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도권에서 신학·인문학을 바탕으로 시대를 사유하고자 하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주제로 <뉴스앤조이>에 글을 연재합니다. 이 시대 주목할 만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를 소개하는 에라스무스 연구원들의 글을 차례대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마크 테일러(Mark C. Taylor, 1945~)는 그의 학술적 업적과 열정적 활동, 사상적 가치에 비해 국내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종교철학자이자 포스트모던 신학자다. 일반적으로 그는 절친했던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해체론을 렌즈 삼아 신학·문화·건축·패션·현대미술·미디어·기술·금융·자본 등 각종 영역에 접근하고, 이 영역의 근본 문제를 탐구·해석·이해하고자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테일러가 1984년 발표한 저술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론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은 그의 신학적 작업의 요체로서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하나의 신학적 사유 모델을 제시한다. 또한 이후 그가 전개하는 다른 모든 연구 활동의 전체 뼈대를 보여 주는 주요한 탐구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해체를 '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학'으로 정의하면서, 신학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이해를 전개한다. 그의 연구는 해체 사상에 대한 신학적 전유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마크 테일러가 지나온 학문적 여정
포스트모던 신학자 마크 테일러(Mark C. Taylor, 1945~). 컬럼비아대학교 유튜브 갈무리
포스트모던 신학자 마크 테일러(Mark C. Taylor, 1945~). 컬럼비아대학교 유튜브 갈무리

테일러는 장로교 전통에서 자랐지만, 이런 성장 배경은 단순한 명목에 불과할 정도로 더 깊은 사유로 나아간다. 왕성한 활동을 해 왔고 여전히 활발한 그의 연구를 모두 다루기에는 지면의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테일러의 학문적 여정을 확인하고, 특별히 신학과 관련한 그의 독특한 사유를 통해 그가 지닌 우리 시대 그리스도교 사상가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1945년 12월 13일, 테일러는 고등학교에서 생물학·물리학을 가르치는 아버지와 문학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삶의 일부처럼 친숙하게 여겼으며,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며 자랐다.1)

테일러에게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누나가 있었고, 어린 시절 그의 곁을 떠난 형제가 있었다. 그는 이 일들에 종교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그를 성직으로 이끌기보다는 철저하게 학문적인 사유와 탐구로 이끌었고, 훗날 '죽음' 또는 '신의 죽음'에 대한 그의 사유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된다. 2)

테일러는 1968년 웨슬리안대학교(Wesleyan University)에서 종교를 전공해 학부 과정을 마쳤고, 1973년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종교학과에서 철학적 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연구를 진지하게 수행하지 못한다. 베트남전쟁, 1960년대 학생운동, 다양한 문화적·정치적 활동 등 사회문제에 소외감을 느꼈고, 고용 시장 또한 폭락하면서 연구만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윌리엄스대학교(Williams College)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얻는다. 이를 통해 학문적 작업을 꾸려 나갈 안정적인 환경을 갖추고, 앞으로 40여 년간 이어지는 대학 교육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3)

1971년 가을, 테일러는 쇠렌 키에르케고어(Søren Kierkegaard, 1813~1855)를 연구하는 또 다른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떠났고, 드디어 이를 바탕으로 진지한 연구를 수행한다. 20대를 회고하며 칸트·헤겔·니체·키에르케고어에 관심을 두고 탐독했다고 고백하는 그는,4) 1975년 <키에르케고어의 가명 저술: 시간과 자기에 대한 탐구 Kierkegaard’s Pseudonymous Authorship: A Study of Time>를 편찬하고, 1981년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에서 키에르케고어 연구로 두 번째 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한다.

그를 훗날 한 사람의 사상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무엇보다도 1980년대에 경험한 '해체주의적 전회'였다. 테일러는 친구 칼 라쉬케(Carl Raschke, 1944~)를 통해 당시 떠오르던 철학계 스타 데리다를 알게 된다. 이후 데리다의 사상은 그의 모든 관심을 집어삼켜 버린다.5) 그렇다고 테일러가 데리다의 추종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의 사상적 동반자는 늘 헤겔과 키에르케고르였고, 다만 알타이저(Thomas J.J. Altizer, 1927~2018)와 데리다를 사유하고 전유했을 뿐이다.6) 그는 알타이저를 추종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데리다'와 더불어' 여전히 신에 대해 물었다.7)

1982년, 그는 '피해자로서의 텍스트 Text as Victim'라는 논고와 함께 "해체신학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해체와신학>의 일원으로 참가"하고 <신학을 해체하기 Deconstructing Theology>를 출간하면서 자신만의 사상적 기반을 확고하게 뿌리내린다.8) 이를 바탕으로 그는 삶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본격적으로 수행해 39살이 되던 해에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론>을 발표한다. 그는 이 책에서 전통 신학의 주요 개념인 '신', '자기'(self), '역사', '서'(Book)를 해체하고, 이를 '쓰기'(writing), '표시'(marking), '방랑'(mazing), '이탈'(erring)로 재구축한다.9) 많은 이가 이 저술에 극찬을 보냈고, 그는 당대는 물론 현재까지 해체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마크 테일러의 대표 저서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론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마크 테일러의 대표 저서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론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테일러는 1980년대 후반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이후 20년간 이어지는 자크 데리다와의 우정을 쌓았고, 그의 사유를 보다 깊이 전유하면서 <타자성>(1987), <눈물>(1989) 등을 저술한다. 그는 1990년대 이후 해체적 사유를 확대해 본격적으로 신학·종교 영역을 넘어 과학기술, 다양한 문화 예술 전반, 자본주의와 금융을 탐구해 간다. 대표적인 작품은 테일러 스스로 가장 독창적이라 평가하는 <숨어 있음 Hiding>(1999)이다.10)

물론 그는 단순히 연구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가르치는 일 또한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며 둘을 분리하지 않았다.11) 그는 1995년 '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서 '올해의 교수'로 선정됐으며, 보다 나은 교육과 실천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관심은 비록 실패했지만,12) 허버트 알렌(Herbert Allen)과 함께 'Global Education Network'를 창립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교육 활동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교육에 관한 테일러의 생각들은 2010년 <캠퍼스의 위기 Crisis on Campus: A Bold Plan for Reforming Our Colleges and Universities>에서 제시된다.

테일러는 2005년 가을 오랫동안 앓던 당뇨로 패혈성 쇼크에 빠지면서, 다시 한번 죽음과 깊게 마주한다. 이 경험을 계기로 2009년 자서전 성격의 <필드 노트 Field Notes from Elsewhere: Reflections on Death and Living>를 저술한다. 그는 병을 잘 이겨 내며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신 이후 After God>(2007)를 저술해 2008년 미국 종교 학술 도서상을 수상한다.

2000년 이후 테일러는 교육적 열정과 더불어 금융·자본주의·과학기술 문제 등과 관계하면서, 이 영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종교적 표현, 이를테면 라스베이거스에서 발견하는 신성함 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13) 하지만 "금융·자본주의의 착취"나, "종교적 공동체, 특별히 가난한 유색인종 공동체" 문제 등에 대해서는 큰 문제의식을 나타내지 않았고,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지지자라고 비판받기도 했다.14) 그의 관심사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새로 등장하는 다양한 '쓰기' 형태들에 있었다고 해도, 해체적 사유를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실천을 추구하는 윤리적 면모를 찾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그는 1980년대 해체적 사유나 후기구조주의에서는 그럴듯한 윤리적 입장과 정치적 전략을 개발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15)

테일러는 2007년 컬럼비아대학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2015년까지 종교학과 학과장으로 일했으며, 여전히 컬럼비아대에 재직하고 있다. 그는 거의 매년 저서를 출판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2권을 내놓았을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과 사유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마크 테일러. 사진 출처 컬럼비아대학교 홈페이지
지금까지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마크 테일러. 사진 출처 컬럼비아대학교 홈페이지
마크 테일러와 '무/신론'(a/theology)

테일러의 신학적 성찰 중 하나를 꼽자면, 무엇보다 그의 해체적 아이디어가 집약된 '무/신론'(a/theology)이라는 신학 개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신론은 기본적으로 '존재-신-론'(Onto-theo-logy) 또는 존재의 형이상학 측면에서 신을 사유하는 일을 지적하는 20세기 이후 유럽 대륙 철학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를 통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존재신론이란 우리가 가진 일종의 '사유 습관'을 말한다. 그 습관이란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을 항상 다른 것과의 공통적인 측면, 혹은 그것들 가운데 전형이라 할 만한 것에 견주어 사유하는 행동이다.

문제는 우리가 소위 체계적이라 부르며 오랫동안 타당하다고 여겨 온 이 사유 방식이 실은 매우 작위적일 뿐만 아니라, 마치 실재가 실제로 그러한 질서와 위계를 가지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 '차이'는 '우열優劣'로, '타자'는 '괴물'로 전락한다.

현대 유럽 철학을 전유하고 있는 테일러도 존재신론의 사유 습관에 오염되지 않은 신학을 구성하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 그는 가깝게는 알타이저의 '사신신학', 조금 멀게는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을 따라 '신'을 사유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지적하듯, 신은 존재신론적 사유 습관을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핵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신학 개념이 바로 '무/신론'이다.

무/신론은 단순히 신의 긍정이 아닌 부정, 곧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무신론'(atheism)과는 다르다.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근거이자 전형으로서의 신이라는 '존재의 유무'를 논하는 주장은 존재신론적 사유 습관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소위 '사신신학' 또는 '신 죽음의 신학'(theology of death of God)과도 궤를 달리한다. 알타이저의 '기독교 무신론'으로 대변되는 사신신학도 여전히 형이상학적이고 전통 신학적이기 때문이다.16)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신의 유무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헤겔의 '부정의 도식', 곧 하나의 논리 체계 안에서 부정을 부정해 긍정으로 바꾸는 헤겔의 변증법적 부정의 도식(Both/and)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테일러는 단순한 신 존재의 긍정·부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신에 대한 부정, 즉 존재신론적 사유 습관 내에서의 부정이 아닌, 그 습관과 구분되는 사유로서의 부정을 주장한다.

혹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부정신학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신 대신 '신성한 것'(the sacred)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미묘한 종류의 신비주의 또는 부정신학이라 불리기도 했다.17) 그러나 테일러는 부정신학조차 존재신론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무/신론을 부정신학과 분명하게 구분한다.

부정신학은 존재의 형이상학을 피하고자 존재자와 다른 존재 그 자체, 또는 순수한 무(Nothing)로서의 신을 강조한다. 이것은 분명 앞서 우리가 보았던 존재신론적인 사유 논리를 부정하고 이와는 구분된 신 개념을 주장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실재에 대한 확실한 구조와 신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와 표현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존재신론적으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테일러의 무/신론은 다른 논리들 중 하나를 (확실하게) 긍정하는 키에르케고어식의 긍정의 도식(Either/or)과도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테일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65~1939)로부터 부정(denegation) 개념,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님'(neither/nor)을 전유해 무/신론의 특징으로 제시한다. 부정 개념으로서의 '이것도 저것도 아님'은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설명되거나 제시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그것(어떤 것, 이를테면 신)'에 관하여'(about) 생각하고 말하고 쓸 수 있을 뿐이다. (중략) 이러한 간접성은 언어를 미끄러뜨리고 미끄러지게 만드는 노력을 수반한다. 대안은 말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는 것이고, 언어를 실패하게 만듦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18)

테일러는 자신의 '무/신론'을 설명하기 위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65-~1939)의 부정(denegation) 개념을 전유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테일러는 자신의 '무/신론'을 설명하기 위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65-~1939)의 부정(denegation) 개념을 전유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테일러는 포스트모던적 전회, 특별히 구조주의자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통해, 우리 언어는 이항 대립적으로 구조화해 있기에 언어를 통해 신을 직접적으로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만 '신적인 것'을, 그리고 신에 대해(about) 대략적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며, 그 또한 확실한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무/신론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신을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하거나,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하면서도 동시에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사유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테일러는 자신의 무/신론을 이와 같은 방식의 사유 논리를 보여 주는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와 구분하면서, 데리다와 함께 하이데거를 비판한다. 그는 자신의 무/신론은 (존재신론의 영향하에 있는 전통적인) 신학도 아니고 신학이 아닌 것(신적인 것과 관련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19)

테일러는 데리다의 해체적 사유를 전유하면서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을 보다 근본적이고 충만하게 탐구하고자 한다. 그는 해체적 작업은 "신의 죽음을 해석하는 것" 또는 "신의 죽음을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전통적인 신 개념이 가진 문제에만 몰두하지 않고 서구 신학의 질서를 형성한 자기(self), 역사, 서(book) 개념도 문제 삼는다.20) "이 개념들은 각각이 서로를 비추는 복잡한 관계에 묶여 있으며, 다른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는 어떤 하나의 개념도 바꿀 수 없다."21)

그는 무/신론(a/theology)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같은 전통 신학의 근본 개념과 개념들의 네트워크인 신학(theology)을 모두 해체(a)한다. 지금까지 신학이 전혀 주목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신학을 형성하는 쓰기(writing), 표시(marking), 방랑(mazing), 이탈(erring) 개념으로 신적인 것에 대한 사유를 그리기 시작한다. 테일러는 이러한 개념들이 '/'처럼 경계를 나타내는데, 이 경계는 "가까움과 멂, 유사성과 차이, 내면성과 외부성 모두를 의미하며", 또한 이항 대립 구조의 상호 투과적 성격과 "서로 간의 한계들을 산산조각 내는 경계"로 드러난다.22)

우리가 '무/신론'을 발음할 때, '/'을 발음하지 않고 '무신론'이라 읽지만, 글로는 '무/신론'이라 쓰듯이, 보통 주목되지 않는 주변적·경계적 개념에 주목하면서도, 이 개념을 통해 주류 개념·체계를 전복하고자 하는 테일러의 개념이 바로 '무/신론'이다. 또한 신학은 아니지만 신학이 아닌 것도 아닌 무/신론은 기존 신학의 한계를 산산조각 내고, 보다 신을 신답게 사유하려는 그의 신학적 기획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윤동민 /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 Taylor, Mark C., and Jeffrey Kosky. "Recalling Our Vocation: A Conversation about Teaching with Mark C. Taylor," in Journal for Cultural and Religious Theory vol. 12 no. 2 (Fall 2012): 6 참조.
2) George M. Schmidt, "Mark C. Taylor,' in The Palgrave handbook of Radical Theology. ed. Christopher D. Rodkey, Jordan E. Miller.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8, 399. 참조.
3) 같은 곳 참조.
4) 최병학, <테오-아르스>, 인간사랑, 2016, 287 참조.
5) George M'. Schmidt, "Mark C. Taylor", 400 참조.
6) 같은 글, 401 참조. 또한 이후 <이탈>에서 그는 분명하게 알타이저와는 다른 입장을 확립하고자 했다. "About About Religion,' Journal for Culture and Religious Theory, vol. 2, no. 2, April 2001. https://jcrt.org/archives/02.2/taylor_raschke.shtml 참조.
7) Mark Manolopoulos, With gifted thinkers : conversations with Caputo, Hart, Horner, Kearney, Keller, Rigby, Taylor, Wallace, Westphal, Bern : Peter Lang, 2009, 215 참조.
8) 배국원, <경계를 넘어 해체하자>,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한길사, 2003, 305.
9) 201 참조.
10) Thomas Rickert, David Blakesley and Mark C. Taylor, An Interview with Mark C. Taylor, JAC, Vol. 24, No. 4,pp. 808 참조.
11) Mark C. Taylor, Field Notes from Elsewhere: Reflections on Dying and Living,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9, 115 참조.
12) Taylor, Mark C., and Jeffrey Kosky. "Recalling Our Vocation: A Conversation about Teaching with Mark C. Taylor,"15 참조.
13) Taylor, Mark C., "Betting on Vegas," God, The Gift and Postmodernism, eds. John Caputo and Michale Scanlo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9, 229-242 참조.
14) George M'. Schmidt, "Mark C. Taylor", 405.
15) Thomas Rickert, David Blakesley and Mark C. Taylor, An Interview with Mark C. Taylor, 818. 이후에 그는 윤리학과 관련해 복잡성 이론(Complexity Theory)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데, 이것이 그의 말처럼 학문 정치를 넘어서 얼마나 실제적인 저항과 실천을 제시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할 문제다.
16) Taylor, Mark C., "About About Religion," 참조.
17) 같은 글 참조.
18) 같은 글. 괄호의 내용은 필자 첨부.
19) 같은 글 참조. (괄호는 필자)
20) Taylor, Mark C.,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6. 고전적 유신론의 교리에 의하면, 신은 하나이며, 최고의 창조주이자, 그의 신성한 매개인 로고스를 통해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 그 과정을 섭리하며 인도하는 분이다. 이 시원적 기원(제일 원인 또는 아르케)은 세계의 궁극적 끝(최종 목표 또는 텔로스)이기도 하다. 완전히 초험적이며 영원한 신은 그 자신을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분으로 표현된다. 사실 그는 전능의 원천, 근원, 근거이며 그리고 현전 그 자체의 원인 없는 원인이다. 자기는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며, 결과적으로 또한 하나, 곧 중심적인 개인이기도 하다. 자기의 창조주를 반영하면서, 단일한 주체는 자기-의식적일 뿐만 아니라 자유로이 활동힌다. 합쳐서 고려하자면, 자기-의식과 자유는 개인의 책임을 수반한다. 역사는 신의 지도와 인간의 주도권이 만나는 영역이다. 사건들의 시간적 과정은 무작위적인 순서로 간주되지 않는다. 역사는 확실한 시작(창조)부터 식별 가능한 중간(성육신)을 거쳐 기대되는 종말(왕국 또는 구원)까지 뻗어 있는 단일한 선을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정돈된 측면에서 볼 때, 역사는 논리 정연하게 제시될 수 있는 의미를 가진 목적이 있는 과정을 형성한다. 한 페이지, 한 챕터마다 책은 신과 자기의 상호작용에 대한 통일된 이야기를 엮어 낸다. 이 서사의 논리가 역사의 로고스를 반영하기 때문에, 성서는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쓴다. 따라서 신, 자기, 역사, 책은 각각 서로를 비추는 복잡한 관계에 묶여 있다. 같은 책, 7.
21) 같은 책, 7.
22) 같은 책,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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