체 사상 의심 아냐" [합동24] 오정호 목사
line [합동12] 가톨릭 '이교' 지정, 1년 더 연구 [합동12] 가톨릭 '이교' 지정, 1년 더 연구
line '교회를 위한 철학자' 제임스 K. A. 스미스 '교회를 위한 철학자' 제임스 K. A. 스미스
line 신학하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신학하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line "신학은 그릇, 그릇 하나를 절대화하면 안 돼"
line 가톨릭이 이단이라는 예장합동 지도자들에게 가톨릭이 이단이라는 예장합동 지도자들에게

추천기사

line 명성교회 세습 재심 여부 또 연기 명성교회 세습 재심 여부 또 연기
line 조화와 무게, 그 사이에서 조화와 무게, 그 사이에서
line 교회를 떠나자, '교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를 떠나자, '교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